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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의 문이 그대들의 앞에 도래하였노라.

먹히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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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대제
작품등록일 :
2021.08.24 21:29
최근연재일 :
2021.08.24 22:50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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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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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317

작성
21.08.24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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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4장-인연

DUMMY

수석이라, 수석. 관심 없는 사람을 제외하면 세상 누구나 한 번 정도는 꿈꿔보는 꿈 같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걸 그 루아가 시험 한 번 치지 않고 달성했다.


'이 망할 꼰대가! 이름도 애칭인 루아로 올려놨어?! 이름 보고 도망치면 어쩌자고!'



루아는 협회장에 대한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얼굴에 쓴 가죽을 살살 만졌다.


아무리 얼굴에 가죽을 뒤집어쓰고, 금발로 뿌리 염색해 본래 모습을 숨겨도 들키지 않을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수 차례 아군이 되고, 적군돼서 싸워 서로에 대한 파훼법은 모두 꿰고 있었고, 개인적으로 몇 번 찾아가기까지 한 만큼 루아는 그쪽도 이쪽을 잘 알 거로 생각했다.


빨간 망토가 루아를 알아볼 확률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해서 적당히 합격선 수준만 넘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시도도 못하고 파탄났다.



'내 얼굴 보고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불안감이 엄습해 화풀이 삼아 당장 눈앞의 게시판을 어떻게 해 보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하고 손을 내렸다. 아직 빨간 망토가 알아보고 도망치는 게 확정된 사항도 아닌데, 게시판 뽑은 걸 보고 정말 도망치면 지금까지의 일은 전부 허사가 된다.


지금 당장에라도 게시판 맨 꼭대기에 있는 자기 이름을 뜯어 버리고 싶은 충동을 내려놓으며 인파를 뚫고 광장에서 빠져나왔다.

어디에 뭐 할 만한 일이 있을까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인파 때문에 짐을 들고 지나가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어르신! 짐 들어드릴게요!"



빨간 망토와 관련된 일 만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다.



*****



"....루아? 아....불길해. 그 여자 이름이랑 비슷하잖아...."



빨간 망토는 불안한지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답안지를 빼돌린 덕에 딱 합격생 평균 점수를 받아 통과 할 수는 있었다. 합격생 번호만 확인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맨 꼭대기에 있는 이름이 너무 눈에 익었다.


수험번호 1004번, 만점을 받아 수석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의 이름이 루아였다.



'....아니겠지. 설마, 그 여자가 여기 올리도 없거니와 정말 날 잡으러 왔다면 저렇게 눈에 띄는 멍청한 짓을 할 리가 없어.'



분명 그 여자는 미쳤지만 머리가 나쁘지는 않았다. 애초에 마음만 먹으면 수석의 자리를 거머쥘 수 있겠지만 그런 자리에 관심도 없는 인간이었다.


비록 그 미친 여자한테 쫓기는 신세라지만 난 그 여자를 잘 알았다.



'....그리고 시험장에는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은 인간이, 그럴 리가 없지.'



나는 갑갑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마을 광장 중앙에 설치된 분수에 걸터앉았다.



"너무 걸었나...."



터질듯 욱신거리는 발을 만지려 했지만 허리가 숙여지지 않는 통에 발에 손이 닿을 일은 없었다.


하필이면 이때 바람이 불어 분수 옆에 기대어 세워둔 지팡이가 땅에 떨어졌고, 역시 주울 수 없었다. 웃기되 웃을 수 없는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하는 회의감이 강하게 들기까지 했다.


분수에서 내려와 지팡이를 주우려 했을 때 낮부터 입에 병나발을 물고 다니던 여자가 다가와 지팡이를 주워줬다.



"아....감사합니다."

"고맙기는요."



어디서 본 것 같은, 금발의 소녀가 지팡이를 주워준 것은 과연 운명일까, 우연일까.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남자와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여자의 재회는 우연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희극이 끝난 뒤를 위해 안배된 길임을 아직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치? 난 루아라고 해. 네 이름은 뭐야?"



이유 없이 당연하다는 듯 자기 이름을 밝히는 소녀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느낌의 여자는 어깨까지도 오지 않는 금발을 찰랑이며 그의 주위를 기웃거리며 답을 기다렸다.

빨간 망토는 이름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름을 말했다.



"....제 이름은 스카비오사예요."



빨간 망토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이전, 빅파더가 새롭게 지어 준, 이전 이름과 비슷하게 꽃에서 따온 내 이름이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루아는 잠시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듯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더니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름이 기니까, 줄여서 스카라고 불러도 돼지?"



고작 그 생각 하나 하느라 그 요란 법석을 떨었나 싶어 잠시 멈칫했으나 해맑게 웃는 모습에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네.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세요."



별로 나쁜 어감도 아니고, 나쁠 건 없었다. 굳이 적개심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빨간망토, 스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하얀 새가 검은 꽃을 행해, 입을 들이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



그다음에는 별일이 없었다.


루아는 그렇게 다시 겨뤄보고 싶어 한 남자를 드디어 만났지만 알아보지 못했다.

2년이라는 시간을 할애했는데도 잡지 못한 남자를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빨간 망토로서의 스카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 같은 학생으로서의 스카가 다르기 때문에 알아보지 못했다.


스카도 그날 유독 심한 악몽을 꿨을 뿐이지, 그렇게까지 심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루아가 오늘 본 루아와 전혀 다르기에 우연히 이름만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묘한 기시감을 느꼈을지 몰라도 정말 같은 인간이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빨간 망토를 잡으러 여기까지 올 리가 없거니와 정말 찾아왔다 해도 수석이 돼 눈에 띄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수 차례 전선에서 함께 싸웠고, 영지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은 적으로서 만나온 시간을 믿고 서로가 봐온 면모만 알고 있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일면이라는 환상만을 쫓고 경계하다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두 사람이 엇갈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엇갈림이 지금의 이 상황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한쪽은 단순히 호승심에, 그리고 호기심에 만나고 싶어 한 거지만 표현이 잘못 됐고, 다른 한쪽은 처음으로 맛본 공포를 극도로 두려워하게 됐다.


이 관계가 진실이 알려졌을 때 파탄날지, 아니면 계속 이어질지는 앞으로 가 중요했다.


작가의말

인연은 곧 우연을 가장한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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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장-인연 21.08.24 6 0 7쪽
4 3장-내가 왜? 21.08.24 5 0 7쪽
3 2장-재회 21.08.24 6 0 8쪽
2 1장-전말 21.08.24 6 0 7쪽
1 프롤로그 21.08.24 11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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