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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그림/삽화
경배
작품등록일 :
2019.07.16 21:08
최근연재일 :
2021.05.21 20:00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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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1,292

작성
21.04.06 20:00
조회
1,870
추천
31
글자
12쪽

224화

DUMMY

천호암으로 돌아온 상문은 소림을 어지럽힌 일이 없었다는 것처럼 일상에 녹아들었다.


평소에는 산문을 지키고, 강기의 수발을 자유롭게 하는 수련을 하다가도 시간이 날 때마다 현사가 건네준 책자를 정독하며 예로부터 전해져오던 심득을 읽었다.


눈이 내려 세상을 하얗게 만든다거나 커다란 파도가 숭산을 덮쳤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극락정토라는 등 이해하기 힘든 심득도 많았지만 제법 흥미로웠기에 차분히 읽을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달마대사부터 현사까지 이어져 온 방대한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였지만 상문은 무(武)에 관한 것보다 불법에 관한 것이 마음에 들었기에 책장을 덮으며 차분하게 불호를 외웠다.


‘책자를 사기 전에 심득을 정리해야겠지.’


머릿속에는 깨달음의 순간이 여전히 생생했지만 글로 옮기면 다를 수도 있기에 상문은 암자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히 글을 연습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강기의 수발 역시 함께 수련하려 했지만, 나뭇가지가 계속해서 부러지자 상문은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부지깽이에 강기를 불어넣어 적을 물리치셨다니 아직도 까마득하구나.’


평생 봉법에 매진한 고수와 이제 강기를 제대로 쓰기 시작한 상문을 비교하자면 당연히 부족했지만, 상문은 그런 시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미숙함만 생각했기에 붓 대신 쓸만한 나뭇가지를 한가득 가져와 계속해서 연습에 연습을 거듭할 뿐이었다.


‘너무 깊지만 쓸 수는 있겠어.’


검강이나 도강처럼 날카롭진 않지만, 땅을 푹 짓눌러 깊은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렇기에 조금이나마 만족한 상문은 손을 움직여 한 자씩 글을 써 내려갔지만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땅바닥이랑 뭐 하고 있어?”


“사형 오셨습니까.”


휘적휘적 걷는 상청이었지만 보폭이 일정한 데다가 중심도 잘 잡혀있었다. 상문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수많은 발전을 이뤄낸 상청이었지만 상문은 담담하게 인사할 뿐이었다.


“응. 오랜만이야. 그래서 뭐 하고 있었어?”


“심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상청은 상문의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차분하게 바닥에 쓴 글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좋네. 그런데 갑자기 왜 쓰는 거야?”


지금까지 상문이 꾸준히 성장했지만 심득을 남긴 적은 없었기에 상청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현사 태사백조께서 주셨습니다. 화경에 이르면 심득을 남기는 것이 숨겨진 전통이라고 하더군요.”


현사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상문의 진지한 얼굴에 상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한 걸음 물러나 처음부터 상문의 심득을 읽기 시작했고, 상문은 다시금 나뭇가지를 들고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나저나 문이는 글씨를 잘 쓰네. 그런데 너무 힘을 주고 있는 거 아니야?”


조금 익숙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강기를 오래 뽑아내는 것은 서툴렀기에 몇 자를 쓰면 나뭇가지가 부러졌다. 그 모습을 본 상청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오더니, 상문의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문이는 휘릭 하고 기를 불어넣으니까 자꾸 부러지는 거야. 좀 더 꾸욱 하고 불어넣어 봐.”


계속해서 연습을 거듭했지만 아직 발출할 뿐이지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기에 발출 대신 휘릭이라는 표현을 쓴 것까지는 알았지만 꾸욱이라는 표현은 감을 잡을 수 없었기에 상문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음. 그러니까 공격을 막을 때처럼 두르는 느낌이야. 그렇지만 문이는 강하니까 너무 꾸욱 하면 나뭇가지가 터질 거야.”


그 말에 감을 잡은 상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얇은 나뭇가지를 들고 천천히 강기를 물어넣기 시작했다.


상청의 말대로 나뭇가지를 긴 손가락으로 여기며 천천히 내공을 불어넣었고, 나뭇가지의 주변에 푸르스름한 기가 맺히기 시작했지만 이내 안쪽에서부터 파열하며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내공도 문이처럼 기질이 너무 강한가 봐. 계속 연습하다간 뒷마당이 밭으로 변하겠어.”


터진 나뭇가지들이 그대로 썩으면 훌륭한 밭이 될 것 같았기에 상청이 농담으로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지만, 상문은 기질이 강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근 오 년 동안 역린의 기운을 역근경으로 소화하며 전신에 골고루 퍼지게 했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하지만 상문은 내공을 길들이는 것도, 강기의 수발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기에 몇 번이고 나뭇가지에 강기를 불어넣으며 다시금 글을 썼다.


‘휘릭 하면서도 꾸욱 하는 모습이 대단하긴 한데. 어떻게 알려줘야 문이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상청이었지만 보면 볼수록 재밌는 상문을 도와주고 싶었기에 입을 닫고 고민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제법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지만, 상문의 글이 점점 끝을 맺어가는 모습이 보였기에 내심 발을 동동 구르며 상문의 손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끝났어?”


“네. 끝났습니다.”


마지막 글자와 함께 들고 있던 나뭇가지가 먼지처럼 사라졌지만, 상문은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에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상청은 그런 상문의 옆을 훌쩍 지나가더니 커다란 바위를 들고 돌아왔다.


“문이가 할 일은 손바닥으로 바위를 누르는 거야. 이걸로 꾸욱 하는 감촉을 익히는 거지. 대신 손바닥과 닿은 부분 말고 다른 부분이 부서지면 처음부터 다시. 어때?”


나뭇가지처럼 연약한 것보다 차라리 돌로 연습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에 상청은 바위를 가져왔다.


상문 역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위를 가볍게 두드리고선 손을 펴고 강기를 만들어냈다.


푸르스름한 기가 손에 나타나며 손가락 한 마디만큼 커졌고, 누가 보더라도 강기임을 알 수 있을 만큼 기가 응집되어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흩어졌다.


“쭉 하는 게 아니라 딱 하는 느낌이야.”


평소와 다름없이 명확하게 개념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느낌을 말해줄 뿐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에 상문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다시 강기를 만들어냈다.


차분하게 강기를 만들어낸 것은 조금 전과 같았지만 애써 유지하기보다는 손가락을 접어 주먹을 쥐는 감각으로 기를 손에 밀착시켰다.


‘나쁘지 않네.’


손에서 뽑아낸 강기를 밀착시킨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문은 그보다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강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흩어졌지만, 지금까지보다 훨씬 나아졌기에 상문의 얼굴에는 엷게 미소가 지어졌다.


“좋아. 역시 문이야. 그대로 천천히 바위를 눌러봐. 손바닥 자국만 남으면 돼. 하지만 천천히 누르는 거야. 아주 천천히. 예전에 법호 사숙께서 알려주신 대련처럼. 응?”


예전에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는 것 같았지만 상문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눈앞의 바위에 집중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순히 바위에 손바닥 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강기를 오래 유지하며 바위를 꾸준히 누르는 것이었기에 차분하게 심호흡하고선 다시금 강기를 발출해 바위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강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힘을 많이 불어넣으면 처음 남긴 자국보다 커다란 자국이 남아 바위를 깨트리기 일쑤였고, 처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느슨하게 강기를 만들면 절반도 지나지 않아 강기가 흩어졌다.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기에 상문은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서는 차분하게 고민했다.


“흠. 많이 부족하군요.”


“그래도 처음보다 꾸욱 하는 느낌은 좋아졌어. 역시 문이가 수련하는 모습은 재밌어.”


상청의 칭찬 아닌 칭찬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전한 상문은 다시금 바위와 씨름했다.


상문이 열심히 씨름하는 동안 상청은 흥미로운 얼굴로 그런 모습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갑작스레 하늘에서 검은 그림자가 떨어지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상문아.”


한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던 현사가 갑작스럽게 나타났지만, 상문은 놀라지 않고 허리를 숙여 인사할 뿐이었다. 손을 대충 내저으며 두 사람의 인사를 물리친 현사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돌려 상문을 바라봤다.


“공천이랑 술 마실 건데 너도 갈 테냐?”


“아직 할 일이 남아있기에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현사 역시 예의상 권한 일이기에 두 번은 권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공천이 숨겨둔 술독을 찾기 위해 코를 킁킁거렸다.


“태사백조님. 저도 책자 봐도 돼요?”


지금까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상청이 갑작스럽게 책자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상문은 살짝 놀랐지만, 현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청이라면 봐도 괜찮겠지. 너도 읽어봤을 테니 심득이란 것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지 않더냐. 그럼 난 간다.”


상청에게 허락함과 동시에 은근슬쩍 상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훌러덩 말해버린 현사는 술독을 찾았는지 코를 킁킁대던 것을 멈췄다.


술독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현사는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고, 상문은 상청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선 방으로 들어와 현사에게 받은 책자를 상청에게 건넸다.


“이것입니다. 그럼 저는 나가서 수련을 계속하겠습니다.”


상문은 상청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고, 상청은 반짝반짝한 눈으로 책자와 상문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러다가 상문이 나가자 손을 흔들어주고서는 자세를 바로잡고 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사형께서도 도와주셨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어. 힘내자.’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상문은 조용히 손에 강기를 만들어냈다.


손가락을 쭉 편 채 수강을 만들어내는 것부터 시작한 상문은 강기가 끊어지지 않으면서도 일정한 범위 밖으로 벗어나지 않게끔 유지하는 것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그렇게 수강을 반 각 정도 유지할 수 있게 되고 나서야 상문은 바위 앞으로 향했다.


맨손으로는 잘 유지할 수 있던 강기였지만 바위에 닿자 금세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 치 정도 들어가자 강기에 힘이 들어가더니 바위에 금을 만들어냈다.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아직 멀었군.’


하지만 상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강을 만들어내고 바위를 누르며 손바닥 자국을 만들어냈다.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점점 바위에 남겨진 손바닥 자국이 깊어졌다. 그럴수록 해가 점점 서산으로 기울었지만, 상문은 쉬지 않고 수련을 이어나갔다.


‘사부님께서 오실 시간이 되어가니 슬슬 식사 준비를 해야겠군.’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는 만큼 하늘도 빨리 어두워졌기에 상문은 수련 삼매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부님과 나 그리고 고 시주님과 장 시주님. 사형께서도 드실지도 모르니 조금 넉넉히 준비해야겠어.’


조용히 몇 인분을 준비해야 할지 가늠하긴 했지만, 암자 안에서는 여전히 상청이 책자를 살펴보고 있는 것인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렇기에 상문은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밖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자 했다.


밥을 안치고 곁들일 반찬을 고민하던 그 순간 암자에서 빛이 새어 나오자 상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사형께서 심득을 살펴보시다가 깨달음을 얻으신 건가.’


얼핏 보더라도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지만, 상문은 우선 마음을 가라앉혔다.


밖에 걸린 횃불을 가져와 길 한 가운데 세워두고서는 바닥에 조용히 하라는 글자를 깊게 새겼다. 그러고서는 밥을 준비하면서도 기감을 활짝 열어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조용히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호가 돌아왔고, 바닥에 깊이 새겨진 글자를 보고선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발걸음을 조금 더 옮기자 창문에서 화려한 빛이 새어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고, 상문이 필담으로 상황을 설명해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겹경사인 건 좋은데 며칠 만에 두 명이나 깨달음을 얻다니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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