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각성
수령님 축지법 쓰신다 8화
마력 각성 훈련과정에 들어갈 제 84저격여단의 총원은 본부중대 역할을 맡는 2개 중대를 포함하여 10개 대대 약 6000여명, 특각에서 태어났을 때 부터 내 근접 호위를 맡은 호위중대 규모는 102명이다.
무력적인 측면에서 볼 때 내 호위는 사실상 불필요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도 나름 중요하므로 그 중에서 실제 교관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80여명 정도.
새로운 사상교육은 소수 인원을 통해 전 부대 동시에 강의형식으로 시행한다고 해도 몸을 움직여야 하는 훈련과정은 언제나 인명사고를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한 번에 한 개 대대 600명 정도를 교육하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마력이 뭔지도 모르는 비각성자가 단기간의 훈련을 통해 자력으로 마력을 각성할 가능성은 사실상 0에 수렴하기 때문에, 만신전의 방식을 빌려 에필로가의 세례를 통해 강제각성의 필요성이 있다.
그리고 신에게서 세례를 받으려면 영적으로 신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무슨 뜻인가 하면, 철저한 사상교육을 통해 신령(에필로가)의 존재를 뇌리에 새기고···
“트랜스 상태에 빠질 준비가 될 때까지 굴리고 또 굴려라. 머릿속에 우리의 신 에필로가를 제외한 잡스런 생각이 날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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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4저격여단 1대대 3중대장 리명철 대위는 갑작스럽게 시작된 ‘재교육’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구르고 있었다.
‘이런 개 좆 같은 간나새끼들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거 아이간?’
‘재교육’이 육체적으로 끔찍하게 고단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렴 정찰총국 일선 전투부대라고 함은 이 북조선에서 가장 정예한 부대이고, 거기에 뽑혀서 임무를 수행하려면 지옥 같은 훈련을 견디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겪어본 바로는 육체와 정신을 망가뜨리기 위해 시행하는 고문이 아닌 이상 훈련으로 인한 고통 따윈 아무리 심해도 옆에서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는 이상 얼마든지 견딜 수 있는 문제였다.
그 정도로 낙오하기에는 지금까지 엘리트 군관으로서 살아온 나날이 그렇게 말랑말랑한 시간이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저 ‘교관’이라고 불리는 호위총국 간나 새끼들이 정신적으로도 그들을 고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먹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야이 혓바닥을 뽑아서 똥구녕에 처박아버릴 종간나 새끼들아! 그 빌어먹을 신령이니 뭐니 반 혁명적인 개소리는 그렇다 쳐도, 허구헌날 굶고 다닌다는 아래쪽 남조선 간나들도 정예군에게 밥은 먹이면서 훈련한다!”
일개 교육생이 교관에게 대거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를 리가 없는 그였지만,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누군가는 당당하게 말을 해야 했다.
아무리 좆 같은 군생활이라도 밥은 중대사항이다. 세상에 아무런 맛도 안 나는 피죽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먹이면서 훈련하는 군대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옹골찬 외침에 대한 맑고 청아한 대답이 정면이 아니라 뒤에서 들리자, 그는 앞으로의 훈련기간과 이후 군생활이 고사포에 난자된 무언가(처음 소리를 지를 때 예상했던)를 넘어 형이상학적인 개념으로 사출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오! 이 참혹한 인민군의 현실 속에서도 보급의 중요성을 외치는 선각자가 있었다니 기쁘기 한량없군. 우리 군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인재상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1번 교육생?”
처음 교육을 시작 할 때 간부와 병의 구분이 없다고 외치긴 했지만, 으레 그렇듯이 교육생의 번호는 가장 높은 계급을 1번으로 해서 오름차순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1번 교육생이라 함은 이전 부대에서부터 직속 상관이었던 송익필 상좌를 말하는 것이었다.
“1번 교육생 송익필! 위대하신 수령님의 영도아래 먹을 걱정 입을 걱정 없이 지내온 군인으로서 동지가 일시적인 훈련과정에 나약한 정신력을 보인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합네다!
이전부터 리명철 대위 자신을 포함한 일선 지휘관들에게 뭔 개짓거릴 해도 애들 밥은 먹이면서 하라고 귓구멍에 못이 박히도록 말해왔던 상관의 통렬한 배신에 리명철은 할 말을 잃었다.
“흐음, 괜한 질문을 했나보군. 훈련생 동지들의 식사가 부실한 것은 훈련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의도적인 행동이 맞다.
하지만 모든 훈련과정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다만,”
다만, 하지만, 그러나··· 지옥에서 갓 뛰쳐나온 싱싱한 악마 같은 상관의 아가리에서 그놈의 빌어 쳐먹을 접속사가 붙는 순간 어떤 개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내가 본 교육과정표에 따르면, 우리 훈련생 동지들은 지금쯤이면 제대로 서 있는 것 조차 힘이 들어서 앞에 서있는 사람이 수령님인지 옆집 사는 동무인지도 모를 상태여야 하는데···
지금 보아하니 모두들 아주 팔팔한 상태인 것 같군.
교육계획을 예정대로 진행할 수 있겠나, 오진철 상좌?”
“빠드득··· 명령하신 대로 시행될 것입네다, 여단장 동지.”
“오, 우리 오 상좌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 믿어 의심치 말아야지! 하하하, 우리 교관들도 고생하게.”
그날, 제 84저격여단 1대대 일동 천 여명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유물론적 관점에서 실존하지 않는 허상이라고 교육받았던 악마의 존재를 체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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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훈련 받고 있는 저격여단의 프로토타입 이라고 할 수 있는 내 호위중대의 각성과정은 온건하고 천천히 이루어진 편이었다.
에필로가의 육체개조 과정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현재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유년기(아직도 유년기이긴 하지만)의 성장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그들에게 신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000여명에 달하는 여단 인원들 모두에게 그러한 기적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체감하게 만드는 것은 여러모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수 천년 간 수행자들이 몸소 증명한 검증된 방식, 격렬한 육체적 고통과 섭식을 통한 약물섭취를 병행하여 의도적인 대규모 트랜스 상태를 유도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목적(에필로가와 접신하는 것)을 가지고 트랜스 상태에 빠지려면 당연히 다른 잡생각이 끼어드는 것을 막아야 하고, 반복적으로 한가지 대상에 대한 이미지, 소리, 반복행동 등을 강제한 상태에서 육체적 탈력감에 빠지게 함으로써 의외로 손쉽게 깊은 트랜스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최면치료사나 마술사 같은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최면을 걸 수 있는 것도 그러한 과정이 어느정도 규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단지 트랜스 상태에 빠진다고 해서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에필로가와 접신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각성 과정은 나의 마력을 빌려 에필로가가 시술자에게 코어를 새김으로서 이루어 질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 각성은 마력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일부 희생하게 된다는 단점과 획일적인 능력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상이 군인인데다 각성 이후에도 대규모 인원을 교육 및 통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성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어차피 원래 군대라는 것이 온갖 인간군상을 깎고 다듬어서 사용하는데 적합하게 만드는 집단이니, 그야말로 군의 역할과 이념에 알맞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도 6000명쯤 되는 인원이면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 몇 정도는 있겠지···”
-글쎄, 마력과 같은 개념을 전혀 접하지 못 한 인원이 대부분일 텐데 각성한다고 해서 단기간에 네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가 저들에게 기대하는 건 검기를 뿜어내거나 섬세한 제어능력으로 육체를 개조하는 것 따위의 일이 아니야. 그런 건 깡통 놈들에게나 필요한 거지.
저들은 군인이야. 군인과 기사는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전혀 다른 존재라고.”
-강제각성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런 특징 없는 일반적인 마력뿐이다. 마법을 사용하지도 못하는 자들이 단련된 영혼으로 검기를 피어 올리지도 않고 어떻게 싸운다는 것이지?
“검기 따위 길어야 10미터도 뻗지 못하는 하잘것없는 능력에 불과해. 총을 보고서도 아직도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보았지.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날아오는 쇳조각이라고 해도 마력 없이는 2등급 이상의 마력적 방어조차 뚫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나?
“육체개조는 발달된 스포츠의학과 결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개개인의 감각과 제어능력에 의존하는 것과 비교도 안 되는 효율이 나오게 될 거야.
마력 없이는 마력적 방어를 뚫을 수 없다면 탄환에 마력을 담으면 그만, 일반적인 총탄보다야 비싸지겠지만 마력과 전자기력의 호환공식이 완성된다면 그 정도 마력은 문젯거리도 되지 않아.”
-고도로 발전한 마력방벽을 그저 힘으로 분쇄할 정도로 마력을 낭비할 수 있다니··· 놀랍구나.
“뭐, 그 정도로 이해했으면 넘어가자고. 슬슬 첫 번째 대상자들이 준비된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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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명철은 생각한다. 그의 강철 같은 정신은 반쯤 무의식에 가까운 트랜스 상태에서도 주변을 인지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정찰총국 동기들 중에서도 특출나다고 인정받는 인물이었고, 극한 상황에서도 굳건한 정신력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이 가진 최대의 장점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었으며 임무중에 실제로 그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곳이 그 신령이라는 걸 모시는 사당 같은 건가?’
마치 아이티 섬의 좀비와 같이 교관들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훈련생들 사이에서 비록 육체의 통제권 대부분을 상실했지만, 홀로 눈을 데룩데룩 굴리며 주변을 관찰하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티가 났다.
“저기 눈알 굴리는 동지가 전에 밥은 먹이면서 훈련하라던 그 군관 맞나?”
“그렇습네다, 여단장 동지.”
“강제로 트랜스 상태로 유도된 극한상황에서도 스스로 관조할 수 있다니, 크게 될 동무구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확실히 다른 훈련생들 보다 특출나게 우수한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힘을 빼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 상세하게 기록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인지하고 있다면 충분해. 오늘 각성이 마무리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집중적으로 교육할 만한 인재이니 말이야.”
그렇다. 접신을 통한 강제각성은 신에게 영혼의 바닥까지 드러내는 행위이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정보는 의식에 필요한 마력을 제공하는 나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정찰총국 각 부대에서 선별한 6000명 중에서 김정일에게 충성하는 내부의 적이 누구인지, 김정일이 아니라 다른 줄을 잡고서 기회를 노리는 놈이 누구인지도 손바닥 펼쳐 보듯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놈들은 몰라도 뽀글이에게 충성하는 놈들에게··· 훈련 중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게 되겠지.’
아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아바디. 달게 받으시라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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