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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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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41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0.05.04 21:30
조회
30
추천
2
글자
7쪽

의혹의 숲 (10) 로이

DUMMY

로이가 조용히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날은 깊었고, 여전히 비가 흙을 적시고 있었다. 로이는 해진 생가죽 부츠 너머로 질척거리는 흙을 느꼈다. 로이는 잡히는 대로 챙겨온 거적때기를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소년은 오래전 무너졌을 수도원 돌담 한구석으로 향했다. 벌써 이안은 그곳에 와 있었다.


이안은 돌담에 등을 기댄 채 비를 맞고 있었다. 그는 로이를 보자마자 말했다. “늦었잖아, 로이.”


“늦다니. 네가 너무 빨리 나온 거야, 이안.” 로이가 말했다. 파란 머리의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로이의 푸른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다. 세린이 보이지 않았다. “세린도 아직 안 왔잖아.”


“아니. 나 여깄어, 로이.” 돌담 뒤편에서 세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소녀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세린은 다른 아이들처럼 후드로 검은 머리를 가리고 있었다. 미처 가리지 못한 머리카락 끝이 빗물에 젖어 찰랑거렸다.


“로이도 왔으니 슬슬 가자.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말이야.” 이안은 손가락으로 돌담 너머를 가리켰다. 땅을 적시는 장대비 사이로 숲이 보였다.


“비도 오는데 괜찮을까? 수녀님께서 한동안은 숲에 들어가지 말라 하셨잖아.” 세린이 걱정스러운 투로 말했다.


이안이 말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그치, 로이?”


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기는 떠나기 전 로이에게 말했다. 숲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로이가 이야기했던 이는 아마도 이미 떠났을 거라고 말했다. 소년은 그의 말을 믿었다. “응, 아마도.” 로이는 지난날 숲에서의 기억을 애써 잊으려 했다.


아이들은 숲으로 향했다. 잎이 무성한 숲에 들어섰다. 무수한 나뭇잎들이 머리를 두드리던 장대비를 막아주었다. 숲에는 비가 나뭇잎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자욱했다. 숲에 들어선 후 로이는 줄곧 주위를 둘러보았다. 혹여나 그 사내가 있을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주위를 경계하는 로이 뒤를 세린이 천천히 따랐고, 그 두 사람 앞에 이안이 앞장섰다.


뒤따르던 세린이 입을 열었다. “정말··· 안전한 거 맞지?”


“물론! 괜찮을 거야. 딱히 위험한 짓을 하는 것도 아냐. 그저 영목을 보러 갈 뿐이니까.” 앞서가던 이안이 말했다.


불안감 속에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로이의 귓가에 이안의 말이 꽂혔다. ‘영목. 그래··· 영목.’ 그들은 영목을 찾기 위해 어둠 속에서 길을 나선 것이었다. 지난번 이안이 영목에 관해 말했었다.


지난날 이안은 헤드나 수녀와 웨스의 대화를 엿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에서 유독 이안의 귀에 꽂힌 말. 그것이 ‘영목’이더랬다. 지난 아침, 이안은 로이에게 영목을 찾으러 숲으로 가자고 했다. 로이는 숲에서 만났던 사내를 떠올렸다. 로이에게 숲은 불안하고 의혹이 가득한 곳이었다. 아라기는 그런 소년의 의혹을 없애주었다.


숲에 들어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세린이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고 가는 거야?” 세린은 불안감을 버리지 못한 듯했다. 나뭇잎 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로이는 뒤돌아 세린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에 적신 소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은 불안감 때문일지, 그저 빗물이 차가웠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아니, 그녀는 불안감에 몸을 떨고 있었다. 그것은 확실했다. 로이는 그런 소녀의 불안감을 떨쳐주고 싶었다. “나랑 이안은 매일 심심할 때면 숲으로 향했어, 세린. 너도 알듯이 말이야. 그러니, 숲은 우리 집처럼 훤히 꿰고 있지. 그치, 이안?” 로이가 말했다. 소년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앞서가던 이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라···?’


로이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붉은 머리의 소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로이는 목소리를 높여 이안을 불렀다. “이안? 어디 갔어? ···이안!” 소년의 목소리는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에 섞이며 울려 퍼졌다. 하지만 어떤 답변도 돌아오지 않았다.


로이는 다시 세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녀는 계속해서 불안에 떨고 있었다. 로이는 그런 소녀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세린. 우리가 이안을 놓친 걸 거야. ···아마도.” 로이가 말했다.


로이는 발을 더욱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년은 소녀를 이끌고 숲을 가로질렀다. 소년의 시선은 계속 주위를 살폈다. 혹여 그 사내가 이안을 데려간 것은 아닐까? 불안감이 다시 피어올랐다. 발밑에 질척대는 흙과 땅 위로 고개를 든 나무뿌리들이 로이의 발목을 잡아챘다. 점점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방울들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인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소년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소녀를 이끌었다. 소녀의 손은 불안으로 차 있었다. 어두운 나무 그늘 너머로 넓게 펼쳐진 들판이 보였다. 소년은 들판으로 뛰기 시작했다. 로이는 세린의 손을 놓친 것도 모른 채 들판으로 향했다.


들판 한가운데에는 거대하고 오래된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몰아치는 바람에는 비구름의 물방울이 섞여 있었다. 오래된 나무로 뛰어가던 로이는 마침내 세린의 손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세린! 빨리 와!” 로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소년의 시야에는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이안에 이어 세린마저 사라져버렸다.


로이는 다시 나무를 바라보았다. 나무를 향해 걸어갔다. 마른 이파리가 더덕더덕 붙은 오래된 나무 아래에 누군가 하늘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 아래의 정체불명의 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머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깜짝 놀라 소년은 뒤로 발걸음질 쳤다. 소년은 떨어진 머리를 바라보았다. 이안의 얼굴이 보였다.


로이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세린을 찾았다. 떨어진 목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은 다시 봐도 이안의 얼굴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이안이 이런 꼴이 됐지? 그래, 애초에 밤늦게 이런 곳에 온 게 잘못이었다. 로이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숲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거대한 손이 로이의 얼굴을 집어 들었다. 소년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하늘 높이 들어 올려졌다.


거대한 손이 로이의 목을 죄어갔다. 로이의 얇은 손이 거대한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썼다. 소년의 사소한 저항은 조금씩 사그라져갔다. 그렇게 로이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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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낯선 내방자 (2) 글라드 20.05.04 28 2 10쪽
12 낯선 내방자 (1) 린 20.05.04 18 2 9쪽
» 의혹의 숲 (10) 로이 20.05.04 31 2 7쪽
10 의혹의 숲 (9) 아라기 20.05.04 25 1 14쪽
9 의혹의 숲 (8) 하인츠 20.05.04 28 1 11쪽
8 의혹의 숲 (7) 프리아 20.05.04 36 1 10쪽
7 의혹의 숲 (6) 아라기 20.05.04 40 1 16쪽
6 의혹의 숲 (5) 글라드 20.05.04 40 1 10쪽
5 의혹의 숲 (4) 하인츠 20.05.04 46 1 14쪽
4 의혹의 숲 (3) 프리아 20.05.04 44 1 12쪽
3 의혹의 숲 (2) 아라기 +1 20.05.04 94 2 21쪽
2 의혹의 숲 (1) 로이 +1 20.05.04 205 2 17쪽
1 제1부 빛바랜 기사 프롤로그 +1 20.05.04 4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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