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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왕좌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Minato
작품등록일 :
2016.04.07 00:51
최근연재일 :
2019.11.08 21:03
연재수 :
7 회
조회수 :
70,483
추천수 :
2,438
글자수 :
32,522

작성
16.04.10 00:37
조회
1,860
추천
46
글자
11쪽

1. 말을 못하는 것이지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니다 (1)

DUMMY

임펠은 참으로 한가로운 나라였다.


돌이켜보면 그러했다. 강대국 사이에 껴 있는 처지임에도 꾸역꾸역 버텨온 역사 덕분인지, 나름대로 안온하게 사는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서쪽에 바다를 두고 있는 임펠의 국경은, 거대한 두 개의 나라와 닿아 있었다. 북동쪽에 샤를만, 남동쪽의 발트칸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두 나라에 비하면 임펠은 면적으로 보나 국력으로 보나 턱 없이 작고 협소한 곳이었다. 그런 임펠이 살아남은 연유라면 역시 발트칸과 샤를만이 서로를 견제한 까닭이었다. 어부지리 격으로 눈치껏 나라를 유지한 임펠에는 몇 번의 내전 끝에 하나의 왕조가 세워졌다.


임펠은 꽤나 평화로웠다.


강 하류에 위치한 임펠의 땅은 비옥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였으며, 다양한 교역으로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다. 특히 임펠 왕가는 작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국민이 아닌 외국의 용병을 고용해 병사로 부릴 만큼의 자금이 넘쳤다. 그 평화가 임펠 왕에겐 오만을 안겨주었다. 물론 임펠의 역사는 결코 평화가 전부가 아니었다. 그러나 임펠 왕에게 주어진 현실이 결국엔 그러했으므로, 결과적으로는 모든 안락함이 그의 덕이 되고 말았다.


안락함에 물든 임펠을 무너뜨리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섬나라 히스비아의 침략은 놀랍도록 빠르고 신속했다. 왕이 고용한 용병들은 무참히 패배했고, 안이하게 지냈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했다. 왕은 샤를만과 발트칸에 급히 사신을 보냈으나, 그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원군을 지원해주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해변가를 쑥대밭으로 만든 히스비아 군대가 임펠의 심장부까지 쳐들어왔다. 귀족들은 망명을 떠나거나 일찌감치 히스비아에 굴복했다. 임펠의 왕궁은 빼앗겼고, 왕과 왕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왕후는 제 남편과 아들들의 죽음을 견디지 못해 목을 매었다.


임펠 왕가에 남은 이는 오직, 이 모든 광경을 벌벌 떨면서 지켜본 어린 왕녀뿐이었다. 충격에 휩싸여 정신을 놓다시피 한 왕녀는 죽일 가치도 없었다. 임펠을 다스리기 위해 히스비아 본국에서 파견한 로르망드 가문의 로벨리아는 왕녀를 유폐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무성한 수풀 사이에 거대한 첨탑이 전부인 ‘잊혀진 섬’으로 왕녀를 유폐했다. 당시 왕녀의 나이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어린 계집애가 드높은 첨탑에 갇혀 망망대해를 보며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이었다.


왕녀는 10년 동안 첨탑에서 살았다. 부득부득 그 생활을 버텨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구하러 이렇게 사람들이 찾아왔다. 지긋지긋한 유폐를 끝낼 때가 된 것이다. 응당 기쁜 마음으로 열린 문을 박차고 나서야 마땅했다.


그래서 락스퍼는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쨍그랑!


아마릴리스는 손을 떨다가, 급기야 쥐고 있던 검을 떨어뜨렸다. 락스퍼가 막 ‘어서 가자’고 그녀를 재촉했을 때였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그녀의 표정은 검을 떨어뜨리면서 급속도로 무너졌다. 그마저도 왕녀가 당장 몸을 돌렸기에, 짧은 순간 그녀의 얼굴을 본 이는 락스퍼 정도였다. 아마릴리스는 몸을 돌려 대번에 첨탑 위층으로 올라가버렸다. 곱게 하나로 내려 땋은 물빛 머리칼이 허공에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왕녀 전하!”



시녀로 추정되는 여자가 아마릴리스를 부르며 얼른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리고 덩그러니 남겨진 흉흉한 사내들과 함께, 락스퍼는 인상을 구겼다. 역시 그는 도통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이끌고 온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왕녀의 미모에 정신이 팔려 있던 병사들은 슬금슬금 락스퍼의 눈치를 보았다. 락스퍼는 짜증스럽다는 눈으로 두 여자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





탑의 중간지점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올라오고서야 아마릴리스는 걸음을 멈추었다. 눈부신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방의 정경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유독 환한 방안을 응시하던 아마릴리스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커다란 창가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출렁이는 바닷물이 눈앞에 펼쳐진 느낌이었다. 아마릴리스가 창틀에 손을 얹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리도록 창틀을 움켜쥐었으나, 떨림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아마릴리스가 숨을 몰아쉬며 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사는 동안의 반절을 이 탑에서 지냈다. 덕분에 손은 희다 못해 투명해보였다. 붕대라도 감겨 있는 꼴이 그녀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했다. 하얗고 고운 피부는 탑 바깥의 모든 것에서부터 격리되었음을 증명하는 눈에 보이는 증거였다. 아마릴리스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멍청한 꼴이었다.


뇌리를 스친 생각과 함께, 냉담한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빈 가문의 사내라 하였다. 아마릴리스는 입술을 즈려 물었다. 10년의 시간조차 앗아가지 못한 어린 날의 배움을 다행이라 해야 할까? 가물가물하던 기억은 점차 또렷해졌다. 기억 속의 빈은 유력한 가문이었다. 왕족으로서 숱한 귀족들의 얼굴과 이름을 익혀야 했던 어린 날, 빈 가문은 그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가문이었다. 빈 가문은 아주 강했다. 또한 긍지 높은 자들이었다. 히스비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치령을 가진 가문 중 유일하게 제 직할령을 지켜낸 자들이었다. 빈 가문의 사내가 마중 나왔다면 바깥의 입장에선 왕녀를 최대한으로 대접한 셈이리라.



“왕녀 전하, 마란타입니다.”



창틀을 구명줄처럼 잡고 있던 손이 움찔거렸다. 아마릴리스가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한 그녀의 시녀가 문가에 서있는 게 보였다.



“이곳에 계실 것이 아니라, 위층 침실로 올라 쉬십시오.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차를 끓여오겠습니다.”



아마릴리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마란타의 얼굴에 어렸던 걱정이 조금 더 깊어졌다.



“무례한 방문객입니다. 저들이 기다리는 것까지 신경 쓰실 필요는 없······”


“이보다 더 예의를 차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겠군.”



마란타가 놀란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냉담한 눈으로 마란타를 응시하던 락스퍼가 그녀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의 앞을 막아서는 마란타의 행동 때문에 곧 멈춰서야 했다. 차가운 락스퍼의 얼굴은 일반 병사들조차 찔끔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마란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장한 병사를 이끌고 와 문을 부순 것이 예의 있는 행동이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를 마주보고도 위축되지 않는 기백은 칭찬할 만하나, 이렇게 앞을 막아서라 허락한 적은 없었다. 락스퍼는 눈을 가늘게 떴다.



“감히 누구의 앞을 가로 막나?”


“아마릴리스 왕녀 전하의 시녀 마란타입니다. 왕녀 전하를 보필하는 시녀로서 위험한 인물의 접근을 경계할 의무가 있습니다.”



유폐될 때 유일하게 그 곁을 따라나섰던 시녀가 하나 있다 들었다. 수십의 시녀들에게 보살핌을 받던 왕녀의 곁에 겨우 한 명이 남았다는 말을 듣고 약간의 비웃음을 흘렸던 적이 있었다. 그리곤 까맣게 잊어버렸었지. 용케 10년 동안 왕녀의 곁을 지켰다. 락스퍼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눈앞의 시녀를 보았다. 그리고 제 앞을 가로막은 죄를 조금이나마 감해주기로 결정했다. 10년 동안 함께 첨탑에 갇혀 있을 정도의 충심이라면 눈에 뵈는 것 없이 굴 법도 했다.



“설마 나를 히스비아 야만인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빈의 락스퍼라고 밝혔으나, 어쩌면 이들은 자신을 히스비아인으로 착각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10년이나 아무 것도 없는 섬에 갇혀 있었는데 무얼 알겠나. 어느 가문이 변절했고 어느 가문이 자릴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선 그저 무지할 테지. 임펠의 상황을 이곳에서 알 방도는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손수 섬까지 찾아온 그를 이따위로 대우하는 것일 테다. 락스퍼의 말에 마란타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빈 가문의 영윤께서는 이 안에 계신 분이 누구신지 모르십니까? 어찌 이리 무도하게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려 드십니까?”



‘빈’을 말하는 마란타의 목소리는 아주 똑똑하고 정확했다. 조금이나마 너그러워졌던 마음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시녀가 지적하는 것은 왕족의 거처를 멋대로 침범한 행위의 무례함이었다. 락스퍼는 희미한 비웃음을 담아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이 첨탑이 왕녀 전하의 자택이라도 된다는 듯하군. 꽤 평안한 생활이셨나 보지?”



별다른 힘도 없어서 이런 외딴 섬에 유폐된 왕녀였다. 자력으로는 스스로를 구제할 길이 조금도 없던 처지에, 딱히 귀한 대접을 받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첨탑은 분명 흉악범들을 잡아넣는 감옥과는 달랐지만 결국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감옥에 갇힌 왕녀를 구하는데 새삼스럽게 미리 서신이라도 보내 방문을 알렸어야한다고 말하는 건가. 우스운 트집이었다.


조롱하듯 말하는 락스퍼의 모습에 시녀가 새된 소리를 냈다.



“어떻게 그런 소릴!”


“유폐 당하셨던 것이 아니셨다니, 새로운 정보군. 왕녀 전하의 머리칼 하나라도 보고자 전전긍긍하는 멍청한 노인네들이 들으면 기함을 토하겠어. 그래, 다시 되돌아가 부서진 문짝에나마 노크를 해드릴까?”



시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락스퍼는 흥미를 잃었다는 듯 그녀에게서 관심을 끊었다. 어차피 이런 가냘픈 여자 하나가 앞을 가로막는다고 못 들어갈 그가 아니었다. 억지로 들어가려는 락스퍼의 속내를 눈치 챈 마란타가 더욱 결연한 표정으로 몸에 힘을 주었다. 그런 마란타의 뒤로, 무언가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막 락스퍼에게 몸통 박치기라도 할 기세로 힘을 주었던 마란타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손가락을 구부려 가볍게 책상을 두드린 아마릴리스가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란타와 눈이 마주친 아마릴리스가 옆으로 슬쩍 고갯짓을 했다. 그 명에 마란타는 언제 막아섰냐는 듯 즉각적으로 물러서 아마릴리스의 옆으로 다가섰다.


무서운 줄 모르고 말대꾸를 해대더니, 제 주인 고갯짓에 냉큼 물러서는 마란타의 태도는 참 극단적이었다.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마란타를 보던 락스퍼가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선 그가 아마릴리스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흰 피부에 새파란 눈동자는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락스퍼는 새삼 감탄했다. 어두운 1층에서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눈에 띄었지만, 이렇게 볕 아래에 서니 그 미모가 더해졌다. 과연 어릴 적부터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왕녀다웠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해서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작가의말

* 반겨주셔서 넘나 감사합니다!

 

* 이벤트는! .....아쉽지만 실패했습니다. 다만 패기있게 프롤로그부터 던진 이벤트를 받아주신 착한 독자님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자 이렇게 달려왔답니다. 그리고 총선이벤트 소식도 귀띔해드리구요! 사전투표이벤트도 했는데, 선거날 이벤트를 안할수는 없잖아여! 자 어서 선거 당일 투표 계획을 세우세여!


* 다음편은 12일이 되는 자정에 올리겠습니다. 그때 인증샷 이벤트에 대해서도 안내해드릴게요!


쿠리오 님/ 이번 작품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늘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슈르티아 님/ 하하,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여우배 님/ 앞으로 아마릴리스가 어떻게 성장할지, 저도 얼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시도니아 님/ 헿 드디어 시작되었어요^.^
네페쉬 님/ 어머나 어서오셔요! 이번 왕녀님은 정말 예뻐서 그리는 맛이 있지 않으실까 싶....흠흠. 게다가 얼마나 다재다능한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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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말을 못하는 것이지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니다 (2) 16.04.12 1,678 38 12쪽
» 1. 말을 못하는 것이지 생각을 못하는 게 아니다 (1) +3 16.04.10 1,861 46 11쪽
1 0. 전하를 모시러 왔습니다 +8 16.04.07 2,924 5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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