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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건 모두 허상이야.

돈쭐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개미산
작품등록일 :
2021.10.07 22:31
최근연재일 :
2021.10.23 18:08
연재수 :
7 회
조회수 :
1,243
추천수 :
49
글자수 :
35,394

작성
21.10.2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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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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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7화 보기드문 사제지간

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DUMMY

모응화가 손으로 턱을 쓸고 난 후 소리를 높여 증석을 불렀다.


“석아! 내 가락지 좀 다오.”


이때까지 투덜대며 시안과 멀찍이 있던 증석이 그 말을 듣고는 마차의 마부자리에서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것은 여덟 개의 가락지로 하나의 붉은 가죽 끈에 꿰어져 있었는데 달빛을 받아 매끄러운 잿빛의 광택이 흘렀다.

증석이 손으로는 가락지 꾸러미를 툭툭 쳐 올리며 시안과 녹전주 사이를 지나 담장 가까이 다가서자 갑자기 녹전주의 눈이 커졌다.


“시전주! 저것은 오사(烏沙:텅스텐)가락지가 아니오?”


그 말에 시안이 빙긋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알아보시는 구려.”


녹전주의 견문은 태원에서 당포를 여는 사람답게 상당히 넓어서 보통사람이라면 일생 한 번도 구경하기 힘든 오사를 알아보았다.

오사는 보통의 불로 녹일 수 없고 날카로운 보검으로도 자르지 못할 만큼 단단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돌 틈에 박혀 있는 그것을 녹여내는 일은 상상도 못할 공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간혹 구경할 수 있는 오사는 이름난 대장장이라도 운이 좋을 때나 녹일 수 있는 것으로 이때까지는 누구도 다시 그것을 녹여 보라고 하면 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증석이 손바닥으로 쳐 올리는 가락지는 대나무 매듭 같은 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보통 가락지보다 배는 두텁고 넓은 가락지였는데 누가 보아도 보기 좋으라고 끼는 장신구는 아니었다.

담장 가까이 다가 선 증석이 가락지 꾸러미를 모응화에게 던졌다.

모응화는 그 가락지들을 받아들자 마자 엄지를 뺀 여덟 개의 손가락에 끼웠다.

숨을 한 번 고른 모응화가 주먹을 말아 쥐자 손등에는 핏줄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시안은 느긋하게 웃고 있었지만 태원의 사채꾼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중에서도 녹전주는 모응화의 두 주먹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들리는 말에 모대왕의 재주 중 하나가 쇠붙이로 이런 저런 기물을 만드는 것이라던데 저 가락지도 손수 만든 모양이구려.”


녹전주가 마치 시안에게 묻듯이 말하자 시안은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묘한 웃음을 흘렸다.


“모대왕은 이름도 생소한 쇠붙이를 두들겨 나비도 만들고 잉어의 비늘도 만들지요.”


이 말에 녹전주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무른 금을 두들겨 나비나 비늘 따위를 만든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구리 정도만 되어도 얇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안과 모응화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오사마저 녹여 내는 화로는 시전주가 만들어서 쇠를 다루기 좋아하는 저 모응화에게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녹전주의 생각은 맞는 것이었다.

이 년 전 시안은 모응화에게 다른 대장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거센 바람을 불어넣는 화로와 풀무 그림을 주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모응화의 손재주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시안이 고안한 풀무는 십여 장이 넘는 좁디좁은 대나무 통으로 물기 없는 거센 바람을 불어댔고 그 덕에 녹이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온갖 쇠붙이들도 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녹전주는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시안에게 말했다.


“과연 산채의 대왕이 가진 취미치고는 별난 것이라 할 만 합니다.”


시안과 녹전주가 이렇게 말을 나누는 사이 모응화가 걸음을 옮겼다. 마치 범이 자기 땅을 걷는 듯 그 걸음이 당당하고 두 손목은 몇 번인가 돌린 후 하늘을 향해 쳐들었다.

스물 남짓한 나이에 녹림을 휘어잡은 그가 가로막은 자들을 부수려 마음먹은 것이다.

장중하게 들어 올려진 두 주먹의 가락지에서는 잿빛의 불이 뚝뚝 떨어졌고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장원을 떨어 울렸다.


“시안의 은하에 이르는 길이 꽃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쇠붙이를 쥐고 싸워서 얻어지는 길이라면 그 길은 나 모응화가 뚫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시안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은하에 이르게 하는 무쇠의 가르침······ 은하철도(銀河鐵道)라······.”


시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적들이 모응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적과의 거리가 한 장으로 좁혀지자 돌연 모응화가 오른 주먹을 한껏 뒤로 빼고 한 쪽 무릎을 들어 올렸다.

한 덩이의 무쇠가 된 것 같은 모응화가 들어 올린 발을 크게 앞으로 내딛으며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몇 개의 몽둥이가 그를 향해 날아왔지만 그의 주먹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반원을 그려댔다. 어깨와 머리로 몽둥이를 그대로 받아내며 휘두른 주먹은 맨 앞에서 몽둥이를 내리치던 자에게 꽂혔다.


“퍼억!”


그 자의 가슴 한 복판에서 마치 떡메로 찰흙을 내리치는 것 같은 소리가 나며 몇 장을 날아가 마당에 있는 석등에 부딪혔다.

그 자는 급히 몸을 바로 하려 했지만 절반쯤 일어나다 말고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그대로 숨이 끊어진 것이다.

달려들던 적들이 이 모양을 보고 안색이 변했다. 자칫하면 자신들도 저렇게 되는 것이다. 하오문 무리가 겁에 질리자 빈손으로 모응화를 상대하려던 두 사람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부하들이 농사 지을 땅은 우리도 내어줄 수 있다. 저 시안을 처치하면 우리는 그가 빌려준 땅의 두 배를 줄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이 다급한 순간 몇 마디의 말로 모응화를 매수해 시안을 치려는 것인데 정작 이 말을 들은 시안은 오히려 엄지를 치켜 들었다.


“훌륭한 반간계로군.”


시안이 자신과 모응화를 이간질 하려는 적의 계략을 칭찬하자 모응화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건넨 자에게 말했다.


“왜 이제야 말하는 것이냐? 세상 모든 이들에게 묻겠다. 왜 시안보다 먼저 그런 말을 하지 않은 것이냐? 왜 시안보다 먼저 땅을 빌려줄 생각을 못했냐는 말이다.”


그의 말에 두 배의 땅을 준다던 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모응화는 그 자에게 싸늘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애초에 그럴 마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인 것이다. 결국 누가 지금의 열 배의 땅을 주더라도 그것은 시안이 가장 먼저 그랬기 때문이란 말이다.”


“내 듣기로 시안이 수확의 삼 할을 거둬 간다고 들었다. 그것은 결국 이익을 남기려는 사채꾼의 욕심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아무 대가없이 땅을 빌려주지.”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구나. 삼 할을 가져가야만 다른 일에 내 부하들을 끌어들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대가가 정해지면 그 만큼만 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에게는 얼마를 갚아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지. 그래서 시안은 삼 할을 받고 산채의 내 부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게 한 것이다.”


모응화를 꾀어내려던 자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이간질 하려던 것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그 자는 이 자리에서 모응화와 결전을 치르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가 산적의 왕이라 해도 강호를 떨어 울리는 백준이나 십삼절처럼 이름난 고수는 아니니 설마 우리가 이기지 못할 리 없다.”


백준(百俊)과 십삼절(十三絶)은 모두 강호의 무서운 고수들을 일컫는 말로 백 명의 이름난 고수들을 백준이라 불렀고 각 문파에서 유명한 절기를 가장 잘 펼치는 자들을 따로 십삼절이라 불렀다. 백준과 무공의 차이는 없었으나 큰 문파에는 반드시 자신들의 고급무공을 달통한 십삼절이 있기 마련이었다.

백준에 오르려면 백준 중 하나를 꺾고 그 자리를 물려받아야 했고 십삼절에 오르려면 역시 십삼절 중 하나를 꺾거나 대문파의 모든 장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모응화는 눈앞의 적이 백준과 십삼절을 입에 올리자 시안 쪽을 한 번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의 상대는 내가 아니다. 내 상대는 너희 둘을 제외한 나머지다.”


백준과 십삼절을 들먹이던 자는 그 말에 뜻밖이라는 듯 말했다.


“네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


그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시안이 담장 위로 올라섰다. 마침 시안의 몸이 식은 것이다.

장원의 마당을 내려다보는 그의 안광은 싸늘했고 양쪽 입 꼬리는 모두 올라가서 송곳니가 드러난 것이 마치 귀신이 스산하게 웃는 것 같았다.

시안이 긴 날숨을 붙자 숨의 끝에 길게 입김이 토해졌다. 서늘한 가을밤이라 해도 아직 입김이 나올 시기는 아니어서 사람들은 그가 지닌 공력이 이처럼 기이한 일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모응화는 그런 시안을 보고 웃더니 눈앞의 두 사람에게 한 마디를 던지고는 다른 적들에게 향했다.


“시안은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자신의 제자를 위험에 빠뜨린 값은 너희들에게 받을 것이고 이 장원은 기와 하나까지 팔아치울 것이다.”


모응화의 이 말은 사실 억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증석을 밧줄에 묶어 던진 것은 바로 시안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모응화에게 무언가를 따지려 하자 모응화는 몸을 돌려버렸고 다시 앞을 보았을 때는 이미 시안이 눈앞에 서있었다.

시안은 평소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다. 절벽에서 살아난 이후 진중한 말은 하지 않고 속마음과는 늘 다른 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지는 것은 싸움을 시작할 때와 돈을 셀 때뿐이었다.


“내 제자의 숨통을 끊어 놓으려 했지?”


시안이 냉랭한 얼굴로 말하자 눈앞의 두 사람은 고사하고 담장 너머에서 지켜보던 녹전주를 비롯한 사채꾼들도 서로를 돌아보았다. 정작 증석을 사지로 내몬 것은 시안이었는데 이제는 뒤로 쏙 빠져 남 말 하듯 하고 있는 것이다.

시안의 말을 들은 증석은 어이가 없는지 목에 핏대를 올리며 외쳤다.


“누구든 사부를 꺾는 자는 내가 은 두 냥을 주겠소. 내가 가진 전부를 주겠단 말이오.”


증석의 말에 녹전주를 비롯한 사채꾼들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이따위 사제지간이 있단 말인가? 사채꾼은 당연히 제자를 두지 않는다. 제자를 두는 습성은 강호인의 것이고 먹고사는 일은 우리네 일과 같으니 시안 이 사람은 강호인도 아니고 사채꾼도 아닌 것인가? 아니면 둘 다 인 것인가?”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지만 시안은 증석을 돌아보며 오히려 칭찬을 해댔다.


“내가 제자를 제대로 가르쳤구나. 나 같은 사부를 떠받든 다면 그건 바로 바보나 하는 짓이지.”


시안의 말투가 절반쯤은 놀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지라 증석이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를 질렀다.


“사부는 일다경(一茶頃)만 지나면 열이 올라 죽을 것이니 제발 그때까지만 버텨 주시오.”


이것은 숫제 적들의 손에 사부가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증석의 외침에 걸음을 옮기던 모응화마저 웃고 말았다.

시안은 얼굴을 한 번 찡그리고는 눈앞의 두 사람에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때까지 버티기만 한다면야······.”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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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절체절명 +6 21.10.07 185 7 11쪽
1 1화 이도절맥의 천재 +10 21.10.07 31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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