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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님의 서재입니다.

Dream Wal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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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55
추천수 :
0
글자수 :
54,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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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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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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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오타쿠(4)

DUMMY

“한일 님, 혹시 사후세계를 믿으세요?”


한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그러면서 한일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부로 생각이 바뀌게 됐네요.”


여인은 손가락을 좌우로 까닥까닥 흔들었다.


“사후세계의 정의 자체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죽어서 가는 곳이 사후세계라면 이곳은 그런 곳과는 거리가 먼 장소에요. 여긴 저승이 아니라 실재하는 곳이랍니다. 당신이 살던 장소랑은 다르지만요.”


단번에 한일은 그녀의 말이 역설적임을 파악했다.


“잠깐, 그렇다면 난 왜 살아있는 거죠? 당신이 아까 당신 입으로 직접 내 시체는 화장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아주 약간의, 눈치채기조차 힘든 텀을 사이에 두고 여성은 답했다.


“그렇죠.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살아있어요. 거기서 죽은 시체와는 별개로, 한일 님은 모종의 방법으로 이곳에 있습니다. 비슷한 육체를 새로 만들어서 영혼을 집어넣었다고나 할까요. 만화를 좋아하시니 어느 정도 상상이 가시죠?”


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하는 말은 어느 정도 그럴싸했다.

뭐가 뭔지 모를 이 세상에서 그녀를 맹신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 이상의 정보를 가진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진 않으니, 한일은 그녀가 하는 말을 일단은 믿기로 했다.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지만, 믿기로 한 이상 의심의 끈은 스르르 풀려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은 여인의 뒷목에 식은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 일을 한 것은 당신이겠군요.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라고 말씀드리겠어요.”


여성의 말에 한일은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내 도움?’


한일은 스스로를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 너무나 한심했던 것이다. 재능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운동부족으로 비대해진 몸집은 혐오감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심성이 착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을 잉여인간 이상의 존재로 판단한 적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내리기엔 너무 가혹한 답이었지만, 그는 그것이 정답이란 사실을 아주 오래 전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꽤 신선한 일이다.


“저기, 제가 자기비하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요. 도대체 어딜 봐서 제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인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몇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심장이 멎을 듯한 미소였다.


“한일 님, 이 세계에 당신이 어떻게 오게 된 건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고도 없는 이 세상에 자신이 왜 왔는지,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알고 싶은 내용임이 틀림없다.


“구체적으로 설명드리면 이해하기 힘드실 테니 간단히 말해드릴게요. 한일 님을 제가 이곳으로 불러오긴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그쪽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는 사람 중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만 이곳으로 불러올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소환하는 건 불가능해요.”


자살자 중에서 추첨이라. 그리 좋은 통계는 아니다.


“그 와중에서도 젊은 사람, 특히 몸의 세포활동이 가장 왕성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사람들이 적절하죠. 그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몸이 약해서, 소환의 충격에 견뎌내기 어렵거든요.”


여성은 계속 말을 이었다.


“한일 님이 사시는 대한민국에서는 자살자만 하루 평균 30명 정도에요. 1년으로 계산해 보면 만 명이 조금 넘죠. 이렇게 보면 많은 것 같지만, 그 중 소환의 충격을 이길 만큼 건강한 사람일 확률, 꾸며낸 자살이 아니라 실제 자살자일 확률,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다 내던진 사람일 확률을 다 곱하면 그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가죠. 특히 마지막 경우가 꽤 커요.”


한일은 갑자기 의구심이 들었다.


“잠깐만요.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다 내던졌다고요?”

“그래요. 사실 자살하는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죽음을 결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사람들은 죽기 직전쯤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죠.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때는 늦기에 자살이라는 결과가 나오죠.”


한일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난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었다는 거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아쉬운 점이 한두 개 남은 게 아니다. 하지만 죽음 직전,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완전히 삶을 포기한 상태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의 의문은 풀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이 남아있다.


“아직 말씀하시지 않은 게 있군요.”

“······.”

“그래서, 저는 왜 여기에 불려왔나요. 뭐가 아까워서 절 불러온 거죠?”


삶에 대한 집착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그저 궁금해서였다.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죽었을 그를, 연고도 전혀 없는 이계에 갑자기 불러낸 그녀의 저의를 알아야만 한다.

한일은 여태껏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이 절대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라도, 그 이면에는 분명히 의식적인 이유가 내재되어 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여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화사한 얼굴에 약간의 그늘이 졌다.


“별로 말씀드리고 싶진 않았는데요.”

“이제 와서 무슨 말을 듣던 아무 문제 없어요. 어차피 한 번 버린 목숨인데.”


새로운 것을 대할 각오라기보단 자포자기에 가까운 심정이었다. 그런 한일의 상태 때문인지, 여인은 말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러나 한일의 연이은 재촉에 굴복한 듯,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한일 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부른 거에요.”


세계의 이름은 아그라스타라고 한다. 전체의 크기는 지구보다 조금 작은 정도의 세계로, 지구와는 환경과 지역조건이 상당히 다르다. 5대양 6대주로 나뉘어 있는 지구와는 달리, 이곳에는 대륙이라 불릴 만한 곳이 없다. 기껏해야 남한 정도의 크기만한 육지가 이곳저곳에 무수히 많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커다란 바다도 있고, 다른 곳보다 조금 크다 싶은 육지도 있지만,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

한일이 있는 이 지역의 이름은 프레이드.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곳이다.


“지구보다 환경은 더 깨끗하지만, 이곳에는 환경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재해 있어요.”


이 세계의 세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먼저 정착해서 세력을 불려나간 선주민과, 나중에 도착해서 선주민의 세계를 빼앗으려는 침략자다.


“문제는 두 세력의 힘이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이곳에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이능력이 존재하며, 지구에선 볼 수 없었던 기괴하고 강한 생물들이 서식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다수가 침략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며, 선주민들은 맨몸으로 그들에게 대항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침략자들은 신체 능력도 선주민보다 월등히 높다.


“선주민들이 가진 건 숫자와 무기 뿐이죠. 하지만 침략자들도 그에 상응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실질적으론 별로 나은 게 없네요.”


씁쓸한 표정에서는 진심이 묻어나왔다. 한일은 그녀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어두운 면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한일은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알 수 있었다.


“선주민의 편을 들어서 침략자를 물리쳐라. 대충 이런 건가요?”

“예상하셨나 보군요. 맞아요.”


별로 놀랍지도 않은 문답이었다.


“당신이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사실 여기에 부를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은 차원을 넘어온 분이에요.”


그녀 자신이 불러왔다고 했으면서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말투였다. 하지만 한일은 그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차원을 넘어온 사람은 신체능력이 물리 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죠. 그렇기 때문에 아까웠다는 거에요. 우리를 도울 능력을 가진 분이 그대로 죽어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상식을 벗어난 힘이 약간 납득이 된 한일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그에게 거슬렸다.


“······만약 내가 돕지 않겠다고 하면요?”


나름 시니컬하다고 생각하고 던진 말에 여인은 태평한 어조로 답했다.


“돕지 않으시게요?”

“······.”


젠장이란 소리가 혀끝까지 튀어나왔지만 가까스로 삼켰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신에게 선택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강제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여인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해준 것은 그저 한일이 자발적으로 그녀를 도울 수 있도록 한 배려에 불과했다.

여인의 눈웃음에서는 흘러 넘칠 정도의 자신감이 깃들어 있다. 만약 한일이 거절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면, 모종의 수단으로 그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가 된 기분이었지만, 한일은 이상하게도 분노가 차오르지 않았다. 자포자기했던 인생에 그나마의 살 이유라도 부여되었기 때문일까. 그 자신은 아직 그 이유의 정체를 정확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 마세요. 제가 한일 님에게 청하는 일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니에요. 공리주의에 확실하게 입각해 있으니까요. 유치하지만, 세계 평화를 위한 일이라고 하면 납득하시겠어요? 게다가 이건 한일 님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에요.”


청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직설적으로 시키는 일이라고 하는 게 마음 편하리라. 한일은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그보다는 그녀가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왜 제게 이익이 되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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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타쿠(4) 21.03.15 14 0 10쪽
10 오타쿠(3) 21.03.12 18 0 10쪽
9 오타쿠(2) 21.03.11 20 0 12쪽
8 오타쿠(1) 21.03.10 24 0 14쪽
7 꿈의 시작(6) 21.03.10 19 0 10쪽
6 꿈의 시작(5) 21.03.10 20 0 12쪽
5 꿈의 시작(4) 21.03.08 23 0 15쪽
4 꿈의 시작(3) 21.03.06 21 0 14쪽
3 꿈의 시작(2) 21.03.05 27 0 11쪽
2 꿈의 시작(1) 21.03.04 29 0 11쪽
1 누군가의 속삭임 21.03.04 41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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