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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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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새
작품등록일 :
2021.11.01 16:40
최근연재일 :
2024.07.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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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96,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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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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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5)

DUMMY

첫 번째 구간은 어찌어찌 고서우의 능력으로 클리어 할 수 있었지만 그 다음은 장담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고서우에게 제안했다.


“여기서 그만 하고 나가자고요?”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이 깜짝 놀라는 모습이 어이가 없다.


“우리 실력만으로는 여기를 클리어 할 수 없어.”

“아니에요! 우리 아까 잘 했잖아요.”

“그야 여기가 첫 번째 구간이니까 어떻게든 된 거지. 지금 너와 내 꼴을 봐!”


내 말에 고서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가 이내 자신의 팔과 다리를 향했다.


“어... 아프긴 한데.”


고서우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직은 버틸 만 해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

“그럼 여기 계세요! 제가 다 처리하고 올게요!”

“그럴 수 있겠냐!”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혼자 가고 싶다는 것을 말릴 권한이 나에게는 없다지만 혼자 보낼 수가 없다.


혹여 그러다가 고서우가 다시는 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면.


“왜요?”


생각이 길어지던 중 고서우가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찝찝해! 내가 마지막 목격자가 될 거 아니야.”

“아.”


이해가 됐다는 듯이 입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녀석.

저러니까 더더욱 말해주고 싶지 않다.


저런 녀석한테 네가 죽으면 너무 슬플 것 같다고 말했다가는 얼마나 열이 받겠나.


“아무튼. 다시 생각해봐.”

“아뇨. 저는 가겠습니다. 제 한계를 알아보고 싶어요.”

“조금 더 쉬운 난이도의 아래층도 있잖아. 왜 하필 여기야.”


내 질문에 방금 전까지 각오를 다지는 표정을 짓고 있던 얼굴이 화면을 넘기듯 단번에 바뀌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이왕 하는 거면 가장 어려운 층에 도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뭘 당연해. 무모한거지.”


그간 고서우의 성격이나 행동을 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는 했지만 그건 녀석을 기준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후. 그러면 회복할 만한 것을 찾아보자.”

“회복이요?”

“그래. 여기서 원두가 나왔다는 건 어떻게든 먹을 걸 만들 수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물론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이 탑을 만든 녀석을 믿는다.


“흠...”


고서우는 고민 된다는 듯이 오른손 검지와 엄지로 턱을 매만졌다.


“잔소리쟁이.”


그리고는 이내 아랫입술을 앞으로 쭈욱 내밀며 볼을 부풀렸다.


“알겠어요. 근데 아무리 찾아도 답이 없으면 저는 그냥 클리어 하러 갈 거예요.”

“...”

“나도 선배 의견 하나 들어줬으니까. 선배도 하나 들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럴 때 보면 말도 잘 한다.


“알았어. 그때 가서는 나도 더 이상 말리지 않을게.”


그렇게 해서 우리는 두 번째 구간이 아닌 통로를 살피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에 뭐가 있을까요? 유리뿐인데... 먹을 게 있을까...”


고서우의 말대로 이곳은 순 빛나는 유리들뿐이었다.


“소원이 그런 얘기를 했잖아.”

“네?”

“자신이 걸었던 길에는 없던 길이 헤일런과 함께 가니까 있었다고.”

“아...”


탑은 마력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렇다면 그 흐름을 억지로 뒤틀 수 있다면 탑의 지형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는 주어진 대로 밀려오는 몬스터를 상대하기 바빠 그런 생각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람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음대로까지는 안돼도, 어딘가는 마력의 영향으로 길을 바꿀 수 있을 거야.”

“방법은 알고요?”

“아니.”


사실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되는 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애초에 탑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는 가.


캐롤라인 사제님의 말을 빌려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마나통을 가지고 있는 내가 말이다.


“해보는 거지 뭐.”

“흐음... 어렵네.”


고서우는 잠시 생각하는 듯싶더니 이내 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초딩이냐.”

“하지만 지루한 걸요.”


손가락과 팔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칼.

제법 잘 한다.


“너는 탑이 사라지고 세계가 원래대로 돌아오면 서커스 같은 거 해도 잘 하겠다.”

“저는 구경거리 되는 건 사양이에요!”


돈만 안 받을 뿐이지 지금처럼 돌아다니면 알아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훔칠 것 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애써 삼켰다.


아니, 삼키기 직전 잊어버렸다.


“어? 여긴가.”


유리와 유리 사이로 빛에 가려져 찾기 어려웠지만 희미하게 일그러진 부분이 있었다.


“여기 뭐가 달라요?”

“응. 나는 마력이 보이거든.”


쭈그리고 앉아 자세히 보니 확실히 다른 부분과는 색이 달랐다.

빛나는 유리 사이로 실보다도 얇은 황금색 빛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아치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 어떻게 하냐는 거지.”

“흠. 마력의 영향으로 길을 바꿀 수 있다면. 탑한테 이 길로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 안돼요?”

“... 그게 되겠...”


습관적으로 반박하는 말이 나오려고 했지만 고서우는 묘하게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유리 조각의 옆면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댔다.


우리는 이 길로 가고 싶어. 여기에 길이 있는 게 맞지?


스킬을 쓸 때처럼 안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느낌과 함께 그 흐름이 손끝으로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마력이 흘러나가자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졌다.


이런데 마력을 썼다고 하면 잔소리 할 사람들이 참 많은데...


눈을 감자 몇 사람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로운, 캐롤라인 사제님, 나래 씨, 에스프레소.


생각보다 별로 없네. 그래도 얼굴을 떠올리자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어! 선배! 앞에.”


고서우의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자 새로운 길이 보였다.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유리 길이 아닌, 거울로 된 끝을 알 수 없는 길.


옆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길로 갔다가 못 나오면 어떡해요.”


아무 것도 없는 거울로 된 길을 하염없이 걷다가 그렇게 지쳐서 눈을 감을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았다.


이 길을... 가도 되는 걸까?


“선배?”

“어?”

“무서운 거죠?”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몬스터와 싸우고, 동료들과 함께 있을 때는 그 공포가 조금은 줄어든다.


내가 정말 무서운 것은 아무도 모른 채, 어딘 지도 모르는 곳에서 서서히 죽어갈 죽음이었다.


아마 그건 탑에서 실종되었던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

혹은 죽음이었겠지.


“선배!”

“어!”

“일단 가 봐요. 뭐... 안되면 벽이라도 만지면서 오면 되돌아 나올 수 있을 거예요. 미로란 게 그렇잖아요.”


나는 고서우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선배?”

“네 말이 맞아. 이런 벽면이면. 만져도 다치진 않겠지.”


농담 삼아 던진 말에 고서우가 가볍게 웃었다.


“지금 그런 소리가 나와요? 아직 여유롭네요. 갑시다.”


그렇게 말한 녀석이 앞장서 걸어갔다.

양쪽으로 이어진 벽면에 녀석의 모습이 두 개, 네 개, 여덟 개, 그렇게 늘어나 수도 없이 많은 녀석과 나의 모습이 보였다.


한참을 바닥과 천장, 오른쪽과 왼쪽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걸었다.


“이제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겠는데.”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들어왔던 길은 보이지 않았다.

만약에 돌아갈 생각이 있다면 너무 늦지 않게 준비하는 것이 좋으리.


“선배.”

“응?”

“이 냄새 나요?”

“...?”


고서우의 말에 냄새를 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나는 것은 무미건조한 유리 냄새뿐이었다.


“물비린내가 나요.”

“물... 비린내?”


후각은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기에 눈을 감았다.

물비린내가 난다면 어딘가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는 소리니까.


자세히 들어보면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 소리는 안 들리는데.”

“소리요?”

“내가 귀가 좀 좋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그런 소리를 했던 것도 같은데.”


고서우는 기억이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미간을 좁혔다.


그런 거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상관없지 않나.


“아무튼... 멀지 않은 곳에서 냄새가 나요. 타는 냄새...도.”


타는 냄새.


“조심해야겠네.”


무언가 탄다는 것은 불이 존재한다는 것.

그렇다는 건 ‘누군가’ 이 길의 끝에 있다는 소리가 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자 나한테도 타는 냄새와 함께 희미한 물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타는 냄새보다 물비린내 냄새를 먼저 맡은 건 그저 우연일까.


“진짜 얼마 안 남았네요.”


녀석의 말대로 빛과 무수히 많은 우리들로 가득 차있던 길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밝은 길에 대비되어 어두운 공간이 점차 다가왔다.


“아...”


앞서 걷던 고서우가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부정적인 기운도, 긍정적인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인데.”


나는 고서우의 옆으로 가 길의 끝에 서서 바라봤다.

거기엔 10평정도의 작은 공간이 조금 아래에 있었다.


중앙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그 옆에는 투명하고 반짝이는 잎을 가진 나무가 그 아래에는 모닥불이 타고 있었다.


“왜 그래...”


라고 말하며 고서우를 돌아보자 녀석이 왜 그런 탄식을 내뱉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서 있는 입구의 바로 옆에서 누군가 고서우의 목에 날카로운 무언가를 겨누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지만 때리면 ‘깨질 것’같은 존재.


몬스터로 보이는 녀석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간 들었던 몬스터들의 울음소리도 아니었으며, 지금까지 들었던 외국어 중에도 없는 언어였다.


인간은 서로의 언어를 몰라도 통한다고 한다.

그건 그 사람의 표정, 손짓, 행동, 눈빛 등의 부가적인 표현이 각 문화별로 유사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그걸 토대로 생각해보자면 지금 고서우에게 유리로 된 창을 들이 밀고 있는 이 녀석은 분명 경계하고 있는 것이리라.


“뭐라고 하는 지 알아 듣겠어요?”

“그럴 리가 있나.”


그런 점을 파악한 것인지 고서우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일단 경계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

“어떻게요?”


이 존재가 우리에게 나쁜 의도나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을 때 우리의 어떤 제스처가 경계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될까.


꼬르르륵...


그 순간 옆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무언의 존재의 시선이 동시에 고서우의 배를 향했다.


“... 아침을 좀 일찍 먹었더니.”


머쓱했는지 실없이 웃는 고서우.

그리고 곧이어 내 배에서도 녀석의 것과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난... 먹지도 못했어.”


긴장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탓에 잊고 있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무언의 존재가 웃음이라고 생각되는 소리가 새는 소리를 내더니 무기를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더니 나무 아래로 걸어갔다.


“따라... 오라는 거 같죠?”

“우리가 어지간히도 불쌍해 보였나 본데. 혹시 모르니까 내가 먼저 가볼게.”


나는 고서우를 뒤에 두고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가 무언의 존재 뒤를 따랐다.


자리에 앉으라는 듯이 바닥을 치는 녀석의 손길에 따라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둥글게 앉았다.


“우리한테 밥이라도 주려는 거 아닐까요?”

“글쎄다.”


지금 녀석이 보여주는 행위와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물을 수가 없다.


무언의 존재는 우리를 앉히고는 나무 아래로 향했다.

나무 밑동에는 서랍장 문 같은 것이 있었다.


“대체 여기는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이야.”


고서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무언의 존재는 나무 안에서 투명하고 물컹해 보이는 덩어리를 몇 개 들고 나와 우리의 곁에 앉았다.


그리곤 그걸 먹는 시늉을 하더니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이...거 촉감이 매우 나쁜데요.”

“너도 참 여유롭다.”


이런 상황에서도 덩어리를 이리저리 살피며 만져보는 녀석.


우리가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무언의 존재가 고개를 약간 옆으로 기울더니 이내 덩어리를 입에 넣고 씹었다.


“먹는... 거라는 소린데...”

“먹어 보죠 뭐.”

“이게 뭔 줄 알고 먹... 야!”


말리기도 전에 고서우는 한입 가득 덩어리를 물었다.

녀석의 이빨 자국이 있던 덩어리의 단면이 천천히 흐려져 가는 모습이 오히려 더 먹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어... 이거...”

“왜. 이상한 거 같으면 뱉어.”

“이거... 바나나에요.”


그렇게 말한 고서우는 맛있는지 남은 덩어리도 입안에 넣었다.


바나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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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역할극(2) 24.04.10 20 0 12쪽
180 역할극(1) 24.04.08 19 0 13쪽
179 무대 밖에서(5) 24.04.05 21 0 12쪽
178 무대 밖에서(4) 24.04.03 24 0 12쪽
177 무대 밖에서(3) 24.04.01 24 0 12쪽
176 무대 밖에서(2) 24.03.29 19 0 13쪽
175 무대 밖에서(1) 24.03.27 22 0 11쪽
174 증명(5) 24.03.25 18 0 12쪽
173 증명(4) 24.03.22 15 0 13쪽
172 증명(3) 24.03.20 16 0 13쪽
171 증명(2) 24.03.18 17 0 11쪽
170 증명(1) 24.03.15 21 0 13쪽
169 살아간다는 건(4) 24.03.13 16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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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살아간다는 건(2) 24.03.08 16 0 13쪽
166 살아간다는 건(1) 24.03.06 11 0 13쪽
165 헤나투(5) 24.03.04 13 0 14쪽
164 헤나투(4) 24.03.01 11 0 11쪽
163 헤나투(3) 24.02.28 13 0 12쪽
162 헤나투(2) 24.02.26 14 0 12쪽
161 헤나투(1) 24.02.23 13 0 10쪽
»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5) 24.02.21 16 0 13쪽
159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4) 24.02.19 14 0 10쪽
158 에스프레소에 스모어 한 조각(3) 24.02.16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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