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칭찬고자
6화.칭찬고자
“내가 최 과장님과 마주칠 일이 없어서 몰랐었나? 과장님 피부 굉장히 좋으시네요. 암튼 지각비 건은 최 과장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건 뭐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강형모 이사 때문에 짜증이 났었는데, 그런 그가 미션을 클리어를 해줬다.
나는 사장 책상에 강형모 이사의 한 달 치 지각비 30만원을 올려놨다.
30만원을 받아든 사장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에게 나가보라고했다.
***
나는 퇴근하고 집으로 오면서 오랜만에 마트에 들렀다.
혼자 살게 되면서 거의 사지 않았던 과일들, 풀 때기들, 기름기가 적은 구워 먹는 고기들을 골랐다.
신체나이를 본 이상 계속 배달음식을 내 몸속에 넣어주는 것이 미안해졌다.
피부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걸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마치 청소를 안 할 때는 집에 먼지가 굴러다녀도 그러려니 하다가, 한번 날 잡고 대청소한 후에는 한동안은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심리라고나 할까?
피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만져도 미끌미끌, 광채 나는 피부가 되고 보니 이걸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참 신기한 변화다.
물론 나도 아주 예전에 사춘기 여드름이 올라오면서 피부를 걱정하긴 했었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도 세수를 깨끗이 하며 피부에 신경 쓸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 지난일.
회사를 다니면서 계속 같은 일의 반복, 달라질 것도 없는 인간관계, 건조하기만 쳇바퀴 도는 일상. 피부는 무슨... 어느 샌가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게임으로 피부 하나 좋아지고 있을 뿐인데, 내 삶에 생기가 도는 것 같은 이런 느낌적인 느낌이 나 스스로도 놀랍다.
집에 와서 오랜만에 저녁을 만들어 먹고 나니 취침시간이 더 늦어졌다.
하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침대에 눕자마자 보상 창이 떠오른다.
[띠링_]
[스테이지 2-1. 보상 도착_ 아쿠아 필링_ 1/3]
[보상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최로안님의 피부 상태에 맞춰 아쿠아 필링레이저를 설정합니다.]
[설정중.....]
[레이저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예상 소요 시간 15분]
[지금 보상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예/ 아니요]
60.59.58...
[예]를 선택한다.
응??? 고통을 예상했지만, 이건 생각보다 하나도 안 아프다.
음... 이것이 아쿠아 필링이구나...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이다. 뭔가 관리 받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스테이지 2-1. 보상이 완료되었습니다.]
[피부 탄력 +5, 피부 톤 +5, 피부 광채 +5, 각질 –10, 주름 –5]
보상이 끝나자마자 피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 나는 화장실 거울 앞으로 달려간다.
“이거 참 거울 좀 하나 장만해야겠네~”
우리 집 거울은 화장실 거울밖에 없다. 나는 화장실 거울에 달라붙어서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다.
“우와....”
코에 있던 블랙헤드들이 정말 좀 옅어지고 얼굴이 더 환해진 느낌이다.
불과 며칠전만해도 나는 그저 30대 중반 아저씨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피부가 좀 하얀 30대 중반 아저씨가 되었다.
피부 좀 좋아지면 더 어려보이지 않나?
이거 점점 더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역시... 피부 레이저를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침대로 돌아온다.
[띠링_]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션 창.
좋아! 이번에는 어떤 미션이냐!!
[스테이지 2-2. 피부 재건하기 실전게임]
[미션: 타인의 외모를 칭찬하라!]
[진정한 미남은 주변인들을 돌아볼 줄 알아야합니다. 주변인들에게 미남의 친절한 미소와 함께 칭찬을 선물하기 바랍니다. 진정한 미남은 남을 칭찬하는 것에 능숙한 스킬을 가져야합니다.]
[보상: 플락셀 레이저_ 1/3]
[플락셀 레이저: 아주 작은 수십 개의 레이저 빔을 쏘아 콜라겐 활성을 유도하여 피부를 재생시킵니다.]
[효과: 피부 치밀도 +10, 피부 탄력 +5, 피부 톤 +5, 피부 광채 +5, 모공 –10, 주름 –5]
[수락/거절]
60.59.58.57....
[수락]
칭찬하기라... 내가 남을 칭찬을 해야 하는 미션이다. 그것도 그냥 칭찬이 아닌 ‘외모’를 칭찬해야한다. 내 외모에도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내가 남한테 관심이 있었을 리가 있나.
그나저나 누굴 칭찬하지? 아무래도 회사에서 그나마 제일 많이 마주칠 기회가 있는 건 고은미 대리인데...
“고은미 대리 오늘 피부 좋아 보이는데?? 악!!!”
“고은미 대리 오늘 스타일 좋아 보이는데??? 악!!!!”
혼자 침대에 누워서 연습 해봐도 이건 아니다. 나를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거다. 이 아저씨가 아침부터 왜 이러나?? 아니면, 왜 자기한테 아침부터 추파를 던지나? 라고 오해할 것 같다.
그렇다면 임진혁 대리??
“임진혁 대리님 오늘따라 피부가 좋아 보이십니다. 악!!!”
이것도 상상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나는 가뜩이나 평소에 다가오는 임진혁 대리를 나름 최대한 멀리하고 있었다. 물론, 눈이 마주치면 인사는 먼저 한 적은 있지만, 업무 외에 사담을 먼저 걸어본 적이 없다. 뜬금없이 ‘임진혁 대리 오늘 피부 좋네.’를 말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차라리 이상해보여도 고은미 대리보다는 임진혁 대리한테 미션을 시도 하는 게 오해받을 일 없지 않을까?? 같은 남자니까... 아... 같은 남자여서 더 이상한 오해를 받으려나...
이거 피부 칭찬듣기보다 칭찬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미션성공을 위해서라면 난 내일 고은미 대리든, 임진혁 대리든 누구한명한테는 꼭 해야 한다.
난 할 것이다! 난 할 수 있다! 다짐을 하면서 잠이 든다.
***
“최 과장님! 안녕하세요.”
“네~ 고은미 대리! 좋은 아침이에요. 오! 오늘따라 피부가 좋아 보이네요?”
“어머! 정말요? 오호호호. 감사합니다. 최 과장님 피부가 더 좋으세요.”
“허허허. 그런가? 오늘도 즐겁게 하루를 시작해봅시다!!”
“네!! 좋아요!! 과장님도 파이팅!!”
이렇게 미션에 성공했냐고??
아니다. 이건 내 상상이다.
아침에 고은미 대리가 나에게 인사를 하긴 했다.
나도 인사를 하긴 했다. 하지만 그냥 인사만 했다.
왜 인사 다음에 자연스럽게 붙여서 칭찬을 하지 못했는지 지금까지 후회 중이다.
그렇게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지금 겉으로 보기엔 일을 하고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온통 미션수행을 위한 기회만 엿보고 있다. 오늘따라 고은미 대리와 더 이상의 업무적인 교류도 없다.
후...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나는 슬쩍 임진혁 대리 쪽을 살핀다.
그래도 고은미 대리보다는 임진혁 대리한테 미션을 하는 게 아무래도 더 나을 것 같다.
나는 업무를 하면서 임진혁 대리한테도 촉을 세우고 있다.
임진혁 대리가 화장실을 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한다.
왠지 내가 임진혁 대리를 스토킹 하는 느낌이다. 이러는 내가 싫지만, 그래도 미션수행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어이~ 최 과장~ 오늘은 어떻게 강형모 이사 지각비 잘 걷었어??”
박상민 부장이 손을 씻으며 나에게 묻는다. 화장실엔 임진혁 대리 혼자 있는 게 아니었다.
“아~ 네. 그거 어제로 끝났습니다.”
“벌써?? 어제로 끝났어? 그래도 우리 사장님 가오가 있지 하루만에???”
임진혁 대리가 궁금하다는 듯 얼굴 한가득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네. 어제 강형모 이사가 한 달 치 지각비를 선불로 줘서 사장님께 그대로 올려드렸더니, 사장님도 더 이상 별 말씀안하시더라고요.”
“히야... 대박... 역시 강형모 이사!!”
임진혁 대리는 감탄사를 날리며 손을 씻는다.
“사장님이 아들을 잘 못 키웠어.”
박상민 부장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다들 강형모 이사와 실무로 자주 부딪히는 사람들이라 그의 성격을 나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 사장님 불쌍해.”
자타공인 사장 오른팔인 박상민 부장은 강형모 이사를 보면서 사장에 대한 연민이 더 커졌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을 때도 거절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본인보다 10살 어린 강형모 이사에게 맞춰가며 일을 하고 있다. 나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애사심이다.
“야~ 진혁아. 담배나 한 대 피우러 갔다 오자.”
박상민 부장이 임진혁 대리를 데리고 가버린다.
아...놔... 하긴 박상민 부장 있는데, 뜬금없이 임진혁 대리한테 피부를 칭찬할 타이밍도 아니었다. 나는 마음이 더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영업부는 점심시간 이후에는 외근을 나갔다가 본사로 다시 안 들어오고 퇴근할 때가 많다. 임진혁 대리한테 미션을 수행하자면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어제 밤에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도 어색했지만, 막상 고은미 대리와 마주하니 더욱 칭찬이 안 나온다.
그래 고은미 대리는 아무래도 안 돼... 임진혁 대리한테 어떻게든 미션을 해보자... 아... 내가 이렇게 칭찬고자라니...
그렇다고 뜬금없이 동창 녀석들에게 전화해서 외모칭찬?? 더 미친놈 같겠지?
그래도 미친놈 소리 들어도 미션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최후의 보루로 동창 녀석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임진혁 대리한테 미션을 성공시켜보도록 노력하자!
하지만, 나의 예상보다 더 일찍 박상민 부장과 임진혁 대리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외근을 나가버린다.
아... 그렇다면, 남은 건 고은미 대리뿐이다. 오후 업무 내내 나도 모르게 자꾸 고은미 대리를 흘끔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신경 쓰여 일부러 더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업무를 하고 있다.
그렇게 업무에 집중하다보니...
“최 과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어... 어~ 그래요. 내일 봐요.”
이런!!! 퇴근시간이 되버렸다!!
아... 망했...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퇴근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나란 인간 이렇게 남을 칭찬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단 말인가...
까똑_
『야!! 다들 그날 잘 들어간 거야?? 그날은 다들 몇 차까지 간 거야?? 오랜만에 만나니까 엄청 반갑더라! 담에 만날 때도 미리 알려줘~ 알았지?』
동창 단톡방으로 선미가 톡을 날렸다.
선미다!!! 그래!! 선미다!!!
그날 동창모임에서도 왜 그렇게 나이를 안 먹냐며 동구나 다른 녀석들이 칭찬 아닌 칭찬을 하던 선미다. 물론 나는 그 분위기에서도 한마디도 거들지 못했다. 나란 녀석 정말 칭찬엔 젬병인가보다.
그래! 선미다!! 톡으로 하는 칭찬도 미션성공으로 인정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아무나 붙잡고 칭찬을 날릴 수 없지 않나... 선미에게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의 톡을 날린다.
『남은 멤버들은 칙칙하게 PC방 가서 추억을 나눴다.』
『풉... 여전하구나. 최로안! 잘 지내고 다음에 봐!』
『그런데 선미야!』
『??』
『너는 왜 시간이 갈수록 예전보다 더 예뻐지는 거야??』
으... 정말 톡이라도 나 소름 돋았다. 단톡방도 순간 얼어붙었다.
『-_-;;;』
[미션클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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