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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생강 님의 서재입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스모킹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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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생강
작품등록일 :
2021.09.1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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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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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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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영 -프롤로그

DUMMY

“인영아, 숨 쉬는 것 괜찮아?”


인영은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친구, 성격이 참 좋은 것 같더라.”


그제야 인영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어머니, 저랑 있는 게 좋아요?”

“자기 자식 싫어하는 엄마가 어디 있어. 엄마는 인영이랑 있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지.”

“어머니, 저하고 멀리 가서 둘이서만 살까요?”


어머니가 인영을 한참을 바라보며 인영이 말 속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인영은 그런 어머니의 시선을 살짝 외면했다.


“인영아, 엄마는 인영이가 그래도 아버지 근처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인영아, 무슨 일이 있니?”


고개를 가로 젓는 인영을 보고 어머니는,


“에구, 인영아 오늘 엄마도 하루 쉬어야겠다.”

“아니에요. 집에서 잠을 자고 쉬면되니까. 어머니는 출근하세요.”


늦은 오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는 어머니를 인영은 괜찮다고 단호히 밀어내었다.


“쾅!”


위층 집 문 닫는 소리가 크게 들려 인영은 눈을 떴다.

집 앞을 지나 조금은 느린 걸음인 듯 누군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 소파에서 누워 잠깐 잠들었나보다.


혼자다.

현관문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느릿느릿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방에는 침대와 책상이 빈틈없이 들어 가 있다. 가구들 사이로 방바닥이 빼꼼히 보인다. 창을 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방 안 한가득 불어 들어왔다. 인영은 무엇을 찾듯이 시선을 한 곳에 고정했다.


“아직인가?”


책상 의자를 높이고 창틀에 팔을 얹어 그 위에 머리를 뉘였다.


시선 끝에는 산자락 끝에 거의 가려져 보일 듯 말 듯 주택 하나가 있다. 집은 산에 거의 가려져 있지만 마당은 인영의 방에서 잘 내려다 보였다.

아마 주택의 마당을 볼 수 있는 곳은 인영이 사는 라인에 인영의 방 창문 높이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달 전이었다.

그 날은 이삿짐 정리가 끝나 어머니가 출근을 시작한 날이고 인영이 다시 혼자 저녁을 보내기 시작한 날이었다.


갑갑함에 찬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약간 추울 것 같았지만 방 창을 처음으로 활짝 열었다.

애기 연두 빛 산과 새 생명의 움을 품은 들녘은 머금었던 햇빛을 마지막으로 어둠에게 던지고 어둠속으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아!”


인영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모든 것이 빛을 잃어가는 시간이 제 빛을 찾아가는 시간임을 아는 초승달이 산자락 끝 주택의 지붕위에 걸릴 듯이 떠 있었다.


그 곳은 다른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집 공기를 마시면 달빛처럼 공기와 섞여 부유할 것 같았다. 인영은 한참을 달이 그 집 뒤로 제 모습을 완전히 감출 때까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 다음 날은 조금 더 통통한 달이 정원이란 말보다는 마당이 어울리는 그 집 마당을 비췄다.

마당은 겨울이 가시지 않아 나뭇가지를 그대로 드러낸 나무들과 몇몇 상록수들이 담을 따라 둘러져 있었다.

한쪽 구석엔 농구골대가 있고 집 현관과 인접한 곳에는 야외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날은 테이블에 사람이 있었다. 인영이 아는 일반적인 어른보다 덩치가 큰 어른이었다. 외국인 같았다. 그의 태도는 무언가 느긋한 여유와 품격이 느껴졌다.

그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는 망원경을 설치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망원경에서 시선을 떼고 허리를 펴는 그는 앉아있는 외국인에 비해 호리호리한 장신의 젊은 남자였다.

앉아있는 이는 정확히 백인인 듯 했지만, 서 있는 사람은 동양인이 가지기 힘든 이목구비이지만 어딘가 동양적인 느낌이 잔뜩 배어 있는 느낌이었다.


‘혼혈인가?’


풍채가 남다른 백인이 무언가 크게 웃으며 그 젊은 남자의 뒤로 돌아가 팔로 목을 걸며 10대 남자아이들이 할 만한 장난을 건다.


‘아버지와 아들인가 보다.’


인영은 두 사람이 보이는 친밀함에 부자지간으로 생각되었다.


‘어머니가 한국인인가 보네.’


두 부자는 망원경을 번갈아 보며, 장난 또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이후 인영은 더 이상 초저녁에 달을 볼 수 없어도 마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두 부자를 몰래 만나기 위해 창을 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당으로 나오는 두 부자는 열띤 토론 중이었다.

이번에도 아버지로 보이는 백인이 아들로 보이는 이를 설득하는 듯하다.


“큭큭, 큭.”


인영은 턱을 괸 채 웃기 시작했다.


‘이봐요. 또 아버지 이야기 안 듣고 그러다 또 물세례 받아요.’


지난주는 앞서 나온 아들을 뒤따라 나온 아버지가 열띠게 이야기 하다가 전혀 받아 줄 생각이 없는 아들을 벌주려했나 보다. 마당의 물 호스로 아들에게 물을 뿌려대었다.


“쟈니!”


아들의 큰 비명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그 때 인영은 정말 크게 웃었다. 다 큰 남자들의 어린애들 같은 장난이 낯설기도 했지만 달콤한 봄꽃향이 깊게 밴 밤공기 속에 유쾌한 봄날의 깃털 같은 간질거림이 있었다.


초승달이 집 지붕에 걸리기 시작했다.

백인 남자가 갑자기 셔츠를 벗고 농구공을 가져왔다.

백인 남자는 큰 덩치에 비해 매우 빠르고 빈틈없는 수비를 했다. 젊은 남자는 전혀 틈을 보이지 않는 백인 남자 때문에 고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멀찍이 공을 드리블하며 젊은 남자가 서있고, 아버지인 듯 보이는 백인남자는 젊은 남자를 도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었다.


“어?”


갑자기 인영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젊은 남자가 갑자기 그 자리에서 뛰어 땅을 박차고 점프하며 도약했다.

젊은 남자는 백인의 머리 위보다 훨씬 높이 솟구쳐 올라갔다.


남자는 달도 뛰어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허공에서 휘젓는 두 다리는 원래 그렇게 걸을 수 있다는 듯 남자를 더 솟구치게 했고 달은 남자의 아래에 있었다.


인영은 두 눈을 힘껏 감았다가 힘껏 다시 떴다.

농구공을 든 남자는 여전히 공중에서 농구골대를 향해 다리를 저어 가고 있었다.


◇ ◆ ◇



“저 그림의 달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래. 우리가 보통 보는 모양이 아니잖아?”


수진은 다른 관람객에 방해가 될까봐 소곤거리며 동의를 구하듯 인영을 바라본다.


“어, 어어.”


인영은 수진의 목소리에 과거회상에서 헤매던 정신이 소환되고 있음을 느꼈다.


수진이 가리키는 그림에는 초승달밑에 두 남녀가 있었다.


“초승달은 저런 모양이 될 수 없고 초승달은 초저녁에 뜨는데 적혀있는 시간은 한밤중이라는 거야. 그래서 저건 월식이 일어나는 밤을 그린거래.”

“그런데 왜 그림 제목이 월하정인이야?”

“신윤복이 그린 그림들은 남녀상열지사 쪽이거든. 저 그림도 한밤중에 밀회하는 두 남녀를 그린 그림이라는 거야.”

“오오∼. 근데 나는 왜 밀회하는 그림으로 보이지 않지? 월식이 일어나는 것도 낭만적인 느낌은 아니고. 여자 얼굴이 내키지 않는 얼굴인 것 같은데.”


더 이상의 말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무언가 숨겨진 일을 재촉하지 못해 짜증이 난 듯 보여 저 남자. 꼭 비밀스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목격 그림 같은데.’


찜찜하게 개운치 못한 기분으로 다시 걸음을 옮겨 이층으로 올라갔다.


수묵 담채화인 산수화에 비해 신윤복의 풍속화는 원색감이 느껴졌다. 여성들의 치맛자락은 과장이 덧붙여진 것이 아닐까 할 만큼 풍성했다. 남녀상열지사를 다뤘다는 수진의 말처럼 중심 주제는 화류계 여인들과 수작을 거는 남자들이었다.


‘참 한결같은 주제네. 원래 화가들은 이렇게 한 가지에 꽂힌 듯이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관람 줄이 다른 곳과 달리 좀 정체되어 대열이 흐트러졌다. 그 곳에는 약간은 다른 그림이 있었다.


“미인도란 그림인데, 신윤복의 정인이었을지도 모른대.”


인영의 시선이 닿은 곳을 보고 수진은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듯이 소곤소곤 거린다.


정갈하게 빗질된 가채에 윤기가 어려 풍성해 보인다. 수진은 작은 키 때문에 까치발로 미인도를 조금이라도 잘 보려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본다.


인영은 굳이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서 함께 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시선을 중앙 전시대로 돌렸다.

흠칫 갑자기 몸이 놀란 반응을 했다.


작은 그림이 인영의 눈동자를 가득 채워왔다.


칼을 든 두 기녀가 칼의 합 이후 빠르게 뒤로 물러서고 있다.

한껏 참았던 숨을 내어 뱉으며 물러서는 버선발에 푸른 치맛단 자락이 감겨든다. 악기 소리가 귀에 울리고 악기 소리 인양 두근두근 빠르게 뜀박질 하는 심장의 진동이 느껴진다.

땀이 송글 맺혔던 이마에 바람결이 느껴지고 칼날에서 반사되는 빛과 함께 다른 기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보인다. 살기인가? 바람이 식힌 땀 때문에 느끼는 한기인가?


“뭐보고 있니?”


수진은 인영의 등을 툭 치며 물었다.


“헉!”


인영은 필요 이상으로 큰소리를 내었다.

순간 다른 관람객들의 술렁임과 소음의 진원지에 힐난하는 눈초리들이 무수히 보내어졌다. 인영과 수진은 사과의 몸짓으로 여러 방향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니야, 그냥 이제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가봐.”

“그래, 이제 우리 나가자. 다 관람한 것 같아.”


인영과 수진은 서둘러서 2층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앞서가는 수진을 따라가다,

인영은 조심스럽게 고개 숙여 가슴을 눌러보았다. 심장은 아직도 조금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뭐였을까? 난 뭘 본거지?’


고개를 들고 계단을 내려서니 건들건들 올라오는 강시훈과 그 패거리들이 보인다.


시훈은 벌써부터 화가로서의 자질과 재능을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당당히 국전 입선 후 한국 화단에 서 화가로 상당한 세를 가진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받은 시훈은 어릴 때 무수한 미술대회를 휩쓸었다고 한다.


시훈은 이미 대학이 내정되어 있다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이야기되고 있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중학교 때 학교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근신의 의미로 서울 부모님과 떨어져 외할아버지 댁에서 대학 진학 전까지 지내고 있다고 한다.


눈인사도하기 어색해 시선을 회피한 채 걸음을 옮겼다.


“쯧, 어미 꿩을 놓쳤나보네?”

“아니야. 그런 거.”


키가 큰 시훈은 아래에 서있는데도 인영이 마주보이는 눈을 보며 고개를 젓는다. 잠깐의 정적 후 인영은 시선을 돌리며 좀 더 단호하게 말한다.


“지나가게 좀 비켜줄래?”


시훈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몸을 틀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인영이 최대한 몸이 닿지 않게 몸을 사리면서 지나자 시훈은 인영의 머리 위로 작은 소리로 말한다.


“방금처럼, 근데 좀 더 크게 말해.”


급히 고개 돌려 올려다보는 인영의 눈이 커져있었다. 이미 시훈은 등을 돌려 2층으로 올라가고 있다.


“강시훈. 너, 유인영한테 관심 있냐?”


올라가는 시훈을 쫒아 오르는 황규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관심은. 너무 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니까.”

“하긴 네가 뭐가 아쉬워 저런 애한테.”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시훈의 소리에 규철이 맞장구치자,


“왜, 난 괜찮아 보이던데. 마혜리가 사전 놀이 하던 날, 그 때 보니까 뭔가 애잔한 느낌이 있던데.”


지선재가 느긋이 한마디 뱉었다.


“애잔하긴 무슨.”


시훈은 조용하지만 연필심으로 꼭꼭 눌러쓰듯이 이야기 한다.


“맞아, 그게 뭐야. 느낌은 마혜리지. 통통 튀는 우리 혜리가 최고지.”


평소 혜리에게 끝없이 구애하고 있는 규철이 목소리가 마무리를 지었다.

돌아서는 인영이 눈에 자신을 기다리는 카탈로그 손에 든 수진이 들어왔다.


지난달 수진이 ‘어미 꿩’ 이란 호칭을 얻은 일이 떠올랐다.


◇ ◆ ◇

인영---복사본.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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