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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주문하신 먼치킨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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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47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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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헤나투(3)

DUMMY

“오. 만드는 거 한 번 쯤 보고 싶었어요.”

“별거는 없어.”


나는 양피지를 내려두고는 눈을 감았다.

만들고 싶은 음료를 떠올렸다.


음료의 형태는 버블 밀크티다.


“저 근데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


고서우의 질문에 눈을 뜨자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가고 있던 이미지가 무너졌다.


“선배는 커피 능력잔데... 이것도 커피에요?”

“...”

“네?”


대답을 못하자 얼굴을 눈 바로 앞까지 얼굴을 들이미는 고서우를 밀치고는 등을 돌렸다.


“나도 잘 몰라.”


가끔씩 의아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왜 ‘커피’능력자 일까.


나는 손 안에 잡히는 양피지의 표면을 문질렀다.


사실상 내 능력의 기반은 원두나 커피가 아닌 이 레시피에 있었다.


물론 그건 레시피 개발이라는 스킬이 생긴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뭔가 뜻이 있겠지.”


고개를 드니 어느새 고서우가 앞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 웃음기 가득했던 얼굴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신의 ... 뜻이 있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뭐. 에스프레소도 스모어도 신은 신이니까.”


스스로 말하면서도 이상하다고 느꼈다.

살면서 신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막연히 생각하던 신의 모습은 최소한 이렇게 친근한 존재는 아니었다.


“선배는... 그 둘이 진짜 신이라고 생각해요?”

“... 인간은 아니잖아.”


확실히 이전에 어제 서우가 했던 이야기는 일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반쪽짜리라 하더라도 신은 신이 아닐까?


내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고서우는 턱을 괴고는 기우뚱한 자세로 앉았다.


생각에 빠진 듯 그 시선이 나나 헤나투를 향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음료를 만들려면 지금 뿐이었다.


저 호기심 넘치고 장난기 많은 고서우가 또 다시 나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집중할 수 없을 테니까.


양피지를 바닥에 내려두고 주변에 있던 돌로 고정했다.


“호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헤나투가 흥미롭다는 듯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봤다.


양피지 위에 손을 올리자 몸 안에 흐르는 마력이 검지 끝으로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흐음...”


방금 전에 만들었던 음료를 생각하자 흘러나온 마력이 양피지 위에 잉크처럼 내려앉았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덕에 음료를 만드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레시피 초안이 완성되었습니다.]


[해당 레시피에 이름을 정하시겠습니까? 정하시지 않으실 경우 임의로 지정됩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에스프레소의 말대로 음료의 효과나 형태는 구상한 단계에 정해지는 것이지 다 만들고 정하는 게 아니니까.


“회피의 버블티로 해줘.”


[회피의 버블티 레시피가 완성되었습니다.]


[특수 스킬 레시피 개발의 레벨이 한계치에 도달해 숙련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남은 숙련도만큼 레시피의 효과가 향상됩니다.]


[회피의 버블티를 섭취 시 회피가 대폭 상승합니다.]


[해당 음료는 불가피한 상황에서의 섭취자의 회피를 돕기 위해 순간적으로 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


나는 멍하니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당당하게 외쳤지만 생각했던 효과와는 어딘가 조금 다른 레시피가 완성된 것 같다.


옆에선 걱정스러워 보이는 헤나투의 얼굴이 보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회피를 돕기 위해 순간적으로 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건 대체 무슨 소리지?


이거... 마셔도 되는 건가?


“선배.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안내창도 끄지 못하고 멍하니 있자니 서우가 말을 걸어왔다.


“으어...?”


놀란 상태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부름에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소리가 새어나왔지만 이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에스프레소나 스모어나. 정식 신이 아닐 거예요.”

“... 그게 무슨.”


애초에 내가 만든 음료에는 ‘신의 애정을 받고 있는’ 이라는 표현이 붙는다.


그 신이 에스프레소가 아니면 누구겠나.


“신은 신인데... 뭐랄까. 인턴 같은 거라는 거죠.”


내 표정에서 의문을 읽은 것인지 고서우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면서 조심스럽게 단어를 선택했다.


“인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지금까지 에스프레소가 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지나야 저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거지?


“음... 일단. 저는 인간이니까. 인간의 시점에서 이야기 할 게요.”

“응.”


“스모어와 에스프레소는 탑의 신이에요. 이건 둘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우리가 각자 들은 이야기만 생각해도 유추할 수 있죠.”

“그렇지.”


“스모어는 아래로 향하는 탑을 관리해요. 에스프레소는 그 반대겠죠?”

“아마도 그럴 거야.”


“애초에 이 탑이라는 게 하나의 도구라는 거죠.”

“도구?”

“네. 아. 말이 참 정리가 안 되네.”


고서우는 답답한지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듯 박박 긁었다.

그런 서우에게 헤나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팔을 잡아 내렸다.


“처음 마법진이 나타났을 때 들렸던 목소리를 기억하세요?”

“음...”


대충 탑을 오르라는 소리를 했던 것 같은데...


“탑을 오르라고 했던가?”


벌써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 되었다.

단 몇 년이지만 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하긴 한데 아니에요. 정확히는


‘일상의 지루함에 몸부림치는 인간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선물을 주마. 재미있게 즐겨 보아라.’




‘세계를 원래대로 돌리고 싶거든 어디 한 번 직접 찾아와 보거라.’


였어요.”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거야?”


얼굴은 왜 갑자기 빨개지는데.


“그 날은 저에게... 정말... 두근거리는 날이었거든요. 살면서 그렇게 설렜던 적이 없어요.”

“...”


할 말을 잃었다.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날이.

돌아갈 수 없는 절망의 시대를 알리던 날이.


고서우에게는 설렜던 날이라니.


꿈에서 봤던 고서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게 재미없고, 지루해보였던 얼굴.


그 안에 어떤 게 있는지 몰라도 평생을 지루하게 살던 서우에게 이 세계의 이변은 인생의 큰 변화가 되어 주었을 것이다.


자극에 둔 한 사람에게 인간의 한계치를 넘는 자극이 왔으니 두근거릴 만도 했다.

그게 설레는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게 왜?”

“아. 아무튼 그 누구도 탑을 오르라고 한 적은 없다는 거죠.”

“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자연스럽게 탑이 생겼으니 탑을 오르라는 말로 알아듣지.

다른 뜻으로 알아듣진 않겠지.


“그럼 다른 뜻이 있다는 거야?”

“아뇨.”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연한 걸 묻는다는 녀석의 표정이 제법 얄밉다.


“제가 거기까지는 모른다지만. 즐겨보라는 몬스터를. 찾아오라는 건 탑을 의미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몬스터를 키우는 곳은 탑이고, 탑을 관리하는 신은 둘이라는 거죠.”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러니까요.”


고서우는 스스로도 답답한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다시 말했다.


“도구에 불과한 어쩌면 그들의 유흥거리일 뿐인 이런 일에 스모어와 에스프레소는 자신들의 정체성인 이 성이 통째로 이용되고 있다는 거죠.”

“으음...”


그러니까...


만약에 둘이 다른 신들과 동등한 입장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활용했을까.


게다가 내가 아는 에스프레소는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설 만한 성격은 아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소통이 잘 되는 신.


곰곰이 생각해보면 걸리는 구석이 많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저는 스모어를 좋아해요.”

“응?”

“스모어가 이상한 짓도 많이 하고, 나쁜 짓도 많이 해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 한국에서 일어난 모든 나쁜 일의 대부분은 스모어가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예요.”

“...”


블랙의 뒤에는 스모어가 있다.

그는 그들의 연구를 위해서 탑도 내주었고, 힘도 빌려주었다.


그러니 소원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도, 나나 서우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일들도.


모두. 스모어가 있었기에 일어난 일인 것이다.


그럼에도 고서우는 스모어가 좋다고 말한다.


“스모어는 저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고서우의 시선은 쓸쓸한 듯 바닥을 향했다.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제가 이해하기 어렵고, 가끔은 비인간적이라고. 그렇죠?”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는 시선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슬픔도, 쓸쓸함도, 체념도 없었다.


“... 미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아니에요. 제가 이상한 거예요.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렇다보니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어요. 부모님조차도... 저를 사랑해주셨지만, 이해는 하지는 못하셨어요.”


가까운 사람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감정선을 타고난 고서우를 이해했던 유일한 존재가 스모어였다.


평생을 외롭게 혼자 살던 사람에게 아주 질 나쁜 사람이 다가와 친구가 되겠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어떤 잘못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든.

이미 가까워진 사이에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매정하게 떠날 수 있을까?


“스모어가 그 모든 일을 한 이유를 알아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고서우처럼 그를 받아들일 순 없으리라.


“스모어는 이 탑을 너무 사랑해요. 여기서 자신이 키운 몬스터들도. 스모어가 저를 이해하는 것만큼 저도 이해할 수 있어요.”


조용하게 말하는 고서우는 감정이 휘둘리지도, 과장되지도 않고 차분했다.


“자신이 키운 아이들을 탑 밖으로 내보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래서... 탑 밖에 살던 인간들을 죽이는 거고?”


좋게 말해서 탑 밖으로 보내겠다는 거지 밖에서 살고 있던 인간들을 침략하겠다는 것과 뭐가 달라.


하지만 내 반응에 고서우는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평소의 모습과는 매우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 미소 속에는 다정함도 있었고, 측은함도 있었다.


“인간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면... 이곳의 몬스터를 모두 풀어버리면 되는 일이에요.”

“...”

“그럼에도 이런 방법을 선택한 건... 스모어는 소수의 희생이 있더라도 미래의 다수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해요.”

“미래의 다수라고 한다면...”

“몬스터와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계요.”


한숨을 한 번 내뱉은 서우는 후련하게 웃었다.


“제가 누구에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하게 되는 날이 와서 좋네요.”


양피지의 마력이 채 마르지도 않았을 짧은 시간 동안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 말을 기다리듯 고서우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나는 스모어도 블랙도 용서할 수 없어.”


예상했던 답이라는 듯 서우는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알고 있어요. 용서하지 않아도 돼요.”


나는 서우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양피지를 바라봤다.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아까 그거 더 잡아올까요?”


그런 마음을 읽은 건지 서우는 대답도 듣기 전에 호수로 다가가 덩어리들을 낚기 시작했다.


그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고서우의 진심어린 모습이란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많이 잡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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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역할극(2) 24.04.10 20 0 12쪽
180 역할극(1) 24.04.08 19 0 13쪽
179 무대 밖에서(5) 24.04.05 21 0 12쪽
178 무대 밖에서(4) 24.04.03 24 0 12쪽
177 무대 밖에서(3) 24.04.01 24 0 12쪽
176 무대 밖에서(2) 24.03.29 19 0 13쪽
175 무대 밖에서(1) 24.03.27 22 0 11쪽
174 증명(5) 24.03.25 18 0 12쪽
173 증명(4) 24.03.22 15 0 13쪽
172 증명(3) 24.03.20 16 0 13쪽
171 증명(2) 24.03.18 17 0 11쪽
170 증명(1) 24.03.15 21 0 13쪽
169 살아간다는 건(4) 24.03.13 16 0 15쪽
168 살아간다는 건(3) 24.03.11 17 0 12쪽
167 살아간다는 건(2) 24.03.08 16 0 13쪽
166 살아간다는 건(1) 24.03.06 11 0 13쪽
165 헤나투(5) 24.03.04 13 0 14쪽
164 헤나투(4) 24.03.01 11 0 11쪽
» 헤나투(3) 24.02.28 14 0 12쪽
162 헤나투(2) 24.02.26 14 0 12쪽
161 헤나투(1) 24.02.23 13 0 10쪽
160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5) 24.02.21 16 0 13쪽
159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4) 24.02.19 14 0 10쪽
158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3) 24.02.16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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