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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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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연재수 :
217 회
조회수 :
33,448
추천수 :
276
글자수 :
1,196,715

작성
24.0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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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헤나투(2)

DUMMY

가지고 있던 원두를 모두 털어도 만들 수 있는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전부였다.


“흐음... 선배애...”


내가 음료를 만들고, 헤나투가 연못에서 둥근 유리구슬 같은 걸 몇 개나 낚고 나서야 고서우가 입맛을 다시며 일어났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여기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음료...

아까 먹었던 과일 맛이 나던 덩어리로는 뭔가를 만들 수 없을까.


“이러나다.”


생각을 하고 있자니 헤나투가 서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낚싯대를 거두지는 않았지만 그건 관심 밖이었는지 헤나투는 음료를 만들고 있는 내 옆에서 계속 단어를 쓰며 발음을 물어왔다.


일어나다. 라는 말도 서우가 일어나면 말해주고 싶다며 묻더니 자연스럽게 써먹고 있다.


“우응... 어마야! 깜짝이야!”


잠에서 깬 고서우가 게슴츠레 하게 헤나투를 보더니 이내 놀라 펄쩍 뛰며 몇 발짝 물러났다.


“뭐야! 왜 말해!”


얼마나 놀랐는지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지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아... 어. 그래... 헤라두였죠. 헤라두였어.”

“헤라두?”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서우와 그를 따라 하는 헤나투.


“그런 건 배우지 마. 헤라두 아니고 헤나투.”


그대로 뒀다가는 계속 헛도는 대화만 이어질 것 같아서 끼어들었다.


“아. 그래요. 근데 사람 말을 하네요. 이...사람...? 아니지... 이 몬스터...?”

“알려달라고 해서 몇 개 알려줬어.”

“헤에...”


고서우는 흥미롭다는 듯 살짝 벌린 입으로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그나저나 배고프네요.”

“돼지냐.”

“한참 클 성장기란 말이죠.”

“밥 먹고 돌아서면 배고플 시기는 지나지 않았냐?”


어이없어서 하는 내 핀잔에 서우는 싱긋 웃었다.

아무래도 잔소리를 좋아하는 취향인 듯싶다.


“그나저나... 커피 만들고 있어요?”

“음... 커피는 다 만들었어. 아니 더 이상 못 만들어.”


재료가 없었다.

원두와 물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들었다.


“뭔가 여유가 되는 지금 뭐라도 준비를 해 둬야 할 텐데...”

“미안해요.”

“미안... 미안... 어?”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서우가 듣기만 해도 미안하다는 것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다.


물론 얼굴에서는 그런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뭐가 미안하냐.”

“그냥... 제가 좀 얘기도 하고, 준비해서 왔더라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네가 탑에 가자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탑에 왔을 거라는 보장은 없는 걸 어차피.”

“아픈 곳을 찌르시네요.”


고서우는 과장된 움직임으로 팔을 들어 왼쪽 가슴께를 가렸다.


“뭐. 저도 그 정도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선배랑 둘이 왔어도 이 정도로 준비가 안 된 상태라서 힘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방금 전의 상처받았다는 뉘앙스를 순식간에 버린 서우가 내 가방을 뒤적거렸다.


방금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가방을 힘없이 내려두었다.


이번에는 고서우가 내 아픈 곳을 찔렀다.


“아무것도 없네요. 아무것도 없는 가방을 다 챙겨 오시고...”

“그러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는 미리 말씀드렸습니다만?”


또 뻔뻔하게도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다.


저렇게 여러 모습이 순식간에 휙휙 바뀌는 모습이 현재 고서우가 곤란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조금 막막하기는 하지만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막연한 생각이기는 했지만 우리를 지켜보는 이들은 이곳 출신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의미 없이 죽는 걸 바라지 않는다.


대책 없이 탑에 오르겠다는 고서우를 대책 없이 따라온 데는 그런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뭐... 그들한테 인간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존재겠지만.


“그나저나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어요?”

“슬슬 가야지.”


배도 불렀고, 잠도 충분히 잔 덕분에 이곳에 들어오기 전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


다만 뭔가 준비를 더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직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었다.


“뭔가를... 더 준비할 수 없을까.”

“뭔가 라면?”

“으음...”


고서우가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 앉아 있는 나와 눈을 맞췄다.

가까이서 보니 잡티하나 없는 피부가 정말 곱다.


“왜... 왜?”

“고민하시기에 무슨 고민하나 해서.”

“그렇게 바라보면 무슨 고민하는지 아나.”

“뭐...”


그렇게 말한 고서우는 한 발짝 물러나 장난스럽게 웃고는 헤나투에게 향했다.


그나마 글자라도 읽을 수 있는 나와는 달리 저 둘은 정말로 한 마디도 통하지 않을 사이였지만...


“헤나투. 낚시 재밌어요?”

“나시.”

“이거. 낚. 시.”

“낙씨.”


나름의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우는 헤나투의 곁에 앉아 호수를 바라봤다.

유리로 된 세계에서 유리로 된 존재와 함께 바닥에 모두 보일 정도로 맑은 호수를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 신기한 경험이다.


“여기 뭐가 있나.”


고서우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호수에서 뭔가 계속 낚여 올라오는 것이 신기했는지 호수의 표면을 손으로 휘저었다.


“!!”


놀란 헤나투가 뭐라고 소리쳤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뉘앙스나 표정으로 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 같지만 우리의 고서우는 그런 걸 눈치 챌 위인이 아니었다.


아니 눈치 챘다고 해도 그걸 반영하지 않는 거 같지만.


헤나투는 답답했는지 내 곁으로 다가와 바닥에 글자를 썼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에게 와 발음을 물어봤다.

이 익숙해진 패턴에 자연스럽게 바닥을 내려다보니 다급해 보이는 글자가 보였다.


“안 돼. 하지 마.”

“안 대. 하시 마.”


내가 한 말을 한 번 따라한 헤나투는 그대로 서우의 곁으로 가서는 똑같이 반복했다.


“안 대! 하시 마!”

“어? 왜?”


정말 몰랐다는 듯이 올려다본 고서우에 헤나투가 다시금 나에게 달려와 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그렇게 하면 그곳의 생명체들이 모두 죽어버려.”

“그러케... 하면... 그고시...의... ...”


이번에는 제법 긴 문장에 모두 외우는 것은 어려웠는지 말끝을 흐리며 나를 바라봤다.


이게 뭐하는 짓이냐.


“야. 고서우. 애 방해하지 마.”

“네? 왜요?”

“낚시 중이잖아. 그렇게 하면 물고기 다 죽는대.”

“이거 물고기였어요?”


사실 물고기라고 한 적은 없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려고 했는데...

고서우가 언제 낚았는지 투명한 구형의 젤리 같은 무언가를 양손에 들고 보여 주었다.

어떻게 봐도 물고기는 아니잖아.


“뭐야... 저게 저기서 잡히는 거구나. 하여튼. 헤나투가 안 된다잖아. 이리 와서 앉아.”

“네~”


쪼르르 달려와 앉은 고서우의 손에는 이전에 봤던 물컹한 무언가가 있었다.


“거마어.”

“별 말씀을.”

“별... 마씀을...”


그렇게 말한 그는 다시 낚싯대 옆으로 가 앉았다.

아마도 여기서 시간을 보내는 유일한 일이겠지.

다른 생명도, 즐길 거리도 없는 이 좁은 공간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거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행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여기에 머물고 있는 걸까.


“이건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맛있네요.”

“응?”


어느새 고서우는 자신이 잡은 무언가를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익숙한 맛인데... 기억이 잘 안나요.”

“뭔데.”


나는 서우의 손 위에 있는 무언가를 조금 떼어냈다.

떼어낸 단면은 곧 다시 채워지면서 전체적인 크기가 조금 줄어들었다.


“탄력이 좋네.”


떼어낸 덩어리를 입안에 넣고 씹자 확실히 익숙한 단맛이 느껴졌다.


“이거...”


익숙한 맛이었다.

카페 알바 할 때 하도 먹어서 이제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된 거였다.


우리 카페는 특이하게도 근무하는 알바생에게 하루에 한 잔 아메리카노나 버블 밀크티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에는 식비를 아껴보고자 포만감이 좋은 버블 밀크티를 자주 먹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하면서 배고프지 말라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하필이면 왜 버블 밀크티였는지는 모르겠다.


“이거 타피오카 펄이랑 맛이 비슷해...”


맛도 비슷했지만 탄력 있는 식감이 펄을 연상시켰다.


“그거 다 먹지 말아봐.”

“아. 네.”


입을 크게 벌리고 베어 물 준비를 하던 고서우는 그대로 멈췄다.


“입은 닫아도 돼.”

“아...”


민망했는지 흐르지도 않은 침을 닦으며 입을 닫았다.


“이걸... 잘게 쪼개서.”


나는 덩어리를 펄 같은 작은 크기로 쪼개서 헤나투에게 빌린 냄비에 넣었다.


“근데 이건 음료가 아니잖아요.”

“음료는 만들면 되지.”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물이었지만 쉽지 않게 구한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는 최대한 헤나투에게서 떨어진 호수의 반대편으로 가서 물속을 바라봤다.


자세히 보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집중해서 보니 무언가가 보였다.


아주 깨끗한 물에 빠진 아주 깨끗한 유리 구슬마냥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다.


바로 앞에 지나갈 때 조심스럽게 손을 넣었지만 나오는 것은 비어있는 내 손 뿐이었다.


무언가가 닿았던 촉감은 있었는지 꺼내진 것은 없었다.

이걸... 맨 손으로 잡았다고?


나의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았는지 자리에 앉아 있던 고서우가 일어나 내 쪽으로 왔다.


“잡아 줘요?”

“응.”


고서우는 자신만 믿어보라는 듯이 과장된 몸짓으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소매가 걷어져 드러난 하얀 팔위로 황금빛의 빛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앞에 지나가던 덩어리를 들어올렸다.


자신의 능력을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기 대회 같은 게 있다면 적어도 3등 안에는 들 것 같다.


“고마워.”

“별 마씀을.”

“따라하지 마.”

“넵.”


이번에 건져 올린 덩어리는 바나나 맛이 났다.

이걸로 만들면 너무 달 것 같은데...


나는 다른 냄비에 물과 덩어리를 넣고는 모닥불 위에 올렸다.


한참을 끓이자 기포가 올라오면서 조금씩 걸쭉해지더니 덩어리지어 흐를 정도가 되었다.


“이때 냄비를 내리고 식힌다.”


식은 덩어리를 끓인 물에서는 은은한 바나나 맛이 났다.

물 섞은 바나나 우유 같기도 했다.

역시 우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유리 조각으로 된 층에서 물을 구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운인데 우유라니...


스스로 생각해도 복에 겨운 소리다.


식은 음료에 잘게 조각낸 펄을 넣는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는데요?”

“이게?”


사실 맛은 물탄 바나나 우유에 타피오카 펄을 넣은 요상한 맛이겠지만

생긴 것은 투명한 알갱이가 떠다니는 걸쭉해 보이는 물이다.


“네. 제가 먹어봐도 돼요?”

“나눠 먹자.”


반으로 나눠서 입에 넣으니 밍밍했던 덩어리 물에 단맛이 섞이면서 조금은 괜찮은 맛이 되었다.


“이게 요리의 재미지.”

“네?”

“가끔은 생각했던 대로 안 되거든.”

“좋은... 거예요?”

“지금은?”


솔직히 맛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장 음료가 필요하니까 효과가 붙여질 마실 거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던 건데 의외의 발견이었다.


“그런데 이건 효과가 없네요?”

“내가 만든 음료가 모두 효과가 있으면 나는 피곤해서 요리 못해.”


모든 능력자에게는 능력을 사용하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나는 만들려는 음료의 레시피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아주 운이 좋게도 이전의 불운했던 경험들을 토대로 나는 항상 양피지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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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역할극(2) 24.04.10 20 0 12쪽
180 역할극(1) 24.04.08 19 0 13쪽
179 무대 밖에서(5) 24.04.05 21 0 12쪽
178 무대 밖에서(4) 24.04.03 24 0 12쪽
177 무대 밖에서(3) 24.04.01 24 0 12쪽
176 무대 밖에서(2) 24.03.29 19 0 13쪽
175 무대 밖에서(1) 24.03.27 22 0 11쪽
174 증명(5) 24.03.25 18 0 12쪽
173 증명(4) 24.03.22 15 0 13쪽
172 증명(3) 24.03.20 16 0 13쪽
171 증명(2) 24.03.18 17 0 11쪽
170 증명(1) 24.03.15 21 0 13쪽
169 살아간다는 건(4) 24.03.13 16 0 15쪽
168 살아간다는 건(3) 24.03.11 17 0 12쪽
167 살아간다는 건(2) 24.03.08 16 0 13쪽
166 살아간다는 건(1) 24.03.06 11 0 13쪽
165 헤나투(5) 24.03.04 13 0 14쪽
164 헤나투(4) 24.03.01 11 0 11쪽
163 헤나투(3) 24.02.28 14 0 12쪽
» 헤나투(2) 24.02.26 15 0 12쪽
161 헤나투(1) 24.02.23 13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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