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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역사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완결

알신더
그림/삽화
경배
작품등록일 :
2019.07.16 21:08
최근연재일 :
2021.05.21 20:00
연재수 :
2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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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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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61,292

작성
21.03.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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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
추천
34
글자
12쪽

212화

DUMMY

“아이고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장도풍과 고우정 그리고 구촌 낭인대와 함께 수련하던 상문은 새벽부터 들리는 구슬픈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구슬펐다. 그러면서도 깊은 한이 서린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묘한 기운이 있기에 상문은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수상하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불제자 실격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기에 상문은 천천히 마보자세를 풀고서는 구촌 낭인대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저앉은 장도풍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객잔 밖에 억울한 분이 계신 것 같습니다. 잠시 나가서 이야기를 들어볼 테니 저분들께서 일어나시면 말씀을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첫날보다 반 각 정도 더 버티게 된 장도풍이지만 여전히 반 시진 동안 마보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사실 아흐레 만에 극적으로 발전할 만큼 일정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간 하지 않던 수련과 극한에 내몰릴 정도의 여정을 이어가는 동안 장도풍의 하체가 튼튼해진 것은 맞지만 첫날보다 반 각이나 더 버틸 수 있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겨우 길이 열렸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지. 조금만 더 버티자.’


다리에 힘이 풀리면 곧장 무너졌던 장도풍은 첫날 여섯 시진 동안 꼬박 걷는 상문을 보며 앞으로 이런 일정이 계속해서 이어질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정을 늦추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쓰러지면 억지로 일으켜 세울 것처럼 느껴졌기에 오기가 생겨 상문을 따랐다.


장도풍의 몸을 움직이게 하던 오기는 상문의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변했고, 덕분에 반 각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신체의 한계는 정신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다가도 상문이 잠시 나가겠다고 하자 상문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기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선 시간까지 돌아오면 될 테니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나갈 뿐 위험한 일은 아니라고 여겼기에 상문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나가는 것은 역시 보기에 좋지 않기에 간단하게 멱을 감고서 문을 열었다.


“아이고 스님. 억울합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제발 불쌍한 중생을 내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좀 내려주십시오.”


문을 열자마자 누더기를 입은 중년 남성은 그대로 기어 오더니 상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억울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흐엉어엉 감...감사합... 흐엉.”


무엇이 억울한지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모습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졌기에 상문은 그의 등을 다독여줬지만 장도풍은 눈을 예리하게 빛냈다.


‘구 할 구 푼의 확률로 사기꾼이네.’


왈패란 덤벼도 될 상대와 덤비면 안 될 상대를 잘 구분해야만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장도풍은 그의 말투나 목소리보다 차림새를 먼저 확인했다.


꼬질꼬질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낡고 해진 옷과 풀어헤친 머리 그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야윈 얼굴과 말라붙은 입술은 너무나도 가여웠지만 장도풍이 그를 사기꾼이라고 단정 지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손톱이 너무 깨끗해.’


저 남자처럼 야위려면 그 전에 발버둥이라도 치는 것이 옳았다. 막일을 하지 못할 정도라면 나무껍질이라도 긁어서 먹을 것을 마련해야 했건만 손톱이 너무나도 깨끗했다.


물론 그 부분까지 신경 쓴 것인지 흙이 묻어있긴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하지만 상문이 너무나도 부드럽게 그의 등을 다독여주고 있었기에 장도풍은 조심스럽게 상문에게 진실을 알려줄 틈을 엿봤다.


한참이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어대던 남자가 혼절하듯 그대로 쓰러졌다. 쓰러지고서도 바짓가랑이를 꼭 쥐고 있는 그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상문은 조심스럽게 그를 안아 들었다.


하지만 그가 기절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장도풍은 상문을 만류하려 했지만, 상문은 조용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많이 피곤하셨나 봅니다. 우선 눕혀드려야겠으니 안에 자리를 봐주시겠습니까?”


고개를 젓는 모습이 상문도 알고 있다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를 내치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은 상문의 말에 따라 객잔으로 들어가 눕힐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수련을 마친 고우정은 상문과 장도평이 보이지 않자 의아한지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다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장도평을 보고선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새벽부터 무슨 일인가?”


고우정이 조용히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자 살짝 놀라긴 했지만, 어제처럼 서늘한 감촉이 들지 않았기에 장도풍은 솔직하게 방금 벌어진 일에 관해 설명했다.


“너무 착하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장도풍은 자신이 이런 말을 하리라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상문을 걱정했다. 게다가 고우정도 변해버린 장도풍의 모습보다는 상문이 걱정되었기에 작게 침음을 흘렸다.


“흠······.”


고우정은 그 사람이 사기꾼이라면 상문에게 말할 내용을 들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장도풍의 뒷조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사기꾼의 뒤를 캐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나와 몇몇은 그자의 뒷조사를 해보겠네. 자네는 스님의 곁에서 그자가 허튼짓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게.”


만약 일이 잘못되어 사기꾼이 상문을 이용한다고 할지언정 일개 왈패인 자신이 뒤집어쓰면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자 장도풍은 일개 왈패인 자신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겼기에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어제 자신이 무섭게 굴지 않았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을 한 고우정은 장도풍의 어깨를 두드려주고선 몇 명을 추려 객잔을 나섰다.


자신을 믿어준 상문에게 적어도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객잔으로 돌아간 장도풍은 허겁지겁 소면을 먹고 있는 사기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 스님에게 사기를 친다는 건가. 나도 배짱으론 꿀리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한 수 접어야겠네.’


상문의 앞이라 참으려고 했지만, 욕이 안 나온 것만으로도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상문은 그런 장도풍을 보고선 미소를 지었다.


“나무아미타불. 오셨군요. 마침 이분께서도 깨어나셨습니다. 식사를 마치시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상문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중년 남성은 국수 그릇에 머리를 박고 면을 흡입하더니 국물 한 방울까지 전부 마시고 나서야 그릇을 내려놨다.


“며칠 만에 먹은 음식이라 정신을 놔버리고 먹었군요. 감사합니다. 스님.”


상문에게 고개를 깊숙하게 숙인 그는 때가 무르익었다고 여겼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강 건너 무호에서 작은 가게를 하는 정용이라고 합니다. 딸을 시집보내고 얼굴이라도 자주 보고자 무호에 정착해서 가게를 냈습니다만 쉽지 않더군요. 그래도 장사 자체가 힘든 것은 아니었기에 나름대로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림과 엮이고 나서부터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멈춘 정용은 억울함을 참을 수 없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 억울함을 호소할 때보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이런 모습에 장도풍마저 정말 억울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호소력이 짙었다.


“처음엔 단영파에서 접근하더군요. 자릿세를 내면 다른 쪽에서 건드리지 못하게 해주겠다더군요. 전에 있던 곳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돈을 줬습니다.”


사파나 흑도패의 구역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장도풍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대정문이라는 곳에서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가게가 자리 잡았기에 인사차 들렀다며 단영파와 같은 소리를 하더군요. 제가 단영파에 보호비를 냈다는 소리를 하자 대노하더니 물건을 부수기 시작했습니다.”


장도풍은 뒷이야기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있었기에 불쌍하다고 여기던 생각을 순식간에 거둘 수 있었다.


‘양쪽 모두 보호비를 뜯기다가 가게는 망해버렸고, 가게를 빼앗고서도 서로 돈을 더 뜯어가겠다고 딸을 들먹이며 협박했겠지.’


정말로 한 치의 예상도 다르지 않게 이야기가 진행되자 장도풍은 저도 모르게 코웃음을 칠 뻔했다. 하지만 진부한 이야기가 먹힌 것인지 상문은 눈을 지그시 감고 나직하게 불호를 욀 뿐이었다.


“나무아미타불.”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가게를 빼앗긴 것은 괜찮습니다. 다만 하나뿐인 제 딸을 다시 들먹이지 못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상문이 불호를 외자 정용은 더욱더 구슬프게 애원했다.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로 애원하는 데다가 강 건너에 있는 곳이기에 상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상문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정용은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상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게다가 긴장이 풀린 것인지 그대로 혼절해버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애처롭고 가여웠지만 장도풍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사기를 보는 것도 이젠 지겹네. 스님께 말씀드려야겠어.’


더는 두고 볼 수 없기에 상문이 그를 침실에 눕혀주고 내려오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님. 저 정용이라는 자는 분명히 사기꾼일 것입니다.”


상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장도풍은 상문이 의외로 순진하다고 생각하며 믿지 않는 상문에게 들이밀 증거를 준비했지만 이어지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한 눈으로 상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무아미타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저자가 떠들도록 놔두신 겁니까?”


왜 내쫓지 않았냐는 말이었기에 상문은 엷게 미소를 지었다.


“제게 태사백조가 되시는 분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무림인이라면 상문이 말한 태사백조가 현사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겠지만 장도풍은 권성 현사와 상문의 태사백조를 쉽게 연결할 수 없었기에 다른 의미로 놀랐다.


‘태사백조라면 얼마나 위인 거지?’


태사백조라는 말에 잠시 멍해졌던 장도풍은 손을 꼽으며 계산을 시작했다. 속세로 따지면 증조할아버지뻘이기에 잠시 아득해졌지만, 무인이라면 장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자 추태를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조금 괴팍하신 분이라 말이 험하지만 고려해서 들어주십시오.”


상문은 작게 헛기침을 하고선 최대한 현사와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니들이 무림에 나가면 별 지랄을 다 겪을 게야. 그럼 어쩌냐. 일단 당해야지. 알지도 못하는 수법인데 어쩌겠어. 대신 철저하게 갚아주면 된다. 아주 조져버리는 거야. 다시는 널 갖고 무슨 장난을 칠 수 없도록. 알겠냐?”


장도풍은 놀랐다.


상문의 태사백조라면 마찬가지로 스님일 텐데 저렇게 과격한 말을 했다는 것에 우선 놀랐고, 지금까지 차분하고 담담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상문이 자신 앞에서 처음으로 험한 말을 썼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에 또 한 번 놀랐다.


하지만 너무 놀란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인 실례인 데다가 나름대로 흑도의 멋이 살아있는 말이었기에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멋진 분이시군요.”


멋진 사람이라는 말에 동의하기 힘들지만, 문파의 어른을 욕할 수 없기에 상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기회가 조금은 일찍 찾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라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도와주시겠습니까?”


상문이 도와달라는 말에 장도풍은 순간적으로 기쁨을 참지 못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서는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고우정... 대협께서 새벽에 있던 이야기를 들으시고선 한발 먼저 나서셨습니다. 적어도 배가 출발할 때까지 오실 테니 기다리셨다가 말씀을 나누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대협이라는 말이 익숙지 않았기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장도풍이 상문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호쾌했다. 그렇기에 상문은 든든하다는 말 대신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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