무림맹주의 정체
바로 이때 정화진이 소리쳐 물었다.
"그대가 목격한 사실이오?"
복면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두 눈을 가리켰다.
"그렇소. 양진이 쌍검기로 그대의 사부 진성 사태와 무당의 장문인 충헌 진인을 죽이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소!"
성진은 이제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님과 복면인들이 싸울 때 이 자가 지켜보고 있었구나!'
성진이 이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분노에 찬 아미 제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진이 사부님을 죽인 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산동으로 가 양진을 죽여 복수합시다!"
"일단 양씨 남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사로잡읍시다!"
"만약 양씨 남매가 사부님을 죽이는데 일조했다면, 마땅히 죽여야할 것이오!"
성진은 속으로 외할아버지 이청을 원망하고 있었다.
'외할아버님께서 진성 사태의 시신을 아미에 전달하라는 명만 내리지 않으셨어도 지금처럼 나와 소화의 생명이 위태롭지는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시키셨담!'
아미 제자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가운데, 성진이 손을 들며 외쳤다.
"아미 여협들은 진정하시고 잠시 내 말을 들어보시오!"
성진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음에도 아미 제자들은 계속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네 놈의 할아비가 우리 사부님을 죽였는데, 염치없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이냐?"
"애초부터 네 할아비가 사부님을 죽인 것을 알고 사부님의 시신을 가져온 모양인데, 그렇다고 우리가 자비를 베풀 것이라곤 기대하지 말거라!"
이때 정화진이 손을 들며 외쳤다.
"사저님들! 일단 양소협의 말을 들어봅시다!"
정화진이 외치자 아미 제자들이 잠잠해졌다.
좌중이 잠잠해진 틈을 타 성진이 외쳤다.
"제 할아버님께선 보름전에 열 명의 복면인의 협공을 받아 피치 못하게 열 명의 복면인들을 죽였지만, 이는 태산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진성 사태의 시신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 숭산 아래에서 정체 불명의 복면인으로부터 부탁받은 것입니다. 그 복면인이 제 할아버님이 아닌 사실은 제 목숨을 걸고 보증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 할아버님께서 진성 사태를 죽이셨다면, 저에게 진성 사태의 시신을 부탁한 복면인은 대체 누구이며 그 복면인이 진성 사태의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아봐야할 것입니다!"
일단 살고 보자는 생각에 시신을 부탁한 복면인이 외할아버지임을 숨긴 것이다.
성진은 복면인을 가리키며 덧붙여 외쳤다.
"또한 이 복면인이 진성 사태의 죽음에 연관이 있을지 모르니 절대 도망치게 놔둬선 안 됩니다!"
성진의 시선은 복면인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저 복면인이 부모님을 죽인 흉수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성진은 마음 같아서는 복면인에게 달려들어 진실을 실토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꾹 참고 소리쳤다.
"그대는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 보시오!"
"궁지에 몰리니 물귀신 작전을 쓰겠다는 것인가? 으하하하하하하......"
복면인이 웃는 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성진과 소화는 물론 정화진을 비롯한 모든 아미 제자들의 귀청이 울릴 정도였다.
정화진이 노하여 호통쳤다.
"사부님의 시신 앞에서 시끄럽게 웃지 마시오!"
웃음을 그친 복면인은 곧바로 포권을 취해 정화진에게 사과했다.
"양씨세가의 물귀신 작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 것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라겠소."
성진은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물귀신 작전이라니, 말을 삼가하시오!"
그러고는 덧붙여 소리쳤다.
"그대가 진성 사태의 죽음에 아무 연관이 없다면,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 보란 말이오!"
정화진도 의혹이 생겨 복면인에게 호통쳤다.
"그대가 이 모든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어서 밝히시오!"
복면인이 다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웃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양씨세가 애송이가 죽음을 자초하는군!"
성진은 의아했다.
'죽음을 자초하다니, 대체 무슨 소리지?'
"좋소. 내가 본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밝히겠소."
운을 뗀 복면인이 말하기 시작했다.
"보름전, 나는 무림맹주의 명을 받고 태산으로 갔소. 내가 말한 모든 것은 그때 본 것을 말한 것이오."
성진은 의문을 참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무림맹주는 어째서 그대에게 태산으로 가라는 명을 내렸소?"
복면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놈이 어찌 감히 무림맹주께서 명하신 일을 따지는 것이냐?"
성진도 지지 않고 외쳤다.
"무림맹주가 진성 사태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오!"
성진은 부모님을 죽게 만든 흉수가 무림맹주임을 확신했다.
15년 전에 부모님을 죽게 만든 무림맹주가 구대 문파의 장문인을 핍박해 할아버지와 싸우게 만들었다는 것이 성진의 추측이었다.
성진이 소리친 한마디에 아미 제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림맹주가 사부님을 죽게 만들었다니, 근거 있는 소리야?"
"무림맹주가 누군데 사부님을 죽게 만들었다는 거야?"
정화진이 성진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을 근거로 무림맹주가 사부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오?"
"보름 전, 할아버님께선 기습을 당하셔 어쩔 수 없이 싸우셨는데, 저 자가 무림맹주의 명을 받고 태산으로 갔다는 것은 이 싸움을 일으킨 자가 무림맹주란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소!"
성진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정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양소협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사부님을 죽게 만든 장본인은 양장주가 아니라 무림맹주일 것이오."
정화진이 복면인을 향해 물었다.
"사부님이 양장주와 싸운 것은 무림맹주가 시킨 일이 맞소?"
복면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면, 무림맹주는 무엇 때문에 그대에게 태산으로 가라 명한 것이오?"
정화진이 묻자 복면인이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내가 모르는 일이오. 나는 태산 고갯마루로 가보라는 무림맹주의 명을 받았을 뿐이오."
성진이 끼어들었다.
"그대는 모른다 하여도 정황상 무림맹주가 내 할아버님과 구대 문파 장문인들과 싸움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소."
정화진이 한마디 거들었다.
"사부님께선 평소에 양장주의 무공이 천하제일이라 말씀하시며 치켜 세우시곤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부님께서 아무 이유없이 양장주와 싸울 이유가 없을 것이오."
상황이 불리해지자 복면인은 성진을 가리키며 실로 뜻밖의 말을 했다.
"정소저, 이 애송이 놈이 양진이 그대의 사부를 죽이는데 일조했으니 마땅히 사부님의 원수를 갚아야하지 않겠소?"
성진은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진성 사태의 뒤에서 소리쳐 죽게 만든 것도 알고 있구나!'
여자의 직감이라 할까, 정화진이 성진의 속을 꿰뚫어보듯 물었다.
"양소협, 그대가 정말 내 사부님을 죽이는데 일조했소?"
이때 소화가 다급히 눈짓했다.
'오라버니, 절대 사실대로 말씀하시면 안 돼요!'
성진은 소화의 눈짓을 보고도 못 본 척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할아버님께서 남은 세 명의 복면인과 싸우시다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셨을 때 손주로서 마땅히 할아버님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뒤에서 소리쳤고, 두 명의 복면인이 내가 외친 소리에 고개를 돌리다 할아버님의 검기에 맞아 죽었소만, 그땐 그 복면인이 진성 사태임을 알지 못했소."
소화는 모든 것이 끝장이란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고지식한 오라버니께서 사실대로 실토했으니 이제 죽는 일만 남았겠군.'
"그렇다면, 애초부터 그대는 시신이 사부님의 시신임을 알고 가져온 것이겠군요."
정화진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차 물은 것이다.
성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복면인이 껄껄 웃었다.
"으하하하하하...... 물귀신 작전을 쓰다가 진짜 귀신이 되게 생겼군!"
순간 울컥한 성진은 복면인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대가 말하는 무림맹주가 부모님을 죽게 만든 것이 틀림없으니, 귀신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복수하겠소!"
복면인은 성진의 말을 무시한 채 정화진에게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이 몸은 볼 일을 다 봤으니, 이만 가보겠소."
복면인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무림맹주의 정체를 밝히기 전엔 아무데도 못 간다!"
성진이 복면인의 앞을 가로막고 호통친 것이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