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반갑소, 동무들
수령님 축지법 쓰신다 16화
끼이익! 철컥
저벅 저벅 저벅
“오셨습네까, 여단장 동지.”
“며칠간 고생했어, 장 상위. 저 동무들인가?”
“기렇습네다. 여기 소지품들입니다.”
“카빈에, 소음권총에, 카메라 필름··· 평양 평야 사진인가? 이건 자살용 캡슐이고. 아주 전형적인 북파공작원 장비구만. 근데 저 동무는 누구지? 처음 보고 받았을 때는 세 명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중간에 합류한 놈입니다. 공화국 인민인 것 같은데, 이름은 현성철이라고 합네다.”
“현성철? 이런 우연이 있나. 다들 고개 들고 얼굴 좀 보지.”
생포된 곳 근처의 야산에서 의식을 되찾은 침투조원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즉각 알아차렸다.
어디서부터 들킨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군복부터 일반 인민군과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아 정찰총국 소속 인민군들에게 추적당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 보다 여기서 죽는 것이 차라리 나은 상황. 살아남기를 포기한 조원들은 눈을 감거나 하늘을 보고 침묵했다.
“다··· 당신은···!”
하지만 덤으로 딸려온 현성철은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적 지휘관의 얼굴을 보고 놀란 현성철의 반응에 그제서야 침투조원들도 목소리의 주인을 직시했다.
‘김정운?!’
“만나서 반갑소, 동무들. 난 김정운이라고 하는 사람이오. 다들 날 아는 눈치이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합시다.”
뜬금없이 나타난 3세대 백두혈통을 보고 붙잡힌 일행들은 입을 벌린 채 혼란에 빠졌다. 대체 이런 국경 근처까지 북한 왕실의 후계자가 나타날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가 외국에 나갔다 온 사이에 험한 길을 거쳐서 남쪽 동포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래도 내가 명색에 백두혈통의 말예 인데, 이대로 손님을 보내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 해서 이렇게 직접 왔지.”
어처구니 없는 방문사유에 하민석은 북파공작원으로서 국가의 대적에게 농락당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담아 소리쳤다.
“개소리 하지 말고 죽여라! 우리가 비록 생포되었지만 뽀글이 돼지놈이 깐 새끼한테 농락당할 생각은 없다!”
“남쪽에서도 우리 아바이 장군님의 머리모양이 참 유명한 모양이야. 나도 나한테 그 곱슬머리가 유전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해.”
면전에서 아비를 모욕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 치는 모습에 하민석은 당황했다.
친아들인 김정운은 몰라도 최소한 주변에 시립한 병력들은 무언가 반응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대부분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개중에 몇몇 장교들은 오히려 동의한다는 듯한 옅은 웃음을 짓기까지 했다.
그 때 이 기묘한 상황을 참지 못 했는지 현성철이 무릎걸음으로 기어나갔다.
“기··· 김정운 동지. 저는 현성철이라고 합네다. 인민무력부 후방총국장 현철해 중장의 혈육입네다.”
“아, 현성철 동무. 얼마 전에 수령님께 들었소. 동무 아버지 일은 안타깝게 되었소이다.”
“그, 가··· 감사합니다, 김정운 동지. 기런데 김정운 동지가 꼭 들어야 할 정보가 있습네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는 현성철의 행동에도 김정운과 그 부하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뭐, 대충 알고 있소, 동무. 우리 아바이 장군님이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신다는 거지?”
‘김정일이 쿠데타라고?’
쿠데타 계획을 알고 있다는 김정운의 폭탄발언에 미리 정보를 알고 있던 현성철은 경악했고, 느닷없이 최고급 기밀정보를 듣게 된 침투조원들은 경악과 동시에 체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선 아무리 중요한 정보를 얻었어도 복귀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이다.
“아마 수령님이 반드시 공개석상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4.15절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사전준비도 할 겸 후방총국장에게 누명도 씌우려고 미리 잡아간 것이고. 내 말이 맞나, 현성철 동무?”
“어··· 어떻게···!”
“우리 아바이가 모략을 꾸미는 건 잘 해도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데는 그다지 재주가 없는 사람이거든. 자네 아바디는 무고한 희생양이지만, 오히려 그걸 알고있기 때문에 자기도 숙청될 것을 두려워한 밀고자가 여럿 나왔어.
뭐, 우리 장군님의 원대한 권력승계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없어졌다는 뜻이지.”
최후의 구명수단이라고 생각했던 쿠데타 관련정보가 이미 모두 새어나갔다는 것을 알고도 현성철은 포기하려는 자신을 다잡았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면 김정일에 의해 숙청된 현철해의 핏줄인 자신을 반드시 죽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 다 알고 계신다니 다행입네다, 김정운 동지. 동지가 아시다시피 저는 죄가 없습...”
아니, 죄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자리에 붙잡힌 것이 자기 혼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린 현성철의 말문이 막혔다.
자신은 지금 남조선에서 온 간첩들과 함께 공화국을 배신하고 탈출하려다 붙잡힌 것이다.
피식 하고 실소를 흘리는 김정운을 보고 현성철은 마침내 마지막 모든 희망을 버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바디··· 그렇게 필사적으로 로력했는데도, 이 아들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네다. 붙잡혀서 고문당하고 계실 아바디보다 이 아들이 먼저 떠나게 되는 것을 용서하시라요.’
“뭐, 대충 사정은 들었으니 이제 깔끔하게 가는 길 배웅해 드려. 소지품들은 날 밝으면 태워버리고, 총기는 따로 챙겨두고.”
“예, 여단장 동지. 일으켜 세워.”
김정운의 명령이 떨어지고 현성철을 포함한 네 명은 정찰총국 병사들에 의해 트럭 짐칸에 실려졌다.
“씨바, 이런 식으로 제대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사로잡혀서 죽게 될 줄은 몰랐는데.”
“누군들 알았겠냐. 막내 너는 갈 때 됐다고 그냥 막 말한다?”
“태수형이 평소에 나한테 못할 짓 많이 했지. 형은 욕 좀 먹어도 괜찮아. 혹시 모르잖아, 욕이라도 많이 먹으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지?”
“온몸에 바람구멍 난 상태로 오래 살라고? 너 이 새끼 인성문제 있지?”
두 요원들이 꽁트를 찍고 있던 도중 차량이 정지했다.
“정지! 어디서 온 병력이오?”
“이런 종간나 새끼, 어디서 당중앙 직속 호송차량에다 검문질이야? 차단기 치우지 못해?”
“죄, 죄송합네다. 날이 어두워서 보질 못했습네다.”
“길이나 열어 이 얼빤이 같은 놈아!”
‘뭐지?’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한시도 입을 다물지 않고 계속 떠들고 있던 조원들과는 달리 김정운과 현성철의 충격적인 대화를 곱씹으며 마지막까지 외부 상황에 대한 정보수집을 늦추지 않고 있던 하민석은 초소에서 검문하던 인민군과 정찰총국 요원의 대화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근처 조선 인민군 4군단 병력들은 차량에 실려 있는 것이 남한 포로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끼이익!
“내려.”
“어이, 아저씨. 정찰총국이면 북한에서 나름 정예지? 나 갈 때 너무 아프지 않게 머리통에다 정확하게 쏴 달라고. 군인들끼리 이정도 부탁은 들어 줄 수 있지 않나? 아, 내 옆에 있는 못생긴 사람은 막 쏴버려도 돼.”
“끝까지 주접 떨고 있네, 이 새끼가. 너 그 동안 그 지랄 안 하고 어떻게 참았냐?”
이태수와 김광혁이 마지막까지 말장난을 멈추지 않던 와중에 아무런 대답 없이 그들이 끌려간 곳은 코앞에 대한민국 소속 GP가 보이는 낮은 언덕 위였다.
GP초소병과 눈을 마주칠 수도 있는 가까운 곳에 일렬로 서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네 명의 뒤에서 작지만 명확하게 알아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단장 동지의 전언이다. 북남관계가 지나치게 경색되는 것을 지양하시는 여단장 동지께서는 너희를 죽이지 않고 남조선 정부에 보내는 전령으로 사용하도록 결정하셨다.
그러나 여단장 동지께선 너희 남조선 놈들이 계속해서 간첩질을 하는 것을 두고 보시지도 않을 것이다. 이 시간 이후로 공화국 정부의 허가를 득하지 못한 그 어떤 남조선 인민도 공화국의 영토에 발 디딜 수 없다. 이를 어기고 공화국에 침입한 자는 예외 없이 사살될 것이다.
너희가 살아서 나가게 된 것은 그분이 보이는 마지막 자비이다. 이를 명심하고 여단장 동지의 말씀을 너희 대통령에게 똑바로 전달하도록!”
“뭐? 지금 뭐라고···”
탕탕탕!탕탕탕!탕탕!
등을 떠밀리는 감각과 함께 귀청을 울리는 총성이 연속해서 들려왔다. 그대로 언덕에서 굴러 떨어진 네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동안 움직이지 못 했다.
“얼빤이 같은 것들. 저런 놈들이 간첩이라니··· 시동 걸어! 이대로 부대까지 직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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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동무들은 잘 배웅해 줬나?”
“네, 여단장 동지. 4군단 쪽에서는 몇몇 군관이 횡령죄로 총살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네다. 실제로 횡령을 저지른 자들은 노동교화소로 보내버렸습네다.”
“그래. 피아식별이 안 된 상태에서 정보를 공유할 필요는 없지. 쿠데타까지 50일 남았군. 여단의 장비 보급은 어떻게 되고 있나?”
“영변의 본부를 마지막으로 전원 2급 마력 전투체계를 수령하고 적응훈련을 마쳤습네다.”
마력의 등급체계는 에우로기니아에서 오랜 전투로 쌓인 경험적 데이터를 표준화하여 개발한 것으로, 에우로기니아의 대표적 엘리트 병종인 기사를 기준으로 1등급이 종자, 2등급이면 수습기사 수준에 다다른 종합 전투력이라고 볼 수 있다.
마력을 각성한 지 고작 반 년 밖에 안 된 여단 병력들이 최소한 십 년을 단련하며 각성한 이후에는 마력을 이용한 전투기술을 전문적으로 익히는 수습기사와 비등한 전투력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히 장비빨이다.
경험부족으로 인해 섬세한 마력통제가 불가능한 현재의 여단병력들이지만, 핵폭탄을 만들기 위해 영변에 배치되었던 정밀가공 기계로 제작한 마갑(魔甲)에 상감된 마력회로에 전투기동 시간 동안 마력을 공급하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장비빨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보병화기 따위로는 부상을 입히기 힘든 수준까지는 도달했군.”
“실험결과에 따르면 박격포나 7호 발사관(RPG-7)에는 직격 당하더라도 한, 두발 정도 버틸 수 있지만, 땅크의 주포에 직격당하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네다.”
“땅크라니, 우리 여단에 그런걸 느긋하게 맞아 줄 정도로 훈련이 덜 된 동무가 있었나?”
“기럴리가 있갔습네까. 하지만 쿠데타가 실행되면 반드시 땅크가 동원 될 거인데, 7호 발사관을 탈취하는 것 외에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습네다.”
“흠, 그거야 적당히 C4뭉치만 땅크 여기저기 붙여도 해결될 문제이긴 한데··· 일단 생각을 좀 해 보자고. 우리의 존재가 예산만 갉아먹는 쓸모 없는 인민군 똥별들에게 충격과 공포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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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실
“용철아. 너 약했냐?”
이상휘는 지금이 오래 전 계승 받아 봉인해 두었던 무지개 지랄을 다시금 펼쳐야 할 때인지 고민했다. 차장보 새끼가 지금 뭔 소릴 한 거지?
“아닙니다.”
“아니라는 새끼가 지금 그 따위 헛소리를 해?”
“저 진짜 제가 들은 그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보고 드리는 겁니다. 지금 청사 지하에 데려다 놨으니까 좀 있다가 직접 들어 보시죠.”
자기가 생각해도 납득하기 힘든 내용이었는지 보고하는 김용철의 표정에도 확신이 없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믿을 수 있는 소릴 해야 할거 아냐···?”
“1사단 GP에서 경계근무 하고 있던 병력 십여 명이 직접 봤답니다. 처음엔 드물게 있는 처형식인 줄 알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굴러 떨어진 사람들이 움직였다고요.”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오랜 현장생활을 거치며 이상휘는 가끔 현실이 소설보다 더 막나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직접 겪어 보았다.
여기서 활자뭉치를 뒤적거리며 보고내용이 이상하다고 지랄을 해 봐야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으니, 지금은 행동해야 할 때였다.
“빌어먹을, 지금 지하에 있다고 했지? 내가 직접 얼굴을 보면서 들어봐야겠어.”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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