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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건 모두 허상이야.

돈쭐강호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개미산
작품등록일 :
2021.10.07 22:31
최근연재일 :
2021.10.23 18:08
연재수 :
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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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49
글자수 :
35,394

작성
21.10.07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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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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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글자
11쪽

1화 이도절맥의 천재

저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DUMMY

원나라 말기.

언젠가 원(元)의 힘이 빠지면 오랑캐 황제가 찍어 낸 종이돈이 제몫을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간파한 자들이 금이나 은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세상의 재물을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옮기는 자들로부터 한 가지 기이한 소문이 흘러 나왔다.

그 소문이란 재물의 흐름을 읽는 비상한 머리와 공력을 빨아들이는 깨진 단전을 가지고 태어난 사내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불이 붙었던 그 소문은 몇 번의 흉년이 들고 민란마저 터지자 이내 잠잠해지고 말았다.

듣기에 따라서는 민란을 일으킨 자들이 자신을 영웅으로 꾸미기 위해 지어낸 말로도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그런 운명을 지닌 아이라고 여겨졌던 몇 명의 아이 중 하나가 북경의 사채업자들이 모인 당포거리에 머물고 있었다.

걸핏하면 혼절을 하는 그 아이는 오늘도 자신이 일하는 당포 구석에서 눈을 뒤집은 채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는 혼절을 하면 늘 꿈을 꾸었는데 언제나 같은 꿈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이는 꿈속에서 검고 피 묻은 손에 끌려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 손을 뿌리치려 버둥거렸지만 결코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범의 아가리와 같은 그 손의 주인은 아이를 질질 끌고 마침내 길이 끝나는 곳에 멈춰 섰다.

길이 끝난 곳은 벼랑이었다. 바람은 아래에서 위로 불어와 옷깃이 거꾸로 솟구쳤다.

검고 피 묻은 손을 가진 자는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아이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허공에 발버둥을 쳤지만 검고 피 묻은 손의 주인은 그대로 아이를 벼랑에서 던져 버렸다.

아이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고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이 지나고 아이의 귀에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안! 시안!”

자신의 이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아이의 눈꺼풀 사이로 희미한 빛이 보였다.

그것이 마치 자신을 구해 줄 동아줄인양 여긴 소년은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 순간 거울을 깨뜨리듯 꿈을 깼다.


소년의 눈에 두 사람이 보였다. 맨 먼저 보인 얼굴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였다.

그러나 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여기저기가 녹아내리고 퍼렇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 사람은 바로 문둥병을 앓고 있는 시안의 어머니였다.

시안의 어머니 옆 다른 한 사람은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였다. 그는 깨어난 시안과 시안의 어머니를 측은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말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 괜찮은 것이냐?”


시안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절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매 번 오시면 가게는 누가 봐요?”


시안은 오히려 중년사내를 걱정했다. 사내는 시안의 말에는 대꾸를 하지 않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시안의 어머니를 집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사내는 시안이 들을 수 없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껏 백방으로 약을 써도 차도가 없고 다만 공력만이 저 아이의 맥을 다시 되돌려 놓을 수 있었소. 비상한 머리에 공력을 끌어들이는 단전이라는 것은 그저 보기 좋은 허울일 뿐, 삼칠은 이십일······ 결국 선천지기가 다하는 스물한 살에 죽게 될 것이오.”


사내의 말에 시안의 어머니는 눈을 감고 입을 열었다.


“저는 죽어도 미련이 없지만, 시안은 무슨 죄인지······.”


“간간히 받을 이자 대신 며칠 간 연마한 내공으로 이 아이의 날뛰는 맥을 누르고 있지만 결국에는 이도절맥에 맞는 공력이 아니면 제 명대로 살기 어려울 겁니다.”


사내의 말에 시안의 어머니는 상심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마치 운명처럼 은자를 좋아하는 아이지만 백약이 소용없으니 은자가 많다 해도 시안을 구할 수는 없지요.”


“하늘이 은자를 손에 넣는 재주를 내렸지만 그 은자로도 자신의 수명은 살 수 없으니······.”


“단주께서 누군가의 부탁으로 시안을 찾아 왔다고 했는데 시안의 체질을 알 정도면 그 사람은 치료법도 알고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말하길 절맥을 치료하는 약은 없으며, 운이 좋다면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단주님이나 저는 시안이 절망할까 두려워 그런 체질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때 집 안에서 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 아저씨! 차 드세요.”


사내는 그 말에 흠칫 놀라며 말했다.


“시안. 그새 차를 끓였단 말이냐?”


사내의 말에 시안은 작은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웃어 보였다.


“네. 어서 와서 드세요.”


사내는 그런 시안에게 쓴웃음 짓더니 시안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원래 우리 흑련은 무공도 중요시하지만 강호에서 드러내 놓고 재물을 불리는 문파지요. 그런 까닭에 내 제자들은 이익만을 바라고 모든 일을 벌입니다. 제자들이 시안의 저런 사람다운 구석을 좀 닮았으면 좋으련만······”


시안의 어머니는 그런 사내의 말에 눈물을 떨구었다.


“사람들이 문둥병자라고 돌팔매질을 할 때도 늘 저를 감싸고 돌을 대신 맞은 아이랍니다. 그렇게 착한 아인데 스물한 살 밖에 못 산다니······.”


“일단은 내색을 하지 마세요. 자신이 얼마 못 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 시안은 남은 세월을 비통한 심정으로 보내게 될 것입니다.”


이때 시안이 다시 재촉을 하자 두 사람은 마지못해 집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시안은 어머니와 사내가 들어오자 생글거리며 차를 찻잔에 따랐다. 그리고는 품을 뒤적여 종이 몇 장을 꺼냈다.

그런데 품에서 종이를 꺼내는 시안의 눈빛은 조금 전 악몽을 꿀 때와는 전혀 달랐다.

눈엔 이리저리 빛이 흐르고 턱을 괴고 한 쪽 입 꼬리만을 올려 빙긋 웃는 것이 꼭 서당에서 남들보다 한 수 앞서 가는 서생의 얼굴이었다.

눈동자를 한 번 더 굴린 시안은 이윽고 입을 열어 중년 사내에게 말했다.


“백 아저씨! 이번 달 은자는 얼마나 들어왔어요?”


원래 중년 사내의 성은 백이었고 이름은 양이었다. 북경 당포거리에 근거지를 둔 흑련(黑蓮)의 단주이자 강호에서 덕으로써 은자를 모으는 사람이라 칭송을 받는 인물이기도 했다.


“구십 냥이 조금 넘을 것이다.”


느닷없는 시안의 질문에 백양은 잠시 조금 전의 일을 잊고 얼떨결에 답을 했다.

시안이 만족한 듯 얼굴에 미소를 짓고 말했다.


“다음 달부터 손님들마다 이자를 따로 받고 반년마다 이자를 낮춰준다고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겁니다.”


시안의 말에 백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대로 해보자꾸나. 그리고 네가 그림을 그려준 그 냉궤(冷櫃)라는 것도 다 만들어졌으니 내일 한 번 시험을 하는 편이 좋겠다.”


그 말에 시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다음날 아침.

시안은 일찍 집을 나와 북문을 통해 북경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가 북문에 들어서자 멀리 찻집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사내가 시안을 보고 동시에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나는 검은 옷을 입은 비대한 체격의 사내였고 하나는 애꾸눈에 후리후리한 몸의 사내였다.

뚱뚱한 사내는 눈길은 시안에게 그대로 둔 채 애꾸눈을 가진 사내에게 말했다.


“시안 저 녀석. 머리가 보통이 아니야. 떼어먹히지 않을 만큼의 이자를 셈하고 은자를 빌려간 가게의 손님이 얼마인지 눈을 감고도 알아내서 이자를 받아내는데 정말 귀신이 따로 없어.”


그 말에 애꾸눈의 사내가 답했다.


“더구나 사부에게 몇 명의 강호 손님을 따로 떼어달라고 해서 며칠 간 닦은 내공을 이자로 받았다네. 그걸로 자신의 절맥을 눌러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보면 잔머리 하나는 대단해.”


“무슨 소리야? 그놈은 아직 자신이 이도절맥인 줄을 몰라.”


“그게 아니라 본능으로 자신이 살 길을 찾는 것일 테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야. 남의 내공이 들어오면 편안해 지니까 자꾸 내공을 이자 대신 받는 거라 이 말이야.”


두 사람이 말을 하는 사이 시안은 자취를 감췄고 뚱뚱한 사내는 품에서 차 값으로 엽전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오늘로 다 끝이야. 그 분 말대로 우리는 서역으로 갈 테니까 말이네. 돌아오면 이놈의 세상이 뒤집혀 있겠지.”


애꾸눈의 사내도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사람 좋은 사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지.”


애꾸의 말에 뚱뚱한 사내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꼭 그 분 말처럼 하늘에 생사를 맡겨야 하는 이유가 뭘까? 죽여 버리면 간단한 일 아닌가?”


애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것이 그 곳의 법도라고 하니 우리는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뚱뚱한 사내는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돌렸다.


“북문너머 시안의 집에는 누가 가지?”


“아마도 이미 누군가 가 있을걸.”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히 다시 큰 길로 나와 시안이 갔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둘은 백양의 제자였으며 당포골목에서는 무공으로 제법 이름이 높았다.

두 사람이 길을 따라 당포거리에 들어서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백양의 가게 앞에 몰려 있었다.

두 사람이 사람들을 헤집고 앞으로 나서자 하나의 쌀뒤주와 비슷한 크기의 나무로 된 상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상자 앞에는 시안과 백양이 서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정말 저 곳에 과일이나 음식을 넣어두면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단 말이야?”


시안은 사람들의 말에 빙긋 웃어 보이고는 맨 앞에 있던 중년 여자의 손을 잡아 끌며 말했다.


“정말 시원하지 않다면 왜 냉궤라고 하겠어요? 손을 넣어 보세요.”


중년 여자가 상자의 문을 열고 손을 넣더니 이내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 시원한 걸. 우리 가게의 콩물이나 두부도 이곳에 넣어두면 며칠은 걱정 없겠어.”


여자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상자를 보고 신기하다는 듯 몇 마디의 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시안이 고안한 이 상자는 얇은 백동 판으로 네모난 틀을 만들고 그 바깥으로는 숯을 빼곡히 채운 다음 상자의 위에 물통을 올려놓은 것이었다.

거기에 물통에서 물을 머금은 천을 숯 위로 드리우면 천천히 숯을 적시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숯은 물을 날려 보내면서 상자의 열을 빼앗아 가게 되는 구조인데 원래 차가운 백동은 더욱 차가워져서 상자 안은 늘 시원했다.

냉궤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사람들 중 중년의 여자가 구미가 당기는듯 시안에게 물었다.


“이 물건이 냉궤라구? 은자를 얼마나 주면 나한테 팔 테냐?”


중년의 여자의 물음에 시안은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시안이 바라본 사람은 다름 아닌 백양이었다. 백양은 한 손을 활짝 펴 보였다.

은자 다섯 냥이라는 뜻이었다.


“은자로 다섯 냥만 주세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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