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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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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2,132
추천수 :
3
글자수 :
324,022

작성
21.06.21 17:26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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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6쪽

그는 침묵했다. (첩보요원)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그는 침묵했다. 어쨌든, 일을 마치려면 조용히 하고 기다려야 했다.


폭파물에 반응이 올 때까지 숨을 죽이고 동향을 살피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검은 천으로 눈 밑부터 목까지를 전부 감싸고 있었다. 머리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채였다. 짙은 어둠이 주변을 잠식한 밤,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어느 고층 건물의 유리 지붕 위에서 남자는 낮게 엎드려 있었다. 온 몸도 빛이 반사되지 않는 검은색의 옷이었다.


남자는 일종의 특수요원이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공적인 정의를 위한 임무는 아니었다. 그는 예전에 공직에서 물러났고,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지금은 단순히 사적인 조직을 유지하며 개인적인 목표를 위한 일을 수행중이었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 고층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한 은행 본점의 금고를 지붕채로 날려버리기 직전이었다.


남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방비가 잘 된 은행 금고안의 한 물건이 필요했다. 과연 이 행동이 정의인가에 대해서는 스스로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다만 남자는 정의가 필요하지 않았다. 저 물건이 필요했지.


도화선, 이라고 표현하면 한참이나 원시적인 설명일 전선 끝의 버튼을 쥐고 있었다.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버튼을 누르면 구리선을 통해 전류가 흐르고, 순식간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나오며 은행 건물의 지붕 정도가 날아갈 테였다.


일종의 폭파 전문가인 남자의 솜씨는 정확히, 인적없는 공터로 잔해가 날아가게 만들어 두었다. 방 크기의 공간을 통째로 금고로 사용하는 부분에 있는 남자의 목적은 몇번의 연쇄적인 폭발로 바로 닿을 수 있을만 했다.


야심한 새벽. 아무도 없는 시간과 날짜를 골라 이 짓을 하고 있는 남자는 피곤한 듯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달칵.


그러다가 실수로 버튼을 눌러버렸다.


‘이런 정신나간.’


폭파는 계산된 타이밍과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었다. 남자는 그의 직업 생활 중 처음있는 실수를 하필 지금 저지르고 말았다. 남자는 혹시모를 폭발의 오산된 궤적에 맞을까 굴곡이 있는 곳 뒤에 최대한 몸을 납작하게 붙였다.


콰-

아아아아아아아앙!


글자로 설명할 수 없는 폭음과 함께 불길과 연기가 터져나왔다. 건물의 잔해가 일부는 아래로, 일부는 계산된 방향으로 날아갔다.


남자는 몸이 떨리는 공기 중의 진동과 폭음에 잠시 몸을 낮추고 여파가 멎기를 기다렸다. 사람은 나약하고 그가 설치한 폭탄은 인간따위 몇이나 되었든 상관없이 집어삼킬만큼 흉폭했다.


폭발력의 가느다란 줄기 하나에 걸리면 불구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아마 날아갔겠는데.”


생각보다 폭발이 깔끔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신형 화약물을 섞어서 써보았는데, 서류 상의 스펙과 다소 상이하게 터지는 면이 있었다. 예상보다 폭발력이 강했고 유도된 지향성에 따르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그가 원한 게 날아갔을 확률이 컸다.


“아쉽구만.”


오래도록 혼자서 일을 한 남자는 쓸데없는 혼잣말이 늘었다. 그가 원했던 건 정부의 기밀서류였다. 그가 국가의 공무원으로 일할 때에 마지막으로 일한 임무의 관련 자료였다.


그곳엔 지금 그가 같이 일을 하고 있는 한 여자 파트너의 신분과 이력이 적혀 있었고, 곧 그녀의 어떤 사실에 대한 세상에 남은 마지막 기록이었다.


그는 당시에 그녀에 대한 자료들을 모두 처리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을 본국의 정부에 넘기며 일을 마무리 했었다.


정치적인 대립국의 유능한 스파이로, 본국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혔던 걸출한 여자 요원이었던 자의 신분과 비밀을 약점삼아 정부에 포로로 잡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껴 풀어주기로 했고, 그 도주를 돕는 과정에서 공무원의 신분을 벗어버렸다.


지금은 사이좋게, 그간의 깊은 노하우로 쌓아올린 몇몇의 인맥과 기술로 다양한 일거리들을 외주받아 처리하며 떠도는 인생이었다.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 정세의 불안정성 속에서, 도리어 어딘가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유랑민의 신세가 차라리 시대의 흐름을 잘 타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세계의 정세와 사상은 그 기조가 아직 불안정했고, 거친 물길을 얇은 표면으로 잠시 가려둔 듯 앞으로 예견된 혼돈이 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남자는 자신의 삶과 처지에 나름의 만족을 느끼며 2년째 일을 계속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여성 파트너와 신뢰를 쌓아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다. 그러니까,


스파이로 활동했던 여성의 전적과 약점이 담긴 유일한 문서를 손에 들고 반쯤 협박하며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다. 남자는 거부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괴팍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어디 하나 나사가 빠져있었는지, 이렇게 문서를 통째로 날려버리고 말았다. 아마 충격에 다소 약한 작은 서류 금고에 따로 들어있었을 텐데, 폭발과 잔해가 아래로 떨어진 이상 종이 조각이 남아있을 확률은 적었다.


남자는 서류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마터면 목숨이 날아갈 뻔 했다.


“아쉽지만 그냥 평범한 청혼으로 만족해야겠군.”


정부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했을 때부터, 월급은 넉넉한 편이었다. 남자는 반지 정도를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행의 일은···


‘잘 모르겠다. 일단 가야겠어.’


관계자와 뒷수습을 할 공무원들의 인력 소모에 미안함을 느꼈지만, 잡힐 생각은 없었으므로 남자는 서둘러 흔적과 모습을 감추었다.


오늘은 처음부터 영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멀쩡한 은행 건물 하나만 지붕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다술에 있던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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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침묵했다. (첩보요원) 21.06.21 39 0 6쪽
33 글렌든. 진로갈등. 21.06.15 38 0 5쪽
32 묵시기사 21.01.24 45 0 10쪽
31 산 - 시나리오 14.07.15 21.01.23 47 0 11쪽
30 산 - 시놉시스 14.06.30 21.01.23 38 0 7쪽
29 의사이야기 16.07.25 21.01.23 34 0 11쪽
28 민정의 이야기 21.01.23 33 0 2쪽
27 로어(2) 21.01.23 30 0 11쪽
26 그대를 21.01.23 28 0 3쪽
25 로어 21.01.23 30 0 8쪽
24 술래잡기. 21.01.23 36 0 3쪽
23 누가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21.01.23 32 0 4쪽
22 갱생마검 21.01.23 33 0 10쪽
21 휘유 +1 21.01.23 36 0 4쪽
20 워니시카 엘프, 가위바위보 21.01.23 45 0 3쪽
19 와다다다다 21.01.23 53 0 1쪽
18 시계 21.01.23 25 0 4쪽
17 준과 윤수 21.01.23 26 0 4쪽
16 …… 21.01.23 25 0 6쪽
15 청년 21.01.23 25 0 6쪽
14 2010년 쯤이었었나? 21.01.23 20 0 16쪽
13 바람, 바람, 바람(리메이크) 프롤로그 21.01.23 16 0 5쪽
12 유르타(가제) 21.01.23 18 0 4쪽
11 던전 21.01.23 24 0 7쪽
10 겜판 : 일상균열日常龜裂 - 환생還生 21.01.23 20 0 5쪽
9 마지막이 복실이 21.01.23 20 0 5쪽
8 쾅! ! ! ! ! ! +1 21.01.23 21 0 3쪽
7 하일리시스 21.01.23 22 0 10쪽
6 혼음 - 서序 21.01.23 28 0 6쪽
5 레인 제이나는 찌뿌드드한 기분이었다. 21.01.23 28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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