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복어왕자 님의 서재입니다.

Dream Walkers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복어왕자
작품등록일 :
2021.03.04 22:25
최근연재일 :
2021.03.15 14:46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49
추천수 :
0
글자수 :
54,876

작성
21.03.12 09:40
조회
17
추천
0
글자
10쪽

오타쿠(3)

DUMMY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여성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어요. 한일 님.”


긴장한 한일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마주 인사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여인은 요염한 듯, 청순한 듯,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분이 어떠세요?”


기분이 어떠냐니. 한일은 마땅히 답이 될 단어를 찾지 못했다. 구름 위로 던져진 기분이라면 적절할까.

아무 대답이 없자, 여성은 다시 말했다.


“기분 좋지 않으세요? 고층 빌딩에서 떨어졌는데 살아남았으니까.”

“······.”

“지금 한일 님의 생각을 한 번 맞춰볼까요. 지금 한일 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죠. 이 모든 건 꿈인 게 확실하다. 몸은 이상하게 건강하고, 초능력까지 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눈앞에 있는 여자는 현실감이 전혀 들지 않아.”


정답이었지만 정곡을 찔린 기분은 들지 않았다. 사실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을 법한 사실의 나열에 불과했다.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한일은 여인을 직시했다.


“그래요.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상이겠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법하죠.”


그 말에 한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을 뚫어지게 째려보았다. 긴장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그걸 뛰어넘어 한일은 여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인은 검지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한일 님은 그러면 안 돼요.”


한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갑자기 긴장이 느슨해지면서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환희의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무슨 말씀이신지······.”

“항상 꿈꿔오시던 거 아닌가요. 지겨운 일상에서 벗어나는 거. 매일같이 괴롭힘당하는 것도, 힘없는 자신에게 분노하는 것도, 자신을 낳은 애꿎은 부모님을 탓하는 것도 모두 싫어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잖아요.”

“······.”

“아마 한일 님이, 세간에서 부르는 오타쿠가 된 것도 같은 이유 아닌가요?”


한일의 시선이 일그러졌다. 눈앞의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필사적으로 추론해 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단순히 시비를 걸기 위한 것이라면 얘기는 간단하다. 그냥 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일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떠나버리면 평생 동안 땅을 치며 후회할 것 같은 강렬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아뇨. 한일 님은 벌써 이해하고 계세요.”


단호할 정도의 태도. 그 말에서 한일은 맨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눈앞에 있는 정체 모를 여자가 하는 말은 한 가지 사실을 냉혹할 정도로 강하게 찌르고 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일은 찻잔을 잡았다. 미처 삼키지 못한 커피가 입 주변으로 흘러내렸지만, 그 정도는 지금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무슨······말이에요.”


답을 알면서도 한일은 굳이 재확인했다. 자신이 지금 묻고 있는 것은 가장 바라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바라지 않는 것 중 하나이기도 했다.


“무슨 말이긴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


여인은 생글생글 웃었다. 방금 전까지 청초하게 빛나던 그 미소는 상당히 일그러져 보이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층 건물 옥상에서 머리부터 떨어진 사람이 살아남길 바라는 건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요?”

“하지만 난 지금 살아있잖아!!”


한일의 말투는 바뀌어 있었다. 그것은 반발이었다. 현실에 대한 반발인지, 눈앞의 여성에 대한 반발인지, 아니면 그 자신에 대한 것인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맞아요. 살아 계시죠. 그건 사실이에요. 단, 그건 이곳에서만이에요.”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한일은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떨리는 입술을 열어 간신히 내뱉었다.


“현실의 저는 어떻게 된 거죠.”


말하고 싶지 않은 말,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는 말. 그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사형선고였다. 길로틴에 머리를 걸친 것과 다름없었다.


“흐음. 그걸 말씀드리려면 말이죠. 두 가지를 다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여인의 찻잔은 어느새 비어 있었다.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다시 타며 여인은 말했다.


“좋은 점과 나쁜 점, 둘 중 어떤 것부터 말씀드릴까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쁜 일이 있다는 게 된다. 무엇을 먼저 듣냐는 것은 그저 마음의 준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밖에 없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한일은, 스스로 다가간 교수대에서 발버둥치는 쪽을 택했다.


“···좋은 쪽이요.”

“그럼 좋은 쪽부터 말씀드릴게요. 축하합니다! 한일 님은 죽지 않았어요. 버젓이 살아서 여기에 계시죠. 지금 느끼는 건 전부 현실이에요. 꿈이 아니죠.”


좋은 일이라면 좋은 일이다. 다만 그 말에 한일은, 이번엔 이마를 망치에 찍힌 기분이 되었다.


“그럼······현실은요.”

“현실이라니요. 여기가 현실이라니까요?”


한일은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얼마나 세게 내리쳤는지, 집이 흔들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장난치지 마! 알고 있잖아? 진짜 현실에서의 나는 어떻게 됐냔 말이야!!”


탁자가 흔들린 여파로 찻잔들이 기울어 커피가 쏟아졌다. 여인은 아쉬운 표정으로 손가락을 빨았다.


“나쁜 쪽을 말씀드리자면요. 한일 님은 더 이상 그쪽 현실엔 없답니다.”

“······.”


생각한 그대로였다. 알고 있었지만, 재확인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이런 걸 확인사살이라고 하던가.

한일의 양쪽 볼에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그의 심층에서부터 차올랐지만, 한일은 그 아픔을 바깥으로 내뱉을 수조차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짓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자살이란 것은 크나큰 각오를 필요로 하는 행위다.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 이외에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고통을 느낄지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 다음은?

자신은 죽으면 끝이라지만, 그 죽음을 떠안고 계속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힘없이 뜬 한일은 그 얼굴만큼이나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 가지만 알려주세요. 저쪽 세상에서 전 어떻게 되어 있죠?”


여성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죽었어요. 시체는 화장되어서 지금 납골당에 들어가 있죠. 그 다음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알려드릴까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알려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한일은 애써 그 말을 꾹 눌러 참았다. 자신의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알게 되면 마음이 무너져버릴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삼스레 한일은 자기 자신에게 환멸감이 들었다. 조금만 참으면 될 것을,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래봤자 현실은 변하지 않는데.


‘어차피 내가 죽어봤자 그놈들은 비웃거나 좋아하기만 하겠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죄의 감정을 가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대다수의 경우는 미안하다는 표시조차 하지 않거나, 겉으로만 미안해한다. 게다가 한일은 유서조차 남기지 않았으니, 피해자들은 사죄하는 척도 하지 않을 것이다.

한참 동안이나 한일은 후회와 자괴감에 물들어 땅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한일에게 여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한일은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 더 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았고, 눈물 자국만이 울음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한일은 생각보다 가슴이 빨리 진정되는 것에 깜짝 놀랐다.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슬픔과 격정이 빠르게 가라앉은 것 같았다.. 실제로 흐른 시간이야 어쨌든, 한일의 생각엔 그랬다.

들끓음이 가라앉자 한일의 머리에는 이런저런 상념의 파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조각들을 끼워 맞추자, 한 가지의 의문점이 생겨났다.


“한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이미 죽은 저는 왜 이 세상에 있는 거죠?”


사후세계니 뭐니 하는 말은 세간에 많이 퍼져 있지만, 그걸 실제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그렇다. 죽으면 환상의 나라로 간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인의 대답은 한일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제가 불렀어요.”

“······예?”

“제가 불렀다니까요. 아까워서요.”


도대체 뭐가 아깝다는 말일까.

여인은 커피를 한 잔 더 따랐다. 카페인 중독이 의심될 정도의 정신나간 섭취량이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한일이 본 바에 따르면 벌써 대형 페트병 하나 정도의 분량은 가볍게 넘어갔다.

커피에 질리지도 않는지, 여인은 커피를 또 마시며 말했다.


“자, 어떻게 말씀드릴까요. 최대한 솔직하고 길게 말씀드릴까요, 아니면 짧고 간략하게 말씀드릴까요?”


어차피 죽은 몸에 지금 뭘 해야 하는 상황인지도 모른다. 이런 입장에서 한일이 어떤 선택지를 고를까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한일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자 여인은 생긋 웃었다.


“하긴, 물어본 제가 잘못이네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할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Dream Walkers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 오타쿠(4) 21.03.15 13 0 10쪽
» 오타쿠(3) 21.03.12 18 0 10쪽
9 오타쿠(2) 21.03.11 20 0 12쪽
8 오타쿠(1) 21.03.10 24 0 14쪽
7 꿈의 시작(6) 21.03.10 19 0 10쪽
6 꿈의 시작(5) 21.03.10 19 0 12쪽
5 꿈의 시작(4) 21.03.08 22 0 15쪽
4 꿈의 시작(3) 21.03.06 20 0 14쪽
3 꿈의 시작(2) 21.03.05 26 0 11쪽
2 꿈의 시작(1) 21.03.04 28 0 11쪽
1 누군가의 속삭임 21.03.04 41 0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