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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용

바바리안이 마법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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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종
작품등록일 :
2024.02.09 23:40
최근연재일 :
2024.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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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5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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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DUMMY


쿠구구궁!


무덤이 흔들린다.

정확히 말하면 동굴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나 그 진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카르잔, 저기···.”


무릎 꿇은 채 멍하니 관을 바라보고 있던 막심이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무덤의 끝. 서리 구울의 관 앞에 차원 문이 생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밖으로 나가는 출구인 거 같다.”


“그렇겠지?”


다만 여기서 선택지가 두 가지로 나뉜다.

저 차원 문을 타고 망자의 굴을 빠져나가느냐.

아니면 차원 문을 타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망자의 굴 보스를 처치하느냐.

당연히 보스 경험치는 챙겨-


“어이.”


차원 문을 바라보던 나와 막심의 뒤편으로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너희는 뭐냐.”


저의가 다분히 느껴지는 남성의 목소리.

뒤로 돌아서자 무덤 입구 앞에 선 세 명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나는 대꾸하기 전에 그들의 인상착의부터 확인했다.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느껴지는 분위기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인간 셋.’


좌측과 중앙에 서 있는 남자는 각각 도끼와 검을 들고 있다.


‘가죽 갑옷을 입고 있는 걸 보면 8등급에서 9등급.’


그리고.


‘···마법사?’


우측에 갈색 로브를 걸치고 서 있는 남자는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왜 하필 마법사가···.’


허리춤으로 가던 내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애매하게 멈춰 섰다.

그 자존심 강한 마법사가 저런 양아치 놈들이랑 같이 다닌다고?

아니면 나처럼 바깥세상이 처음인가?

아마 그럴 확률이 높다.


“······.”


여기서 검을 뽑는 순간 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했다.

높은 확률로 우리를 제압하기 위해 공격해 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길 수 있나?

상대는 셋. 거기다 마법사가 파티에 포함되어있다.

우리는 두 명에······ 막심이 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바바리안.”


중앙에 서 있던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한 발자국 내디디며 말했다.


“경고하는데 싸우려거나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라. 우린 마법사가 있으니.”


“······원하는 게 뭐냐.”


“적어도 눈치는 있는 바바리안이었군.”


그래. 때로는 주먹질보단 대화가 효과적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동료 둘을 잃었거든?”


남자는 손에든 검을 내게 겨누며 눈을 얇게 떴다.


“그 개고생을 하면서 왔는데, 너희가 여기 있는 걸 전부 꿀꺽해버리면 우리는 뭐가 되는 거냐?”


무덤을 한번 쓱 훑어보던 그는 관 뚜껑이 전부 열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우리가 무덤의 보상을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단 말이지.


“뭐가 되긴. 그냥 동료 둘을 잃은 놈들이 되는 거다.”


“뭐?”


내 대답에 남자가 언짢은 듯 한쪽 눈을 와락 찡그렸다.

조금 쫄리긴 하지만 여기서 저자세로 나가는 순간 상황은 더욱 불리해진다.

인간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확신할 때부터 통제하려고 하니까.

중학생 때 날 괴롭히던 그 새끼들처럼.


“봐라.”


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너도 눈이 있다면.”


텅 빈 관을 가리키면서 남자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곳은 애초에 함정이었다. 관 속에는 구울만 있었을 뿐. 네가 원하는 보물이나 대단한 무구는 없었다.”


“······구울?”


“바닥에 떨어진 마력석을 보고도 못 믿겠다는 거냐.”


미친. 저게 다 얼마야.

이럴 줄 알았으면 마력석부터 주워 놓을걸.

설마 그 함정을 전부 뚫고 무덤까지 도달한 모험가가 또 있을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무덤이 함정이라고?”


“그리올 형님.”


바닥에 흩뿌려져 있는 마력석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그리올의 옆으로 도끼를 든 사내가 다가와 속삭였다.

귓가에 입을 대고 뭐라 중얼거리던 도끼남은 나와 막심을 번갈아 보더니 줄곧 제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던 마법사를 불렀다.


“랑시스 로원.”


“어, 네!”


로원이라 불린 마법사는 마치 이등병처럼 대답하며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 우리가 들으란 듯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저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도망치려거나 수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머뭇거리지 말고 마법을 써서 죽여라.”


“주, 죽이라고요···?”


어딘가 긴장한 듯 보이던 마법사 로원이 내게 지팡이를 겨누자 그리올과 도끼남이 가까이 다가왔다.

나를 올려다보던 그리올이 막심의 배낭을 힐끔 쳐다보더니 물었다.


“······저 배낭 안에는 뭐가 들었지?”


“별거 없다.”


“그래? 배낭이 꽤 묵직해 보이는걸.”


“어엇.”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리올은 막심의 어깨에 배낭끈을 붙잡고 확 끌어당겨 뺏었다.


후두두둑.


배낭을 반대로 뒤집어 탈탈 털자 마력석과 몇 개의 육포. 빵. 조그마한 물약 한 병이 배낭에서 튀어나왔다.


데구르르르,


바닥을 굴러 내 발끝에 부딪힌 물약을 보고 막심에게 시선을 돌렸다.


분명 물약이 없다고 한 거 같은데.


“비, 비상용으로 하나···예전에 사놓은 거···. 아직 남아 있었···구나.”


내 눈빛을 읽은 막심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린 제일 중요한 배낭을 뺏겼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싸울 용기도 없는 등신처럼 보일 것이다.

여기서 물러서기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나가 알려줘야 한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공격할 수 있다는 걸.


“이게 무슨 짓이냐. 분명 별거 없다고 했을 텐데!”


나는 기분 나쁜 척 언성을 높이면서 그리올이 뺏어간 배낭을 다시 낚아챘다.


다만 그 쥐의 덩치가 고양이보다 크다는 게 차이점이지만.


“이, 이 자식이!”


“그만.”


옆에 있던 도끼남이 발끈해 도끼를 들어 올렸으나 그리올이 막아 세웠다.


“정말 네 말처럼 별거 없었군. 그래도 제대로 확인은 해봐야지 않겠어?”


그리올이 고개를 까딱하자 도끼남은 나와 막심의 몸을 더듬거렸다.


한참이나 몸을 더듬던 도끼남이 그리올을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더니 이내 무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 진짜 없다고 해도 그러네.


“그리올이라고 했나.”


“코펜 그리올이다.”


빈 배낭을 주워 막심에게 건네고 내 앞에 서 있던 그리올에게 말을 걸었다.

저자세로 무릎을 꿇고 마치 포로가 된 듯 행동했다면 이렇게 말을 걸 수도 없었을 터.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난 붉은 눈의 카르잔이다.”


“그래. 카르잔. 이제 좀 협조할 마음이 생겼나 보군?”


“협조? 난 이미 협조하고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는 게 바바리안으로서 얼마나 힘든 건지 아나?”


“그렇다면 어서 털어놔라. 네가 여기서 저 구울들을 죽이고 무엇을 얻었는지.”


“얻은 건 없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거 같나? 무덤까지 이어진 그 많은 함정을 보고도? 분명 뭐가 있으니 이렇게 꼭꼭 숨겨둔 거겠지.”


“넌 바보인가? 도시에서 바바리안이 가장 멍청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널 보고 있으면 사실 인간이 제일 멍청한 거 같다.”


“말조심해라 바바리안. 여긴 도시 바깥이다. 널 지켜줄 제국군 따윈 없다는 걸 명심해라.”


그리올이 정색하면서 손에 든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오케이. 도발은 이쯤 하면 된 거 같고.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되 넘지만 않으면 된다.


“형님.”


얼마 지나지 않아 무덤을 한 바퀴 빙 둘러본 도끼남이 그리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조용히 듣고 있던 그리올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방금 내가 멍청하다고 한 덕분에 어느 정도 현실을 깨달은 거다.

그야 바바리안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심각한 거니까.

더는 억지를 부리진 않겠지.


“정말 여기에 아무것도 없었나 바바리안?”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군. 역시 인간은 멍청-”


“됐다.”


내 말을 끊은 그리올이 손을 내저으며 마법사가 서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뭐라 중얼거리자 조용히 듣고 있던 마법사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막심.”


난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서 있는 막심의 옆구리를 툭 쳤다.


“으, 응?”


“차원 문으로 달릴 준비 해라.”


“가, 갑자기? 그러다가 공격해오기라도 하면······.”


“공격하기 전에 내가 신호를 줄 테니, 그때 차원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는 거다. 절대 멈추지 마라.”


막심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난 시선을 줄곧 마법사와 그리올에게 고정해놓고 두 다리는 언제든지 뛰쳐나갈 수 있도록 긴장감을 유지했다.

이거 아무리 봐도 저 녀석들이 우리를 곱게 보내줄 것 같진 않아서 말이지.

그리올이 저 마법사에게 뭐라 말할수록 손에 든 지팡이의 떨림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으니까.


“바바리안.”


그때 그리올이 내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너희들은 아주 운이 좋은 놈들이야. 여기까지 죽지도 않고 멀쩡히 도착하는 것도 모자라 우리랑 만났으니.”


“너희를 만나는 게 왜 운이 좋은 거지?”


“무덤에 온 게 우리가 아니라 다른 놈들이었다면 너흰 진작에 뒈졌을 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여기까지 온 노력이 가상해서 목숨은 살려주마. 그 대신 가지고 있는 걸 전부 바닥에 내려놓고 가라.”


그 말인즉슨 속옷만 남기고 여기서 당장 꺼지라는 뜻.


“어디서 구했는지 몰라도 네 검이 꽤 비싸 보이는군.”


가만히 앉아서 내가 죽인 구울의 마력석과 [요괴]를 꿀꺽하겠다는 거 아닌가.


‘어디서 손 안 대고 코를 풀려고.’


그리올은 이 무덤에서 만약 원하는 걸 얻었다고 해도 결국 이런 식으로 나왔을 거다.

애초에 약탈이란 건 정도가 없으니까.


게임에서도 똑같았다.

필드를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마주친 NPC가 PK를 걸어오며 저런 선택지를 건네곤 했거든.

아마 이런 식으로 떴을 거다.


- 전투한다.


- 항복한다.

(모든 골드와 소지품을 잃어버리고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 동료를 희생한다.

(높은 확률로 안전하게 도망칩니다. ‘막심’이 사망합니다.)


- 도망친다.

(낮은 확률로 도망칩니다. 실패 시 사망합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싸워 죽이거나 동료를 희생해 빠져나왔다.

항복하는 건 어차피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것과 똑같고 동료는 도시로 돌아가서 다시 구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은 게임이 아니다.

여기서 하는 모든 선택은 전부 목숨과 연관되어 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가장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것을 고른다.

신중하고 더 신중하게.


철컥.


검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어지럽던 머리는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역시 내 선택은 바뀌지 않았다.


“막심!”


이전과는 다르게 목소리를 높여 막심을 불렀다.

그러자 막심은 기다렸다는 듯 땅을 박차고 차원 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로원!”


그러자 그리올이 다급하게 마법사를 부르고 나와 그리올 사이에 있던 도끼남이 달려들었다.


카앙!


나는 검을 휘둘러 도끼남을 막아 세운 뒤 온 힘을 다해 밀어냈다.


“크윽.”


근력에서 밀린 도끼남이 뒤로 밀려나며 주춤거리자 저 뒤편에서 노란빛 섬광이 번뜩였다.

난 도끼남의 가슴팍을 발로 뻥 차고 서둘러 막심을 따라 달렸다.


「랑시스 로원이 8등급 마법 [흐물거리는 광채]를 시전했습니다.」


머리를 반쯤 뒤로 돌리자 지팡이에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마법사 로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나와 시선을 피했다.


뭐,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죽여서 미안하다 이건가?

이래서 친구를 잘 만나야 한다는 부모님의 말씀은 틀린 게 없다.


「카르잔이 랑시르 로원을 응시합니다.」


「카르잔이 [생명 갈취]를 시전 합니다.」


“어, 어······?”


이상함을 느꼈는지 심장을 움켜쥔 로원이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콰앙!


동시에 흔들린 지팡이에서 시전 된 채찍 같은 마법의 궤도가 살짝 어긋나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


나는 일직선으로 움푹 파인 땅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만약 이 노림수가 실패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미친 새끼가!”


“붙잡아!”


뒤늦게 실패했다는 걸 알아차린 그리올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풀쩍 뛰어 차원 문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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