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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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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최근연재일 :
20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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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4.0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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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DUMMY

“도시로 가지 않겠다고?”

“그게 무슨 소리냐!”


둘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지 동시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저 희미하게 미소를 띤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설마··· 너.”


라그나는 내 의도를 알아차린 듯 커다란 눈을 끔뻑거렸다.


“그래. 녀석을 죽일 거다.”


“갑자기 왜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거냐. 그 녀석은 강하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바바리안은 원래 그런 종족이니까.

구차하게 지어낸 거짓말보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도움은 필요 없나?”


“혼자 해보겠다.”


“그렇다면.”


“뭐? 뭘 죽여? 너희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그것보다 왜 도시-”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볼가르. 어서 가자!”


라그나는 노발대발하는 볼가르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질질 끌고 갔다.


“이, 이거 놔라 라그나! 으아악! 머리! 머리 다 빠진다!”


“그럼 나중에 만나자 카르잔.”


눈치가 빠른 라그나 덕분에 볼가르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내 뉴비 바바리안 무리로 합류한 라그나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한번 까딱이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출발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바리안들은 우르르 달려 고향을 빠져나갔다.


“웁- 우읍. 읍!”


그 와중에도 볼가르는 나를 보며 데려가야 한다고 소리쳤지만 라그나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뒤로 돌아서는 순간.


“······.”


눈이 마주쳤다.

마치 날 잡아먹으려는 듯 타오르는 야수의 눈동자와.


“······족장.”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내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야 저 화난 얼굴을 보고 어느 바바리안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나.

카락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가 뚜벅뚜벅 걸어와 바짝 붙어 섰다.


“붉은 눈의 카르잔.”


그 1분의 공백이 체감상 1시간처럼 느껴졌다.


“너는 왜 아직도 내 눈앞에 있는 거냐.”


하지만 이것 또한 예상한 일이다.

카락을 설득하지 못하면 고향에 남아 있을 수 없으니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생각해 두었다.

근데 왜 이렇게 쫄리지?


“족장.”


이럴 때일수록 당당해져야 한다.

관심 병사로 낙인이 찍히는 순간 카락은 날 폐급으로 분류해버릴 게 뻔하다.

그에 따라 대우도 달라지겠지.

상남자 바바리안 종족 내에 겁쟁이 폐급은 필요가 없으니까.


“난 아직 도시로 갈 수 없다.”


“도시로··· 가지 않겠다고?”


순간 카락의 미간이 좁아지면서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말문이 턱 막혔지만, 어깨를 펴고 양손은 허리에 올린 다음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라그나가 말했다. 저 숲속에 커다란 고블린이 있다고. 난 그 고블린과 싸우고 싶다. 전사로서 강한 녀석과 싸우고 싶은 게 잘못된 건가?”


족장은 대꾸하지 않고 날 유심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층 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훈훈한 지원 부탁한다!”


“훈······ 뭐?”


“물약이든 무기든 아무거나 상관없다!”


내 대답에 카락은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지었다.


****


회심의 제안은 단 한마디로 끝이 났다.


[지원은 없다.]


하지만 족장은 날 고향 밖으로 쫓아낸다거나 훈육의 주먹을 내지르지 않았다.


“으음.”


이렇게 움막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있으니 말이다.

말이 침대지 딱딱한 나무에 약간 두꺼운 천을 덮은 것뿐이지만, 일단 계획은 성공했다.

그리고 바바리안의 집도 나름 지낼만하다.

캠프 온 것 같은 느낌도 나고.


“배고프네.”


낮잠을 거하게 때리고 눈을 뜬 나는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고개를 살짝 돌려 움막의 입구를 바라보니 어느새 어두운 그림자가 움막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회사랑 부모님은······일단 생각하지 말자.”


당장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방법이 없다.

내가 사라진 걸 눈치챈 부모님은 실종 신고를 할 테고 회사는 당사자가 없으니 자르거나 뭐 알아서 하겠지.

애초에 때려치우고 싶기도 했고.


“아 맞다. 순무 밥 줘야 하는데.”


음. 계속 어딘가 찜찜하다 했더니 순무 때문이었구나.

순무는 내가 키우는 2살짜리 고양이다.

평소에는 자기가 원할 때 빼고 아는 척도 안 하지만 꼴에 밥 주는 집사라고 잠은 매일 옆에 붙어서 자는 녀석이었다.

혼자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애옹’ 거리며 울고 있을 순무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가 알아서 잘 챙겨주겠지.”


그렇게 위안 삼으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움막 밖을 바라봤다.

인간 이태준의 걱정은 이쯤 하면 됐고 바바리안 카르잔으로 돌아올 시간이다.


“녀석들은 어떻게 됐으려나.”


지금쯤 고향을 떠난 바바리안들은 첫 전투를 무사히 끝냈거나 몇 명은 죽었겠지.

그에 비해 나는 팔자 좋게 고향에 틀어박혀 잠이나 자고 있었다.

마치 학교를 조퇴하고 집에 온 기분이랄까.


“뭐, 이런 여유도 내일이면 끝이니까.”


뚜둑. 뚜둑.


반나절 동안 잠만 자서 그런지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풀고 있자니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기척을 느끼자마자 몸을 입구 쪽으로 돌렸다.


“족장.”


그곳에는 한 손에 잘 익은 고깃덩어리를 줄에 매달아 들고 온 족장이 무표정으로 서 있었다.


“먹어라.”


“고맙······.”


족장은 내게 무심히 고기를 던지고 곧장 뒤돌아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족장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고맙다.”


그야 고기를 한 바퀴 둘러 묶은 줄에 새빨간 액체가 담긴 물약도 같이 묶여있었으니까.


****


아침이 밝았다.

새들의 지저귐 소리를 듣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도끼를 챙겨 움막 밖으로 나왔다.

마을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수의 바바리안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곧장 전사의 숲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침 정도는 먹고 출발하고 싶었는데 저 멀리 지나가는 족장의 얼굴을 보고 배고픔이 싹 사라졌다.

아침도 거르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관심 병사 아니, 관심 바바리안에서 탈출하지.


“자 그럼.”


전사의 숲 초입 부분에 도착하자마자 주머니에 있는 라그나의 목걸이를 꺼내 목에 걸었다.


지이잉-


“오.”


슬쩍 고향 쪽으로 몸을 돌렸더니 정말 목걸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스마트폰 진동 모드와 맞먹는 강도.

이로써 길치 바바리안은 끝이다.

적어도 전사의 숲 안에서는 어제처럼 길을 잃고 헤매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가볍게 주변만 돌아다녀 볼까.”


처음부터 그 녀석과 마주치고 싶진 않다.

애초에 지금 당장 한판 붙어 이겨 먹을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단계라는 게 있는 거니까.

처음부터 보스 몹을 잡는 건 말이 안 되지.

충분한 경험치를 채우고 난 뒤 상대해도 늦지 않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니 말이다.

목숨이라는 코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저벅, 저벅. 저벅.


느긋하게 숲속을 걸어 다닌 지 20분쯤 지났을 때.

동물의 사체를 뜯어 먹고 있는 고블린 한 마리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쩝. 쩌업.”


입가에 피를 잔뜩 묻힌 채 내장을 뜯어먹고 있던 고블린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머리를 번쩍 들어 올렸다.


“크륵?”


정면에 서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은 마치 ‘네가 왜 여기 있어?’라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반갑다.”


나는 오른손을 들고 좌우로 흔들면서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상황 파악이 끝났는지 손에 든 내장을 던지면서 벌떡 일어선 고블린이 길쭉한 팔을 뻗으며 달려왔다.


스륵.


그 즉시 허리춤의 도끼를 꺼내 자세를 잡았다.


“라그나가 어떻게 했더라.”


나는 라그나가 고블린을 죽이면서 보여줬던 몸의 움직임을 차근차근 떠올렸다.


“일단······.”


왼발을 한 발자국 내밀고.

도끼를 쥔 오른팔을 위로 올려 적당히 굽힌 채로 뒤통수까지 잡아당긴다.

그리고 왼팔은 앞으로 살짝 뻗어 상대와의 거리를 가늠한 다음.


“키이익!”


풀쩍 뛰어 덤벼오는 고블린을 향해 오른손의 도끼를 휘두름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허리와 다리를 팔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꺾는다.


콰직!


「야생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허리에 틀어박힌 도끼날이 살가죽을 찢음과 동시에 척추뼈를 부수면서 상체와 하체가 분리됐다.


“어?”


내 눈앞을 지나쳐 날아가는 고블린이었던 고깃덩어리를 보면서 입이 쩍 벌어졌다.

여태껏 아무리 악을 쓰면서 도끼를 휘둘러도 저 정도로 깔끔하게 잘려 나간 적은 없었다.


“이거였군.”


그동안은 오로지 팔로만 도끼를 휘둘렀다면 이번에는 온몸으로 휘두르는 느낌이었다.

도끼와 고블린의 시체를 번갈아 보던 나는 더욱 오른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역시 기본기가 중요하다 이건가?”


처음이라 그런지 몰라도 약간 어색하긴 하지만 이것도 반복하다 보면 몸에 익을 터.

허공에 대고 도끼를 몇 번 휘두르던 나는 고블린이 먹던 동물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내장에 손을 푹 집어넣어 뜯어낸 뒤, 흐르는 피를 온몸에 덕지덕지 바르기 시작했다.


“······역겨워도 참아야지 뭐.”


고인물에게 가장 중요한 건 효율이다.

자칭 도파민의 노예이자 효율충으로서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했을 뿐.


“크르르르.”


그 상태로 도끼를 휘두르면서 연습하고 있자니 피 냄새를 맡은 고블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갑다.”


나는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로 웃으며 녀석들을 환하게 맞이해 주었다.


「야생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야생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야생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

.

.


****


태양이 저물고 초록색 평야가 붉게 물들어 갈 때쯤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신에 피를 뒤집어쓴 내 모습에 바바리안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우물의 물로 땀과 피로 찌든 몸을 씻어냈다.


당당히 식사도 배분받고 허겁지겁 먹었다.

여전히 날 바라보는 시선은 낮에 만난 고블린처럼 ‘네가 왜 여기 있어?’였지만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꺼억. 잘 먹었다.”


“그, 그래.”


내게 고기를 건네준 바바리안에게 깔끔하게 잘 발라먹은 뼈다귀를 건네주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끄덕거렸다.


“그럼 이만.”


나는 곧장 움막으로 돌아와 하루 동안 얻은 마력석을 작은 주머니에 집어넣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앞으로 몇 마리 남았으려나.”


초반에는 숫자를 셌는데 뒤로 갈수록 싸움에 집중하느라 잊어버렸다.

차근차근 기억을 되짚으면서 죽인 고블린의 수를 세고 있으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다.

열 마리쯤에서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10초 만에 잠든 건가.


“가자.”


눈을 부릅뜨고 입가에 묻은 침을 대충 손바닥으로 닦으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전사의 숲으로 향했다.

오늘은 더욱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갈 거다.


「고블린 궁수를 처치했습니다.」

「고블린 전사를 처치했습니다.」

「야생 고블린을 처치했습니다.」

「고블린 십장을 처치했습니다.」

.

.

.

그렇게 밤낮을 가리지 않고 꼬박 6일을 꼬라박았을 무렵.


뻐어어억!


결국 버티지 못하고 부러진 도끼를 대신해 내지른 주먹이 고블린의 안면을 강타하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손맛이 느껴졌다.


“······드디어.”


땅바닥에 널브러진 고블린은 고작 주먹에 맞았을 뿐인데 머리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 말인즉슨······.


「고블린 창병을 처치했습니다.」


「히든 업적 고블린 슬레이어 달성!」

조건 : 전사의 숲 내에 존재하는 고블린 300마리 처치.

보상 : 고블린에게 가하는 데미지 100% 증가.


“드디어 얻었다!”


고블린 300마리를 죽이면 얻는 숨겨진 업적.

무려 고블린에게 가하는 공격의 데미지가 100% 증가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셈.

나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 족장이 있는 움막 입구의 천을 활짝 걷으며 소리쳤다.


“족장!”


“···카르잔.”


방어구를 손질하고 있던 족장이 흠칫 놀라 날 쳐다봤다.


“도끼가 부서졌다! 훈훈한 지원 부탁한다!”


“넌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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