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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님의 서재입니다.

Dream Wal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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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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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4,876

작성
21.03.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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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꿈의 시작(5)

DUMMY

아침부터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빠에게 이유를 물어본 여동생은 정신없이 웃어댔다.


“꺄하하하하! 그것 때문에 그렇게 저기압인 거야? 너 바보야?”

“시끄러워. 꿈에서라도 몸보신하려는 오라버니 심정을 네가 알아?”

“알 리가 없잖아, 멍청아!”


무릎을 팡팡 치며 정신없이 웃어대는 여동생을 노려보던 진호는 뚱한 표정으로 아침식사인 식빵을 원수라도 된 양 씹어댔다.

깊게 꾼 꿈은 여운이 남는다. 잠시나마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꿈의 주인공인 양 현실에서 행세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아주 잠시뿐이다. 짧으면 3초, 길면 30분 안에 현실은 굳어진다. 꿈이란 게 현실에 영향력이 그리 크진 않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마치 제 2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현실감이 넘치는 꿈은 이 법칙을 송두리째 부숴버린다. 진호는 꿈을 현실로 여기는 멍청이는 아니었지만, 꿈이 현실의 심리상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신과라도 가 봐야 하나?’


그건 최후의 보루였다. 그저 현실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게 꿈을 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진호는 모든 일에 의식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23번, 여기서 화자는 무슨 뜻으로 이 구절을 언급한 것일까?”

“예.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주저하지만 다시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고자 다짐하는 모습입니다. 이 말은 두 줄 밑에 있는 ‘매’라는 단어와도 통합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언급한 구절 속에 ‘나 이렇게 홀로’라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눈빛을 유난히 빛내는 진호의 모습에 언어 교사는 땀방울을 흘렸다.


“그, 그러냐.”


점심 시간.


“너 이 맛없는 급식을 잘도 먹는다. 정말 맛있는 거냐?”


입안에 어묵볶음과 밥을 꾸역꾸역 집어넣던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학교 급식이 맛있을 리 없잖아.”

“하긴 그렇지. 너무 맛있게 먹길래.”


하교 후.


“진호야, 패스해!”


원 바운드로 농구공을 넘겨준 진호는 잠시 후 다른 코스로 공을 다시 패스받았다.

림까지의 거리는 가깝고, 방해물은 없었다. 진호는 높이 뛰어 공을 던졌다.


“또 골이다! 진호, 오늘 공 좀 붙나봐?”

“원래 실력이다.”

“웃기고 있네. 야, 공격 온다!”


집.


‘오늘은 이상하게 공부가 잘 붙네. 좋아, 오늘은 한 시까지 영어다.’


문제집과 교과서를 병용해가며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진호의 눈빛에선 잡생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성적을 보면 우등생이라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어른들이 좋아하는 학생의 참모습 정도는 갖춘 것처럼 보였다.


침대.


‘아, 충실한 하루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모든 일에 열심히 참여하니 밥도 맛있다. 아마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낸다면 좋은 대학 입학은 그리 꿈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진호는 잠자리에 들었다.

막 눈을 감으려는 찰나, 진호는 퍼뜩 일어나 청바지와 셔츠를 꺼내 입었다. 그건 한 가지의 가설 때문이었다.


‘팬티만 입고 자니까 꿈에서 팬티 차림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걸 입으면 다른 복장이지 않을까.’


그럴듯한 가설이지만, 오늘은 왠지 꿈을 꿀 것 같진 않은 기분이다. 청바지를 입어도 잠이 솔솔 오는 걸 보니 틀림없었다.

진호는 달콤하게 몰려오는 잠의 파도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으적


‘엥?’


입안으로 맛이라는 쾌감이 몰려든다. 간이 적당히 밴, 탄력 있는 고기의 맛이었다. 뜬금없는 자극에 무의식중에 뱉을 뻔한 진호는 가까스로 그것을 씹어 삼켰다.


“어때요, 맛있죠?”


아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는 난처해졌다.


‘아니, 그, 맛있긴 한데······.’


도대체 왜 또 여기 있는 건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꿈 속 시간은 1초도 지나지 않았다. 고기를 씹으려는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진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아셀은 환히 웃었다.


“거 봐, 맛있다고 하시잖아.”

“정말? 앨리스 요리 잘 해?”

“세계 최고라니깐.”

‘······그러고 보니 저것들은 저러고 있었지.’


일단 눈앞에 식사가 있으니 맛을 봐 주는 게 예의다. 딱히 배고프진 않았지만,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는데 거부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게다가 꿈속에서 먹는 건데 살이 찔 걱정도 없다. 염장을 지르는 커플을 내버려두고 진호는 신나게 곰고기의 맛을 즐겼다.


‘쇠고기 맛도 돼지고기 맛도 아니야. 뭐랄까, 먹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맛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네. 그래도 맛있다.’


육식동물보단 초식동물의 고기 맛이 좋다. 곰은 잡식에 해당하며, 이건 사람도 잡아먹는 종인 듯 했지만 맛은 상당히 좋았다.

식사를 마치자 태양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밤에 잠들었는데 대낮이라니, 기분이 묘하네.’


날백수라면 모르지만, 나름 성실한 학생이라고 자부하는 진호에겐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현실과 꿈의 시간개념은 조금 달랐지만.

애정행각을 하는지 밥을 먹는지, 진호가 식사를 마친 시간의 두 배를 들여 두 사람은 식사를 끝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자기는 뒷정리 마저 해.”

“응, 알았어.”


바깥 경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진호의 옆으로 아셀이 다가왔다.


“아하하, 손님 앞에서 너무 방정맞았네요. 죄송합니다.”

‘알긴 하는구만.’


아까 전까지 죽을 위기에 처했던 사람들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옷은 언제 갈아입으셨나요? 식탁에 앉기 전까진 다른 옷을 입으셨던 것 같은데.”


진호는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상태였다.


‘옷의 변경은 꿈속 주민들에겐 큰 위화감이 없나?’


앉은 자리에서 옷이 휙 바뀌어 버리면 누구라도 깜짝 놀라기 마련이다. 놀라지 않는 사람은 그런 상황에 익숙해져 있거나, 원래 안 놀라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런 상황이 벌어질 걸 미리 짐작하는 사람뿐이다.


‘아마 이놈은 그런 게 아니라 애정행각에 정신이 팔려 못 본 것인 확률이 높겠지만.’


어차피 꿈속의 주민이다.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아까 전에 좀······근데, 뭐 또 도와드릴 일은 없나요?”

“아, 아닙니다. 손님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죠. 저렇게 귀한 식재료도 마련해 주셨는데요.”

“괜찮으니까 뭐든 시켜주세요.”


정말 뭐든 하고 싶은 게 진호의 현재 심정이었다. 스마트폰도, 컴퓨터도, 하다못해 책까지도 없는 이 세상에서 그가 즐길 오락거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일 일을 해야 한다.


‘잠깐, 혹시 스마트폰도 이 세계에 들고 올 수 있을까?’


입은 옷도 그대로 적용되는 마당에 스마트폰이라고 가져오지 못할 이유는 없다. 다만 꿈에서 이불과 침대가 같이 따라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어느 정도의 한도는 있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럼······뒤뜰에 있는 장작을 좀 패주시겠어요? 도끼는 그루터기에 박혀 있어요.”

“알겠습니다.”


이어지는 꿈에 들어온 지 벌써 사흘째다. 하루나 이틀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세 번째라면 이건 더 이상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꿈이 아니다.


‘미국의 모 의사께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셨지.’


이렇게 된 이상 휴가라도 온 기분으로 다니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왜 이런 꿈이 생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앉아서 한숨만 쉬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진호는 휘파람을 불며 뒤뜰로 걸음을 옮겼다.


“······많구나.”


꿈의 계절이 언제인지는 도통 알 수 없었지만, 눈앞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는 많다 못해 거의 언덕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이 과연 두 사람만을 위해 필요한 분량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나무가 열 효율이 안 좋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이건 좀 심한데.’


산처럼 쌓인 장작들을 어떻게 패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했다. 물론 아셀이 이걸 다 두 쪽 내란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 번 해 보지, 뭐.’


장작을 패는 건 미디어에서밖에 볼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고 있었다.

그루터기에 박힌 도끼를 뽑아들고 장작을 하나 올려놓는다. 도끼를 머리 위로 치켜든 뒤, 등의 힘을 이용해 일직선으로 내리꽂는다.

이론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익숙해지면 편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진호가 지금껏 단 한 번도 장작 패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초보자는 처음 해보는 일엔 긴장하여 있는 힘을 잔뜩 주게 된다.


“합!”


톤 단위의 물체가 하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 숲에 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 우르르 날아오른다.

나갈 채비를 하던 아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앨리스, 그리고 근처에 있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깜짝 놀라 소리의 진원지로 달려갔다.


“무, 무슨 일이에요?!”


딱히 사람이 다쳐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진호는 반토막이 나 버린 그루터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땅이 살짝 갈라져 있고, 그가 팼던 장작은 충격의 여파로 집의 돌담에 깊이 박혀 버린 지 오래였다. 도끼가 멀쩡한 게 신기해 보일 정도의 참극이었다.


“죄송합니다. 힘 조절을 잘못 해서.”


힘 조절이고 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호의 무식한 힘에 마을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지만, 곧이어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일터로 돌아갔다.


“용사니까.”

“용사님인데 저럴 수도 있지.”

“소문대로 용사님은 대단하구나.”


RPG 게임의 NPC처럼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진호는 자신의 무의식 속 용사가 힘만 센 멍청이었나를 곱씹어보았다. 물론 무의식이니 그가 의식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가뜩이나 처음 패 보는 장작인데 힘 조절이 될 리는 없었다. 짜증이 나서 도끼를 내려놓은 진호는 잠시 의문이 들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나무도 맨손으로 부쉈는데 장작이라고 불가능할까?’


가만히 손을 펴본 그는 장작을 천천히 내려놓더니 손날로 내리쳤다.




“······하긴, 꿈인데 안 될 거 없지.”


도끼로 내려치는 것보다 손날로 내려치는 게 더 빠른 상황이 벌어졌다. 장작이 두부라도 된 양 쩍쩍 부수는 진호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물리법칙을 깡그리 무시한 모습이었다.

장작을 두부처럼 부수는 시점에서 초보자가 어쩌고 하는 얘기는 이미 건너갔다. 한 시간 후 일의 진행 상황을 구경하러 온 아셀은 깜짝 놀랐다.


“아니, 저걸 다 패놓으셨어요?”


산처럼 쌓인 장작의 대다수가 반쪽으로 보기 좋게 쪼개져 있었다. 멍하니 장작에 수도(手刀)를 내리치던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쉽네요.”

“그, 그런가요. 아침, 오늘 저녁은 회관에서 마을 사람들이랑 다 같이 할 건데, 괜찮으신가요?”

“축제라도 있나 보죠?”

“그건 아니고, 아까 진호님이 잡으신 곰들을 다 같이 힘을 모아 회수해 요리하기로 했거든요. 한 마리는 완전히 박살이 났지만, 나머지는 어떻게든 먹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진호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본 아셀은 당황했다.


“호, 혹시 실례였나요? 죄송합니다, 마음대로 사냥감을 가로채서······.”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진호가 다시 한 번 곰고기로 배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한다는 걸 아셀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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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꿈의 시작(3) 21.03.06 2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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