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도시 - [3]
둘은 여관에 들어갔다. 입장하자마자 점원이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방이 필요하세요, 아니면?"
봐라네가 대답했다.
"식사만 할 거예요. 전 볶음밥 하나... 아수 씨는요?"
샤는 가격표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게 없었다. 이리저리 가격표가 어디 있나 찾느라, 샤는 무심결에 또 봐라네의 말을 무시한 꼴이 돼버렸다. 스스로는 자각이 없어서 멍하니 있었고, 봐라네만 흑마법사 정신병자설을 되새기며 물었다.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뭘 파는지 안 보이는데..."
"그냥 아무거나 말씀하시면 만들어줘요. 저기요, 언니. 여기 요리 뭐 잘해요?"
점원은 다 잘한다고 주장하여 샤를 혼란시켰다. 봐라네가 특히나 잘하는 게 뭐냐고 재차 물어서야 겨우 국수가 잘팔린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샤는 그걸로 달라고 했다.
"볶음밥 동전 서른 닢, 국수 동전 스무 닢이에요."
샤는 묵묵히 은전 하나를 내밀었다.
"잔돈 거슬러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원이 음식을 준비할 동안 샤는 속으로 방금 치른 계산을 헤아려보았다. 게임에서의 화폐단위와 여기서의 단위가 꽤나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그걸 생각하느라 침묵하고 있는데, 봐라네가 문득 말했다.
"아... 죄송해요."
"왜?"
"제 요리가 더 비싸네요. 딴 거 시킬게요."
"아니, 신경쓸 거 없다."
그리 대답했지만 봐라네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가문에서 종살이할 때도 가주는 얻어먹는 주제에 비싼 거 시키지 말라며 상하서열을 정립하려 했었다.
곧이어 자리에 앉을 차례였다. 식탁과 의자는 예상외로 깨끗했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생겼다. 옆에 같이 앉기는 당연 불편하고, 마주 앉기도 썩 편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식탁은 네 명이서 앉도록 배치돼있다.
샤는 대각선 거리로 앉고 싶었지만, 이미 앉은 상태에서 옆으로 옮겨앉아 억지로 거리를 벌리는 건 등신 같을 게 분명했기에, 봐라네가 먼저 앉도록 기다렸다. 그녀가 먼저 앉은 다음에 자기가 대각선 자리에 앉으면 될 테니까. 반면 봐라네는 얻어먹는 처지에 떡하니 먼저 앉는 게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해서 그대로 서있었다. 결국 둘이 멍하니 서있자 점원이 나서야했다.
"아무 자리에나 앉으시면 돼요."
"그건 아는데...."
봐라네가 난감해하자, 결국 샤가 말했다.
"음... 숙녀 먼저."
"아, 예. 감사합니다..."
뭐가 감사한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건 자리에 앉는 데만 삼 분이 쓰였다. 결국 샤가 대각선 자리를 손에 넣는 데 성공한 뒤 음식이 나왔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라 감회가 새로워서인지, 맛이 있었다. 생각보다는 말이다.
다 먹고 난 뒤, 샤가 점원에게 물었다.
"변소는 어디지?"
"나가시면 저 뒤쪽에 있어요. 안내해드릴게요."
점원을 따라 가보니 작은 건축물이 하나 있었다. 샤는 그 안에 들어간 순간,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사실을 알아챘다.
"휴지가 없는데?"
"휴지라니요?"
점원은 너무 의문쩍은 듯이 되물었다. 샤는 일순 당황했다가, 이런 시대에는 휴지가 보편적인 물건이 아닐 터이므로 그 단어 역시 보편적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처리할 종이 말이다."
"종이로 뒤처리를 해요? 아, 들어본 적 있어요. 부잣집은 비단이나 종이로 그런다죠... 죄송한데 우리 여관은 마부 혹은 몇몇 순례자들을 상대로 영업해요. 종이처럼 비싼 물건은 없어요."
절망적인 말이었다. 샤는 온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걸 겨우 견디어내며 물었다.
"그럼 뭘로?"
"뭘로라니요? 아, 뒤처리요? 그거야 물이랑 지푸라기로 하죠."
"물과 지푸라기?"
"예, 뭐 사실 부잣집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다 그러지 않나요? 종이보다야 더 깔끔할 텐데. 그런데 과연 귀족은 귀족인가봐요. 손님 처음에 보고 딱, 와, 귀족처럼 생겼네, 싶더라니 진짜 상상 속 귀족처럼 행동하시네. 아, 비웃는 건 아니고요..."
그 뒤로도 점원은 뭐라뭐라 말하더니 씩 웃으며 가게로 돌아갔다. 혼자 남겨진 샤는 물이 가득 찬 화장실 양동이를 보고, 문화적 충격에 이어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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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왕국의 전 궁성마법사, 하지는 죽기 전 최대한 많은 마법기를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 광검, 마탁차 등의 전쟁용 마법기들은 물론 비행선에 이르기까지. 특히 광검에는 온갖 자잘한 마법들이 걸려있는데, '통신(通信)' 기능도 광검에 부여된 마법 중 하나다.
"너버스 오간입니다. 아솔 장로님이시죠?"
무언가의 빛으로 빛나고 있는 광검에 대고 너버스는 공간 너머의 상대와 대화했다. 광검에서 아솔 장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그래요. 오간 전하십니까. 별 일 없습니까?'
"알다시피 저번에 별 일 있었습니다."
'네크로팰리스의 소멸 말이지요....'
공간 너머의 목소리는 쓰게 한숨 쉬더니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전하의 이후 행보에 대한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너버스는 환호했다. 왕자가 위험한 일을 목격했으니 이제 혼자 무사수행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리라는 예상이 들어맞은 모양이었다. 이 해외여행이 지긋지긋해서 얼른 본국으로 귀환하길 희망하던 그는 기대를 숨기지 못한 채로 물었다.
"저는 이만 성왕국으로 귀환하는 건가요?"
'뭘 그리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는데, 아닙니다. 수행은 계속되어야 해요.'
"하지만 성왕국의 왕자가 혼자서 나돌아다니면... 흑마법사들의 일순위 표적이 될 텐데요. 지금까지 잠잠했던 것은 암흑마도성과 성왕국의 휴전 때문이었지만, 곧 그게 깨질지도 모르잖습니까?"
'혼자가 아니면 되지요. 차원문을 여세요.'
"아, 네."
너버스는 속으로 욕설을 지껄이며 경전을 꺼내 바닥에 문양을 그렸다. 그러곤 경전을 꺼내들고 줄줄 읽어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한 시간이 지나자 허공에 시퍼런 에너지가 생길락말락했다. 너버스는 경전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자 시퍼런 에너지는 마침내 선명해졌다. 이후 푸른 에너지의 질량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그 주변 공기가 불타오르는 것을 끝으로, 푸른 에너지는 사람 두 명이 드나들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차원문이 완전히 열린 것이다.
곧 차원문에서 고무바퀴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마탁차(摩托車)에 올라탄, 전신갑옷에 투구까지 착용한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기사 다음으로도 다른 기사들이 차례차례 수천 킬로미터의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차원문을 통과해오기 시작했다. 결국 여섯 명이나 되는 성왕국 기사들이 나온 뒤에야 차원문은 닫혔다.
나타난 성기사들은 마탁차에서 내리며 합창했다.
"데드라께 영광을."
너버스도 얼떨떨해하며 마주 읊었다.
"데드라께 영광을."
아솔 장로가 인사했다.
"그간 여행길 편안하셨습니까, 전하."
"아, 예. 덕분에요. 장로님. 그런데 여러분이 왜? 설마 저 하나를 호위하려고요? 그러려면 둘이면 충분할 텐데요. 여섯이나 되는 성기사들을 겨우 호위병으로 쓰는 것은 좀...."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해외에 파견된 것은 다른 임무를 위해서예요. 그 임무에 전하께서 동참하게 되시는 겁니다."
뭐 결과적으로는 호위하는 꼴이 되겠지만, 하는 말을 너버스는 마음속으로 느꼈다. 진짜배기 성기사들 틈에 너버스가 끼어봤자 임무 난이도만 높일 테니까. 수습기사였다면 정식기사들의 식사를 마련하거나 여관을 잡아주는 등의 잔일거리라도 도맡겠지만, 너버스도 일단은 정식기사인 데다 왕자이니 잠자코 있어야한다.
"이렇게 되는 걸 아버지께서도 아시는 건가요?"
너버스가 묻자 아솔 장로는 쉽게 대답했다.
"굳이 폐하께 보고드려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해외의 기사들은 제 지휘에 놓입니다. 결국 전하를 어떤 임무에 포함시킬 것인가는 제 재량이에요. 물론 오늘 정기보고 때 보고드릴 것입니다만은.... 그런데 전하의 투구와 마탁차가 보이지 않는군요?"
"관청에 맡겨서...."
안면이 투구에 가려졌기에 단장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사들 사이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는 분명했기에 너버스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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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토끼와 거북이가 싸웠는데 거북이가 졌어요.
왤까요?
거북이가 속이 거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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