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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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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최근연재일 :
20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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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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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6화.

DUMMY


“일어나라!”


다급한 내 외침에 누워 자고 있던 아리엘과 막심이 눈을 번쩍 떴다.


“무, 무슨 일이에요?”


“막심! 물약!”


아직 잠이 덜 깼는지 품에 배낭을 껴안고 비몽사몽 하던 막심이 내 등에 업혀있는 로원을 보고 황급히 배낭을 열어 물약을 꺼냈다.

그런 와중에도 로원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으니까.


“여기!”


막심이 던진 물약을 공중에서 낚아챈 나는 로원을 바닥에 눕히고 입 안으로 천천히 흘려 넣었다.


“······칼에 찔린 건가.”


피가 많이 묻어 있는 윗옷을 살짝 들치자 옅은 숨을 쉴 때마다 명치 아래쪽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남은 물약 전부를 그 상처 위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찔린 부위에 살들이 재생되어 구멍이 메꿔졌다. 동시에 창백하던 피부도 느릿하게 본래의 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다.

코 밑에 손가락을 가져대고 아직 숨을 쉬는 걸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일단 급한 상황은 넘겼군.”


“저기······.”


로원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내 옆으로 아리엘과 막심이 다가왔다.

아리엘은 나와 로원을 번갈아 보면서 물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


“카르잔. 저 남자. 그때 망자의 굴에서······ 맞지?”


뒤이어 내게 묻는 막심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섰다.


“망자의 굴? 그건 또 뭐죠? 아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아리엘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나와 막심이 1일 차에 망자의 굴이라는 던전에 들어갔다. 거기서 저 로원이라는 남자와 그의 동료들이랑 약간의 다툼이 있었다. 우린 도망쳤고. 별다른 문제 없이 상황은 끝났었다.”


“그럼 그때 마주친 저 남자가 왜 지금은 다 죽어가고 있던 거죠?”


“나도 모른다. 불침번을 서던 와중 시냇물에 다친 채 엎드려있는 걸 건져 온 거니까. 상처를 보아하니 아마 공격을 당해 도망치다가 피를 너무 흘려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그런······.”


어딘가 딱한 눈으로 로원을 내려다보던 아리엘은 돌연 몸을 돌려 모닥불 앞으로 걸어갔다.

이미 불이 다 꺼져 재만 남은 곳에 새로운 나무를 쌓아 올리고 막심이 가져온 부싯돌을 이용해 불을 붙인 그녀가 말했다.


“옷이랑 몸이 물에 젖어서 이대로 놔두면 저체온증에 걸릴 거예요. 여기 모닥불 쪽으로 옮겨주세요.”


“알았다.”


조심스레 로원을 들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눕히자 막심이 그의 옷과 신발을 벗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요.”


화들짝 놀란 아리엘이 뒤로 돌아서고 막심은 자신이 덮고 자던 얇은 천을 로원에게 덮어주었다.


“젖은 걸 입고 있으면 추우니까······. 내가 냇가에 가서 깨끗하게 빨아 올게.”


그렇게 말하며 움직이려던 막심이 흠칫하고 굳어 아리엘 쪽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아리엘은 그런 막심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괜찮아.”


“아. 미안!”


왜 그런가 했더니 아리엘이 가져온 저 이불용 천에 피가 묻어서 그런 거였구나.


막심이 옷을 들고 냇가로 떠나고. 나는 아리엘 반대편으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타닥타닥.


고즈넉한 숲속에서 나무가 불에 타는 소리만 들려온다.

그 불꽃 너머 양쪽 무릎을 가슴팍에 붙이고 팔로 껴안은 채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엘.

그녀의 금색 눈동자 안에 비친 불꽃이 좌우로 휘청이며 흔들거렸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군.”


“네?”


내 물음에 휙 고개를 든 아리엘이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끔뻑거렸다.


“전사의 직감은 뛰어난 편이지.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냐?”


“······아니요. 고민이라기보단······.”


말끝을 흐린 아리엘은 옆에 누워있는 로원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렇게 다친 사람을 볼 때마다 자꾸 하이람이 떠올라서요.”


“하이람이라면 마수에게 공격당해 죽었다는 네 친구 말인가.”


“네.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던 하이람이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이런 말을 했어요. 너는 꼭 도망쳐서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헬름이랑 세계수 님 옆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는 나중에 할머니가 돼서 오라고.”


그리 말하며 다시 모닥불 쪽으로 시선을 옮긴 아리엘이 피식 웃었다.


“참 웃겨. 바깥세상에서 죽으면 세계수 님이랑 못 만날 텐데.”


세계수라.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기억을 떠올렸다.


레아드리아 내에 엘프가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그 마을 중앙에 자라있는 거대한 나무. 아리엘이 말하는 ‘세계수’는 엘프들에게 종교이자 신과 같은 나무다.


엘프는 죽으면 세계수 주위에 시체를 묻는 전통이 있는데, 그래야 죽은 엘프의 영혼을 세계수가 보듬어 준다나 뭐라나. 하여튼 아리엘은 지금 그 얘기를 하는 거 같았다.


“······그 인간들이 죽은 헬름이랑 하이람을 마수의 먹이로 던져주는 바람에 세계수 님에게 데려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네?”


“너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 미안하다는 건 누군가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때 생기는 감정이다. 하지만 넌 뭘 잘못했지?”


뭐라 말하려던 아리엘의 말을 끊고 내가 끼어들었다.


“네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는 건 미안한 게 아니라 더욱 분노하고 아쉬워해야 하는 거다. 그 계기를 원동력 삼아 강해져야 한다. 누군가를 지킨다는 것은 약자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


“그러니 소중한 걸 지키고 싶다면 강해져라. 바깥세상 아니, 이 세계는 그런 곳이니까. 내가 도와주마.”


아리엘은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닥불을 바라보는 그녀의 금안(金眼)은 흔들림 없이 올곧게 고정되어 있었다.


“으으으으!”


그때 품속에 로원의 옷을 껴안은 막심이 달려왔다.


“아으. 손 시려서 죽는 줄 알았네.”


옷을 모닥불 가까이 가져가 대고 서 있던 막심이 나와 아리엘을 쳐다봤다.


“······분위기가 왜 이래? 둘이 싸웠어?”


****


“으음······.”


해가 중천에 떠서야 로원이 눈을 떴다.


“일어났다! 카르잔! 일어났어!”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던 나는 곧장 모닥불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회복이 꽤 됐는지 처음 발견했을 때보다 훨씬 안정된 얼굴로 옷을 입고 있는 로원이 보였다.


“드디어 일어나셨군.”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친 로원이 머리를 푹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 수 있었어요.”


“아직 입술이 파래요. 계속 몸을 따듯하게 유지해야 해요.”


아리엘이 어깨 위로 천을 덮어주자 로원은 연신 머리를 숙였다가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검을 허리춤에 꽂아 넣고 앉아 말했다.


“오늘로써 두 번째로 보는군.”


“아······ 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과는 됐다. 나는 뒤끝 없는 바바리안이니까.”


“그, 그런가요?”


“어차피 넌 나를 죽이기 싫어했으니, 악의가 없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네에······.”


“그래. 이제 말해봐라. 왜 그렇게 다친 거냐.”


로원은 멀쩡해진 자신의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그리올. 천랑. 그 둘이 자꾸 마법을 써서 다른 모험가들을 죽이라길래··· 끝까지 거부했더니 갑자기 제 지팡이를 뺐고 칼로 찔렀어요.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 이제 저는 필요 없다면서요······. 아마 마력석을 저한테 나눠주기 싫었던 거겠죠.”


“멍청한 놈들이군. 마법사를 동료로 데리고 다니는 게 얼마나 든든한 건데 그걸 모르다니.”


“하하··· 설마 그래서 저를 살리신 건가요?”


나는 로원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아니면 내가 널 살릴 이유가 뭐지?”


“하, 하긴 그렇죠.”


나도 마법사 바바리안이긴 하다만, 일반적인 마법사처럼 함부로 마법을 쓰고 다닐 수 없어서 말이지.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모험가를 먼저 공격하거나 약탈하지 않으니까.”


“마법사? 마법사라구요?”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지 아리엘이 되물었다.


“그래. 내가 대신 소개하지. 이름이······ 뭐였더라.”


“랑시스··· 로원입니다.”


“그래. 랑시스 로원. 우리 파티의 새로운 마법사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아······.”


자연스럽게(?) 합류한 로원은 아직 이 상황이 얼떨떨한 듯 안절부절못하면서 손을 계속 꼼지락거렸다.


“저는 아리엘 펜니르에요.”


“나는 볼란 막심! 편하게 막심이라고 불러!”


“나는 붉은 눈의 카르잔이다.”


“네? 네······.”


서로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고 부산스러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편안하게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곧 도시로 돌아갈 거라 딱히 할 게 없었거든.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동안 대화를 하는 도중. 내가 로원에게 물었다.


“아. 로원. 궁금한 게 있다.”


“네?”


“마법에 관한 거다. 넌 마법사니까 잘 알고 있겠지.”


“마법···이요?”


“그때 망자의 굴에서 막 빛이 번쩍하고 휘두르는 게 신기해서 물어보는 거다.”


“제가 아는 거라면······ 알려 드릴 수는 있어요.”


나는 고민하는 척 턱을 쓰다듬다가 물었다.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바바리안처럼.


“마법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쓰는 거냐. 뭔가 특별한 장치 같은 게 있나?”


잠깐 할 말을 떠올리는 듯 눈알을 굴리던 로원이 검지를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부분에 시퍼런 마력이 연기처럼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오. 나도 나중에 해봐야지.


“음··· 마법사는 이 마력을 심장에 저장해서 사용해요. 강한 마법사일수록 심장이 크고 저장하는 마력의 양도 늘어나요.”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로원은 근처에 있던 작은 나뭇가지를 들고 말을 이었다.


“이건 아니지만, 대부분 이렇게 생긴 마법 막대기나 지팡이를 매개체로 이용해 마법을 현실로 발현시켜요. 마법 도구를 이용하는 게 훨씬 편하고 쉬우니까요.”


“그럼 마법사들은 마법을 어떻게 배워서 쓰는 거냐?”


나는 여태껏 가장 궁금하고 답답했던 걸 물었다. 언제까지 태초의 불꽃만 주야장천 쓸 것도 아니고.

게임에서는 이상한 효과음과 함께 [새로운 ‘OOO’ 마법을 배웠다!]로 끝나니까. 이런 자세한 건 알 수가 없었다.


“어··· 일단 마탑 소속으로 들어가거나 사설 마법 학원 같은 곳에서 배워요. 저도 마탑에 들어갈 돈도 없고 재능도 없어서 학원에서 배운 거예요.”


음. 사설 마법 학원이라. 나 같은 바바리안도 받아 주려나.


“여기.”


로원은 뜬금없이 자기 눈을 가리켰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마법은 일단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해요. 안 그러면 무슨 마법인지, 어떤 영창을 말해야 하는지 알아도 전부 소용없어요.”


“오호.”


“그리고 그 마법을 머릿속. 즉 주문 세계에서 똑같이 구현시켜서 영창과 함께 마력을 써서 현실로 발현하는 거죠. 근데 마법을 창조하거나 영창이 필요 없는 마법사도 몇 명 있다고 들었어요.”


“어렵군.”


난 바바리안답게 멍청한 표정 연기를 하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혹시 네 말처럼 마법사라고 해서 가장 기본적인 마법도 두 눈으로 보지 못하면 쓸 수 없는 거냐?”


“네. 맞아요. 그래서 마탑에 들어가서 배우거나 돈을 내고 학원을 가는 거죠. 마법을 보여주고 알려줄 선생님이 필요하니까요.”


“흠. 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난 대충 알 것 같은데, 역시 마법이라는 건 완전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아.”


“그, 그런가요? 하하하······.”


나는 머쓱하게 웃는 로원과 아리엘, 막심 사이에서 멍하니 앉아 허공을 빤히 응시했다. 자꾸만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 마법을 쓰려면 그 마법을 직접 목격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태초의 불꽃을 쓸 수 있었던 거지?’


그냥 나 혼자 쓴 건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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