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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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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최근연재일 :
2024.05.06 12: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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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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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내가 게임이란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집이 가난했기에 사촌 형이 버리려던 컴퓨터를 어머니가 받아오셨을 때부터였다.


인터넷 선도 연결되어있지 않은 깡통 컴퓨터였지만, 나는 매일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인터넷도 연결되어있지 않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지뢰 찾기나 핀볼 같은 게임이 아니다.


사촌 형이 어둠의 경로로 깔아놓았던 고전 게임.


[블러드 오브 더 킹덤 1.12]


고전 게임답게 이름에서부터 촌티가 풀풀 풍기는 이 게임은 2D 도트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RPG 게임이다.

설치만 되어 있다면 인터넷이 없어도 플레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의 유무조차 모르던 10살짜리 꼬맹이에게 엄청난 충격을 선사해 주었다.

뭐가 됐든 첫 경험이란 그런 거니까.

처음 사귄 여자친구를 평생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블러드 오브 더 킹덤]은 오로지 영어로만 이루어진 게임이었는데, 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10살짜리가 생전 처음 보는 영어를 어찌 알겠는가.

그냥 막 누르는 거지.


더군다나 난이도는 튜토리얼에서 죽을 정도로 높은데, 가장 중요한 세이브 기능이 없었다.

그 말인즉슨 캐릭터가 죽거나 게임을 끄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뜻.

그래서 나는 게임을 한번 켜면 최소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동안 컴퓨터를 끄지 않은 적도 있었다.


물론 컴퓨터가 제멋대로 꺼지거나 모니터만 꺼놓은 걸 발견한 어머니가 종료 버튼을 눌렀을 땐 어쩔 수 없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악착같이 처음부터 다시 캐릭터를 만들어 키웠다.


고전 게임에다가 RPG에 세이브 기능도 없는 망겜을 왜 그렇게 미친 듯이 했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야 간단하다.

그땐 어려서 다른 게임이 뭐가 있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막혔던 부분을 몇 날 며칠 고생해서 뚫어내는 쾌감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요즘은 도파민 중독이라고 하던데.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 도파민의 노예였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고.

게임 내 영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될 무렵, 나는 모든 종족으로 스피드런 엔딩을 볼 수 있을 만큼 고인물이 되어 있었다.


****


30살이 된 지금.

번듯한 직장에 비록 월세지만 독립까지 한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그야 우연히 회사 점심시간에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와중 엄청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블러드 오브 더 킹덤 2.0]


출시된 지 무려 20년이 넘은 게임이 업데이트를 했다고?


처음엔 피곤해서 잘못 본 줄 알았다.

그야 처음 복돌이로 시작한 1.12 버전에서 바뀐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삑삑삑삑.


현관문의 도어락을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을 눌렀다.


우우웅-


이윽고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고 어두컴컴한 방안이 환하게 밝아진다.


“미쳤다. 미쳤어.”


나는 한껏 상기된 얼굴로 인터넷 창을 열었다.

여태껏 시간이 꽤 흘렀지만 [블러드 오브 더 킹덤]을 잊고 살았던 건 아니었다.

대학생 때 정품으로 게임을 사 설치했던 컴퓨터가 고장 나면서 하고 싶어도 못 했을 뿐.

이미 모든 게임 구매 대행 사이트에서도 사라져 몇 장의 캡처 사진 빼고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던 게임이 아니었던가.


타닥. 타닥.


스마트폰에 저장해 둔 주소를 검색창에 입력하자 곧바로 화면이 바뀐다.


[Blood of the Kingdom 2.0]


[Game Download.]


다운로드 버튼 뒤로 게임 특유의 도트 그래픽으로 만든 도시 전체 배경이 보인다.

아쉬운 점을 하나 꼽자면······.

새로운 버전의 업데이트가 오랜만에 나왔음에도 아직 한국어가 없다는 정도?


“뭐야. 무료네?”


다운로드 버튼을 누르자 별다른 결제 창 없이 곧바로 다운로드 창이 모니터 화면 중앙에 떠올랐다.

하긴 나온 지 몇 년이 된 게임인데.

그 유명한 스타크래프트도 지금은 무료니까.


[36%······.]


[75%······.]


[80%······.]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퍼센트 게이지를 보고 있자니 아직 게임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잊고 있었던 모든 지식과 공략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이런걸 머슬 메모리라고 하는 건가.


“······근데 패치 내용이 달랑 한 줄이라고?”


다운로드가 끝나길 기다리던 중,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patch’라고 적힌 문구를 발견하고 클릭했다.


영어로 적혀있는 짧은 한 문장.

대충 해석해 보자면 이런 뜻이었다.


-블러드 오브 더 킹덤 2.0은 1.12버전 세계관에서 50년이 지난 이야기로 진행됩니다.


혹시나 해서 스크롤을 아래로 내려봤지만, 저 한 줄을 제외하고 다른 패치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은 뭐가 추가되고 바뀌었는지 알려주는 게 기본일 텐데.

뭐 2.0이니까 분명 바뀌긴 했을 것이다.

무려 50년 뒤 이야기라니까.

업데이트하면서 고질적인 버그도 고쳤을 테고 어색했던 지문과 대사들도 새로 만들었겠지.


“새로운 종족도 추가했으려나?”


[블러드 오브 더 킹덤]은 인간을 포함해 다양한 이 종족들을 캐릭터로 선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인간. 드워프. 바바리안. 수인. 용인. 엘프가 있다.

마족은 선택조차 할 수 없으니 제외하고······.


어쨌든 저마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역시나 가장 사기 종족은 인간 마법사와 용족이다.

용족은 높은 저항 수치에 기본 스텟도 빵빵하고 초반에 주는 용족 전용 패시브가 말이 안 될 정도로 사기였다.

마법사 역시 온갖 주문 스킬과 디버프 스킬을 배운 극 후반부에는 용족을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음. 그래도 용족은 너무 사기라 노잼이란 말이지.”


잠깐 무슨 캐릭터를 할지 고민하던 나는 용족은 패스하기로 했다.

이른바 ‘왕귀형’ 직업인 마법사는 초반엔 느리고 답답해서 성장하는 맛이 나지만 용족은 시작부터 개사기니까.

자고로 도파민의 노예인 나로서 용족은 자격 미달이었다.


“그럼······.”


고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운로드가 끝난 게임이 자동으로 실행되었다.


빰빠빠밤빠밤~


백그라운드로 깔리는 익숙한 BGM이 재생되고 2.0 버전답게 더욱 깔끔해진 도트 그래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세이브/로드]가 생겼다는 것이 내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마치 어린 시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이거지.”


이제 옛날처럼 컴퓨터를 켜놓지 않아도 된다.

게임을 꺼도 캐릭터가 죽지만 않는다면 쭉 이어서 할 수 있다.


“이 기본적인 걸 이제야 해주네.”


이거 하나 추가해주는 게 20년이 걸릴 일인가?


삑.


나는 서둘러 캐릭터 선택을 눌렀다.


“뭐야 이건?”


일렬로 나열된 각 캐릭터의 초상화 맨 끄트머리 부분에 처음 보는 칸이 추가되어 있었다.

2.0이라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된 줄 알았는데, 막상 그런 것도 아니었다.


[Random.]


“랜덤이라······.”


선택 장애가 있는 유저를 위한 게임사의 배려일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마우스 포인터를 [Random]에 가져갔다.


“일단 오랜만에 손이라도 풀 겸 아무거나 걸리는 거 키워보지 뭐.”


내가 누군가.

블러드 오브 더 킹덤의 고인물이자 모든 공략과 숨겨진 히든피스를 달달 외우고 있는 유저였다.

비록 시간이 꽤 흘렀다고 할지언정 공략 없이 대가리 박으면서 피부로 배운 지식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안 하려고 마음먹었던 용족이 걸리면 어떡할 거냐고?

걱정할 필요 없다. 용족은 캐릭터 선택 창에서 특수한 커맨드를 입력해야 선택할 수 있는 히든 종족이거든.

지금 선택 창에 용족 초상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메인 화면에서 위, 아래, 아래, 좌, 우, 우, 컨트롤 1234였지 아마?


“새로운 종족을 랜덤에 숨겨뒀을 수도 있고.”


용족을 선택하려면 커맨드를 입력해야 하는 것처럼 제작자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히든 피스를 게임 곳곳에 숨겨놓았다.

그것처럼 분명 [Random] 속에 낮은 확률로 새로운 종족을 넣어 놨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저런 걸 만들 필요가 없잖아?


딸깍.


나는 주저 없이 마우스 좌클릭 버튼을 눌렀다.


띠리리리리-


마치 도박장의 룰렛처럼 돌아가는 캐릭터들의 초상화.

점점 그 속도가 줄어들더니 익숙한 초상화가 화면 절반을 채웠다.


떡 벌어진 어깨와 각진 얼굴.

험상궂은 인상에 어울리는 붉은 눈동자.

RPG 게임에서 빠져서는 안 될 국밥 같은 캐릭터.


“······바바리안?”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에 나는 실망 섞인 이름을 내뱉었다.

역시 한방에 히든 캐릭터가 뜨는 건 무리였나?

그게 아니라면 그냥 진짜 랜덤인가?

잠깐만······.


“바바리안 앞에 뭐라고 적혀있는 거야?”


눈을 얇게 뜨고 모니터 앞으로 얼굴을 쭉 내밀어 중얼거리는 순간.


“메이-”


번쩍!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모니터에서 새하얀 빛이 번쩍하고 폭발했다.


“아악! 내 눈!”


섬광은 이내 어두컴컴한 방 전체를 집어삼켰고 빛무리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


텅 빈 방.


옅은 온기만 남은 의자 앞으로 외로이 방을 비추던 모니터 액정 속에 단 세 문장이 적혀있다.


[Random character.]


[Mage barbarian.]


[Save complete.]


나는 게임 속 마법사 바바리안이 되었다.


작가의말

비록 부족하더라도 재밌게 써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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