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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20 23:25
연재수 :
19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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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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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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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8화 전야제

DUMMY

18화 <전야제>



“아, 미안하군. 그만 손이 미끄러졌어.”


뚝뚝.

식지 않은 고기 수프의 냄새가 로비에 진동하였다.

묽은 액체가 옷과 피부에 스며들고. 그러지 못한 국물은 발밑을 적셨다.


“하지만 이런 역겨운 음식을 내놓은 자네의 잘못도 있지. 사람이 먹을 걸 줘야지 짐승이나 먹는 걸 가져오면 되겠나?”


이런 짓을 저질렀음에도 미안한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샴스핀 추기경은 거꾸로 뒤집은 수프 그릇을 놓아버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꽈악


수모를 당한 루나는 주먹을 그러쥐었다.

회색 머리 남자가 발을 걸었음에도, 머리에 고기 수프가 들이부어졌음에도 이 정도에 그쳤다.

그녀는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동안에도 모험가 길드의 합당한 무력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불합리한 폭력을 감내하였다.


“음식이 별로라서 미안하다. 다른 음식을 내놓을 테니 용서해 줄 수 있을까?”


루나는 억지로 꾸민 밝은 목소리를 냈다.

평소와 다르게 고양이 귀와 꼬리에 힘이 없었다.


“하? 용서?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야만족아.”


-쩅그랑


모험가들은 주먹을 쥐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이마의 혈관이 도드라졌다.

추기경이 루나의 이마에 접시를 던졌다.


“쓰레기를 가져와 놓고 용서라니. 분에 넘치는 걸 바라는 군.”


샴스핀 추기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콧방울까지 내려온 안경을 거만하게 올리고. 루나의 이마를 몇 번이고 밀었다.


“하찮은 족속이 주제 파악을 해야지. 어딜 용서해 달라 말라야? 너는 돼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나? 앙? 그러냐? 그렇군. 그럴 수도 있겠어.”


-짜악


모험가들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거친 숨소리가 로비를 채웠다.

그동안에도 루나는 도와 달라는 말 한 마디 없었다.

그저 불합리한 모욕과 폭력을 인내하였다.

모험가에게 쓸데없는 짐을 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제 한 몸 불살랐다.


“돼지나 다름없는 짐승 놈들. 당연한 말을 묻고 말았군. 그렇지 않나 제군들?”


-퍽


웬만한 각오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루나는 사절단이 하는 모든 악행을 견뎌내고 또 견뎌냈다.

그들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렸다. 결코 그들의 의도대로 되게 두지 않았다.


“허.”


샴스핀 추기경은 혀를 찼다,

변함없는 태도를 유지하는 종업원에게 진심으로 질렸다.

그렇다고 해서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고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폭력의 수위를 높였다.


“컥.”


복부를 걷어차인 루나가 테이블에 부딪쳤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넘어갔다.


“빠드득”


지켜보기만 하는 입장도 참담한 심정이었다.

많은 모험가는 그들의 행동을 예의주시하였다.

하지만 살기만 드러내고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상대가 그 바솔루트였기에. 모험가는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었기에. 이른 아침부터 루나가 그들에게 나서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였기에. 분노를 삼키며 지켜볼 뿐이었다.


“이런. 왜 갑자기 넘어지는가? 몸이 안 좋은 거면 말하지 그랬나.”


물론 샴스핀은 지금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심히 만족스러운 조소를 머금었다.

탁자 위의 와인잔을 집어서 넘실거리는 붉은 액체를 쏟아부었다.

뚝뚝. 호랑무늬 머리카락 위로 포도향이 진동했다.


“용서 받으려면 먼저 보여야 하는 게 있는 법이지.”


루나는 포도주에 홀딱 젖은 채로, 아까 맞은 복부를 부여잡으며 힘겹게 일어섰다.

그녀는 여전히 우는 모습 한 번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다. 다른 음식을 가져오겠다.”


고개를 숙이고 다른 음식을 가져오려 했다.

그녀가 부엌 쪽으로 몸을 돌린 그때였다. 고개가 뒤쪽으로 젖혔다.


“야, 야, 야, 야! 누가 가도 된다 했냐. 짐승아?”


샴스핀이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루나가 넘어지지 않으려 버틸 수록 더욱 사정 없이 잡아당겼다.


“그냥 가면 어떻게 하냐? 미안하면. 좀 더 성의를 보여야 할 거 아니냐?”


이른 아침부터 계속해온 지독한 행위.

샴스핀의 입에 걸친 미소가, 이 지독한 행위에서 얻어내는 수확을 증명해 주었다.


“잠깐만. 이것 봐라?”


샴스핀은 루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던 행동을 멈추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루나를 보다가 냉혹한 얼굴을 하였다.

여전히 표정도 목소리도 변하지 않은 채. 머리카락을 뜯기지 않기 위해 머리 뿌리를 붙잡고 있는 종업원.

그 모습을 보며 은밀히 입맛을 다셨다.


“냐읏-”


뺨을 얻어맞은 루나가 넘어졌다. 그 목 위로 샴스핀의 손이 얹어졌다.


“하하 그런가 그런 거였나?”


샴스핀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긴가민가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너 경험이 있구나?”


루나의 얼굴에 처음으로 동요의 빛이 떠올랐다.

그 낌새를 샴스핀이 놓칠 리 없었다.

샴스핀은 더욱 흥미가 돋는다는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내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묘하게 순종적인데 이질감이 들더라고. 보통은 어제 그 여자처럼 행동해야 할 텐 데 말이야.”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밑에서 루나가 찡그리는 얼굴을 보며 더욱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건 뭐랄까? 전문가? 학습했다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이게 이곳의 수준이라는 거겠지! 그렇지 않냐 노예야!”

“이거 놔라! 루나는 그런 게 아니다!”


루나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신성력을 남용하는 남자에게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샴스핀은 즐거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어떻게 이것을 갖고 놀지 궁리하였다.


“그게 네 본 얼굴이구나 고양이 짐승! 어떤가. 슬픈가? 창피한가? 도망가고 싶은가? 내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딱 한 가지만 확인하고 말이야.”

“이, 이러지 마라!”


루나가 소리치고 모험가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지금껏 참아왔던 모험가들이지만, 지금 상황이 정도를 넘어가고 있었다.


“루나! 왜 당하고 있는 거야!”


한 모험가가 외쳤다.

왜 도움을 청하지 않는지 비통한 마음이 들었다.

웬만한 모험가를 굴복 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루나였다. 심지어 주변에는 얼마든지 도움의 손길을 내줄 모험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도움을 청하지 않는 걸까.

이유는 명확했다.

모든 불합리함을 그녀가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더는 못 봐주겠군!”

“브레드, 안 돼요!”


브레드도 더 이상 그 모습을 봐줄 수 없었다.

그가 나서려 하자 로비 안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바네샤가 브레드의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안 돼요. 브레드. 제발 나서지 마요······.”

“이거 놓게 바네샤여. 내 친우가 희롱 당하는 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안 돼요. 루나의 마음을 져버리면·····. 당신이 나가면 모든 게 엉망이 될 뿐이라고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한다는 건가! 그거야말로····!”

“부탁이다.”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브레드는 괴로운 얼굴로 현장을 돌아보았다.


“부탁이다. 못 본 척 해주면 안 될까?”


그녀의 심정을 압축한 말이었다.

모험가들은 격한 감정을 터트리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감정을 주체 못한 브레드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제기랄. 어째서인가······.”


머리를 쥐어 싸고 목 안쪽에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었다.


“이런 때를 위해 나를 써줬으면 했네! 하지만 어째서 그마저도 거부하는가!”


격한 감정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그가 가진 감정의 크기를 대변했다.


“모험가니까요.”


바네샤가 대답을 대신했다.


“여러분은 모험가니까요. 음모와 계략에서 지켜질 필요가 있어요. 마족과 전쟁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주기에, 적어도 이런 일은 우리가 감당할게요.”


어두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마다 감정을 참아내느라 괴로운 소리를 내었다.

누가 봐도 도움이 절실한 상황인데. 정작 본인들은 도움을 마다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제기랄! 그딴 거 알 게 뭐야!”


반발이 있는 건 당연한 수수이었다.

한 모험가가 사절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추기경에게 다다르기도 전에 세 명의 사절이 그를 제압했다.

불의를 참지 못했던 모험가는 바닥에 짓눌리는 동안에도 입을 멈추지 않았다.


“제기랄! 뭐가 짐승이고 뭐가 인간님이다라는 거냐! 네놈들 눈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느껴지지 않는 거냐!”


많은 모험가가 동조하여 검을 뽑았다.

모두가 무기를 들고 사절단을 노려봤다.

용감하게 나선 모험가는 더욱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너 같은 게! 너 같은 게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게 더럽고 혐오스럽다! 여신의 사자라는 자가 추잡하게 여자를 붙잡고 추행하는······!”

“그만.”


손가락을 튕기자 정적이 찾아왔다.

샴스핀은 뒤에 서 있던 사절에게 손짓하고는 칼 한 자루를 받았다.

엎드려 있는 모험가의 목 옆에 내리 꽂았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서. 바른 소리를 한 모험가와 얼굴과 가까이했다.


“나는 바솔루트 왕국의 아홉 번째 추기경 샴스핀. 그대 어린 양에게 물으니, 자네는 목숨을 걸고 나의 뜻에 도전하는가?”

“이 자식이-!”


모험가는 격분하여 소리 질렀다.

샴스핀의 얼굴에 지독한 면모가 떠올랐다.


“‘충돌’이라니! 지독한 짓을 하는군····!”


브레드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다.

충돌이란. 신성의 길을 걷는 자들이 견해의 차이를 좁힐 때 쓰는 수단. 그 방식은 신성 회의와 다르게 과격하며. 작게는 개인, 크게는 국가 단위까지 시행되는 성전(聖戰)이었다.


“왜 그런가? 우리 모험가 님은 인간 님에게 덤빌 자신이 없는 건가?”

“이 자식이-! 일개 사절단 따위가 이런 짓을 벌이고도 무사할 줄 아는 거냐!”

“여신의 길을 따르는 자에게 희생은 감내해야 하는 것. 자네와 내 뜻이 이토록 다르다면 수단을 가리면 안 되는 법이지.”


샴스핀은 바닥에 내리꽂았던 검을 뽑았다. 곁에서 나란히 서 있던 사절에게 돌려줬다.

그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일 대 일도 다수 대 일도 상관없다네. 우리는 여신의 사랑스러운 종복, 열한 번째의 날개가 전투에 임할 테니 자신 있으면 받아들이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던 사절이 머리덮개를 뒤로 젖혔다.

갈색 피부와 파스텔 색상의 하늘색 머리. 붉은 눈을 가진 청년의 얼굴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열한 번째 날개라고? 웃기지 마! 앱솔루트 본교에서 인정한 팔라딘이 어째서 너 같은 불한당에게·····!”

“이봐, 이봐 말조심하라고 우리의 날개를 모욕했다가는-”


-콰득


신발 밑창에 남자의 손가락이 분질러졌다.

모험가는 잠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아··· 으아아아악-!”

“내가 모시는 신은 셀레브리디 여신. 그리고 그녀의 뜻을 받드는 바솔루트의 교황님이다, 그분의 의지를 따르는 추기경님을 욕보이다니, 그 죄는 신성모독과 같다.”


열한 번째 날개라 불린 남성이 모험가의 비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갈했다.

이에 샴스핀은 만족스러운 듯이 손뼉을 쳤다.

입 위에 손을 올리고 허리가 꺾이도록 웃어 젖혔다.


“푸흐흐흡! 그래! 그렇고말고! 자네는 나를 불한당이라 표현했지만. 내 어디가 불한당이란 말이냐? 이봐 수인 계집. 내가 원한을 받을 정도의 짓을 너에게 저질렀나?”


-쾅


눈에 힘이 없는 루나를 탁자에 내리꽂았다.

그녀는 일말의 반항도 없이 축 몸을 늘어뜨렸다.


“응? 내 잘못인가? 내가 너에게 잘못을 저지른 건가?!”

“루나 말해! 이놈들을 내쫓으라고!”


모험가가 분노로 눈동자를 불태웠다.

이제는 단순히 대치 상태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루나의 말 한마디면 바솔루트와의 성전도 마다하지 않을 터였다.


“루나! 우리는 싸울 수 있어!”


모험가 길드와 쌓아온 유대가 빛을 발했다.

그들은 길드의 소중한 접수원을 위해서라도 피를 흘릴 각오가 되었다.


“아아, 눈물겹군. 그래서 대답은? 전부 몰살하는 길을 택할 텐가?”


샴스핀이 코웃음 치며 물었다.

사절단이 모험가들을 향해 검을 빼내 들었다.

어느 한쪽도 물러서지 않는 대치 상태가 이어진 그때.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다.”

“루나!”


모험가가 처참한 기분으로 그녀를 불렀다.

다른 모험가들도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어째서······.”

“푸흡. 푸흐흡.”


샴스핀은 입을 틀어막았다.

허리를 숙이며 웃음을 참던 그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레 손을 올렸다.


“칼아, 죽여라.”

“넵.”


다른 사절이 앞으로 나섰다.

칼이라 불린 사절이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었다.

조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외치던 모험가의 흉곽을 짓밟았다.


“감히 추기경인 나를 무뢰한 취급하고, 여신과 여신의 날개를 모욕한 죄. 죽음으로 갚는 신벌이 마땅하다.”

“추기경님의 말씀이 곧 나의 뜻이니.”


자비 없는 검이 하늘로 솟았다.

모험가는 질끈 눈을 감았다.


“잠깐만 기다려라!”


샴스핀은 쯧, 혀를 찼다.

손을 들어 올리자 칼이라 불린 남자의 검이 멈추었다.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루나를 내려다보았다.


“말해라. 무엇 때문에 신벌을 멈춘 것이지?”


샴스핀의 차가운 목소리가 일갈했다.

루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수. 술에 취한 불쌍한 취객일 뿐이다. 아무래도 헛것을 본 거 같으니 놓아주기를 부탁한다.”


용감했던 모험가는 입술을 짓씹었다.

명예도 자존심도 모두 짓밟혔다.

하지만 그까짓 자존심. 그녀의 헌신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흐음.”


샴스핀은 둘 을 번갈아보며 턱 끝을 어루만졌다.

곧 음산한 미소를 짓더니 루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생각해보니 괘씸하군.”


루나의 고개가 뒤로 꺾이고, 샴스핀의 입술이 귓가에 가까워졌다.

그의 음산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봐 계집. 네가 내게 부탁할 위치라고 생각하나?”

“뭐든지 하겠다. 그러니 제발 저 형씨는·····”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군. 인간이 짐승의 부탁을 들어줄 때는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는 말이다.”


루나의 턱을 붙잡고 혓바닥으로 얼굴선을 따라서 핥았다.


“짖어봐. 꽤 교육을 잘 받은 모양인데 나한테도 애교 좀 부려보지? 냐. 냐냐 냐냐 냐~ 말이지.”


루나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분한 마음에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모험가가 샴스핀의 행각을 보고는 다시 몸부림쳤다. 핏줄이 터진 붉은 안구로 그를 노려봤다.


“루나! 하지 마! 나 때문에 저런 놈의 말 들을 필요 없어!”

“그렇다고 하는군. 그런데 술에 취한 것치고는 울대가 멀쩡하지 않은가? 자, 어떻게 하겠나? 나는 자네의 선택을 존중하겠네, 애완동물이여.”

“루나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마-”


루나는 이를 악물었다.

모험가가 필사적으로 제 의견을 강조했다.

평소였다면. 종업원에 불과한 루나가 모험가의 의견에 반발할 일은 없었다.


“자, 나는 인내심이 길지 않네. 이 시간에도 내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으니.”


‘째깍째깍.’ 입으로 내는 소리에 루나는 입을 열었다.

설령 그것이 도와준 이를 처량하게 만드는 말임에도. 번복하지 않았다.


“부탁한다냐. 술에 취했을 뿐인 불쌍한 자를 보내줬으면 한다냐. 나 루나는 모두가 걱정하는 아무런 짓도 받지 않았다냐. 저 남자가 멋대로 생각한 아픈 망상일 뿐이다냐. 부디 자비를 베풀어 줬으면 한다냐. 목숨만큼은 살려줬으면 한다냐·····.”

“루나 어째서······.”

“칼. 뭐하나? 당장 취객을 치우지 않고?”

“예!”


용감하게 나섰던 모험가는 길드 밖으로 내쫓겼다.

추기경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배꼽을 부여잡았다.


“크크큭. 아, 그러고 보니 이쪽 교육을 받았는지는 모르겠군.”

“읏-”


모험가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어둠이 내려앉았다.

눈앞에서 희롱당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도 나설 수 없었다.

조금 전에도 도움을 주려던 모험가가 처참한 모습으로 쫓겨나지 않았던가.

그들은 그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네샤여. 내 더 이상은···!”


이러한 촌극을 보다 못한 브레드가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나서려던 그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우상이여, 당장 이거 놓게. 어떻게 이 모든 것을 보고도 나를 말릴 수 있단 말인가···!”


브레드는 자신을 말린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어제의 사정을 전달받았으며, 현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남자였다.


“나서봤자 뭐하게? 대머리 너도 저 인간처럼 쫓겨나게?”


가더는 현 상황에 조금도 동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쫓아내려는 브레드를 비난하고 나섰다.


“나의 우상이여! 어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가! 자네는 루나의 곤혹을 보고도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

“곤혹? 저 고양이가? 이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네-!”


브레드는 위압감을 뿜어냈다.

실망, 분노, 슬픔, 여러 감정이 뒤섞였다.


“자네가, 어떻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가-!”


가더를 향해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선망하던 인물이 이렇게 최악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브레드는 한때라도 가더와 친해지고 싶었던 시간을 후회했다.

있는 그대로의 배신감을 표현했음에도. 가더는 태연한 표정으로 응수하였다.


“어제 고양이가 말했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자네는 그 말을 순순히 따르겠다는 건가!”

“당연히 따라야지. 고양이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다른 사람이 왜 끼어들어?”

“다른 사람이라니! 자네는 정말로-!”


-길드장은 뭐 하고 있는 거야?


흠칫, 실랑이를 벌이던 브레드는 뒤를 돌아봤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간담이 서늘해지게 하는 무언가가 이곳에 있었다.


-길드장. 길드장만 나서면 해결될 일인데···.


모험가 사이에서 나온 아주 작은 불평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러온 여파는 남달랐다.


-접수원이 저런 꼴을 당하는데 어디서 뭐 하는 거야. 길드장인 자신은 안전하다는 거야?

-제길. 상황이 이런데 얼굴 하나 보이지 않는다니. 책임감이 있기는 한 거야?

-그래, 진작에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첫인상부터 최악이더라. 이런 길드를 신뢰했던 것부터가 멍청한 일이었어. 이곳은 이제 끝이야.


“이게 무슨······.”


브레드가 당황하며 손에 힘을 풀었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진 그때였다.


“아, 안 돼-!”


바네샤가 충격에 빠진 얼굴로 입을 막았다.

브레드는 가더를 놓고. 충격에 빠진 바네샤를 살폈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험가와의 신뢰가···!”


모험가 길드가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길드와 모험가와의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사태.

이는 곧 길드의 해산을 뜻한다.

그 우려에 브레드는 눈을 크게 떴다.


“비열한 놈들! 설마 이걸 노린 거였나!”


브레드가 이를 갈았다.

마계 타이타닉과 가장 가까운 나라, 가람 왕국.

만약 모험가 길드가 제 기능을 잃게 되면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 나라의 균형을 무너뜨리려 했던 거였군!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어!”


가람 왕국의 수비는 모험가와 타 왕국의 기사에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그 병력의 40퍼센트가 바솔루트에게서 온 것인데. 모험가 길드에 문제가 생기면 바솔루트의 입지가 눈에 띄게 커진다.


“설마 군사력을 차지하겠다는 건가요······?”


그들의 노림수는 어찌 보면 간단했다.

바솔루트 사절단이 다친 문제로 모험가 길드에 압박을 넣는다. 혹은 모험가와 길드 사이에 불화를 일으킨다.

둘 중 무엇이 되든 간에 바솔루트에게 유리한 이점으로 적용된다.


“역시··· 역시 저 사람들은···!”


그리고 이 간단한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전제 조건이 존재하였다.


“베인지역으로 수색을 나간 길드장님도, 갑작스레 실종된 부길드장님의 부재도. 저들은 전부 알고 있던 거예요···!”


브레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게 치밀하게 짜인 계획이라면 눈앞의 불의라도 막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더가 그를 막았다. 손목을 붙잡아서 놓지를 않았다.

이에 또다시 뒤를 돌며 크게 분노하였다.


“이거 놓게 나의 우상이여! 저 사악한 속셈을 알았음에도 무엇을 망설이는가!”

“고양이가 캣니스가 일어나기 전까지라도 얌전히 있어 달라고 했어. 무슨 일이 있으면 말려달라고도 했고.”

“자네는 정말로-!”


브레드는 가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테이블의 접시가 쏟아져 내리고. 그 위에 가더의 몸이 얹혔다.

끝까지 손목을 풀지 않는 가더를 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브레드의 심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그러나 아무리 괴로워도 어깨 뒤로 당긴 주먹은 내리지 않았다.


“미안하네. 무력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는. 내 무능을 탓하게.”


주먹을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바네샤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은 그때였다.


“진정하세요 신자님. 제 동행인에게 주먹을 휘두를 필요는 없으니까요.”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벅 터벅.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브레드가 휘두르던 주먹을 멈췄다.

그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나은 건가?”


2층과 이어진 계단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 밝은 금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하얀 성직자 옷을 입은 그녀가 현장에 나타났다.

캣니스 센츄어리는 로비의 상황을 스윽 훑어보고는 입을 열었다.


“잘도 저질러 주셨군요, 바솔루트 왕국의 여러분. 그리고 잘 참아주셨어요, 모험가 여러분. 이제는 누가 옳은지를 판결할 시간이에요.”


브레드는 두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어젯밤까지 병상에 누워있었던 성직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존재로 느껴지고 있었다.


‘이 느낌은 대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조된 감정이 솟아났다. 동시에 가을 들판을 마주한 것처럼 진정되기도 하였다.


“뭐냐······?”


샴스핀 또한 로비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챘다.

괴롭히던 종업원을 순순히 내려놓았다.


“너는 누구냐?”


샴스핀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바솔루트 교단과 적대하는 앱솔루트 교단의 옷을 입은 것도 모자라서,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떳떳하게 서 있는 성직자를 불쾌하게 여겼다.


“캣니스냥······.”


루나가 부어오른 두 눈꺼풀을 천천히 열었다.

눈꺼풀 너머에는 너무나 소중한 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인신(人神) 셀레브리디를 모시는 앱솔루트의 사제복을 입고, 바솔루트 왕국에서 찾아온 사절단 앞에 섰다.


“제 이름은 캣니스 센츄어리.”


캣니스는 샴스핀의 불쾌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캣니스 센츄어리. 앱솔루트 왕국에서 세례를 받은. 여신님을 모시는 진정한 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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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작가의 TMI: 바솔루트에는 열한 명의 추기경이 존재한다. 그들 또한 높은 신성력 수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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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39화 던전 23.01.13 66 0 15쪽
48 38화 던전 23.01.02 70 0 15쪽
47 37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9 73 0 14쪽
46 36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8 72 0 14쪽
45 35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6 69 0 21쪽
44 34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19 77 0 12쪽
43 33화 선택의 책임 22.12.04 75 0 21쪽
42 32화 선택의 책임 22.12.03 75 0 15쪽
41 31화 선택의 책임 22.12.02 8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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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1 22.11.28 81 0 14쪽
31 30화 뒤풀이 +1 22.11.27 83 0 13쪽
30 29화 뒤풀이 22.11.26 71 0 14쪽
29 28화 뒤풀이 22.11.25 7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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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6화 뒤풀이 22.11.23 75 0 10쪽
26 25화 뒤풀이 22.11.22 83 0 12쪽
25 24화 뒤풀이 22.11.21 88 0 10쪽
24 23화 전야제 22.11.20 87 0 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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