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도시 - [4]
그때 마침 숲에서 나와 치안대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마을에 들던 성기사, 너버스는 짙은 석유냄새를 감지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경비대원들에게 지시했다.
“경비대분들. 모두 절 따라오시고, 한 분은 성에 가서 병사들에게 대기하라 이르십시오.”
병사들 역시 정체불명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성 쪽으로 뛰어간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고약한 냄새의 핵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전진해나갔다.
너버스는 이 냄새를 성기사단에서 숱하게 맡아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연상되는 존재, 마왕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늑대 떼를 만난 게 행운이었어!’
물론 석유라고 해서 무조건 마왕일 리는 없다. 그보다는 마왕을 동경하는 어떤 흑마법사의 마법적 현상이거나, 성기사들이 타고 다니는 마탁차가 터졌을 확률도 있다. 하지만 이 관문도시 바로 위에 네크로팰리스가 봉인된 암흑서리 설원이 있으므로, 너무나도 불길했다.
“이 역겨운 냄새는 대체 뭡니까?”
경비대장이 짜증을 내며 물었다. 너버스는 잘 떼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대답했다.
“석유... 어쩌면 흑마염동.”
“흑마염동?”
“예. 마왕하면 떠오르는 그거죠.”
경비대원들은 슬그머니 서로의 눈치를 봤지만, 그래도 무리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총 스물세 명의 경비대와 성기사는 힘겹게 나아갔다.
경비대보다도 힘겹게, 너버스는 땀까지 흘리며 전진했다. 갑옷 속으로 땀이 축축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너버스는 반쯤 탈진한 채로 냄새의 근원지에 도달했다.
그들의 눈에 보인 것은 공중에 떠 괴로워하고 있는 마흔 명과, 웬 검은색 일체의 존재였다. 보나마나 그가 흑마법사다.
너버스는 광검을 빼들었다. 정신을 집중하며 입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자, 푸른빛의 칼날이 검신을 타고 뿜어졌다. 광검을 움켜쥐며 너버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흑마법사 샤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시당한 셈이었지만 너버스는 화낼 수도 없었다. 다만 연이어서 물었다.
“저기 위에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은 누굽니까?”
샤는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너버스를 바라봤다.
샤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죽이지 않았다. 그건 샤가 특별히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을 쥐똥만큼도 신뢰하지 않는 탓이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충동 또한 신뢰하지 않았기에 샤는 지금 느껴지는 살인충동을 가치 없게 생각했다.
‘갑자기 막강한 힘을 얻은 병신의 과시적 표출욕망이겠지. 복권 당첨된 졸부가 사치품 사들이지 못해 안달이듯이....’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하면서도 샤는 이 상황에 긴장하고 있었다. 진퇴양난. 그리 표현할 수 있으리라. 염동력을 풀어주기는 뭐하지만 계속 괴롭히고 있기도 뭐한 심정이다. 그런데 때마침 정의로워 보이는 성기사가 나타났다.
“무슨 분노를 느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을 풀어주시오. 아니면 이들과 무슨 원한이 있으신지 설명이라도.”
샤는 염동력으로 붙잡고 있던 사람 중 한놈을 땅에 떨어뜨렸다. 쾅 하고 수 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그는 부들부들 떨며 괴로워했다.
샤는 그자를 노려봤다. 그자는 샤의 시선을 이 상황을 설명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온몸을 가리고 있어서, 나병환자인 줄 알고...”
“나병환자인 줄 알고, 그 다음은?”
“돌팔매를....”
기가 막혔다.
“나병환자에게 왜 돌을 던집니까?”
“옮기니까...”
“미쳤군요, 아주.”
성왕국에서는 벌어지지 않을 몰상식한 행위에 너버스는 혀를 찼다. 역시 선배들이 해준 말은 다 개소리였다. 외국(外國)은 완전 원숭이 소굴이라더니, 그렇지 않잖은가. 원숭이 소굴에서 기대할 수 있는 털을 솎아주는 정다움과 청결함 따위가 여기에는 완전히 결여돼있으니까. 또한 원숭이들은 분명 눈이 있다. 그런데 이 멍청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저렇게 ‘나는 굉장히 위험한 흑마법사요’라고 알려주듯 차려입은 남자에게 무슨 생각으로 돌을 던진단 말인가. 미쳤거나 눈깔이 삔 둘 중 하나가 틀림없었다.
“부적을 팔고 있는 꼴이 딱 수상한 나병환자 꼴이었어요. 정말입니다.”
그리 변명하듯 애원하는데, 애원을 해서 뭘 어쩌길 바라는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너버스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좌판이 넘어진데다 부적이 저 멀리 날려간 개판이었다.
저 참상에 방금 들은 정신 나간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들은 얌전히 부적을 팔고 싶어 하는, 척 보기에도 너무 위험한 흑마법사에게 돌을 집어던지며 괴롭히려들었다는 소리가 된다. 결국 그들을 모두 눈이나 뇌 중 한 쪽이 굉장히 안 좋은 걸로 해석하기로 한 너버스는 사정조로 말했다.
“용서해주십시오. 범속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품에서 꺼낸 금화 한 뭉치를 내밀며 말했다.
“성의표시랄 만한 것은 못 됩니다만.... 애초에 벌고자 하셨을 만큼은 될 겁니다.”
샤는 무표정하게 기뻐하며 금화를 받아들었다. 그다음 뒤돌더니 골목길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가 사라졌다. 뒤이어 염동력에 묶여있던 사람들이 쾅쾅 떨어져 내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흑마법사가 사라진 후 너버스는 한숨 쉬며 호흡을 골랐다.
금화 한 뭉치면 근사한 점포도 낼 수 있다. 묵돈이 한 순간에 빠져나간 셈이었으나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감이 느껴진다. 다행히 마왕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까 말이다. 얌전히 장사나 하려던 것을 보니, 아마 마왕을 동경하여 자기 심상세계에 그 비슷한 마법을 만들어낸 흑마법사쯤 되는 모양이었다.
“뭐 돈이야 이곳 영주에게 청구하면 받을 수 있을 테고.”
너버스가 그리 중얼거리자 땅에 널브러져있던 사람들은 기겁해 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사정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우린 영주한테 맞아 죽는다, 살려 달라 어째 달라 등등. 그들을 보며 너버스는 진절머리가 났다.
너버스는 짜증내며 일단 성기사단에 연락하기로 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혹시 모르니 암흑서리 설원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네크로팰리스가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해달라 하기 위해서.
그 요청에 따라 파견된 성왕국 조사단은 암흑서리 설원에서 흰 벌판만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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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를 덥석 받아들었던 샤는 마을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직후 바로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째야할지 스스로도 몰라 끙끙대는 상황에서 성기사가 등장해 ‘이놈들이 잘못했고 당신은 피해자다. 여기 보상을 받으라’며 금화까지 준 상황은 그에게 희열을 안겨줬다. 처음에는 말이다.
금화도 생긴데다 아까 자신이 구해준 사람이 자길 도와줬다는 것은 선한 일을 했더니 보답을 받았다는 걸로 해석이 됐었다.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그러나 좀 침착해지고 느낀 바로는 스스로가 정말 못나게 굴었을 뿐이었다. 잘못은 딴 놈들이 했는데 보상은 애꿎은 소년에게서 받은 꼴이라니.
자기비하가 절로 든다. 서글프게 걸으며 샤는 방금 전 상황에 대해 고찰했다.
‘대체 나는 어떻게 행동했어야했나.’
염동력으로 무력화시킨 그 악한들을, 그대로 죽여 버렸어야했나? 그러면 카타르시스는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갑자기 힘을 얻었답시고 인륜이고 뭐고 없이 날뛰는 개자식이 되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아니면 쓸데없이 염동력 따위도 발현하지 말고, 얌전히 돌만 맞다가 도망쳐왔어야 했나? 비폭력적으로? 상식적으로 그건 너무 비참하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에는 양극단의 사이에서 샤가 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던 셈이다. 방금 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 하더라도, 더 나은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 샤는 알지 못했다. 결국에는 상황이 문제였고, 이런 상황이 당연시되는 시대가 문제였다.
‘빌어먹을 중세.’
불평하면서도 샤는 장차 이번 일이 교훈이 되리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어쨌건 한시라도 급히 저 빌어먹을 소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샤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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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붉은귀거북이 왜 붉은귀거북이라 불리는지 아나요?
귀 붉어질 만큼 거북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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