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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생강 님의 서재입니다.

신윤복의 월하정인은 스모킹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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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생강
작품등록일 :
2021.09.1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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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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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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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영 - 프롤로그

DUMMY

“야, 인영아! 너 왜 그래? 더위 먹었어?”


단단해 보이는 검은 돌담을 배경으로 수진의 눈빛이 걱정스레 인영을 쳐다보고 있다.


‘아아, 그래. 그때도 있었어, 다른 눈빛들과 달리 한동안 돌아서지 않는 것이 있었어. 이사 온 첫날에 본 커튼 뒤 그 눈빛.’


이삿날과 달리 젖혀진 커튼 사이의 인영을 지켜보던 눈빛은 꽤 오래 그곳에 있었다.


“으음, 아무것도 아니야.”


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심하라며 입술을 늘리며 애써 웃어 보였다.

손에 든 찬 음료수 때문인지 인영의 팔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아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며 기다리는 줄은 이전까지처럼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울창한 나무들이 이루는 자연 터널이 해를 가려주었다.

지겨움이 줄어드니 줄이 줄어드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 같았다.


간송 미술관은 개인 사저였다고 한다.

세월이 느껴지는 붉은 벽돌의 입구에 적힌 한자가 여기가 목적지임을 알린다. 입구를 지나니 서로 얽혀 무성함을 더하는 나무들 사이사이에 석탑과 조각상이 보인다. 이윽고 전시실인 2층의 회백색 건물을 왼편에 끼고 섰다.


“와! 인영아, 나 너무 흥분돼서 떨려.”


수진은 연신 핸드폰 카메라로 주변을 찍는다.


“이게 개인 집이라니! 진짜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나 봐.”


인영은 여기저기 놓여 있는 화분들이 심드렁해 보였다.

전시관 입구에서는 입장을 통제하는 사람이 있었다. 안에서 나오는 인원만큼만 입장을 허락했다. 전시장 안의 혼잡을 피하려는 것 같았다.


“인영아, 아아···, 나 어떻게 하냐? 신윤복을 만나.”


무대 디자인을 전공하려 미술을 배우는 수진은 이 순간,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에 대해 보통 여고생들이 아이돌 가수에게 낼 법한 설렘을 내보인다.


‘수진아, 신윤복을 어떻게 만나. 그냥 그림뿐인 걸.’


수진에겐 속상할 마음속의 말은 목구멍 속으로 삼키고 생각해 본다.


신윤복,

그가 그린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인기는 여느 아이돌 못지않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알까?

먼 미래 후손들이 자신의 그림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을. 도포를 입은 아이돌이라고나 할까.

1층 전시장도 실외의 긴 줄의 연장선이었다. 유리관으로 보호된 그의 그림들이 벽면을 두르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 활짝 열린 창들은 바깥의 짙은 녹색을 실내로 끌어 왔다.

중앙에도 유리관에 들어가 있는 그림들이 펼쳐져 있었다.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것에 비해 실내는 조용했다.

다들 그림을 제대로나 감상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모두가 굳건한 약속이나 한 듯이 앞 사람의 진행 속도를 꾸역꾸역 지켜냈다.


생각보다 작고 빛바랜 종이에 그려져 있는 평면적인 동양화들은 인영의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었다. 인영은 감탄어린 시선을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돌아가고 있는 자신의 작은 친구 수진의 뒤통수에 더 눈길이 갔다.


◇ ◆ ◇



어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인영과 몇 마디라도 나누려고 곧잘 늦게 출근하셨다. 새벽녘에도 다음 날 인영이 등교 전 데워 먹을 아침을 차려 놓으시고 잠자리에 드셨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 딸 얼굴 볼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잖아.’


버스 시간에 맞춰 아파트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또각 또오각’ 하고 걷는 느낌이 남다른 구두 소리가 고요한 아침 공기를 흔들고 있었다.

인영이 뒤를 돌아보니 30대를 갓 넘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 이 아파트에서 나 말고 아침에 버스 타는 사람이 또 있나? “


화색이 도는 얼굴에 드리워진 긴 머리카락이 짙은 화려하다. 살짝 짧아 보이는 치마를 산뜻하게 갖춰 입은 여자였다. 상의로 걸친 여러 색으로 프린팅 된 셔츠가 아파트의 회색 배경에 이질적이었다.


“오, 학생이네. 고등학생? 중학생? 이사 왔니?”


답을 원하는 게 아닌지 빠르게 질문을 쏟아낸다.

고개를 끄덕이는 인영도 자신이 어느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하, 맞춰볼까? 너, 최근에 401호에 이사 왔었지?”


인영의 끄덕임 중간에 바로 여자는 말을 이어갔다.


“난 305호에 살아. 우리 아파트에는 4호가 없어서 3,5 라인이야. 이 아파트에 최근엔 이사 오는 집이 없어서 알아.”

“아 참, 맞다. 너희 집 이삿짐 다 들어갔니? 보니까 짐이 엄청 많더라. 혹시 버릴 게 있다면 일단 버리지 말고 우리 집에 먼저 이야기해 줄래?”


여자는 말을 잠깐 말을 멈추고 인영 얼굴을 훑어 내린다.


“그리고 부탁이 있어. 지난번처럼 아파트 안에서 클랙슨은 안 눌렀으면 좋겠어. 너희 아빠 맞지? 아빠한테 이야기 좀 해줘. 그 날 야간까지 일하고 와서 자는데 얼마나 짜증났는지 알아?”


마침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305호 여자는 먼저 2인용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는 요금을 내고 돌아서는 인영에게 손짓했다.


“여기, 여기야.”


인영은 난감했지만 거절하는 것이 더 번거로워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여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약간 외곽이지만 그래도 버스도 꽤 많고, 꽤 살만은 해. 제일 좋은 건 집세가 싸. 그것 때문에 나도 여기서 살아. 전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여기 살았는데, 그러고 보니 너희 윗집이었네.”


갑자기 305호 여자가 흐음 하고 헛기침을 했다.

무언가 아주 긴하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다른 좌석을 힐끗 거리며 소근 거리기 시작했다.


“흐으음, 502호 괴물, 너도 봤어?”


신기하게도 이번엔 대답을 기다렸다.


“괴, 괴물이요?”


더듬거리며 다시 물었다.


“흐음, 못 봤구나. 하긴, 봤다면 이런 반응일 리 없지.”


여자는 끄덕 거리며 혼자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게, 진짜 괴물은 아니고, 얼굴이 마구 일그러져 괴물 같아 보인대. 그리고 미친 게 분명한 게 밤에 그 집에서 뭘 하는지 미친 듯이 흐느낀대. 또 어떤 때는 안에서 쌍욕하면서 싸우는 소리까지 들린대. 분명히 혼자 사는데, 또 다른 사람이 있기도 한 것 같대. 두 사람이 싸우는 소리도 들리고, 내 친구는 그 할망구 한 번보고 기겁 하고 무서워서 이사 갔잖아.”


다시 소리를 낮춰 소근 거리는데, 버스 안내방송이 학교에 도착하고 있음을 알려왔다. 학교의 정문을 지나쳐 버스는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어, 저, 학교 다 왔어요. 안녕히 가세요.”


인영은 황급히 가방을 메고 정차용 벨을 눌러 자신이 내려야 함을 알렸다.

인영은 내리면서 내일부턴 버스 타는 시간을 조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등교한 지 일주일이 조금 지난 학교는 여전히 낯설었다. 이어폰을 낀 아이. 곁눈질로 서로의 줄인 치마길이와 입술위의 틴트 색에 집중하면서 입으로는 자신의 어머니의 부당한 간섭에 대해 말하는 아이.


“야 이씨, 거기 서! 돌려달라고!”


어느새 남학생 한패거리에게 뺏긴 단어장을 쫓고 있는 아이.


“아침부터 재수 없게 영어단어는 무슨.”

“내놔! 니네 잡히면 죽는다.”


씩씩거리며 달리는 남학생의 속도는 오늘 영어 공부는 포기해야 할 듯하다.


“어떡해. 오늘 부장이 선도서는 날 아니잖아?”


누군가의 동의를 구하듯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떡하지.”

“야, 나 치마길이 괜찮아?”

“누구 물가진 것 없어? 이 색깔 걸리겠지?”


질문은 쏟아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답은 하지 않는다. 질문의 답은 이미 서로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교복 상의는 빈틈없이 타이트 하게 맞고 예쁜 다리를 자랑하고 싶어 이르게 스타킹도 없이, 하의를 입은 아이는 죄 없는 손톱만 잘근 잘근 거리고 있다.


경비초소만을 돌면 교문인데 초소를 돌지 못한 몇몇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일부는 손거울과 티슈를 꺼내 입술에 틴트를 닦아내고 일부는 지난 주말 치마를 줄이려 세탁소에 들르지 못해 말아 올렸던 치마를 급히 풀어 내리고 있었다.

그런 여학생들 앞을 일부 남학생들은 휘파람을 불며 지나갔다.


인영은 초소를 끼고 천천히 교문을 향했다.

활짝 열린 정문 양쪽으로 단정해 뵈는 스무 명 정도의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정렬해 있었다. 학생들은 그 사이를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자랑스러워해야할 분위기였다.


“야! 너.”


지적된 학생은 올 것이 왔다는 것처럼 표정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반 번호.”

“아, 저 오늘 처음이었는데···. 1학년···.”


1학년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있었지만 걸릴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가 보다.


“선도실로 목요일까지 확인 받으러와. 기한 어기면 담임 선생님께 벌점 자료 넘기는 건 알고 있지?”


1학년은 교문 한쪽 구석을 힐끗 보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벗어났다.

교문 한쪽에는 문제를 수정할 기회조차 가지게 되지 못할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교무 부장 선생님과 함께 서 있었다.


“오구야, 이 꼴통 단골들 꼬라지들 쫌 봐라. 야들아, 한 번쯤은 참신 좀 해봐라. 어찌된 게 매년 보는 얼굴들에 매 그 꼬라지들이냐?”


서 있는 아이들의 행색이 마음에 안차는 듯 혀를 끌끌 차신다.

인영도 천천히 선도 부원들이 만든 인간 터널을 통과하려 했다.


“거기 2학년. 잠깐만!”


인영 앞으로 파일을 든 여자 선도부원이 천천히 걸어왔다.


“유인영, 2학년 몇 반, 몇 번이지?”


가슴에 명찰을 읽으며 물었다.


“2학년 5반 35번 유인영입니다.”

“유인영. 학칙을 어겼네. 위화감을 조성하는 ‘교복 특정 브랜드를 나타내는 로•고•는 반•드•시 지워야 한다.’ 이 부분은 최근 전체 공지 했듯이 1차 개도기간 없이 2차로 바로 진행될 거야. 2학년 5반이면 마침 선도부 담당 선생님이시니까 전달은 어렵지 않겠군. 유인영, 이틀 뒤 브랜드 로고 지운 것 가지고 점심시간에 선도실로 와서 확인받도록 해.”

“저, 저는 모 몰랐어요.”


당황한 인영이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작년부터 전교생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너만 모른다는 게 변명이 돼? 신입생도 아니고. 그리고 1학년들도 입학식부터 안내문도 다 나갔는데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돼.”


아찔했다.


갑자기 작은 키의 단단하게 생긴 3학년 선도 부원이 공중으로 불쑥 솟아올라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인영이 자신을 내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가 없는 입만 벙긋거린다.


“선배님, 아니 선도부 부장님!”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목소리에 선도부 3학년생은 돌아서려다 멈췄다.


“이 친구 우리 반인데, 전학 온지 얼마 안돼서 잘 몰랐을 거예요.”


선도부 부장이라는 3학년 학생보다도 더 작은 아이가 인영이 손을 잡으면서 이야기했다.


“전학을 왔어도 학교 교칙하고 주의사항들을 기재한 생활안내문이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하는 내용과 달리 인영에게 변명을 할 기회를 주겠다는 얼굴이다.


“그, 그 날, 아버지와 함께 왔는데, 아버지께 안내문을 받질 못했어요.”


인영은 호흡이 조금씩 격해지는 것을 느끼며 되도록 천천히 이야기 했다.

순간 선도 부장의 단단히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며 이해한다는 듯 끄덕였다.


“아하. 하여튼 남자 어른들은.”


하지만 금세 자신이 너무 무르다고 느꼈는지 대화 끝에 한차례 경고를 덧붙였다.


“그렇지만 교칙을 어긴 건 사실이야. 예외 상황은 어느 정도 감안해서 기한 내에 지운 것을 확인하면 1차 조치로 끝내도록 하지. 단, 기한 엄수야. 기한을 어기면 바로 벌점 진행하도록 하겠어.”


“휴, 다행이다. 어제 우리 엄마가 학부모 총회에서 들었는데 우리 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밤에 시내를 활보하고 다닌다는 지적이 나와서 아마 더 예민 할거야. 저 부장 선배 원래 저렇게 까칠하진··· 음.”


자신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졌는지 같은 2학년 색깔의 명찰에 ‘최수진’ 이라고 적힌 아이는 말을 하다 말고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한번 굴렸다.


“난 최수진이야.”

“어, 난 유인영. 고마워.”

“우리 같은 반인데, 너 모르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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