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5.08 23:16
연재수 :
194 회
조회수 :
11,261
추천수 :
127
글자수 :
1,467,074

작성
22.11.29 11:00
조회
66
추천
0
글자
10쪽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4

DUMMY

“그래 숲속은 어떠했나?”


야영지 안에 자리잡은 성기사 군의 지휘 막사.

카마인은 부하의 보고를 기다렸다.


“오늘도 같습니다. 나무의 가지와 뿌리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고, 지도에 있던 길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나흘 동안 얻은 정보치고는 쓸모없군. 성스러운 샘이 있는 곳까지 가는 길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것이. 억지로 뚫고 들어가도 식물이 금방 자라납니다. 땅의 발자국도 흔적이 남지 않아, 단기간 내에 샘을 찾지 못할 경우··”

“고립되고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알겠다. 보고는 이쯤 하도록 하지.”


카마인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며, 붉은 눈동자를 스산하게 가라앉혔다.

교황이 직접 접근 불가라고 선포했던 성스러운 숲을, 왜 굳이 최연소 기사단장과 전투에서 활약도 못 하는 용사를 보낸 걸까.


-툭툭


테이블 대용으로 쌓은 나무상자를 두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황의 명령에는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용사는 무얼 하고 있나?”

“용사님은 씻으러 갔습니다.”


그는 부하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첫날 숲에 들어온 날 이후로 숲에서의 습격은 없었다.

그 덕분에 성직자를 만날 일도, 카마인이 그녀의 거슬리는 행동을 목격하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다만-”


카마인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다음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 알 거 같지만, 말을 늘어뜨리는 부하에게 턱짓으로 재촉하였다.


“저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냇가로 다니고 있습니다.”

“냇가? 언제부터 그랬지?”

“첫날부터 그러했습니다.”


카마인은 혀를 찼다.

원정의 구성원이 성직자들로만 이뤄진 만큼 정화의 축복으로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굳이 부하의 보고처럼. 이 추운 날씨에 찬물로 몸을 씻을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 쪽에서 그녀를 정화하기를 거부하는 건가?”

“아닙니다. 저희가 말했지만, 거부 받았습니다.

“그러면 목욕물을 데워달라고는 하지 않던가?”

“그것이, 그것도 괜찮다며 사양하셨습니다.”

“하! 그러면 우리의 손이 닿는 것들이 불편하고 불쾌하다고 하던가?”

“그··· 그런 말은 한 적 없지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쾅


내구가 약한 테이블이 무너졌다.


“용사는 어디 있지?”


얌전한 줄 알았더니,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거슬리는 행동을 하고 있던 성직자.

대답을 재촉하는 카마인의 눈빛에는 조금 전까지 희미하게 남아있던 여유가 사라졌다.



*****



-찰팍


성직자는 야영지와 떨어진 냇가에 발을 담갔다.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하얀 천 하나를 가슴 앞에 쥔 채 냇가의 중심을 향해 발을 옮겼다.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녀는 맑은 물로 머리를 감으며, 지켜보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말했다.


“여기까지 도와주시는 것도 감사한 일인걸요.”


손바닥 안에 담은 맑은 물을 얼굴에 적셨다. 손에 닿은 피부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길은 알고 있으니 앞으로 조금만 참아주세요.”


재미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미소 지었다.

다시 한번 물을 퍼서 황금색 알갱이를 띄웠다. 그것을 냇가에 풀자 둥실둥실 숲 안쪽으로 흘러갔다.

황금빛 알갱이가 사라질 동안 눈을 떼지 못한 그때였다.


-바스락


바스락하고, 등 뒤에서 풀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용사!”

“꺅!”


풀 밟는 소리에 이어진 건 남성의 목소리였다.

성직자는 황급히 하얀 천으로 앞을 가리고 물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놀라고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냇물 바깥을 쳐다봤다.


“당장 나와라.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명령하는 말에 성직자는 말문이 막혔다.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당장 나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것도 한 여인이 목욕하는 중에!


“무례해요! 어떻게 여인이 몸을 씻는 시간에···!”

“잔말 말고 빨리 나와라. 발가벗은 채로 숲의 거름이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미쳤다. 도저히 미치지 않고서야 저지를 수 없는 발언에 입을 벌렸다.

성직자는 그의 말을 따라야 할지 물속에서 버텨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올 수 없다면 내가 직접···!”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조금 전까지 얼굴만 물 밖으로 내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얇은 천 하나에 의존하며. 검 손잡이를 붙잡은 카마인을 향해 눈매를 날카롭게 떴다.


“단장님 말 들을 테니까! 최소한 뒤 돌아 있으라고요!”


이 정도의 배려도 받지 못한다면 나가지 않겠다.

양보할 수 없는 선을 밝히자 카마인은 순순히 뒤를 돌았다.


“미쳤어···. 미쳤다고······.”


성직자는 수치심으로 몸을 떨었다.

찰팍찰팍 물을 박차는 소리가 냇가를 채우고, 천이 펴지고 구겨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됐어요. 뒤 돌아도 돼요.”


카마인은 한숨을 뱉고 뒤를 돌았다.

성직자가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을 보자, 무엇에 화가 났던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찡그렸다.

말한 대로 급하게 옷을 입었는지. 성직자의 머리카락과 옷에는 물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카마인은 말꼬리를 늘어뜨리는 게 자신답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크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야 간신히 평정을 되찾았다.

정상적으로 마주할 수 없어서, 반쯤 상체를 돌린 채 말을 걸었다.


“뭐가 문제였습니까?”

“무얼 말하는 거죠?”

“지금 이러는 이유 말입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예요?”


성직자에게서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카마인은 기분이 상하기보다 차라리 이런 말투가 좋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저번 일로 불만이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졌으니. 이런 식으로 행동할 바에야 요구사항을 말씀하시죠.”

“·····하?”


그 나름대로 온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성직자는 진심으로 당황하였다.

대체 그녀 자신이 무얼 했다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카마인은 제 할 말을 쏟아냈다.


“용사답게 구는 건 그만두어도 됩니다. 따뜻한 이불을 원하십니까? 좋습니다. 아니면 모두에게 관심받는 일을 원하십니까? 그것도 들어드리겠습니다. 아니면 이번 원정이 끝나고 당신의 이름을 칭송하기를 원하십니까? 그 부탁 또한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괜한 고집 그만 부리고 돌아오십시오. 용사님의 이런 행동은 당신뿐만 아니라 원정대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보세요 단장님···!”


성직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눈동자에는 조금 전의 수치심은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분노만이 자리 잡았다.


“지금 고작 그런 말을 하려고 여인의 순결을 더럽힌 건가요!”

“순결이라니···. 왜곡이 지나치시군요.”

“외간 남자에게 제 치부를 드러냈습니다. 이것을 제 수치가 아니라면 뭐라고 설명할 건가요!”

“그 부분에 대해서 말하는 거라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여인이라고 칭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군요.”

“뭐라고요?”

“제 나이가 올해로 스물여덟입니다. 그에 비해 용사님은 어떻죠? 열 살? 아니면 열두 살? 이상한 사상을 강요하지 마시고, 용사의 명성에 걸맞은 정신사상을 기르셔야 할 거 같습니다.”

“열네 살이에요! 저를 애 취급하지 마세요!”

“애를 애라고 취급하지, 뭐라고 취급합니까? 열네 살이라는 나이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는데 제게는 여전히 까마득히 어린 나이에 불과합니다. 법적으로도 아직 어린아이이니 어른으로 대우받을 생각은 하지도 마시죠.”

“으. 으으읏!”


성직자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전까지 사과받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도 사라졌다.


“됐어요!”


그녀는 목욕할 때 썼던 천을 챙기고 휙 몸을 돌렸다. 숲속을 성큼성큼 걷다가 등 뒤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 부탁을 들어주신다고 하셨죠? 제발 지금부터 저에게 신경 쓰지 마세요!”


씩씩거리며 화를 내고는. 성난 발걸음으로 숲 안으로 향했다.

카마인은 그 모습을 팔짱을 낀 채로 지켜보다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내가 웃은 건가?”


얼굴에 이상한 표정이 감돌았다.

조금 전에 벌인 행동을 믿지 못하는. 그런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분명 대화하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굳혔다.

뒷골목 시절부터 청각 하나는 예민했기에, 망을 보던 행동도 멈추고 무심코 다가가 버렸다.


“그런데 어째서···.”


정작 그녀를 마주하였을 때는 대화에 대해서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왜냐고 물으면. 분위기에 휩쓸렸고, 무언가를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었다.


“역시 더 지켜봐야겠어.”


카마인은 애꿎은 뒷머리를 만지며 야영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성직자의 부탁은 조금 더 미뤄야 할 거 같았다.


“또 뭔가요?”


그날 밤 성직자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가늘게 뜬 눈꺼풀 너머로, 막사 안에 들어온 낯익은 남자를 경계했다.

카마인은 작은 맹수의 으르렁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다란 솜이불을 그녀의 머리 위에 덮어버렸다.


“푸하- 지금 뭐 하는 건가요! 제가 신경 쓰지 말아 달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이불에 파묻힌 채로 화를 내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카마인은 잡스러운 생각을 떨쳐내고 입을 열었다.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건 제가 했던 말이에요!”

“그래도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저 낮에 치부를 본 것에 대한 작은 위로랄까요.”

“이- 이익-!”


성직자는 신발을 던졌다. 베개도 던지고 다른 던질 물건을 찾아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더 이상 던질만한 물건이 없었다.

견습사제들이 제 신발을 사수하고 있었다.


“어린애처럼 이러지 마시죠.”


카마인은 신발을 원상태로 정리했다.

성직자는 다시 그걸 집어 던진 뒤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빨리 가버려요!”


이불 속의 성직자가 화를 내었다.

카마인은 신발을 다시 정리해 둔 뒤, 짧은 미소를 짓고는 자리를 떴다.


“우와, 나 카마인 님이 웃은 거 처음 봤어.”


같은 막사를 공유하는 견습사제가 말했다.

성직자는 그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두 귀를 막았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오후에 두 개 더 올릴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37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9 73 0 14쪽
46 36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8 72 0 14쪽
45 35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6 69 0 21쪽
44 34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19 77 0 12쪽
43 33화 선택의 책임 22.12.04 74 0 21쪽
42 32화 선택의 책임 22.12.03 74 0 15쪽
41 31화 선택의 책임 22.12.02 86 0 14쪽
40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9 22.12.01 73 0 15쪽
39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8 22.12.01 64 0 10쪽
38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7 22.11.30 66 0 14쪽
37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6 22.11.29 67 0 12쪽
36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5 22.11.29 62 0 13쪽
»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4 22.11.29 67 0 10쪽
34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3 22.11.28 70 0 12쪽
33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2 22.11.28 67 0 13쪽
32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1 22.11.28 80 0 14쪽
31 30화 뒤풀이 +1 22.11.27 81 0 13쪽
30 29화 뒤풀이 22.11.26 70 0 14쪽
29 28화 뒤풀이 22.11.25 72 0 11쪽
28 27화 뒤풀이 22.11.24 73 0 9쪽
27 26화 뒤풀이 22.11.23 74 0 10쪽
26 25화 뒤풀이 22.11.22 81 0 12쪽
25 24화 뒤풀이 22.11.21 87 0 10쪽
24 23화 전야제 22.11.20 85 0 21쪽
23 22화 전야제 22.11.19 90 0 18쪽
22 21화 전야제 22.11.18 88 0 18쪽
21 20화 전야제 22.11.17 89 0 16쪽
20 19화 전야제 22.11.16 88 0 14쪽
19 18화 전야제 22.11.15 88 0 22쪽
18 17화 전야제 22.11.14 87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