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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탱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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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탱이
작품등록일 :
2024.01.23 21:18
최근연재일 :
2024.08.06 21:00
연재수 :
150 회
조회수 :
12,522
추천수 :
99
글자수 :
852,780

작성
24.03.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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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4화

DUMMY

“하아! 하아!”



한 남자가 도망을 가고 있다.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의 남자는 그 외모의 아래에 숨길 수 없는 악인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었다.


잘생긴 얼굴로 하하 웃으며 부드럽게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그의 말을 신뢰하게 되어, 그가 사기를 치기에 딱 좋았다.


설이의 부모도 그중 하나였다. 아니 남자가 생각해도 설이의 부모는 상당한 악질이었다. 생글생글 웃으며 접근한 남자를 바로 호구라고 생각해서는 이래저래 빌붙어 살다가, 돈을 갚으라 하니 적반하장으로 따지며 남자를 희대의 쓰레기로 가스라이팅 하며 자신들은 빚진 것이 없다 외쳤다.


하지만 설마하니 자신들이 떠들어대던 모욕적인 언사가 전부 진실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그들은, 남자가 본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바닥에 엎드려 싹싹 빌었다.


남자에겐 그 광경이 익숙했다. 그렇기에 엎드려 빌며 용서해달라는 소리를 들어도,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의 일생은 언제나 그랬다. 그가 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생김새, 그의 능력은 강자에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어려서는 소위 일진 무리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깡패 무리에서, 몬스터 폭주 이후에도 결국엔 권력자들의 아래에서.


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바닥에 납작 붙어 살기를 바라고, 손을 내미는 이의 손을 붙잡으며 고개는 철저하게 아래를 향한다.


고개를 위로 드는 순간 불에 타 죽어버릴 테지만,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인 채 용서를 비는 이들만 보일 테니까. 저들에겐 남자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일 테니까.


그래서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이 떨어졌다.


깔끔했던 정장은 피와 땀에 절어 무거워졌다. 그도 탑험가이기는 했지만, 그리 높은 레벨은 아니었기에 그 정장이 그렇게나 무겁게 느껴졌다.


언제나 말끔하게 정리하고 스타일링했던 머리도 지금은 땀에 흐물흐물해져서는 시야를 가리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지고, 부하들이 타 죽고, 갑자기 거대 길드의 괴물들이 들이닥쳤다. 도망가야 했다.


그 자리에 모여 싸웠던 이들이 일반인들의 기준으로 괴물이라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대 길드의 사람들은 그런 괴물들의 기준에서도 괴물이었다.


게다가 그중 하나는 그 유명한 파펀. 그녀가 싹 다 죽여버리겠다고 마음먹고 불을 지폈다면 그 자리의 모두가 본인이 죽은 줄도 모르고 까맣게 타다 못해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씨발! 씨발씨발! 씨발!! 내가! 돈을! 얼마를 퍼부었는데!”



갑자기 조직이 습격 받은 것은 거의 재해에 가까웠다. 정신 차려보니 죽어라고 두들겨 맞고 있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불똥을 피해 냉큼 도망쳐왔다. 다행히도 지켜주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 그들이 마음에 든 사람, 그들에게 약점이 잡힌 사람.


그래도, 그래도 이젠 끝이었다. 꼬리를 잘라내고 머리를 살렸다. 스왐프라는 든든한 뒷배도 있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니 무엇보다도, 거대 길드에서 왜 갑자기? 이제 거대 길드에서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없을 텐데! 돈을 얼마를 먹였는데! 거래를 했단 말이야!


폭주 이전엔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은 오래된 유령 도시를 뛰어나가며, 그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되짚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거대 길드가 나타난 이유, 라오가 살아있는 이유, 스왐프에서 자신들을 버린 건가? 왜? 아니 무엇보다도 사장은 어디에? 그래, 지금이라도 사람을 더 부르자, 그럼 하다못해 여기서 벗어날 수는 있겠지!



“아! 찾았다~!”

“?!”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이 유령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굉장히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목소리가.


휙,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이미 몇 년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건물의 창가에 걸터앉아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예쁜 인형이 하나.


거무칙칙한 분위기에 맞지 않는 화사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은 그 인형을, 누가 그곳에 가져다 두었는지 알 수 없다.



“아하하! 왜 그렇게 쳐다봐?”



그리고 그 인형이 어떻게 스스로 움직이며 말을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뭐, 뭐야!!!”

“왜? 요정 처음 봐?”

“요, 정?”

“으음~! 난 요정이야! 아하하! 반가워!”

“뭐야, 뭔데······!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뭘 모르는 것처럼 물어? 네가 죄 지은 구석이 얼마나 많은데~! 아하하! 운명이구나~업보구나! 그렇게 생각해~”

“지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망가야 한다. 아니, 도망이 아니라, 도와줄 사람을 불러야 한다. 급하게 폰을 꺼내 보는데, 이상하게도 전화가 안 된다.


전화뿐일까. 문자도, SNS도.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스왐프에서 전해 받았던 연락용 단말기를 꺼냈더니.


파직!



“으악! 왜 이러는데!!!”

“아하하! 마법으로 연락을 막아뒀는데 마력으로 작동하는 마도구를 쓰려고 하니까 그러지~!”

“?! 네, 네가, 네가 이런 거야?”

“응! 내가 그랬어! 내 마법은 신비롭거든~아하하!”

“이게!”



나름 탑험가, 나름 힘 좀 있다고 영희가 앉은 창가를 향해 훌쩍 뛰어오르는 남자. 영희는 상쾌하게 웃음을 흘리며 건물의 안으로 날아 들어간다.


건물의 안으로 뛰어들어 눈앞의 영희에게 달려드는 남자, 영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차라리 살려달라고 비는 것이 가장 현명했을 테지만, 누가 저 이상한 요정에 대해서 알까.


아니, 아마 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그라면 무작정 달려들었을 것이다. 지금 마음에 쌓인 그 분노와 당황을 풀어야 했으니까.



“죽!!”



쩌억!!


단단한 바위 같은 것에 치인 것 같은, 뼈가 부서지는 감각이 옆구리에 꽂힌다. 으지직, 으지직.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몸 안에서 울리니 자동차에 치이기라도 한 것처럼 붕 날아가 바닥을 구른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경험적으로 누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일어나려 하지만, 숨은 턱턱 막히고 시야는 어지럽고, 일어나려 발버둥을 쳐도 바닥의 먼지가 미끄러워 도통 쉽지 않다.


몇 번이나 비틀거리다, 몇 번이나 휘청거리고 넘어지며 얻어맞은 부위를 부여잡고, 힘겹게 꾸역꾸역 일어나 무작정 손에든 짧은 회칼을 휘두른다.



“으아아아!! 으악!!”



마치 짐승이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것처럼 고함을 내지르며 비틀비틀, 뒷걸음질과 함께.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그저 작은 요정의 상쾌한 비웃음 소리만이 그의 귀를 괴롭힌다. 텅 비고 오래된 건물의 안에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울리고 귀를 때리면, 뇌에 그 울림이 새겨져 정작 웃음소리가 멈추어도 감각만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콰직!



“뭐야, 왜 이렇게 약해?”

“?!”



벌겋게 충혈된 눈이 겨우겨우 진정을 되찾아 바라본 곳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게 반짝이는 주먹을 휙휙 돌리는 인수가 있었다.


혹시라도 남자가 너무 강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름의 준비를 하고 도착했는데, 아무리 빈틈을 노린 기습이었다지만 아무런 방어도 없이 그냥 나가떨어져서 저러고 있다는 것이 의아했다.


부하들 하나하나가 인수가 어쩌기 힘든 괴물들일 텐데, 인수가 아무리 세게 때려도 조금 아픈 정도로만 치부하고 넘길 인간들이었는데,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약할까?



“씨이, 발······차례차례 진짜! 넌 또 뭐야!!”

“대리인! 딱 하나만 물어 달라고 하더라!”

“뭘!”

“임서아! 기억해?”

“······그게 뭔데!!!”



설이의 본명. 리나라 불리기 전의 이름. 남자의 손에 인생이 망가진 아주 어린 소녀의 그 이름. 그 어린 나이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한 소녀의 이름을, 그는 기억 못 한다.


특별하지 않으니까. 특이하지 않으니까. 이상할 것 없으니까. 일상이니까.


어제와 같았던 오늘을 사람은 특별하다고 하지 않는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사람들은 특별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피해자들 중 하나. 그저 흘러가는 일 중 하나일 뿐. 남자는 설이도 설이의 부모도, 그 어리고 어린 작은 아이에게 일어난 일을, 그 무엇 하나도 기억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은 아니니까.



“진짜 지독하다.”

“시이발······시발!!! 죽어 개새끼야!!”

“인수야, 죽이면 안 된다? 아하하! 죽이면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없잖아?”

“그럼. 당연하지. 내가 처리하면 안 되지.”



깡!!!


남자가 휘두른 회칼과 부딪친 인수의 주먹에서 스파크가 튄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인수에 맞서 칼을 비스듬히 틀어 인수의 공격을 흘려낸 남자가 인수의 몸을 대각선으로 길게 베어내지만, 피가 아닌 스파크가 튀어 오른다.



“!!!”

“사람 인생 하나 조져 놓고, 이건 좀 아니지!!”



쩍!!


인수에게 뒷머리가 잡혀 고개가 확 뒤로 젖혀진 채로 얼굴에 그대로 주먹이 꽂힌다. 잘생겼던 그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첫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공격들에 남자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지만, 스텟은 인수보다 낮은 모양이지만 레벨은 인수보다는 높은 것인지 바로 쓰러지진 않고 은근하게 버텨낸다.


촤악!!


붙잡혀 있던 뒷머리를 잘라내고 황급히 벗어나 거리를 벌리는 남자는, 일단 억울했다.



“시발 내가 뭐! 내가 뭐어어!! 나만 그랬어? 내가 그랬어?! 다 그러고 살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저게······! 그걸 지금 말이라고!”

“아이~잠깐만~!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자! 웃기잖아~아하하!”

“나만 나쁜 놈이야? 내가 뭐, 아무 잘못 없는 인간들한테 그랬냐고! 이 시발! 시궁창에 구르던 새끼들이 주제도 모르고 나대다가 그 꼬라지 되는 걸 왜 내 탓을 하는데! 그렇게 태어난 게 내 잘못이야?! 시발 난 뭐 어디 좋은 곳에서 태어난 줄 알아?! 자기들이 아무것도 안 해놓고! 왜 당하니까 내 탓이야!!!”

“아하하하하! 웃기다~! 쟤 지금 자기가 뭐라는 지는 알고 있는 걸까? 아하하하! 아하!”

“웃지 마! 개년아!!”

“어머!”



콰지직! ······팡!!!


회칼을 잡고 있던 팔이 순식간에 꽈배기처럼 베베 꼬이더니 남자가 고통을 느낄 아주 잠깐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어깨가 터지며 팔이 바닥에 툭 떨어진다.


물을 짜낸 걸레라도 되는 것처럼 형태가 완전히 일그러져 바닥에 떨어진 그 팔은 공포나 고통보다도 더 큰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가, 넌 예의도 모르니?”

“······!”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했다. 자신의 생존 철학을 잊은 남자의 머리 위로 하늘이 불을 뿜어냈다.


그런데, 과연 그는 언제부터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영희에게 대들었을 때? 조직이 공격당할 때 발 빠르게 도망치지 않았을 때? 설이의 부모를 작업 쳤을 때?



“과했어.”

“어머, 그런가? 아하하! 아니~웃기잖아. ”



인수에게 휙 날아가 그의 팔에 걸터앉은 영희는, 그래도 조금은 풀린 표정으로.



“아가.”

“?!”

“머리가 높아?”



남자가 다른 이들에게 열어주었던 지옥의 문을, 친히 열어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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