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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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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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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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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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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DUMMY


“이로써 너희들은 진정한 전사가 되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발라카아아아아!”


둥글게 둘러싼 움막들 가운데에 놓인 넓은 공터.

그곳 가장자리에 서 있던 바바리안 족장 크락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전사의 시험을 통과한 바바리안들이 크락을 바라보며 고함을 질러댔다.


“우, 우와아아아!”


나는 맨 뒷줄에 서서 한 박자 늦게 고함을 질렀다.


“······.”


가장 먼저 입을 닫고 한곳에 모인 바바리안들을 천천히 살폈다.


‘꽤 많이 살아남았군.’


조금 전, 얼핏 주워들은 정보에 의하면 전사의 시험을 치른 바바리안은 나 포함 총 32명.

그중 20명이 여기 모여있다.

3/2면 엄청난 생존율이라고 봐야 한다.

그야 숲엔 ‘그 녀석’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라그나처럼 눈에 띄지만 않으면 사냥감을 찾으러 다니지 않는 놈이라 다행이었다.


“어린 전사들은 들어라.”


뉴비 바바리안들의 함성이 주변을 떠나가라 채우던 와중 크락의 낮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고막에 꽂혔다.

이윽고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 공터.

분위기가 가라앉자 짧게 고개를 끄덕인 크락이 손짓했다.


뚜벅. 뚜벅. 뚜벅.


이윽고 바바리안 무리 한쪽이 갈라지면서 길이 열리고 주름이 가득한 늙은 바바리안이 양손에 작은 상자를 가지고 크락에게 다가왔다.

상자를 건네준 늙은 바바리안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아까보다 한층 더 진지해진 크락은 말을 이었다.


“전사의 시험은 시작일 뿐이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밟혀 죽을 수 있는 개미 새끼라는 걸 똑똑히 머리에 새겨둬라.”


심장에 내리꽂는 묵직한 팩트.

덩치 큰 바바리안을 조그마한 개미와 비교해서일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상기돼있던 바바리안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바뀌었다.


“먼저 고향을 떠난 바바리안들은 이미 셀 수도 없을 만큼 흙 속에 묻혀있다. 너희들보다 더 강인한 전사임에도 불구하고.”


크락의 거대한 손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멀리 있어서 상자 속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볼 필요도 없다.

이미 상자 속에 뭐가 들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 개고생을 했는데 뭐라도 보상을 줘야지.’


이게 게임의 기본 아니겠나.

퀘스트를 클리어했으면 그에 따른 보상을 받아야 한다.


“선조 발라카의 곁으로 떠난 동족들이 남긴 유품이자, 그들의 염원이 새겨진 물건이다.”


크락은 상자에서 반지 하나를 꺼내면서 높이 치켜들었다.


“이 반지에 새겨진 동족들의 영혼은 언제나 너희를 지켜줄 것이다.”


가장 맨 앞에 서 있던 바바리안에게 다가간 크락이 반지를 건넸다.


“그들은 어린 전사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반지를 건네받은 바바리안이 두꺼운 손가락에 끼워 넣으면서 외쳤다.


“족장! 난 절대 죽지 않는다!”


“송곳니 레녹. 믿고 있겠다.”


크락은 직접 한명 한명씩 찾아가 반지를 건네주기 시작했다.

반지를 받은 바바리안들은 마치 엄청난 보물을 하사받은 것처럼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마치 가문 대대로 내려온 보물이라도 되는 양.

그 속에서 유일하게 나만 무덤덤한 채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튜토리얼 보상이 좋아봤자 얼마나 좋다고.’


솔직히 말하자면 크락이 했던 말은 전부 호들갑에 가깝다.

저 반지는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할뿐더러 염원 같은 건 새겨져 있지 않다.

정말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면 좋은 무기나 방어구를 주는 게 더 확률이 높을 터.

뭐, 뉴비 바바리안들이 고향을 떠나 마수와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채워주는 방식으로는 나쁘지 않다.

정말 반지에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바바리안들이 저 반지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찾을 테니까.


“붉은 눈의 카르잔.”


코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서둘러 상념을 지우고 크락을 쳐다봤다.

한 종족을 이끄는 사내라서 그런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온다.

나도 모르게 침이 목구멍을 타고 꼴깍 넘어갔다.


“라그나의 목숨을 구했다더군.”


“바바리안은 동족을 버리지 않는다.”


크락은 대답 대신 반지를 건넸다.

역시 잘했다, 훌륭하다 같은 입바른 칭찬 따위 없는 상남자 바바리안족이다.


‘힘이랑 기력을 조금 올려줬었지.’


나는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반지를 곧장 손가락에 끼워 넣었다.

아무것도 없는 초반에 이 정도 스텟이 달린 반지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이 세계에서 마법사의 마력이 mp라면 마력이 없는 바바리안이나 다른 종족은 기력이 mp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지는 바바리안 전용 아이템답게 필요한 유효 옵션 중 두 줄을 가지고 있다.

아, 나는 예외다.

마력과 기력 두 가지가 필요한 마법사 바바리안이니 말이다.


“근데 얘들은 알고 있으려나.”


반지 낀 손가락에 눈을 떼지 못하는 바바리안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이 반지는 죽은 바바리안의 뼈를 녹여 만들었다는 걸.


「바바리안의 뼈 반지를 장착했습니다.」

[힘이 +4 상승했습니다.]

[기력이 +4 상승했습니다.]


****


반지 배분이 끝나고 찾아온 아침 식사 시간.

나는 대충 입안에 쑤셔 넣고 무리에서 빠져나와 바바리안답게 땅바닥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앞으로의 육성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렇게 한참 머리를 쥐어짜던 중, 고개를 숙이고 있던 눈앞에 커다란 발이 보였다.

바바리안답지 않은 하얀 피부.

슬쩍 머리를 위로 치켜들자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익숙한 얼굴의 바바리안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연꽃의 라그나.”


“카르잔! 혼자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나?”


“아까 먹은 고기가 맛있어서 맛을 상상 중이었다.”


“또 먹으면 되지 않나!”


“한 조각도 안 남기고 다 먹었더군.”


“음. 확실히 그럴 만했다. 족장이 도시로 떠날 우리를 위해 준비한 고기라더군.”


라그나는 정말 먹었던 고기를 떠올리고 있는지 입맛을 다시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쓰읍. 아, 그건 그렇고 너한테 줄 게 있다.”


“음? 나한테?”


“받아라.”


라그나가 주머니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목걸이였다.

엄지만 한 크기의 나무를 예쁘게 조각한 목걸이 중앙에는 새파란 보석이 박혀있었다.


“이게-”


순간 이게 뭐지? 라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혹시나 다른 바바리안들은 전부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른다고 하면 이상하게 볼 게 분명하다.

난 겉모습만 바바리안인척하는 다른 세계 사람이고 어찌 됐든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고맙다.”


자연스럽게 라그나의 눈을 바라보면서 목걸이를 받던 내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라그나도 내 시선을 읽었는지 자기 목에 걸려있던 똑같이 생긴 목걸이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만들어 준 목걸이다.”


“뭐? 그렇게 중요한 걸 나한테 줘도 되는 건가?”


“괜찮다! 어차피 하나 남은 거였으니까. 나도 이것밖에 없었다면 절대 안 줬을 거다!”


아니, 하나 더 있다고 해도 아버지가 남긴 유품인데, 나도 양심이 있지.


“마음만 받겠다.”


“바, 받아라! 지금 내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


단칼에 거절하자 되려 성을 낸 라그나가 내 손목을 붙잡고 뒤집어 손바닥 위에 목걸이를 툭 올렸다.


“네가 날 구해줬으니까 뭐라도 줘야 마음이 편하다. 근데 내가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게 이것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면 차마 거절할 수가 없는데.

지가 죽어도 주고 싶다는데 뭐 어쩌겠어.

원래 용돈을 받을 때도 한번은 거절하는 게 국룰이다.


“그럼 잊어버리지 않고 잘 갖고 있겠다.”


라그나는 이제야 마음에 들었는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크, 흐흠. 그렇게 좋은 목걸이는 아니다. 전사의 시험이 끝나서 쓸 때도 없다. 혹시나 잊어버려도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부담을 가질까 봐 잊어버려도 된다고 하는 걸 보면 얘도 참 바바리안답지 않은 성격을 가졌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꾸했다.


“잊어버릴-”


잠깐만.

나는 입을 다물고 방금 라그나가 했던 말을 곰곰이 되짚었다.


‘전사의 시험이 끝나서 쓸 때도 없다.’


그렇다는 건 반대로 숲 안에서 목걸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라그나. 그게 무슨 말이지?”


“응?”


“아까 전사의 시험이 끝나서 쓸 때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 그렇게 말했었다.”


“왜 그런 건지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라그나는 그게 왜 궁금한지 이해가 안 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귀찮은 건 아닌지 순순히 설명해주었다.


“아버지는 내가 전사의 시험을 통과하길 바랐다. 내가 당당히 통과해서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그때까지 몸이 버티지 못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목걸이를 만들어 줬다.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면서.”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매만지던 라그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신기하게도 이 목걸이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 진동한다. 마치 길을 알려주는 것처럼. 이제 길을 찾을 필요가 없으니 쓸 때가 없다고 한 거다.”


“그래서 숲을 빠져나올 때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낸 건가?”


“맞다. 싸우면서 피가 묻을까 봐 주머니에 넣어뒀었다.”


왠지 한번도 안 멈추고 정확하게 길을 찾길래 다른 방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여태 답답하던 궁금증이 풀렸다.


“혹시······.”


나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라그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목걸이는 네 아버지가 바라던 소원이 담겨있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소원?”


“라그나. 네가 숲에서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


“그런가······.”


목걸이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나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다.”


그리고 정확히 내 눈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너도 언젠가 길을 잃는다면 헤매지 말고 목걸이를 따라 고향으로 돌아와라.”


“그러지.”


나는 라그나와 같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고향은 여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인데.


“아. 그러고 보니 곧 도시로 출발한다던데, 준비는 다 됐나?”


“붉은 눈의 카르잔!”


쿵. 쿵. 쿵.


근처 땅이 울린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자 험상궂은 얼굴의 바바리안이 달려오고 있었다.


“카르잔. 역시 너도 살아남았군!”


“오. 살아있을 줄 알았다. 여태껏 어디 있었나?”


“하하.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했었다. 근처에 있던 장로가 날 발견하지 못했으면 진작에 죽었을 거라더군.”


“···너도 덩치가 큰 고블린을 만났나?”


“음? 그런 고블린은 못 봤다.”


“그럼 왜 그 지경이 될 정도로 다친 거지?”


“뭐? 내가 말하지 않았나! 더욱 강한 전사가 돼서 오겠다고!”


“그,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고블린이랑 싸운 건가?”


“정답이다!”


꿈틀꿈틀.

볼가르의 입꼬리가 쉴 새 없이 꿈틀거린다.

아마 듣고 싶은 말이 있는 거겠지.


“···대단하군. 넌 진정한 전사다. 강철 주먹 볼가르.”


“으하핫! 드디어! 이름을 기억해 주는군!”


호쾌하게 웃음을 터트린 볼가르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어서 안 움직이고 뭐 하나! 도시로 갈 때가 됐다! 너도 같이 가자 라그나!”


나는 볼가르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서서 바글바글 모여있는 바바리안 무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보군.”


그 와중에 라그나는 볼가르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볼가르라고 했나? 그래··· 그런 이름을 가진 바바리안이 있었지.”


“뭐라고? 라그나! 아직도 내 이름을 모르고 있었나?!”


“미안하다. 관심이 없었다.”


“이런 젠장! 절대 잊지 못하도록 더 강해져서 뇌 속에 똑똑히 새겨-”


“나는 도시로 가지 않는다.”


“응?”


“뭐, 뭐라고?”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둘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둘에게 어깨를 으쓱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목걸이 내비게이션도 생겼겠다.

그 덕분에 여태껏 고민하던 마법사 바바리안 고인물 육성 루트를 시작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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