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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티아라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드라마

Minato
작품등록일 :
2012.11.18 15:07
최근연재일 :
2014.0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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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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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8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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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글자
13쪽

# 1. 제국의 영애 (2)

후기와 질의응답은 서재의 공지란에 올라갔습니다.

이북으로 출간됩니다.




DUMMY

함께한 시간을 숫자로 환산한다면, 20년 정도 될까? 좋든 싫든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언제나 자신이어야 했다. 나이도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것 같았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단 한 순간도 그녀와 자신은 친구가 아니었다. 친구일 수 없었다. 친구가 되기에 그녀와 자신은 너무도 달랐다.


「이 부분을 모르겠어. 너는 알지?」

「에스크교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부분이군요. 유일신 루 라마에스크의 축복이 가장 풍요로웠던 시대죠.」

「그건 알겠는데, 그 이상의 설명이 안 쓰여 있어.」

「‘신은 여러 명이고, 저마다 다른 분야를 맡아 인간을 보살피신다.’는 게 기존에 널리 퍼져있던 종교적 관념이었습니다. 그 모든 신들을 통틀어 ‘다싱 라므’라고 불렀죠. 한데 이에 반발하는 교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게 에스크교죠. 에스크교는 창조주 루 라마에스크만이 숭배를 해야 하는 단 하나의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다신교인 라므와는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죠. 엄밀히 따지자면 에스크교는 라므에서 파생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에스크교가 점차 세력을 확산함에 따라 독립적으로 자신들을 구분하게 됩니다. 이후 극단적으로 다른 두 종교는 급기야 성전을 일으키는데, 그 성전에서 에스크교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다싱 라므를 몰아낼 정도로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중앙대륙에서만큼은 에스크교를 국교로 내세운 나라들이 늘어납니다. 그리하여 에스크교는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겁니다. ‘신성력’이 넘쳐나던 시기라고 쓰여 있는 서적도 있는데, ‘신성력’이라는 힘에 대한 근거나 설명이 부족하여 일부 학자들은 단순한 비유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우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수업시간에 나왔던 내용입니다, 아가씨. 아가씨께서 교과서 아래로 약초서적을 펴놓고 읽으실 때 말이죠.」


담담한 음성에 그녀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혀를 쏙 내밀었다. 그녀의 직속하인이라는 신분으로 본의 아니게 수업도 함께 들어야 했다. 그녀는 숙제를 안 해서 하인을 대신 맞게 하는 불량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실하게 수업에 임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때문에 언제나 숙제를 할 때에는 함께 수업을 들었던(배우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문가에 서서 들었던) 자신에게 질문을 해왔다. 좋아하는 것 말고는 손도 안 대려고 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은 언제나 문가에 서서 선생의 말을 경청해야 했다. 그리고 덕분에 그녀가 배우는 것들을 그녀보다 더 잘 습득하게 되었다.


「쳇. 이런 건 재미없어. 약초 서적을 좀 찾아올래? 덤으로 네가 읽고 싶은 것을 함께 가져와도 좋아. 이제부터는 독서를 할 거니까, 너도 읽을 게 필요하겠지.」


그녀 덕에 덤으로 여러 가지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하인인 자신은 원래대로라면 글자를 배울 수 없었지만, 어린 그녀의 곁에 있는 동안 어깨 너머로 남몰래 익혀 놓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녀의 하인이 된 자신의 처지가 이럴 때는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되었다. 복습을 해야 할 부분은 아직 더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투정에 못 이기는 척, 서재로 향했다. 이런 때가 아니고는 서재에 있는 책을 읽을 기회가 없었다.


「아가씨 심부름으로 책을 가지러 왔습니다.」


서재를 관리하는 하인에게 말을 하고 책장 앞에 섰다. 그녀가 말했던 책은 벌써 찾았지만, 아직 본인이 읽을 책은 찾지 못했다. 어지간한 책은 이제 다 읽었다. 얼핏 귀동냥으로 들어보니 이번에 서재에 새 책을 몇 권 들였던 모양인데.

책 자체가 꽤나 귀한데다, 이 저택에 사는 귀족들은 독서를 즐기지 않았기 때문에 서재에서 새 책을 보는 일은 어려웠다. 늘 얼마 없는 책들을 안타까워했던 입장으로서 이번에 샀다는 책은 반드시 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다 꽂아 놓았는지 영 찾을 길이 없었다.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찾지 못하고 담당 하인을 돌아보았다.


「이번에 새로 들인 책은 어디 있습니까?」

「그건 저 끝에 있어.」


과연, 다른 책들과는 달리 유난히 뻣뻣한 표지의 책들이 두어 권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다 빼다가 읽고 싶었지만, 고심 끝에 한 권의 책을 선택했다. 그녀의 독서 속도는 꽤나 느리니, 이번에도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되돌려 놓겠지. 적어도 그녀가 한권을 다 읽을 때 까지는 몇 번 더 서재를 올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은 그녀보다 책 읽는 속도가 빨랐다. 서두른다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두어 권정도 더 볼 수 있을 터였다.


「수고 하십시오.」


두 권의 책을 챙겨서 걸음을 재촉했다. 빳빳한 표지가 어서 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켰다. 아버지에게 들키기 전에 얼른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그녀를 핑계로 서재의 책을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으니까. 아버지는 자신이 주제를 아는 하인이 되기를 원했다. 하인이 알아야 할 것 이상의 지식을 갈구하는 자신을 싫어했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끼고 가다가 걸리면 그는 분명 그녀의 약초서적만 두고 한 권은 서재에 돌려놓을 것이다.

다행이도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그녀의 방문을 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나 곧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 왔어? 집사, 이제 그만 돌아가 봐. 나는 독서를 할 거 거든.」

「네, 아가씨. 그런데 아가씨의 독서 속도로는 책을 한권씩 읽으시는 편이 좋으실 것 같군요. 위시안, 한 권은 내가 서재에 다시 갖다 놓아주마.」


집사는 두 권의 책을 힐끗 보고, 위시안이 읽기 위해 골라온 책을 거의 뺏어가다시피 했다. 어쩔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는 순진한 눈으로 집사와 위시안을 번갈아 보고만 있었다. 어째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저 순진한 아가씨는 더럽게도 눈치가 없었다.


「잘 가, 집사.」


허탈하게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다가, 약초 서적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책을 받아들었다. 희희낙락하며 책을 펴들던 그녀가 문득 망연히 서 있는 자신의 하인을 떠올렸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위시안, 심심하지 않겠어? 왜 집사에게 책을 준거야?」


엄밀히 하자면 준 게 아니라 뺏긴 거였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는 대신,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당분간은 그녀의 명령으로도 서재 근처에는 가지 못하겠지. 씁쓸한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괜찮다니 괜찮은가보다, 하는 표정으로 그녀는 책에 몰두했다. 위시안은 입술을 깨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그녀의 곁에서 대기해야 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말이 의례적으로 튀어나왔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불러 주십시오, 메르노아 아가씨.」






-







전쟁에 참여해 승리를 거둔 제국의 귀족들은 연회 홀에 모여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여 있는 귀족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들은 이제 곧 열릴 연회에서 전승의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자신에게 영지를 안겨줄 신부를 고를 예정이었다.

어차피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만한 남자가 필요했고, 남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세력을 넓힐 영지가 필요했다. 서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관계일 뿐이니 특별히 오랜 기간을 두고 볼 필요도 없었다. 이런 식의 연회로 만나 조건이 맞으면 황제에게 결혼을 승낙 받는 게 다였다.

연회 전날 궁에 도착한 영애들도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황제가 주선하는 결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미 알고 있던 영애들은 놀라움이 덜 했지만, 대부분이 놀라 자지러지거나 난동을 피웠다. 그러나 평민 같은 삶을 살겠느냐는 물음에 그리 하겠다고 나선 영애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영애들은 일단 궁에 있는 수많은 방들 중 적당한 곳을 골라, 연회가 열리는 동안 머무르기로 했다.

메르노아는 어색한 눈으로 자신의 드레스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자신을 어필해야 하는 자리라고는 하지만, 이런 드레스라니. 왕궁에서 배급된 드레스였기 때문에 마음대로 바꿔 입을 수도 없었다. 다른 영애들도 모두 메르노아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나올 터였다. 다들, 이렇게 가슴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것이다. 꼭 이런 식으로 어필해야 하는 건가, 싶어 메르노아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메르노아는 몸매가 꽤 좋은 축에 속했다. 배급받은 드레스가 특별히 안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차려입고 나니 뭐라고 해야 할까, 꼭 품평회 나가는 느낌이었다.

연회장에 들어가면 신분을 공개적으로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 나름대로의 형평성을 위해서였다. 괜히 좋은 영지를 가진 여성에게만 몰린다거나, 높은 작위를 가진 남자에게만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해진 나름대로의 규칙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 규칙이 명목상의 규칙일 뿐, 실제로는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메르노아가 복도 끝에 있는 문을 심란하게 응시했다. 이제 곧 영애들이 들어갈 차례였다. 저 안에는 제국의 귀족들이, 그것도 남자들만 득실거릴 것이고 영애들은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터였다. 이제껏 한 번도 사교계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본 적 없는 메르노아의 입장으로써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에게 부탁해서 그냥 다른 귀족부인들처럼 피해보상 받고 조용히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옆에 서 있던 르피아가 메르노아의 팔을 꼭 잡았다. 르피아의 눈에도 언뜻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저 문 너머에 야만스러운 귀족들이 있겠지?”


야만스러운 귀족이라면 크레니아의 귀족들이 한 ‘야만’했던 것 같은데. 문득 든 생각을 지우며 메르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름대로 사교연회에 많이 다녀봤지만, 오늘이 가장 떨리고 무서워.”

“그렇게 따지자면 나는 오늘 사교계에 데뷔하는 걸.”


스물 셋에 사교계 데뷔라. 대륙 최장년 데뷔가 아닐까 싶었다. 양 손으로 드레스 자락을 꾹 쥐고 문을 노려보던 메르노아가 깊게 심호흡을 했다.

많은 생각을 했다. 하인들이 도망하는 것을 보며, 집 안이 황폐해지는 것을 보며, 멀리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보며. 전쟁은 싱폰 영지가 쑥대밭이 되기 바로 직전에 끝났다. 그때, 메르노아는 깨달았다. 이 영지는 천생 결혼 지참금으로 쓰일 운명이었다는 걸. 전쟁으로 짓밟힌 영지는 지참금으로써의 가치가 한참 떨어지니, 멀쩡한 싱폰 영지를 앞세운 메르노아는 나쁘지 않은 신붓감이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들어가실 시간입니다.”


천천히 문이 열렸다. 구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가득 울려 퍼졌다. 메르노아와 르피아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눈부신 샹들리에의 불빛과 함께, 연회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나누던 이야기를 멈춘 많은 귀족 남성들이 연회장에 들어서는 영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선에 당황한 메르노아가 반사적으로 르피아의 손을 잡았다. 많은 연회를 다녀본 게 큰 도움이 되었는지, 르피아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남자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긴장한 빛이 역력한 메르노아를 확인한 르피아가 살짝 웃으며 속삭였다.


“걱정 마. 한 시간도 못 되어 익숙해질 거야.”

“과연 그럴까.”


연회장에 들어서서도 한참을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영애들이 점차 퍼져서 귀족들 사이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책으로는 많이 봤지만, 막상 닥치니 책에서 본 지식들도 떠오르지 않아서 메르노아는 그저 르피아에게만 꼭 매달려 있었다. 메르노아의 질겁한 모습에 르피아가 그녀를 연회장 구석으로 인도해주었다. 자신도 처음에 사교계에 데뷔했을 당시 메르노아만큼이나 겁을 먹었었기 때문에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조용하던 연회장은 점점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벌써 몇몇 영애들은 웃으며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과연 패전국의 영애들과 승전국의 귀족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영애들이 입은 드레스가 모두 같은 것이 아니었다면, 정말 일반 연회장과 다를 바 없었을 터였다.


“이런 걸 오 일이나 한단 말이야?”


질렸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메르노아의 말에 르피아가 키득거렸다.


“한 번의 연회로 모두가 결혼을 할 수는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얼떨결에, 메르노아는 사교계에 데뷔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작가의말

역시 스타트는 힘들어요ㅠ.ㅠ 본편으로 넘어오니 조회수가 확 떨어져서 완전 좌절모드를 허우적거렸습니다. 하지만 전 불굴의 미나토이니까요!

그리고, 첫편을 보시고 주인공이 착하고 정의로운 오글오글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쿨럭. 정말 당황했습니다. 요즘 안티 히어로에 빠져 지내는 지라, 이번 소설의 주인공도 악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거든요; 절대 정의로운 오글오글이 아니에요; 시작부분이 식상하게 들어가는 데다 프롤로그 내용에 나오는 녀석들이 그모양이라서 그럴까요(..) 혹시 정의로움을 기대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얼른 노력해서 카테고리를!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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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1. 제국의 영애 (3) +11 10.01.29 12,425 53 12쪽
» # 1. 제국의 영애 (2) +16 10.01.28 13,310 43 13쪽
2 # 1. 제국의 영애 (1) +11 10.01.27 15,704 44 12쪽
1 [1부∥패전국의 영애] # 0. 프롤로그 +28 10.01.26 25,101 6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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