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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마법 님의 서재입니다.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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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판법사
작품등록일 :
2024.05.09 18:43
최근연재일 :
2024.05.29 17:00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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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6,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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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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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 1

DUMMY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1


진일삼은 향시 결과를 들고 온 아들의 머리통을 사서삼경 책자로 내리치고 싶었다. 제사상에 올라가 있는 조상님들도 이정도면 향로를 들어 내리쳐버리라고 말할 듯했다.


“설마 또 49점이냐.”

“아쉽게 되었습니다. 아버님. 소자 최선을 다했으나 이번에도 49···.”


향시의 합격점은 50점. 49점이라면 충분히 잘 타일러서 아들을 다독이는 게 평범한 아비로서 해야 할 도리였다. 상대가 평범한 아들이었다면.


“그래, 저번에 올라가서 본 시험은 몇 점이 합격이었지.”

“60점 합격선에 59점으로 소자가 아쉽게 탈락하였습니다.”

“2년 전에 본 황궁 시험은. 5과목 모두 몇 점이었지?”

“2년 전에 본 황궁 시험은. 80점 합격선에, 아쉽게도 소자는 평균 79점을 맞아 탈락하였습니다.”

“그래 매우 아쉽구나. 평균 79점이라고 말하지 말고 한 과목당 몇 점이었는지 말해보거라.”

“모든 과목이 아쉽게도 1점씩 부족한 79점이어서 아무런 직책도 얻지 못했습니다.”

“···.”


전과목 100점과 전과목 평균점 중에 어떤 유생이 더 유능할까.


심지어는 논하는 시험마저 정확히 1점 차로 계속 탈락할 수 있는 실력자라면.


“삼원아.”

“네, 아버님.”

“너 진짜 죽을래?”

“대를 잇는 것을 중요시하는 아버님께서 소자를 죽이시지는 않으리라고 사료됩니다.”


흑룡강의 잠룡.숨어있다는 뜻의 잠(潛)이 아닌 맨날 잠만 잔다고 해서 잠룡.여러 능력 있는 학자들을 불러와 가르쳤지만,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가 사의를 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제분의 재능과 사고능력은 황궁 학사를 노려볼 수 있을 정도지만···. 게을러서 향촌 선생님도 하지 못할 듯합니다.”

“아니 그게 무슨···.”

“아마 굼벵이도 자제분보다는 열심히 살 것이오.”


위로금도 챙기지 않은 채 봇짐을 매고 사라지는 학사들을 보며 진일삼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아들놈을 아무리 가르쳐봤자 대청마루에 누워 굴러다니기만을 반복하겠구나. 이런 게으른 자식을 봤나!’


놋쇠로 만든 사자상을 아들에게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상념에 잠긴 사이 아들놈은 이미 도망가고 없었다.


“내가 오늘이야말로 아들놈의 다리몽둥이를 분지르리라. 천지신명이시여 아들놈의 다리 두 개를 분지르고 조상님께 사과드리겠습니다.”


대장간에서 제작한 철 몽둥이를 든 채 콧바람을 씩씩거릴 때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먼 곳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무림인이신 듯합니다.)


흑룡강 지역은 중앙에서 꽤 떨어진 곳이었다. 거기에 자신은 무림과는 관련이 없는 학사 집안. 총관의 성격상 어중이떠중이를 문 안까지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들어오게.”


집안의 문 높이가 낮은 편이 아니었지만, 거한의 무림인은 고개를 숙여 힘겹게 들어왔다. 손가락 마디마다 굳은살이 가득하고 허투루 단련된 곳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사내. 눈이 부리부리하여 보는 것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졌다.


‘입을 닫고 있지만 존재만으로 비범함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내가 아니다.’


아들놈의 다리를 부러뜨리기 위해 들고 있던 철 몽둥이를 등 뒤로 감추며 진일삼은 근엄하게 말했다.


“먼 길을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어쩐 일로 이런 누추한 장원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자리에 앉지 않은 채. 거한이 입을 열었다.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혹시 여기 자제분이···.”

“네, 제 아들놈이요.”


흠흠. 하고 거한이 잠시 목을 가다듬고는 물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게으름뱅이오?”

“···.”


진일삼은 상대의 물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했다.


"맞소?"



::



아버지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지붕 위.

진 삼원은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느끼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만족스럽군···.”


시험문제 중 출제자가 잘못 낸 부분이 있어 그걸 감안하고 틀려야 했기에 하마터면 합격할 뻔했다.

빼도박지 못하고 임관이 되어 백성들의 고혈을 빠는데에 동원되겠지.


“이대로 40년만 누워있었으면 좋겠···. 응?”


분명 지붕 위에 누워 있을 터였는데, 사람의 그림자가 자신을 가린다.


“진 삼원?”


처음 보는 거한. 저번 시험을 치르러 황궁에 갔을 때 본 무사들보다 훨씬 단련된 것 같은 신체. 삼원은 눈을 굴리다 되물었다.


“혹시 아버님이 저를 지붕 아래로 던지라고 보내신 거면, 저와 협상합시다.”


드디어 아버님이 무력진압을 사용하시는구나 생각하며 협상카드를 생각하는 삼원에게


“네가 가야 할 곳이 있다.”


그는 제안을 건네왔다.


“저는 제 생활에 만족합니다. 지붕에 누워서, 빈둥거리는 이런.... 만족스러운.”

"해가 중천인데 조금은 움직여야 하지 않나?"

"해가 질 때까지 이 자세 그대로 누워 있지 않을까 싶소만."


인상을 써 보았지만 삼원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이런 인간이 세상에 두 명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잘 찾아왔군”

“무슨 말씀이신지.”


거한은 손가락 세 개를 내밀었다.


“삼십 년.”

“무슨 말씀이신지···.”


수많은 검상이 있는 손.

거한이 말했다.


“아무도 귀찮게 하지 않는 곳에서 삼십 년간 먹고사는 걱정 없이 농땡이 피울 수 있게 해주마.”


그의 제안에 삼원의 눈동자가 거한을 향한다.


“···태어나서 들어본 제안 중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이야기군요. 대협.”

“그럼 동의한 것으로 알겠다.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셨으니.”

“···저는 동의하지 않았소만.”


거한은 먼 곳을 응시했다.


"네가 필요하다."

"시험도 다 떨어지는 게으름뱅이를 어디에 쓰겠소?"

"부폐한 관리만 목숨을 부지하는 시기이니, 그게 싫은 것 아니냐?"

"저는 그렇게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오만....엇!"

"근육은 좀 키워야겠군."


누워 있던 삼원을 거한은 통째로 들어 올렸다.

삼원이 물었다.


“···납치할 생각입니까?”

“역시 그녀가 말한 방법으로 가야겠군.”

“그녀는 뭐고 방법은 뭡니까···? 장난 그만 하시고 이제 내려주....”


거한은 신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냥 대충 납치해오면 귀찮아서 안 돌아갈 거예요.)


거한은 삼원의 멱살을 잡은 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으어어어어-억!"


화살이 쏘아지듯 허공을 나아가는 거한.

그의 손에는 멱살이 잡힌 채 펄럭이는 삼원의 모습이 있었다.



::



눈보라가 치는 설산. 한 시진이면 손과 발이 얼어붙는다.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아무도 오지 않을 거대한 산맥. 신녀의 제단이 숨겨져 있는 곳이었다.


가파른 절벽동굴의 안.


은색의 긴 머리카락.

부러진 병장기들이 제단의 근처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혹한의 추위였지만 천잠사 이불 아래쪽에 투명한 맨발이 꼬물거린다.


“으으음···.”


설산에는 여러가지 전설이 있었다.

이무기가 살고 있다는 전설과 함께

은발의 여인이 맨발로 폭풍 속에서 춤을 춘다는 전설.


세대에 걸쳐 내려오는 전설 속 주인공은


베개에 머리를 파묻은 채 행복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행복하다아...."


이 순간이 계속된다면 좋을 텐데.


도와달라고 이 먼 곳까지 찾아온 남자.

무림이 어쩌고저쩌고 열변을 토하던 어린 아해의 생각이 떠올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입에서 말이 새어 나왔다.


“으으···. 귀찮아.”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던 그녀가 눈을 떴다.

설원을 뚫고 다가오는 존재의 기감이 느껴진다.


“아 벌써 왔네.”


누워서 꼼지락댄 지 30년.

행복에 겨운 시간이었다.


"더 누워있고 싶은데...."


그녀에게 일이 할당되었다.


“제자 키우기 귀찮아아아아···.”


제단 위에서 꼬물거리지만, 기감은 먼 설산을 다시 한 번 탐색한다.

눈밭을 밟고 뛰어옴에도 부드러운 눈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는 남자. 답설무흔의 경지를 뛰어넘은 거한이 점점 가까워진다.


“일하기 싫다···.”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면 그냥 쫒아내면 되지만, 오랜 약속을 들고 찾아온 방문객이었다.


쿠구구궁.

기관진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린다.


긴 동굴을 따라 거한이 움직여온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앞에 눈 폭풍을 뚫고 온 남자가 다가온다.

눈을 대충 턴 뒤 그가 무릎을 꿇으며 말한다.


“신녀. 말씀했던 조건과 비슷한 녀석을 찾아왔습니다.”


거한의 손에 멱살이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약관 정도의 남자.

무슨 상황이냐고 물어볼만도 한데 별 대답이 없다.


"흐음...."

"신녀님?"


그녀가 말했다.


“저기 이불하고 베게 놔뒀으니까 거기 위에 두고 가.”

“네, 신녀. 그러면···. 약속한 일은···.”

“그런 나야 모르지···. 쟤가 알아서 하겠지 뭐.”


졸지에 쟤라고 손가락질 당한 삼원 입장에서는 자신이 뭐를 책임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정도의 도움도 감사드립니다. 무림에 큰 도움... 정말 감사드립니다. 신녀.”

"가라."

"예."


포권을 한 남자가 몸을 돌려 사라졌다.


눈사람이 되어있는 진삼원의 모습을 보며 신녀가 손짓했다. 뜨거운 바람이 진삼원의 몸을 순식간에 녹여버린다.

삼원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었다.


삼원의 몸을 훑어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래. 아헤야.”


반말.

얼핏 보면 신녀가 더 어려 보였지만, 진삼원은 별말 없이 몸을 일으키며 먼저 물었다.


“여기 숙식 제공됩니까. 소저.”


그의 말에, 신녀가 구석에 마련해 놓은 잠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좀 자라.”


둘 다 심하게 건너뛰는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의사소통이 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소저.”


그 말을 끝으로 신녀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고, 진삼원 역시 별말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누웠다.

어차피 멱살 잡혀서 끌려왔는데 반항해봤자 시간만 아깝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오···. 베개와 이불이 이렇게 편할 수가···. 이건 진짜 무릉도원···.’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신녀와

똑같이 꼼지락거리는 진삼원.


꾸물꾸물.

꾸물꾸물.


둘의 대치는 진삼원의 배가 꼬르륵 거릴 때까지 계속되었다.



::


제단에 걸터 앉은 채, 은발의 여인은 말했다.


“사부라 불러라.”

“혹시 그렇게 안 부르면 불이익이 있습니까?”

“귀찮게 할 것이다.”

“사부님.”


예를 차리기 위해 꾸물꾸물 일어난 삼원이 절을 하려고 하자 그녀가 말렸다.


“귀찮으니 생략하고 이쪽으로 오거라.”

“네, 사부님.”


피차 부연 설명을 귀찮았기에 말하는 사람도 따르는 사람도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본녀가 무공을 조금 가르쳐 줄 테니.”

“네, 사부님.”

“알아서 배운 다음에 무림에 가서 나쁜 놈들 좀 혼내주고 오거라.”


밑도 끝도 없는 주문이었다.


"알아서 말입니까?"


그녀는 힘겹게 상의를 일으키고는 거대한 송곳니를 내밀었다.


"직접 알려주기에는 귀찮다."

"...."


거의 그녀의 팔길이에 맞먹는 이빨. 전설 속 생물의 이빨이 있다면 그런 크기일 듯했다.


“잡았습니다. 사부님.”

“잠시 기다리거라. 들어갈 테니.”


어디에 들어간다는 건지 설명이 없었다.


그녀가 꾸물꾸물 거리며 가부좌를 튼 순간. 주변에 떨어져 있던 수많은 날붙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잘 놀라는 편이 아닌 삼원으로서도 놀라움에 눈을 깜빡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무림인들에 관한 소문을 간혹 듣긴 했지만, 대부분은 책 속에 쓰여있는 과장된 이야기들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검, 도, 창, 활, 비검···. 여러 무기가 두 명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이럴 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삼원은 점점 세상이 일그러짐을 느꼈다.


환한 빛이 세상을 모두 삼키고 다른 장소가 눈 앞에 나타났다.



::



끝을 알 수 없는 긴 수련장.


커다란 현판이 방 안에 걸려 있다.


[무기의 방]


‘무기의 방?’


“일어나거라. 게으름뱅아.”


긴 은발의 소저. 이제는 사부님으로 불러야 할 어린 여자가 은색 무복을 입은 채 서 있었다.

삼원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현실인가 싶어 몇 번 볼을 꼬집었다.


“이곳은 육체의 부하가 가장 적게 걸리는 심상 속 공간이다.”

“현실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래. 심상 속 공간에서 수련을 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수련을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은빛 눈썹을 찡그리며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귀찮음이 덜해진다.”

“그런 엄청난 효능이···.”


사부님과 삼원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엄청난 효능이었다.


“그러니 이곳에서 본녀의 무공을 알려주마.”


삼원은 심상 세계에 들어 온 이후 부쩍 말수가 많아졌다고 생각했다.

귀찮아서 말도 짧게 하던 사부님이 저런 긴말이라니.


역시 효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삼원이 사부에게 말했다.


“근데 귀찮은데 내일 하면 안 됩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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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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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 10 24.05.29 6 0 12쪽
9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 9 24.05.28 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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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림을 구해야 되는데 귀찮다 - 1 24.05.09 4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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