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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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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알신더
그림/삽화
경배
작품등록일 :
2019.07.16 21:08
최근연재일 :
2021.05.21 20:00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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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1,292

작성
21.03.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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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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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글자
13쪽

210화

DUMMY

내일도 기대하고 있다는 말에 당사자인 장도풍은 물론이거니와 호시탐탐 나설 기회를 노리던 무인들 역시 어이없는 눈으로 상문을 바라봤다.


“어째서입니까? 저는 이미 졌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다른 분들께 기회를 고루 드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돌아갈 생각으로 가득했던 장도풍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선 거절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상문은 그를 놔줄 생각이 없기에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소림을 떠난 지 나흘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제게 오셔서 비무를 신청하신 분은 장 시주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장도풍은 상문의 말에 순간적으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째 고고한 기상을 지닌 소림의 무인이 아니라 한번 물면 놔주지 않는 왈패와도 같은 음험함이 느껴졌지만 여기서 포기했다간 절강까지 끌려갈 것이 자명했기에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저는 실력이 너무나도 미흡합니다. 그러니 스님과 비무를 해도 스님께 득이 될 것은 없습니다.”


“저는 득을 보고자 장 시주님과 비무한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부족한 실력임을 알고 제게 비무를 신청하셨다니 그 용기가 더욱더 좋군요.”


불안한 예감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자 장도풍의 얼굴 역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더욱더 발버둥을 치기로 하고선 가면을 벗어던지고 목소리를 높였다.


“썅. 저 왈패입니다. 여기 온 것도 천하제일이라는 양반에게 덤벼들었다는 흔적을 갖고 돌아가서 편안하게 먹고살려고 한 겁니다. 그러니까 좀 놔주십쇼.”


왈패의 용기가 가상하다며 놀란 눈으로 장도풍을 바라보는 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감히 왈패주제에 상문에게 덤벼든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상문은 엷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무아미타불. 그렇다면 제게 수련을 받으신다면 더 좋겠군요.”


그물에 걸린 것만으로도 모자라 상문이 조금이라도 힘을 준다면 물 밖으로 끌려 나와 배가 갈라질 것만 같았지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장도풍은 발버둥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을 죽인 왈패를 거두신다면 스님과 소림의 명성에도 흠이 갈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절 놔주시고 다른 분과 대련해주시죠. 썅. 스님만 허락하시면 저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올 텐데 왜 하필 접니까. 예?”


절규에 가까운 거절이었고, 너무나도 급박한 목소리였기에 왈패라고 눈살을 찌푸리던 이들마저도 동정이 섞인 눈으로 장도풍을 바라봤지만, 오히려 상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더 진해졌다.


“사람을 죽여도 불법에 귀의할 길은 열려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길어지니 앞으로 불법을 가르치는 시간도 넣어야겠군요.”


험악한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지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누구도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장도풍은 이미 자신을 여정에 끼울 생각으로 가득한 상문을 보며 낙담한 상태였기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고, 다른 이들은 상문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게 비무를 신청한 분은 장 시주님뿐이셨습니다. 그런 용기를 못 본 척하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무인의 도리에도 어긋납니다.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하겠지만 하나라도 배우고 싶은 분들이 많을 테니 장 시주님을 가르쳐드리는 동안 함께 하는 분들을 막을 생각은 없습니다.”


직접 대련하는 것보다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능력만큼 훔쳐 배울 수 있는 길이 열렸기에 무인들은 반드시 하나라도 건질 때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욕심을 가득 담아 상문과 장도풍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망했네. 제기랄.’


지금까지 보여준 완고한 모습을 보자면 장도풍이 아닌 다른 사람의 대련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장도풍이 도망간다면 기껏 찾아온 기회마저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인들의 눈이 반짝였고, 장도풍은 자신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음을 직감했다.


‘도망치다간 저 뒤에서 날 노려보고 있는 양반들이 팔다리를 자르겠네. 목숨은 소중하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겠어.’


더 저항해봐야 무의미함을 넘어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여긴 장도풍은 저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못 하도록 상문에게 붙어있어야겠다고 여겼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마음을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같이 가시지요.”


상문은 장도풍과 함께 속가문파에 들러 하룻밤을 보냈고, 평소와 마찬가지로 축시 말에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으헉! 뭐······. 스님?”


장도풍은 한참 단잠을 자고 있을 무렵 자신을 깨우는 손길에 짜증을 내다가도 그 손길이 상문의 것임을 알고 화들짝 놀랐다.


상문의 손에 끌려 나온 장도풍은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몸을 움직여야 했다.


금강권으로 천천히 몸을 풀기 시작한 상문을 바라보던 장도철은 차가운 새벽에 아무것도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는 것보단 움직여서 열이라도 내는 것이 낫다고 여겼는지 몸 이곳저곳을 뒤틀거나 팔다리를 움직였다.


“나무아미타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네.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잘 잤습니다. 한데 무슨 연유로 깨우신 겁니까?”


아무도 없는 데다가 구름이 달빛을 가리고 있어 상문의 모습마저도 흐릿하건만 도대체 뭘 하려고 자신을 부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습관이지요. 그리고 함께 여섯 시진을 걸으셔야 할 텐데 몸을 제대로 풀어두지 않으면 다치실 겁니다.”


자신이 알기로 여기에서 출발해 절강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스무날은 걸어야 했다. 그런데 하루에 여섯 시진씩 걷는다는 말에 눈앞이 아득해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칠 수도 있다는 말에 아득해진 눈앞이 핑 돌았다.


“저녁에는 다른 분들 앞에서 가르쳐드리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출발하기 전에 반 시진씩 더 가르쳐드리고자 했습니다.”


무인이라면 상문에게 읍이라도 했겠지만, 동네 왈패에 불과한 장도풍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대답을 하고 반 각 정도 더 몸을 움직인 상문은 차분하게 숨을 내뱉고선 막대기를 하나 들고 왔다.


“제가 계를 받은 승려인 만큼 계도 외의 날붙이를 쓰지 못해 막대기로 대신 설명하는 점을 양해해주십시오.”


자신의 검과 비슷한 길이의 나무막대기를 들고 자신과 같은 자세를 잡는 상문을 보는 장도평은 기분이 미묘했다.


우선 저 덩치로 나무막대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이상했지만 몇 년이나 무기를 써왔던 자신보다 훨씬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문은 장도평의 감정보다는 가르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기에 천천히 움직이다가 검을 빠르게 내질렀다.


왼쪽 목의 천중, 몸 중앙의 거궐 그리고 안쪽 허벅지의 혈해를 정확히 찌르는 모습은 자신보다 빠르면서도 아주 작은 흔들림조차 없었기에 과연 천하제일이라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상하좌우를 골고루 노리는 멋진 일격이면서도 시주님께서 쓰시는 무기와 어울리는 초식입니다. 게다가 초식을 사용하기 전에 자세도 훌륭했습니다.”


중심을 낮추면서도 발꿈치를 들어 상대의 공격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왼손으로는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하고 유사시에는 방어할 수 있도록 앞으로 내민 자세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자신의 자세를 상문이 칭찬해주자 뿌듯함을 숨기지 못하고 어깨가 올라갔다.


“하지만 정작 자세를 갖춘 시주님께서 수련이 부족하십니다.”


왈패와 수련은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상문에게 칭찬을 들었던 만큼 들떠있던 마음이 수련이라는 말을 듣자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야 말았다.


하지만 상문은 수련이 부족해도 괜찮다는 것처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세를 더욱더 낮췄다.


커다란 상문이 자신이 자세를 갖췄을 때보다 낮아지자 저 자세로 움직일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상문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조금 전보다 민첩하고 경쾌한 느낌이 들었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겐 내공이 없는 데다가 제대로 무공을 익힌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스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움직일 수는 없을 텐데요.”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에서 왕도를 걸으며 자란 상문과 뒷골목에서 오물을 뒤집어쓰며 자란 자신이 같을 리가 없다고 여겼기에 목소리도 퉁명스러워졌다.


“나무아미타불. 저는 지금까지 내공을 쓰지도 않았고 힘이라고 부를 만큼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춰준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오만하게 들리는 말이었기에 장도풍의 목소리는 한층 더 퉁명스러워졌다.


“그럼 스님께서 전력을 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십쇼. 저는 태생이 못나서 직접 본 것만 믿습니다.”


그 말에 상문은 나뭇가지를 가볍게 휘두르더니 다시 자세를 잡고 조금 전과 똑같이 삼연격을 쏟아냈다.


펑!


움직이는 낌새도 없건만 앞으로 쏘아지더니 순식간에 팔이 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소리는 하나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


“역시 나뭇가지로는 부족하군요. 이게 내공을 쓰지 않은 저의 전력입니다.”


경을 사용해 힘껏 내지른 삼연격을 버티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바스러지는 모습을 본 장도풍은 자신이 헛것을 본 게 아닌지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하지만 상문의 손에 들려있던 나뭇가지는 껍질만 남긴 채 사라졌었다.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기에 상문의 족적을 살피다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짜 내공을 안 쓰신 게 맞습니까?”


땅이 깊게 파이다 못해 상문이 서 있던 자리가 뒤로 밀려난 것처럼 엄청난 족적에 장도풍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사람이 나랑 같은 인간이 맞는 건가? 덩치도 그렇고 얼굴도 그렇고 야차가 땅에 내려온 게 아닌가. 진짜 제대로 걸렸구나. 운도 지지리 없지.’


장도풍의 눈에는 상문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문은 고개를 끄덕이고선 장도풍의 앞으로 가서 자세를 낮추더니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저는 소림에서 무공만 갈고 닦았기에 삶을 신경 쓰셔야 했던 장 시주님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연이 닿았으니 최선을 다하시는 것도 좋겠죠.”


공천의 조언으로 장도풍을 가르치게 되었지만, 상문은 대충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소림의 무공을 가르칠 수는 없기에 기초적인 외공을 가르칠 생각이었으며, 왈패인 그가 갱생할 수 있도록 불법에 대한 강연 역시 힘쓸 생각이었다.


그런 상문의 생각과는 반대로 상문에게 목숨을 저당 잡혔다고 여긴 장도풍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까보다 꼼꼼하게 몸을 풀었다.


“그럼 제가 뭘 하면 됩니까.”


그러자 상문은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선 곧장 마보자세를 취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어려운 수련을 시키지 않을 것이라고는 여겼지만 갑자기 마보자세라니 기운이 쭉 빠졌다. 하지만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장도풍은 상문을 따라 마보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하실 생각이시지? 설마 반 시진을 꼬박하는 건가.’


장도풍의 생각대로 상문은 반 시진 동안 미동도 없이 마보자세를 취했다.


장도풍과는 다르게 힘을 주고 풀어내며 전신의 근육을 모조리 쓰는 방식이기에 상문도 땀을 흘렸지만,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핑 도는 장도풍은 상문에게 시선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결국 장도풍은 한 식경을 채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지만, 상문은 반 시진을 꼬박 채우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무아미타불. 일 반 각을 버티셨군요. 땀을 많이 흘리셨으니 몸을 씻읍시다.”


상문의 말에 서 있기도 힘든 다리를 움직여 몸을 씻다가도 문득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이렇게 다리를 혹사하고 여섯 시진을 걸어야 한다니 정말이지 지독하구나.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어.’


하지만 육체적인 고통은 시작에 불과했다.


신세진 속가문파에 인사를 한 상문은 걷기 시작했다. 그런 상문을 좇는 무리 역시 익숙한 것처럼 상문의 뒤를 따랐지만, 어제까지 조용했던 것과는 다르게 상문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어제 살인을 하셨다고 고백하셨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석가세존께서 아흔아홉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자인 앙굴마라를 만나셨습니다.”


상문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법륜과 비슷한 말투로 계속해서 법을 설파했고, 장도풍은 다리가 아픈 와중에도 쉴 새 없이 귀를 때려대는 상문의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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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218화 +2 21.03.29 1,836 33 12쪽
217 217화 +4 21.03.26 1,870 3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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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15화 +2 21.03.24 1,876 33 13쪽
214 214화 +2 21.03.23 1,809 35 13쪽
213 213화 +2 21.03.22 1,829 27 13쪽
212 212화 +2 21.03.19 1,926 3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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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208화 +4 21.03.15 2,019 34 13쪽
207 207화 +4 21.03.12 1,928 4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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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204화 +2 21.03.09 1,882 3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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