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수호자의 노래

수호자의 노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정상호
작품등록일 :
2020.05.04 01:40
최근연재일 :
2022.03.19 23:5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3,525
추천수 :
125
글자수 :
397,167

작성
21.02.13 23:50
조회
57
추천
1
글자
7쪽

안개빛 희극 (1) 하인츠

DUMMY

“라크타에 어서 오십시오!” 안개협곡의 성주 메드렐 카반케가 안개 너머에서 말했다.


라크타 성의 도개교가 천천히 내려왔다. 하인츠는 끝없는 일행을 향해 수차례 손짓했다. 옌드리케를 넘어 라크타에 도착한 병사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보였다.


도개교 너머로 거대한 성문이 보였다. 성문 양옆으로 드높은 성벽이 뻗어갔다. 커다란 성곽은 안개로 자욱한 라크타의 자랑이었다. 그 성곽은 북부로 이어지는 거대한 입구인 안개협곡을 굳게 잠가주었다. 덕분에, 프레이 이후 대초원에 내려온 북부의 산악 부족은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라크타의 성주 메드렐의 자부심은 누구보다 강했다. 내려온 도개교를 따라 메드렐 카반케의 얼굴이 보였다. 성주는 병사를 이끌고 다리를 건너던 하인츠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메드렐 경이 작게 절했다. 하인츠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손을 건넸다. “반갑소, 안개협곡의 관리자여.”


성주는 대장군의 손을 흔쾌히 쥐었다. “환영하외다, 새로운 대장군이시여.”


“제 이야기가 벌써 이곳까지 흘렀군요.” 하인츠는 겸연쩍어하며 말했다.


“새로이 대장군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은 이미 전서구에게 전해 들었소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북부에서 일어난 혼란과 프레이루엘에서 오는 진압군의 소식도 함께 전해주었소.” 메드렐이 말했다.


“참으로 영광인 일이군.” 하인츠는 지레 겸손을 떨었다.


도개교 위로, 대장군과 성주 옆으로 병사들이 지나갔다. 병사들 사이로 헤스마르 케멜과 같은 기사들도 섞여 있었다. 전장을 앞둔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하인츠와 메드렐도 그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거대한 요새로 이어졌다. 라크타는 커다란 성벽과 협곡으로 둘러싸인 요새였다. 자연이 만들어낸 커다란 장벽은 실로 놀라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훌륭하게 가꾸어진 요새의 내부 모습이었다.


짙은 안개는 요새의 위엄에 사라진 듯, 내부에는 안개가 적었다. 덕분에 하인츠는 요새의 광경을 오롯이 볼 수 있었다. 높은 탑과 건물들이 즐비했고, 모든 탑에는 얇게 눈이 덮여 있었다.


“훌륭한 요새로군.” 하인츠가 감탄했다. ‘생각보다 편히 지낼 수 있겠어.’


“편히 지내십시오, 하인츠 공.” 메드렐이 하인츠의 생각을 들여다본 듯 말했다. “이곳은 수백 년간 침략을 허용하지 않은 라크타의 장벽이외다. 제아무리 모한 바르도나가 위대하고 무시무시한 지휘관이라 할지라도, 쉬이 이곳을 함락하지 못할 것이오.”


“그대의 말대로요.” 하인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쉽게 끄덕인 고개와 달리 머릿속에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어서 병사들을 안으로 들이시지요.” 메드렐이 손짓했다. “라크타는 수천의 병사를 먹여 살릴 만큼, 식량이 충분히 저장되어 있소이다. 물론, 대장군 각하를 위한 거처도 있지요.”


이른 밤을 알리듯,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어갔다. 하늘은 얇은 안개에 가려졌음에도, 검붉은 노을은 훤히 보였다. 하인츠는 겨우 고개를 내민 작은 달을 올려다보며, 성벽에 다다르는 계단을 올랐다.


지휘관의 막사는 라크타의 성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드높은 성벽 위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전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짙은 안개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성곽 위에 마련된 막사는 생각보다 컸다. 천막에는 안개협곡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안개협곡의 상징으로 안개빛 성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두 개의 문장이 있었다.


협곡의 옛 주인인 라크타 가문의 문양은 검붉은 피가 묻은 방패와 검이었다.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걸려있었는지, 겉보기에도 낡고 빛바래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카반케 가문의 상징이 있었다. 카반케 가문의 문양은 안개빛 여우였다.


막사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로 낡은 지도가 보였다. 탁자에는 메드렐 카반케가 있었다. 그는 탁자에 양손을 올린 채 대장군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지리를 그려놓은 것이외다.” 메드렐이 말했다.


하인츠는 고개를 숙여 탁자를 바라보았다. 라크타 성은 거인의 강 끝에 겨우 자리 잡았다. 라크타 주변으로 거대한 산맥이 있었고, 산맥 가운데로 좁은 협곡이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산맥 너머에 커다란 숲이 보였는데, 옴브린 숲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반대편 산맥 너머로 북부의 일부분이 보였다. 카라시른, 모한 바르도나가 습격을 시작한 요새도 보였다.


하인츠는 지도에 그려진 경치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하인츠에겐 좁디좁은 협곡, 유서 깊은 거대한 성곽이 있다. 맘먹고 방어에 힘쓴다면, 라크타는 아버지라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요새였다.


그렇지만, 오롯이 방어만 할 수는 없었다. 하인츠가 이끄는 군사는 진압군이었다. 모한 바르도나가 북부에서 활개 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떠오르는 전략이 있으시오리까?” 메드렐이 물었다.


“···아마도.” 하인츠가 조용히 대답했다. 머릿속에 그려진 하인츠의 전략은 가볍게 밖으로 뱉어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흠.” 메드렐은 팔짱을 꼈다. 메드렐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했다. “라크타는 최고의 요새이외다. 이런 훌륭한 요새를 잘 이용하시길 바라외다.”


그 말을 남기고 메드렐 카반케는 막사에서 사라졌다. 하인츠는 탁자에 앉아 잠시 생각을 이어가려다,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머리가 어지러워진 하인츠는 맑은 공기를 위해 막사 밖으로 향했다.


하인츠는 성벽 위에 깔린 적당한 의자에 앉아, 뿌연 안개 너머를 바라보았다.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군.” 대장군은 혼잣말을 중얼댔다.


정말 코앞이었다. 오랫동안 떠나왔던, 익숙하지 않은 전장이 눈앞에 있었다. 멀리서 보기만 했던, 전설과도 같은 존재가 이끄는 반란군은 아마도 안개 너머에 있을 것이었다.


“여기 계셨소, 나리?” 헤스마르 케멜이 다가오며 말했다.


하인츠는 잠깐,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표정을 바꾸어 헤스마르를 맞이했다. “무슨 일이오, 헤스마르 경.”


헤스마르 케멜은 성벽에 발을 올리며 자세를 취했다. “아무 일 없소. 그냥, 단지 걱정이 돼서 말이요.”


대장군은 작게 콧방귀를 꼈다. “그대도 걱정이라는 것을 하다니, 새삼 친근하게 느껴지는군.”


“대장군 나리에 관한 걱정이오. 제대로 군사를 이끌 수나 있겠소이까?” 헤스마르 케멜이 무례하게 말했다.


충분히 무례한 언사였지만, 하인츠는 전혀 짜증 내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 머릿속에도 충분히 계책이 있으니.” 하인츠는 속에 품은 마지막 술수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헤스마르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뭐, 별다른 술수가 없다면 내게 물어보시오, 나리.” 헤스마르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시 성벽 위에는 하인츠만이 남았다. 자신만만했던 하인츠였지만, 머릿속에는 부담감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전략을 갈구하는 걱정이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려진 위험한 전략을 위한 걱정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수호자의 노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24년 4월 27일 휴재 공지 NEW 22시간 전 1 0 -
공지 2024년 4월 20일 휴재 공지 24.04.19 1 0 -
공지 2024년 4월 13일 휴재 공지 24.04.12 1 0 -
공지 2024년 4월 6일 휴재 공지 24.04.04 1 0 -
공지 2024년 3월 30일 휴재 공지 24.03.29 1 0 -
공지 2024년 3월 23일 휴재 공지 24.03.23 1 0 -
공지 2024년 3월 16일 휴재 공지 24.03.15 1 0 -
공지 2024년 3월 9일 휴재 공지 24.03.09 2 0 -
공지 2024년 3월 2일 휴재 공지 24.03.02 1 0 -
공지 2024년 2월 24일 휴재 공지 24.02.23 1 0 -
공지 2023년 6월 24일 휴재 공지 23.06.23 3 0 -
공지 2023년 6월 17일 휴재 공지 23.06.16 6 0 -
공지 2023년 6월 10일 휴재 공지 23.06.09 4 0 -
공지 2023년 6월 3일 휴재 공지 23.06.02 5 0 -
공지 2023년 5월 27일 휴재 공지 23.05.26 2 0 -
공지 2023년 5월 20일 휴재 공지 23.05.19 5 0 -
공지 2023년 5월 13일 휴재 공지 23.05.12 2 0 -
공지 2023년 5월 6일 휴재 공지 23.05.06 7 0 -
공지 2023년 4월 29일 휴재 공지 23.04.28 6 0 -
공지 이야기를 읽으시기 전에, 드리는 이야기 +2 20.05.05 120 0 -
공지 제1부 빛바랜 기사 연재 공지 20.05.04 63 0 -
80 마지막 장작 (9) 에리크 22.03.19 20 0 12쪽
79 마지막 장작 (8) 하인츠 22.02.26 14 0 12쪽
78 마지막 장작 (7) 아라기 22.02.19 16 0 8쪽
77 마지막 장작 (6) 하란 22.02.12 14 0 7쪽
76 마지막 장작 (5) 로나트 21.11.13 26 0 8쪽
75 마지막 장작 (4) 글라드 21.10.09 15 0 7쪽
74 마지막 장작 (3) 아라기 21.09.04 25 0 7쪽
73 마지막 장작 (2) 린 21.08.07 17 1 7쪽
72 마지막 장작 (1) 에리크 21.07.17 17 1 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