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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건 모두 허상이야.

돈쭐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개미산
작품등록일 :
2021.10.07 22:31
최근연재일 :
2021.10.23 18:08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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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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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수 :
35,394

작성
21.10.0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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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오년의 세월

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DUMMY

시안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방도라는 것도 상대가 있어야 써먹는 것인데 이처럼 천 길 낭떠러지에 홀로 매달려 있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시안이 그저 막막한 심정에 골짜기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제는 밤이 되어 전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시안은 서러움이 왈칵 밀려왔다.


이제 자신은 천애고아였으며 목숨마저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는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시안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니 기어이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한참을 울고 나니 달은 점점 밤하늘의 한 복판으로 떠올라서 자정에 간혹 늑대의 울음소리만이 산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울음을 그친 시안은 한동안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심한 듯 달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으려는 생각인 것이다.

저울대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이대로 자루가 미끄러지기만 하면 자신은 이 더러운 세상과 이별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더니 이내 퍼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안이 그 퍼덕거리는 것의 정체를 알아채는 순간 자루가 미끄러지며 그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안의 정신이 아득히 멀어지며 죽음을 각오하는 찰나 무언가 갈고리 같은 것이 자루를 뚫고 자신을 묶은 밧줄을 움켜쥐었다.

세찬 바람과 함께 자신이 몸이 그대로 허공에 솟구치는 것을 느낀 시안이 함성을 질렀다.

자신을 낚아챈 것은 다름 아닌 수리였다.


허공에 높이 떠올라 달빛을 받자 비로소 수리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움켜 쥔 발목이 장정의 손목과 맞먹을 만큼 커다란 수리였다.

수리가 시안을 낚아채어 날아오르자 무언가 골짜기로 허연 것이 떨어졌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은 자루였다.

어쨌거나 시안은 수리 덕에 목숨을 구한 것으로 이것은 수천 년 인간사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천운이었다.


수리는 글도 알지 못하고 은이 귀한 줄도 알지 못하는 날짐승이었고 수리가 단지 시안을 먹이로만 여긴 탓에 오히려 시안이 절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수리는 시안을 매달고 수십 마장을 날아갔다. 그리고 넓은 바위에 나타나자 그곳에 내려앉아 시안을 감싼 자루를 부리와 발톱으로 찢기 시작했다.

자루가 찢기고 그를 묶은 밧줄이 드러나자 수리는 밧줄을 쪼는 것이 여의치 않았는지 구부러진 부리로 시안의 얼굴을 쪼아 살점을 뜯으려 했다.


놀란 시안이 급히 몸을 굴려 이리저리 피하다가 어느 한 순간 바위 틈새로 몸이 들어가고 말았다. 그곳은 커다란 수리가 들어올 수 없었고 시안은 바위에 연신 밧줄을 비벼대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밧줄을 벗겨낼 수 있었다.

손이 풀린 시안이 닥치는 대로 큰 돌을 들어 수리에게 던지자 이제는 수리도 더는 어쩌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며 화를 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자 마침내 포기한 듯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시안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고개를 북경 쪽을 바라보니 그곳은 불야성이어서 밤에도 불빛이 멀리까지 보였다.

북경을 바라보는 시안의 표정은 매우 차가왔으며 그저 그 불빛을 눈에 가득 담아 낼 뿐이었다.

시안의 얼굴을 한 줄기 바람이 훑고 지나가자 시안의 입 꼬리 한 쪽이 올라가며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 나왔다.


“깨어진 단전······ 공력이 쌓이지 않는 것은 그 이유였구나. 남의 공력을 받더라도 수명은 스물하나······.”


말을 하는 시안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눈동자가 어지럽게 좌우로 흔들리고 입으로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 거렸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쉬지 않고 여러 가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급기야 넓은 바위를 이리저리 걸으며 어떤 때는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눈은 흰자위만을 드러낸 채 뒤집기도 하면서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이런 기이한 행동을 하는 사이 얼굴도 변해갔다. 이전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아니었다.

눈에는 교활함이 번지고 입 꼬리는 점점 올라갔으며 선과 악이 한꺼번에 얼굴에 드러났다.

잠시 후, 귀신의 넋두리 같은 중얼거림이 점점 빨라지더니 어느 덧 뚝 멈추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본 시안은 허연 송곳니를 드러내며 키득거렸다.


“그러면 되겠구나.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이도절맥? 난 죽지 않아! 어머니와 단주를 해친 네놈들을 무너뜨리고 천하(天下)를 내 은하(銀河)에 잠기게 할 때까지 말이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시안은 산을 내려갔으며 며칠 뒤 북경의 당포골목은 큰 불이 나 수십 군데의 당포가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오 년이 지나 사람들이 북경의 큰 화재를 잊어갈 때 즈음,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에는 한 대의 마차가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성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여덟 마리의 커다란 말이 끄는 이 마차는 사람들의 눈길이 일시에 쏠릴 만큼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마부 자리에 두 사람이 앉은 이 마차는 마치 금을 바른 듯 모두 황칠이 발라져 있고 지붕의 처마 앞뒤로 네 개의 등롱이 걸려 있으며, 밤에도 다닐 수 있게끔 말 머리 위로 드리워진 기다란 장대에도 두 개의 등롱이 따로 걸려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며 나아가는 이 마차의 안에는 한 젊은 사내가 졸고 있었다.

사내는 졸면서 숱하게 꾸고 또 꾼 악몽을 다시 꾸었다.

늘 그렇듯 자신은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고 졸고 있던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꿈에서 깨어났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언제나 꿈을 꾸면 자신은 어린아이가 되었고 겁도 많아져서 두려움에 떨었다.

한숨을 뱉어낸 사내는 잠시 마차의 창을 바라보았다. 마차의 창으로 붉고 노란 빛이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차 밖에 걸어둔 등롱의 빛이었다.

사내의 손이 움직이더니 곁에 있던 등롱 하나에도 불을 붙였다. 등롱이 마차 안을 밝히자 사내의 행색이 드러났다.


사내의 행색은 노란 비단 바탕에 푸른 실로 기린을 수놓은 얇은 옷을 걸치고 검은 가죽신을 신은 것이 상당히 지체가 높아 보였다. 게다가 얼굴도 상당한 미남자여서 그런대로 준수한 편이었다.

다만 눈에는 한 가닥 사악한 기운이 번져서 언뜻 사물을 볼 때마다 수시로 눈빛이 변했다.

이 사내는 잠시 무슨 생각을 하다 한 쪽 입 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얼굴은 마치 귀신이 음산하게 웃는 것 같은 형상이 되었다.


“이대로 죽을 것 같으냐?”


혼잣말을 하며 사악하고도 기이한 미소를 날리는 이 사내는 바로 오년 전 당포에서 자취를 감췄던 시안이었다.

그 사이 시안은 남경에서 당포를 열었는데 은자를 버는 일이라면 너무도 악착같아서 은귀(銀鬼)라는 별명이 붙었다.

오늘도 이렇듯 악몽을 꾼 시안은 물통의 마개를 뽑고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켰다.

이때였다. 마차 밖에서 사내아이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쩌다 저런 사부를 만나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피도 눈물도 없어요. 지난번에는 장님한테서 애체(색안경)를 빼앗지를 않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부의 명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시안의 마차 마부자리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하나는 건장한 젊은이였고 하나는 바로 이 사내아이였다.

사내아이는 열 두어 살의 나이에 평범한 흰 무명옷을 걸쳤고 건장한 젊은이는 잿빛 장포를 걸쳤는데 넓고 두툼한 등과 어깨에 굳게 다문 입 그리고 옆으로 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이는 사내아이가 불만이 많은 말투로 열심히 투덜대자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네 사부의 생각은 보통사람이 가늠하기 어렵다. 너는 사부를 미워하지만 네 사부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거라.”


젊은이의 말에 사내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사부가 저를 얼마나 괴롭히는데요. 저는 만약 사부와 원수지간인 사람을 만난다면 오히려 술을 대접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내아이가 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마차의 지붕위에서 무언가가 휘둘러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사내아이의 머리통을 때렸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어린 사내아이가 급히 머리를 감싸 쥐었다.

머리를 그대로 감싼 채 사내아이가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올라왔는지 마차의 지붕위에 시안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쥘부채를 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으로 아이의 뒤통수를 후려갈긴 모양이었다.

시안은 뱀이 쥐를 삼킬 때처럼 입을 한 번 이죽거리더니 사내아이에게 말했다.


“비슬산 아래 가죽집에서 무두질하는 너를 이자 대신 받은 게 잘못이구나. 다시 데려다 주랴?”


시안이 말에 사내아이는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것만은 죽어도 싫은 모양이었다.

이 사내아이는 시안의 제자 아닌 제자로 증석이라는 아이였다. 시안은 증석의 머리 위로 쥘부채를 쭉 뻗었다.


“곧장 앞으로만 가면 남문 가까이에 진용방이 있다. 그냥 큰 길 따라 쭉 가면 된다는 얘기지. 그리고 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이르면 나를 다시 불러라.”


시안이 말을 마치고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증석 곁에 있던 또 다른 마부가 입을 열었다.


“이봐! 시안. 그곳엔 얼마나 많이 모여 있을까? 지난 번 우시장에서 싸울 때보다 더 많을까?”


입을 연 마부는 시안 또래의 젊은이였다. 얼굴에는 제법 귀티가 흐르고 말을 하는 모양새가 고상했지만, 이 젊은이는 유명한 산적으로 이름은 모응화였고 황화 이북에서는 모두들 그를 녹림대왕이라고 불렀다.

시안은 모응화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기괴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진용방이 이곳 산서 땅에 벌이고 있는 엽자희(도박) 판만 백 군데가 넘을 정도의 세력을 가졌으니 작정하고 모였다면 백 명은 넘지 않겠나?”


말을 마친 시안이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 모응화는 능숙하게 고삐를 틀어 큰 길의 모퉁이를 돌아 나갔다. 다시 한참을 가자 시장으로 보이는 곳에 다다랐고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막 번화한 곳으로 들어서는 호화로운 마차를 보더니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엄청나군. 말이 여덟 마리나 되다니······ 팔기통(八騎捅)이잖아!”


“그러게. 내 마차는 고작 말 네 마리짜리 사기통이라 힘이 모자라.”


“저게 바로 북경의 현대마차에서 나온 팔기통짜리 지팔공(智八功)이로군.”


“난 저런 거 줘도 못 타. 여덟 마리나 되는 말을 어떻게 먹여 살린담.”


이런 저런 사람들의 말을 뒤로 하고 증석이 팔을 돌려 마차를 두드리자 시안이 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오호라! 이곳은 사람들이 많군.”


마차에서 내린 시안이 증석을 불러 종이 뭉치를 건네며 말했다.


“사람들에게 나눠 주거라.”


시안이 증석에게 건넨 종이뭉치는 대략 삼백 장이 넘었다. 종이에는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눈썹이 없는 눈두덩에서부터 콧등을 가로 질러 길게 흉터가 나있고 해골을 닮아 추하게 생긴 여자의 얼굴이었다.


“이게 뭡니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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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일촉즉발 +6 21.10.10 156 7 11쪽
» 4화 오년의 세월 +7 21.10.07 175 7 11쪽
3 3화 매달린 시안 +9 21.10.07 173 8 11쪽
2 2화 절체절명 +6 21.10.07 186 7 11쪽
1 1화 이도절맥의 천재 +10 21.10.07 311 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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