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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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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최근연재일 :
20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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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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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UMMY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딱딱한 돌바닥이 아닌 푹신한 흙과 잡초들이 몸에 짓눌려 사방으로 흩날린다.


“따라와라.”


벌떡 일어나 한 발치 앞에 서서 날 바라보던 막심을 지나쳐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쫓아오진 않는 것 같군.”


혹시 몰라 차원 문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지만, 그들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 우리를 쫓아오기보다 마력석을 챙기고 망자의 굴 보스를 잡으려는 생각이겠지.

사실 전 재산은 배낭에 들어있었으니.


“내 마력석이······.”


막심은 허탈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고개를 숙였다.


“마력석은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목숨은 아니지. 만약 그리올이 배낭을 확인하지 않았더라면 녀석들은 우릴 끝까지 쫓아왔을 거다.”


“그렇···지?”


‘그래도 속이 쓰리긴 하네.’


비록 배낭에 든 마력석이 큰돈은 아닐지언정 생판 모르는 남에게 삥 뜯기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으니 말이다.

나 역시 일진이라 불리는 형들에게 새로 산 운동화까지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때 얼마나 베개에 눈물을 적셨-


“카르잔.”


“왜 그러지?”


“······속여서 미안.”


얘가 뭘 미안하단 걸까.

잠시 생각하다가 잊고 있었던 물약이 떠올랐다.


“괜찮다. 어차피 난 물약은 필요 없으니까. 애초에 네 것이었는데 왜 사과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래도······.”


“그만하고 가자. 일단 여기서 멀어진다.”


나는 막심의 말을 끊고 망자의 굴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고작 물약 한 병으로 시무룩해져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이 상황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


우리는 그 이후로 주변을 쉼 없이 돌아다니며 보이는 마수를 족족 사냥하고 마력석을 다시 배낭에 차곡차곡 모으기 시작했다.

물론 바닥에 떨어진 마력석은 전부 막심이 배낭에 주워 담았다.

텅 빈 배낭이 조금씩 채워져 갈수록 막심의 상태도 괜찮아졌다.


그 과정에서 막심의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면 벌레 나무가 나와.”


“벌레 나무?”


“응. 엄청 커다란 나무가 모여 있는데, 그 나무에 붙어서 사는 카쉬락 무리가 있거든. 수가 많아서 나 같은 모험가가 가까이 다가갔다간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을걸?”


“카쉬락이라······.”


카쉬락이 모여있는 나무라면 잘 알고 있다.

멋도 모르고 나무에 다가서는 순간 머리 위로 우수수 떨어져 순식간에 포위돼 도망치지도 못하고 싸워야 했으니까.


“그렇다면 조심해야겠군.”


“저기는 이끼 계곡이라고 이끼 슬라임이라는 마수가 살고 있어. 미끌미끌하고 끈적해서 기분 나쁜 놈들이야.”


“어? 야크다! 뿔! 뿔을 노려! 죽이기 전에 뿔을 부러트리면 시체가 사라져도 일정 확률로 안 사라지고 남아. 잡화점에서 꽤 가격을 쳐주니까 가져가자.”


“목마르지? 나뭇가지를 부러트려 볼래? 이 나무 특징이 수분을 잔뜩 저장하고 있거든. 아.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배탈 나니까.”


막심은 마치 해외 여행사의 가이드처럼 앞장서서 하나하나씩 전부 설명해주었다.

확실히 몇 년 동안 이곳을 돌아다녀서 그런지 전투만 빼면 밀림에서의 막심은 전문가와 다름이 없었다.

그 덕분에 자잘한 팁과 정보를 쉽게 얻었다.

뭐. 대부분은 아는 거였지만 말이다.


“막심.”


“어?”


“너는 길잡이도 아닌데 어떻게 뭐가 있는지 알고 가는 거지?”


막심 뒤를 따라가던 나는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밀림은 다른 지역에 비해 꽤 넓은 편에 속한다.

거기다 잘 다듬어진 길도 없고 주변은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한 땅에서 막심은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발길이 닿는 대로 막 가는 줄 알았는데, 막상 보고 있으면 그건 아니란 말이지.

하지만 막심이 정말 길잡이일 리는 없다.

길잡이는 오로지 수인족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

태생적으로 수인이 가진-


“들켰네··· 사실 나 길잡이야.”


“뭐?”


얘는 또 무슨 개소리를 정성껏 하려는 거지?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자 막심은 왼쪽 눈을 찡긋하고 감았다가 떴다.


“농담.”


“농담도 참 더럽게 재미없군.”


“흠흠. 속을 줄 알았는데, 네 눈을 보니까 괜히 했나 싶더라고.”


“애초에 길잡이는 수인족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음··· 그래? 나는 3년 동안 돌아다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눈에 익던데?”


“주변에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 풀이랑 나무밖에 없는데 뭐가 눈에 익었다는 거지?”


감탄 섞인 내 물음에 막심은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 쉽게 말하자면 나만의 루트랄까?”


“루트?”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걸어온 곳을 가리킨 막심이 이어 말했다.


“여기 내가 매번 바깥세상으로 나올 때마다 지나다니는 곳이야. 이상하게 이쪽으로 오면 모험가도 별로 없고 마주치는 마수도 전부 약한 개체밖에 없거든.”


“내 눈에는 그냥 다 똑같이 보이는데.”


“에헤이. 처음이라 그렇지 맨날 의식하고 보면 여기구나 한다니까? 자! 이 나무. 다른 나무랑 다르게 살짝 휘어져 있지? 그리고 저기 언덕-”


“됐다. 내가 괜한 말을 꺼냈군. 어서 가기나 하자.”


나는 주둥이에 시동이 걸린 막심의 등을 떠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커다란 돌덩이를 오른쪽으로 빙 둘러서 지나가면······.”


하지만 그 후로부터 막심은 해가 지고 쉴 곳을 찾을 때까지 자신의 ‘루트’를 굳이 알려주었다.


“여긴 내가 1 일차 때마다 와서 자는 곳이거든? 어때? 양옆에 돌이 있어서 새벽 찬 바람도 막아주고 모닥불도 오래 가서 따듯해. 바닥은 흙이 푹신해서-”


“그만.”


돌에 등을 기대어 앉은 나는 질린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쉬지도 않고 계속 떠들 수 있지?”


“아 미안. 미안. 동료랑 같이 바깥세상으로 온 게 3년 만에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너무 신나서···.”


“······네가 모닥불을 피우겠다고 한 지 30분은 지난 거 같은데.”


“이, 이제 하려고 했지.”


배낭 앞부분에 따로 조그맣게 만들어진 끈을 풀자 살짝 열린 공간 사이로 길쭉한 흑색 돌덩이 두 개가 막심의 손에 들려 나왔다.

막심은 내가 가져온 장작에 나뭇잎을 밑에 깔아 흑색 돌덩이를 위아래로 부딪히더니 순식간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게임에서 야영할 때 쓰던 부싯돌을 이렇게 실제로 보니까 뭔가 신기하네.’


지구에서 주로 사용하는 캠핑용 부싯돌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성능이었다.


타탁. 탁. 타탁.


타오르는 모닥불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내게 막심이 육포를 슬며시 건넸다.


“배고프지?”


“남아 있었나?”


“어, 음. 주머니에 몇 개 있더라.”


“고맙다.”


이미 배는 한참 전부터 꼬르륵거리고 있었기에 마다치 않고 육포를 받아 입에 가져댔다.


딱딱하고 질기고 비린내가 심하지만, 하루를 꼬박 굶어서 그런지 입안에서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맛도 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계속 씹다 보니 조금 부드러워져서 그런가.


“카르잔.”


모닥불 건너편에 앉아 육포를 껌처럼 씹고 있던 막심이 내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야?”


“꿈?”


갑자기 뜬금없이 꿈이라니.

무슨 학교 선생님 같은 질문이지?

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멀쩡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다.”


“집이라······.”


그렇게 시끄럽던 녀석이 웬일로 입을 꾹 다물고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길래 어색해져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물었다.


“너도 꿈이 있나?


“나? 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있던 막심은 옆에 놓인 배낭을 힐끔 쳐다보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돈 많이 버는 거.”


“그럼 답은 정해져 있군.”


“응?”


“모험가가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다. 강해지는 것. 그거 말고 뭐가 있지?”


“하긴 네 말도 맞네.”


“모험가의 등급이 오를수록 돈과 명예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다. 이 세계는 그런 곳이니까. 그러니 너도 이번에 돌아가면 승급 신청부터 해라. 3년 동안 여기서 마수를 사냥했으니 9등급 승급에 필요한 경험치는 이미 진작 넘었을 거다.”


막심은 씩 웃으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야겠지······응? 자려고?”


나는 그런 막심을 뒤로하고 바닥에 벌러덩 누워 눈을 감았다.

밤이라서 한껏 센치해진 건 알겠다 만 거기에 어울려 줄 만큼 감성적인 바바리안이 아니라서 말이지.


“너도 자라. 내일은 더 바쁠 테니까.”


그렇게 바깥세상에서의 첫날밤은 비교적 순탄하게 지나갔다.


푸드덕.


“······으음.”


새의 날갯짓 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이 힘겹게 떠졌다.

그냥 눈을 감았다가 뜬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라니.

바바리안이 된 이후로 머리를 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잠이 든다.

지구에서는 불면증이 심해 고생이었는데. 이건 오히려 좋은 건가.


벌떡 일어나 재가 돼버린 모닥불을 발로 비벼 흙을 덮고 밤사이 굳은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있자니 막심이 잠에서 깨어났다.

쟤는 잘 때도 배낭을 껴안고 자네.


“일어났나? 준비해라.”


밤새 껴안고 있던 배낭을 등에 메고 끈을 꽉 조여 제자리에서 콩콩 뛴 막심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비됐어.”


“그럼 가 볼까.”


어제와 같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2일 차가 시작되었다.


****


“카르잔. 저기.”


근처에 마수가 모여 있다는 곳을 안다는 막심을 따라 도착한 어느 계곡 앞.

꾸불꾸불 이어진 계곡의 끄트머리에서는 커다란 폭포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수풀 속에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던 막심이 나무 뒤에 숨어있는 내게 턱짓했다.

그 방향을 따라 나도 머리를 내밀자 그곳에는 암컷 파이로스 무리가 모여 목을 축이고 있었다.


‘다행히 새끼는 안 보이는군.’


사족 보행에 코뿔소처럼 이마 중앙으로 뿔이 솟아나 있고 목 주변에는 공작새와 사자의 갈기를 섞은 화려한 털이 덮여있는 9등급 마수.


“······괜찮겠어? 수가 좀 많은데.”


“상관없다.”


나는 허리춤의 요괴를 뽑아 수풀을 해치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푸르르.”


옹기종기 모여 물을 마시던 파이로스 무리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놈들의 수는 총 10마리.

암컷 파이로스의 갈기는 치장용으로 쓰기 때문에 가져가서 팔면 나름 짭짤하다.


쿵쿵쿵!


앞으로 뻗는 다리에 힘을 더욱 실어 속도를 높인다.

조금만이라도 어물쩍대다간 정신을 차린 놈들이 도망갈 수 있다.

암컷 파이로스는 비 선공 몬스터에 겁이 많아 모험가를 만나면 공격하기보다 도망을 친다.

딱 하나 예외가 있다면 새끼가 있을 때는 사납게 돌변하여 공격하는 것뿐.

아까 새끼가 없는 걸 확인했으니 지금은 상관없는 이야기다.


“푸르르!”


내가 달려가자 위험을 느낀 파이로스들이 갈기를 펄럭이며 몸을 돌린다.


부웅-


훌쩍 뛰어 가장 근처에 있는 파이로스 몸 위로 떨어진 나는 한쪽 팔로 녀석의 목을 휘감아 넘어뜨린 다음 검을 푹 찔러넣었다.


「파이로스를 처치했습니다.」


시체가 사라지기도 전에 곧장 일어나 팔을 뻗어 앞에 있는 파이로스의 갈기를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푸륵-”


「파이로스를 처치했습니다.」


힘없이 축 늘어지는 파이로스를 옆으로 내던지고 앞을 바라보자 이미 거리가 꽤 벌어진 상황이었다.


“쯧.”


나는 혀를 차면서 바닥에 떨어진 갈기를 한 움큼 쥐어 들었다.

이래서 바바리안이란.

민첩이 너무 떨어진단 말이지.

기습했음에도 고작 두 마리가 최선이라니.

뭐, 여기서 마법을 썼다면 한 마리는 더 잡았을 테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까.


“막심. 다 됐으니까 와라.”


뒤돌아 수풀 속에 머리만 내밀고 있던 막심에게 손을 들어 불렀다.


“···음?”


어째서인지 막심의 표정이 이상하다.

뭔가 다급하게 말하고 있는 거 같은데.

주변 폭포 소리 때문에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뭐라는 거냐. 빨리 와서······.”


뜬금없이 등 뒤로 그림자가 생겨 길게 늘어진다.


“푸르르륵.”


“허.”


몸을 반쯤 뒤로 돌리자 아까 본 파이로스 보다 덩치가 세 배 이상 큰 녀석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목에 화려한 갈기가 없다.

그 말인즉슨······.


「우두머리 파이러스가 분노했습니다.」


「우두머리 파이러스가 [돌진]을 준비합니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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