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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초 님의 서재입니다.

전상에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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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살초
작품등록일 :
2013.02.26 17:49
최근연재일 :
2013.08.28 22:45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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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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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2.26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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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빙의

DUMMY

윤 아인. 20세. 한국예술여자대학교 1학년 재학 중이고 성악을 전공하고 있으며 천상의 목소리로 세계적인 보컬리스트로 각광받고 있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는 절대로 성악계의 떠오르는 샛별일 거라고 자부함.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실은 고등학교 때 노래방 좀 다녔던 실력과 고3때 부모님이 피를 토하며 붙여준 벼락치기 고액 과외의 지도를 받은 성악 실력으로 운 좋게 학교에 턱걸이에 가깝게 입학하게 된 성악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새내기.

여기까지가 그녀가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리 잘나고 멋드러지게 살아온 건 아니지만 서도 큰 불만은 없이 잘만 살아왔다. 가정환경이 불우했던 것도 아니며,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안고 있거나 대인관계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성격 또한 물론 아니었다. 인간관계가 조금 좁긴 했지만 친구는 좁고 깊게 사귀는 게 좋다고 어른들이 항상 그랬으니까.

다만 그녀의 인생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남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생각만 해도 제길,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그녀에게 남자란 그저 그녀와 관련 없는 XY염색체를 가진 두 발 짐승. 그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남자를 기피하는가? 라는 물음을 그녀에게 한다면 그녀는 이리 대답하리라.

"미쳤어? 하늘에서 똑 떨어져도 모자랄 판에 기피는 무슨 쌈싸먹을 기피니. 기피 같은 거 절대 안 하니까,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 좀 시켜줘. 맨날 말로만 떠보지 말고 이 지지배야."

여중, 여고, 여대의 삼단 콤보도 모자라서 집구석엔 오빠나 남동생도 없지, 심지어 친척들도 또래의 남자들은 전멸. 교회 오빠라도 있으면 좋겠으나 집안이 대대로 불교집안이라 남자 만나겠다고 교회를 나갔다간 단박에 아버지의 재떨이가 날아올 판이니. 학교고 집구석이고 그녀 주위엔 남자란 눈을 비비고 찾아봐도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애정결핍이라 손가락질해도 좋으니, 울끈불끈한 근육을 가진 짐승남이든, 강아지마냥 애교 넘치는 연하남이든, 영하의 혈중온도를 자랑하는 차도남이든 뭐든 좋으니. 이제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리 어려운 소원 아니잖아?

하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의 정신세계는 정상궤도를 넘어선다는 말도 안 되는 편견 때문인지 몰라도, 성격한 번 유별나다는 소리를 밥 먹듯 듣는 그녀를 사랑해주는 남자는 찾기 힘들었고, 가뜩이나 남자도 없는 마당에 마침내 찾아온 소개팅남과의 잘 될 것만 같은 예감마저도. 산산 조각나 버렸다. 그의 애프터 신청을 받은 날, 신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며 인도를 걷는 와중, 사차선 도로의 중앙선은 넘은 것도 모자라 인도를 습격해버린 저 도전적인 중형 세단에 의해. 그리고 그녀의 부서져버린 육신과 함께.

윤 아인 방년 20세. 그녀는 그렇게 죽었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다. 마치 구름에 몸을 뉘인 듯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분명 난 차에 부딪혔는데? 그리고 도대체 여긴 어디……."

그녀는 매일처럼 그녀가 잠들었던 침대보다 얼추 두세 배는 큰 침대에서 깨어났따. 천장에 샹들리에가 여럿 달려있었고, 방 안에는 낯선 벽장식이 가득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 봐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여긴 어디지? 처음 보는 곳인데. 아니 그보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분명 차가 들이받을 때의 묵직한 느낌이나 뒤이은 온몸의 뼈마디가 다 부러지고 튀어나오는 고통이 생생한데. 전신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의 육신이라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아, 하나 있었다. 붕대에 감겨 있긴 하나 느낄 수는 있는 손목의 상처. 마치 날카로운 무언가로 그어 버린 듯. 하지만 그녀는 친애하는 조니댑의 이름에 맹세코 자살은 시도해 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몸을 훑어보다 흠칫 놀랐다.

"이 몸, 원래의 내 몸이 아닌데?……."

원래 살이 좀 없는 체질이긴 했지만 이정도로 허리선이나 다리선이 날씬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숨겨둔 뱃살은 다 어디로 간 건지. 그리고 이렇게 하얗고 매끈한 피부라니. 결정적으로 이 옷. 이 옷은 그녀의 이십 년 인생 중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 주렁주렁한 레이스며 장식들은 마치 중세 귀족 여자들이나 입을 만한.

그녀가 눈을 떴을 당시에 있었던 여자가 도망치듯 나가버리지만 않았다면 그녀에게 무언가 물어볼 수 있었을 테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수많은 판타지 소설을 섭렵한 그녀의 문학적 소양에 의하면. 지금 이 상황은 둘 중 하나였다.

첫 째. 지금 그녀는 꿈을 꾸고 있다.

둘 째. 지금 그녀는 죽었고. 다른 세계로 훅 날아와 자살을 한 어떤 정체모를 여자의 몸에 덜컥 들어와 버렸다.

정말 스스로도 웃을 수밖에 없는 가정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꿈이라는 쪽이 천 배는 더 현실성 있겠군. 그녀는 볼을 아주 세게 꼬집었다.

"악! 제길, 아파!"

꿈에서 아플 리가 없으니 꿈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 많은 소설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이런 충격적이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서 즉각 정신을 차리고 질풍처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태풍처럼 몰아닥친 혼란에 툭, 그녀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시간이 어떻게,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는 의식이 점차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눈을 뜨기에는 겁이 났다. 빌었다. 이대로 눈을 뜨면 여느 때 처럼 익숙한 방 안의, 익숙한 침대 위이기를. 아니면 어디 한두 군데 정도 부러지는 것은 감수할 테니 최소한 하얀 병실 안이기를. 하지만 익숙하지 못한 신체에서 느껴지는 위화감과 불편함은 점점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눈을 슬그머니 떴다. 맙소사. 우려했던 대로 그녀의 눈앞에는 기절하기 전 보였던 천정이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녀는 두 번 기절하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다. 앞으론 어떻게 되는 걸까. 막연함에서 이어지는 불안함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입술을 깨물며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 맡에 고이 놓인 슬리퍼를 발에 걸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순간 휘청, 하고 몸이 기울어져 바닥에 손을 집었다.

정말. 바보 같잖아. 그녀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며 힘겹게 일어났다. 이전에도 자주 넘어지고 구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적응되면 차차 괜찮아 지려나. 그 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여자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고,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저, 저기요?"

뭐 하는 여자십니까. 물어볼 게 산더미처럼 많은데 그냥 나가버리네.

"하아-"

아인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닥친 현실을 받아드려야 하는 걸까. 어차피 죽었을 몸. 좋게 생각하면 목숨 하나 번거니까. 완전히 뒤바뀌어 버린 낯선 환경은 두렵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일 테니 살아볼 만 할지도.

그녀는 우선 처한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혹시 또 모른다. 정말 판타지소설에서처럼 황녀나 공녀일지도. 하다못해 평범하지만 화목한 시골 귀족가의 영애라도 좋고. 침실의 규모나 화려함으로 봐서는 꿈같은 얘기만은 아니었다. 기구와 식기 같은 것도 죄다 비싸 보이는데다. 잠옷도 화려하고 시녀도 있던 것 같으니. 방금 전 자신이 깨어날 걸 보고 후다닥 달려간 여인은 가문에 깨어난 사실을 알리러 간 시녀일 것이다.

문득 그녀가 즐겨 읽고 상상하던 소설들의 내용을 떠올랐다. 춤과 음악과 문학이 있는 사교계에 나가서 매력덩어리 남정네들이 몇 세트씩 접근해오고, 아버지는 팔불출에, 어머니는 현모양처, 시스콤 기질 다분한 동생. 생각만 해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거, 나름대로 괜찮잖아?

아인은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시녀가 가족들을 불러 오면 기억상실증 핑계를 대며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차근차근 적응해 나가면 된다. 그녀는 새롭게 가족이 될 이들이 어서 뛰어오길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그녀의 방에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점점 초조해졌다.

"왜 아무도 안 오지?"

저택이 너무 넓어서 오래 걸리나? 아니면 혹시 눈 밖에 나버린 망나니 여식의 몸에 덜컥 들어와 버린 걸까. '넌 더 이상 내 딸이 아니다. 꼴도 보기 싫다!' 라던가.

하녀가 다녀간 지 이십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는 두, 세 시간 이상을 기다린 것 마냥 답답했다. 이렇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이쪽에서 나가 보자는 생각에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문 앞까지 가 손잡이를 돌리기 직전, 옷차림 때문에 잠시 멈칫했다. 왠지 이 옷. 잠옷 같은데. 하지만 딱히 외설스럽거나 맨살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니까. 그녀는 다시 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이건 무슨 상황이냐고요……."

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그것도 매우 단단히. 그녀는 황급히 창문으로 달려갔다. 높이가 까마득하다. 떨어지면 그대로 죽음을 한 번 더 경험하기 아주 좋은 높이였다. 물론 창문도 안팎으로 고정되어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도 없어 보였다.

상황은 금세 이해되었다. 이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감금이다. 연유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 몸의 주인은 이곳에 '갇혀' 있었던 거다. 그녀가 품었던 환상 중 일부가 부서져 내렸다.

"하이고. 갈수록 태산이네."

감금이라니. 감금이라니.

그녀는 믿기 힘든 현실을 너무 쉽게 받아들인 걸 뼈저리게 후회하며, 다 구워놓은 삼겹살에 젓가락을 대기 직전에 빼앗겼을 때의 허탈한 표정으로 굳게 닫힌 문과 창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이 황망한 상황을 설명 좀 해줬으면.




작가의말

분위기가 좀 달라졌죠? 완전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두 주인공이 점차 융화되어가며 줄거리를 풀어가는 소설입니다. 4편만 보시고 그만 두시기 보단 좀 더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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