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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이 의 서재입니다.

실직한 마왕성 문지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지하이
작품등록일 :
2022.10.26 12:21
최근연재일 :
2024.06.12 22:45
연재수 :
207 회
조회수 :
11,841
추천수 :
130
글자수 :
1,5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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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6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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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41화 던전

DUMMY

41화 <던전>



“가자, 마밍!”


자일리는 작은 골렘을 어깨에 얹었다.

골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이곳저곳 출구를 찾아다녔다.

중간중간에 무시무시한 골렘이 돌아다녔지만, 무사히 들키지 않곤 하였다.

이대로라면 몸 다치지 않고 무사히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마밍! 마밍!”

“그래? 저쪽이야?”


자일리는 주위가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 다시 움직였다.


“마밍!”

“여기서 왼쪽?”

“마밍!”

“여기서 오른쪽?”

“마밍!”

“또 왼쪽?”

“마밍!”

“······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를 긴 시간이 지나고.


“마밍!”

“야, 인마!”


자일리는 자리에 멈춰 섰다.

팔을 들어서 있는 힘껏 골렘을 내동댕이쳤다.

그는 씩씩거리며 소매를 걷었다.

바닥에 던져져도 멀쩡한 골렘을 손가락질하였다.


“야! 같은 곳만 몇 번째야 망할 돌덩이야!”


길을 모름에도 알 수 있었다.

몇 발자국 떼지도 않고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이다.


“너- 너! 사실은 내 힘을 빼게 해서 잡아먹으려는 거지!”


위험한 일을 당하기로 한 것처럼 손바닥으로 몸을 가렸다.

바닥에 있는 돌덩이를 주워서 작은 골렘을 위협하였다.

자일리는 작은 골렘에게 수상한 의도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맹목적인 믿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너 말이야. 날 속이려고 하는 거면 크게 실수한 거야. 내가 어려 보여도, 아카데미의 최연소 원소 마스터인···”


그는 배짱 좋게 말하지만 작은 골렘에게서 슬금슬금 뒷걸음쳤다.

제아무리 작은 골렘이라도 싸우기에는 무서웠다.


“무무, 마밍.”


작은 골렘이 팔을 위로 올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나 힘없는 소리였는지. 자일리의 얼굴이 화륵 달아올랐다.


“뭐야 그 울음소리는?! 나를 무시하는 거야?”

“무무무.”

“이, 이 쪼그만 게 나를 비웃어? 너 같은 건 내 마법에 걸리면 한주먹거리도···”


‘우씨’ 화를 내며, 돌멩이를 쥔 손을 들어 올린 그때였다.

작은 골렘이 뒤를 돌아서 걸어갔다.

자일리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서서히 손을 내렸다.


“야 어디 가? 도망가는 거냐?”

“마밍 마밍.”


작은 골렘은 뒤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뭐라는 거야···. 그래, 꽁무니 빠지게 도망쳐라! 엄마 품에 가서 돌덩이 하나나 더 붙이고 덤비라고!”

“무무무.”

“너! 나보고 한심하다고 했지! 그렇게 도발해도 따라갈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야! 날 만만히 보는 거라고!”


자일리는 신경질 내고 눈꺼풀을 닫았다.

팔짱까지 끼고 고개를 돌렸다.

제아무리 상황이 급박하다지만 그는 톨스 가문의 자제였다.

고작 골렘에게 휘둘릴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절대 가지 않을 거고, 보지도 않을 거야! 이대로 떠나면 다시는 보지 않을 거라고!"


-라고 기세 좋게 외친 의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는 주위에 아무 소리도 없자 슬며시 눈을 떴다.


“마밍아?”


작은 골렘은 온데간데없었다.

제 손에 있는 헤이즈 너머만 조용히 일렁였다.

그제야 자일리는 자신이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밍아, 조금 전의 말 철회해도 될까?”


어둠 속에서 대답은 없었다.

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미, 미안해 마밍아. 내가 잘못했으니 다시 돌아와 줘······.”


자일리는 헤이즈를 내려두고 대역죄인처럼 머리를 박았다.

하지만 여전히 작은 골렘은 돌아오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미안해 마밍아! 내가 잘못했어!”


끝내 엉금엉금 기어가며 작은 골렘을 찾아다녔다.

분명 마밍의 행동은 미심쩍었지만, 그게 홀로 남겨질 만큼 불편한 건 아니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두려운 건 혼자 남겨지는 일.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돌덩이라 할지라도 그것의 관심이 필요했다.


“사과의 의미로 소원 하나 들어줄게! 그러니 제발 돌아와!”


던전이 울리도록 애절하게 외쳤다.


“마밍?”

“마밍아!”


소리가 들렸다.

자일리는 벌떡 일어나서 헤이즈를 들고 뛰어갔다.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작은 골렘이 서 있었다.

그가 부둥켜안으니 작은 골렘이 일순 썩었다.


“흐어엉! 얼마나 무서웠다고! 조금 정색했다고 이런 못난 짓을 벌이다니! 너 진짜 너무 한 거 아니냐?”

“마밍···.”


당황한 작은 골렘의 기분을 아랑곳하지 않고,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쏟아냈다.


“엉엉! 그래. 당연히 너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모든 게 다 멍청한 내 탓이야!”


지알리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였다.

눈물은 진정시킨 뒤에는. 두 손으로 작은 골렘을 번쩍 들어서 머리 위에 얹었다.


“네 말이라면 다 따를게! 설령 거기가 지옥이라도 망설임 없이 들어가겠어!”

“마밍!”


조금 전의 말을 나무라듯이 작은 골렘이 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뭉클하고, 자일리의 마음이 촉촉하게 젖었다.


“그러지 말라고? 역시 넌··· 내 최고의 친구야.”


자일리는 다시 골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무사히 나갈 수 있을지 겁에 질려 있던 이전과 다르게 작은 골렘을 믿는 발걸음에 힘이 담겼다.


“마밍아. 무사히 빠져나가면 바깥세상을 소개해 줄게. 우리 집 멍청한 메이드랑 아니꼬운 집사. 힘만 무식하게 센 기사단장 그리고 호위로 따라온 녀석하고, 날 무시하고 깔본 멍청한 아카데미 녀석들 말이야.”

“마밍.”

“밖으로 나가면 놈들에게 내가 겪은 일을 말해줄 거야. 내 엄청난 모험담을 들으면 놈들은 다들 오줌을 지리겠지?”


자일리는 그렇게 될 거라 믿으며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그때가 되면 너를 소개할게. 내 최고의 친구이자 생명의 은인이라고!”


‘와!’ 소리를 지르며 작은 골렘을 높이 들었다.

아직 소년 태를 벗어나지 못한 순수한 모습이 있었다.

빙글빙글 돌면서 작은 골렘을 끌어안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마밍. 우리는 영원히 함께야.”

“마밍.”

“앞으로도 쭈욱~ 영원히 같이 사는 거야.”

“마밍~”

“일단 그러기 위해서라도 무사히 이곳을···”


쑤욱. 몸이 아래로 빠졌다.

새로 내민 발이 순식간에 허공을 디뎠다.


“허억. 허억! 깜짝아!”


가까스로 밑으로 떨어지는 위기는 모면했다.

구덩이 앞에 주저앉아서 놀란 마음을 진정했다.

그의 바로 앞에서 거대한 구멍이 떡하니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곳에 구멍을-!”


자일리가 놀란 마음에 헤이즈를 한껏 휘두른 그때였다.


“마밍!”


반짝하고. 구멍 뚫린 길 반대편에서 익숙한 물건이 빛을 냈다.


“저건···.”

“마밍!”


자일리는 구덩이를 건널 방법을 수색했다.

다행히 좁은 길이 하나 있었다.

발 하나 겨우 디딜 수 있는 길을 건너서 건너편으로 이동했다.

헤이즈를 움직여 빛을 비추자, 박살이 난 랜턴이 보였다.

던전 입구에서부터 길을 비출 때 썼던 일반 양초로 불을 밝히는 랜턴이었다.


“설마 여기서부터 우리가 떨어진 건가?”


헤이즈로 구멍 밑을 비췄다.

구멍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봐 캣니스! 대머리 아저씨!”


소리를 지르고 귀를 기울였다.

아쉽게도 목소리만 메아리칠 뿐. 다른 소리는 없었다.


“여기에도 표식을 새기고 움직이자.”

“마밍!”


자일리는 대충 벽에 표식을 새기고 자리를 옮겼다.

다시 작은 골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려는데 발끝에 익숙한 물건이 눈에 담겼다.


‘저건!’


허리를 숙여서 물건을 만졌다.

마나를 주입하면 늘어나는 매직로프였다.


‘다행이야. 밧줄이 제대로 이어져 있어!’


자일리는 입구까지 이어진 매직로프의 감촉을 느끼며 안심했다.

희미했던 희망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네 덕분이야 마밍.”

“마밍?”

“나가면 꼭 호강시켜줄게.”

“마밍~”


더 지체할 수는 없었는지 작은 골렘을 품에 안고 움직이는 속도를 높였다.

길을 이은 매직로프를 따라서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


달리는 동안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서 마을로 내려가자.

모험가 길드에서 두 사람의 상황을 이야기하자.

그렇게만 되면 모두가 행복해지겠지?


‘그 아이도 나를 다시 봐줄지 몰라.’


자일리가 그들을 구할 미래를 계획하며 빠르게 움직인 그때였다.


“마밍!”


퍽.


“어?”


갑자기 작은 골렘이 자일리의 이마를 때렸다.

이 때문에 ‘악!’ 비명을 지르면서 그것을 놓쳐버렸다.


“뭐, 뭐 하는 거야?!”


한 대 맞아서 멍이 들 것 같은 눈가를 어루만지며. 떨어뜨린 작은 골렘을 찾아서 바닥을 더듬었다.

겨우 손가락 끝에 닿아서 한 소리 하려던 그때.

어둠 너머에서 미세한 빛이 보였다.


“마, 마밍아···!”

“마밍!”

“마밍아! 출구가 코앞이야.”

“마밍! 마밍!”

“기쁘다는 표현이지? 사실 나도 그래!”

“마밍! 마밍-!”


그러나 기쁜 자일리와 다르게, 작은 골렘은 몸을 좌우로 바쁘게 저었다.

자일리는 작은 골렘을 들고 냅다 뛰었다가, 그것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눈치를 살폈다.


“왜 그래? 어디 불편해?”

“마밍! 마밍!”

“뭐 때문에 그러는데?”

“마밍. 마-밍!”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 나가서 실컷 들어 줄 테니. 지금은 그만 좀 발버둥 쳐··· 아얏!”


이번에는 작은 골렘이 자일리의 손가락을 꺾었다.

갑작스러운 통증에 또다시 품에 안은 작은 골렘을 놓쳐버렸다.


“마밍! 마밍!”


바닥에 내려온 작은 골렘은 짧은 팔다리를 파닥였다.

자일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통을 인내했다.


“뭔데···. 나가기 싫다는 거야?”

“마밍. 마밍.”

“싫은 게 아니라고? 그런데 왜···”


작은 골렘은 잠시 생각할 게 있는지 움직임을 멈췄다.

그러다가 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나가기··· 싫다고······?”


반갑지 못한 표현에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크게 뜨인 눈동자에는 배신의 감정까지 엿보였다.


“마밍. 우린 친구잖아! 친구라면 당연히 친구를 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큰소리를 치는 자일리.

작은 골렘은 힘없이 팔다리를 내렸다.

그러다가 또 무언가 결심하듯 뒤를 돌아 달려갔다.


“마밍. 마밍.”

“잠깐! 너, 어디 가?!”


자일리가 돌발행동에 깜짝 놀라서 뒤따르려던 그때였다.


“마밍!”

“커헉!”


묵직한 무게가 복부에 들이닥쳤다.

자일리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감각을 느꼈다.

바닥에 쓰러지면서 용케 졸도하지 않았지만, 배를 감싸 안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마밍아···. 도대체 왜······.”

“마밍. 마밍!”


출구가 코앞이었지만 따라오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속이 뒤집힐 것같이 끔찍하게 아팠다.


“마밍. 마밍.”


시야가 핑핑 돌았다.

아직 낫지 않은 몸으로 무리했다가 또다시 충격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코앞에서 작은 골렘은 기이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이 일이 마냥 행복한 듯 웃고 있는 작은 골렘.

자일리의 얼굴이 대번 구겨졌다.


“너··· 배신자······. 너도 나를 배신하려 했던 거였구나!”

“마밍···?”

“꺼져버려···.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엄한 호통에 작은 골렘은 뒷걸음질 쳤다.

얼굴에 난 두 구멍이 서글픈 듯 형태를 바꿨다.


“꺼져···. 꺼지라고···!”


자일리는 작은 골렘을 향해 악을 썼다.

바닥에 깔린 흙먼지를 그것에게 뿌렸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순진무구했던 모습이 거짓말임을 알았다. 조금 전에 그 웃음은 제 고통을 기뻐한 악마였다.


"꺼져! 꺼져버려!"


계속해서 흙을 흩뿌리자, 그제야 작은 골렘이 출구를 향해 움직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더욱 표정이 일그러뜨렸다.


“젠장, 젠장!”


자일리는 바닥을 내리쳤다.

다친 몸으로 피로가 누적된 결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친구라고 믿은 게 잘못이지! 저 녀석은 나를 이용한 거야!’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자신을 이용했다.

나가는 건 골렘 자신만으로 족하기에 입구 앞에서 공격한 거였다.


‘처음부터 잘 못 엮였어. 저런 거에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됐었는데!’


자일리는 복부의 통증을 느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신이 다른 무언가를 믿었음을. 뼈가 시리도록 후회하였다.


‘바보 자일리! 왜 인제 와서 저런 것을 믿은 거야!’


믿음이란, 상호 이해가 가능한 관계에서만 신용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어째서 지성이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골렘을 믿은 걸까.

아무래도 무생물이라 생각하고 방심한 모양이다.

한순간에 무너진 신뢰가 자일리의 마음을 나락으로 떨구었다.


-야. 천재 마법사?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데 떠들고 다니냐?

-내가 천재 마법사라고 떠들고 다닌 적 없어, 학생회장이 되어서 이런 짓이나 저지르고! 창피하지도 않아?


한때 믿었던 친우가 손바닥 뒤집듯 배신했다.

그 끝은 모두와 격리된 왕따 생활이었다.


-도련님. 축하드려요. 앞으로 저랑 볼 일이 없겠네요.

-가지 마. 내가 버림받은 게 내 잘못이야? 제발 나를 떠나지 마!


어려서부터 따랐던 시종도 곁을 떠났다.

그를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자일리? 아아, 그 여자 시종? 그야 며칠 전에 내보냈지. 셋째 놈이 주제도 모르고 너를 견제하려고 보낸 아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형. 걔가 못된 마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진실은 제 마음을 갉아먹었다.

배신자라는 말에 위로는커녕 더한 상처로 남았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거 하나만 믿고 제 어미랑 죽어가던 것을 데려왔더니. 쯧, 역시 하자가 있었군.

-아버지···. 그게 제 잘못인가요···.


천재 마법사. 모두에게 사랑받는 막내아들.

그러나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애정을 바라지 못하였다. 제 것이라 여겼던 모든 것을 허무하게 빼앗겼다.

그래도 아직 희망을 잃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쌓아놓은 지식은 거짓이 아니었기에···


-나, 나 같은 신입에게도 마법으로 발리는 주제에! 거, 건방지게 내 마법 술식에 훈수를 둬?

-야야, 그만 패라. 그러다 울겠다. 그보다, 망나니. 아~ 입 벌려~


“윽. 우욱-”


내장을 다쳤는지. 비릿한 향기가 목을 타고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붉은 혈액이 손바닥 위로 잔뜩 쏟아졌다.


-푸훗. 푸하하하하. 이거 말이야, 마나 역류 치료제인데 멀쩡한 사람한테 쓰면 죽을 수도 있다더라. 뭐? 에이, 뭘 그렇게 겁에 질려서 사람을 노려보냐? 내가 아무런 개량도 안 하고 이런 약을 먹일 리 없잖아?


비웃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모르모트가 되었던 기억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내장이 단단히 꼬이는 거 같았다.

고통이 너무나 아팠다.


“제발···. 제발 꺼져···! 너희 같은 놈들에게 무시 받고 싶지 않아!”


자일리는 머리를 감싼 채 울부짖었다.

목 안쪽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더니, 한 번 더 혈액이 쏟아졌다.

그는 또 다른 환영이 될 작은 골렘을 한껏 노려보았다.


“좋겠어. 정말 좋겠다고 이 돌덩어리야!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혼자 나가다니! 속이 시원할 만큼 기쁘냐! 우월한 기분이 들어서 우쭐하냐!”


하나뿐인 헤이즈도, 작은 골렘이 들고 멀리 떨어졌다.


“내가 미쳤지! 왜 너 같은 쓰레기를 믿었을까?! 못생기고, 짜리몽땅하고 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멍청한 골렘한테!”


자일리는 소리를 지르고 또 소리쳤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입술을 물어뜯어서 피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나는 말이야···, 적어도 네가 내 친구인 줄 알았어. 너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고······. 그런데 너는 어떻게······.”


‘자신을 배신했는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바닥을 적셨다.

온전치 않은 정신으로 온 힘을 다해서 작은 골렘을 저주하였다.

이제는 목이 아파서 더 말을 쏟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색색’거리며 쇳소리를 내며, 가쁜 호흡을 내뱉던 그때였다.


“마···법···사······ 형.”


자일리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들어서 작은 골렘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분명 골렘의 목소리가 지금까지의 목소리와 다른 형태였다.


“마법사 형···. 좋은··· 사···람···.”

"뭐?"


-쿵


그는 갑작스러운 이변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거대한 땅울림이 던전을 울렸다.

조금 전까지 미워했던 대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자일리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


산산조각이 난 랜턴. 산산조각이 난 무언가.

자일리의 내면에서도 무언가 산산이 조각났다.

화륵.

마력 제어 기관을 잃은 헤이즈가 하늘 높이 불타올랐다.

출구의 빛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세게 타올랐다.


“거짓말이지···?”


자일리는 비틀비틀 일어섰다.

힘이 빠진 다리를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잖아. 날 놀리는 거잖아. 제발 거짓말이라고 해줘. 제발···.”


털썩.

작은 골렘이 있던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양손을 펼쳐서 바닥에 있는 것을 쓸어 담았다.

작은 돌덩이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고강도의 붉은 마력석만이 작은 골렘의 존재를 증명해 주었다.


-우어어어어!


귀를 멀게 할 정도의 큰 울림.

강한 진동과 함께, 땅울림의 원흉이 움직였다.


“마밍. 넌 나에게 이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구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대한 조각상이 움직였다.

천장에 닿을 법한 거대한 골렘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하··· 난 이런 줄도 모르고······.”


조금 전 놈은 입구 밖으로 나가려던 존재를 부숴버렸다.

이것을 눈치채고 있던 작은 골렘이 자신을 위해···.


“제기랄···.”


자일리는 붉은 마력석을 이마에 갖다 댔다.

후회하는 눈물이 손을 타고 흘러내렸다.


“봐. 결국 내가 멍청한 거라니까. 아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 전혀 분간 못하잖아.”

“우어어어어-!”


또다시 거대한 울림이 일어났다.

열이 없는 마력불은 골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한다.


-쿵. 쿵.


연달아서 땅울림이 일어났다.

어디에 그리 많이 숨어있었는지. 수많은 골렘이 사방에서 다가왔다.

그들은 한곳으로 모였다.

자일리가 있는 유적지의 입구 앞이었다.


“우어. 어. 어. 어. 어. 어. 어. 어.”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이 기이한 소리를 냈다.

같은 인간이었다면 툭 발길질이라도 할 것 같았다.


-멍청한 자일리.

-한심한 자일리.

-구제불능 자일리.


골렘의 기이한 소리는 기억을 자극하였다.

사방을 에워싼 골렘 속에서 지난 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일리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그동안에도 비웃는듯한 웃음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악취미야······.”


뿌득, 망가진 줄 알았던 그가 이를 갈았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붉은빛이 반사되는 골렘의 몸뚱아리들을 보았다.


“나는 말이야···. 다른 건 몰라도 내 것을 건드리면 눈이 돌아버려······.”


여전히 비웃는 소리가 계속되었다.

툭. 작은 돌멩이가 이마에 날아와 상처를 냈다.

더 웃음소리가 커지자, 손에 있는 마력석을 세게 쥐었다.


“재밌겠지. 암 재밌겠지. 개미 같은 놈들이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짓는 게 우습겠지.”


자일리는 고개를 들고 똑똑히 눈에 담았다.

연금술의 산물이라고 해도 좋을 골렘들의 모습을.

고대의 연금술사는 이것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쳤겠지만. 이것은 결코 평생을 바쳐서 목표로 삼을 것이 못 됐다.


“왜 너희들이 이런 곳에 묻혀있는지 알겠어. 이런 악질인 놈들이 즐비하니까. 만든 사람도 꼴 보기 싫어서 매장했을 게 당연하네!”


자일리는 랜턴의 유리 조각 속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골렘은 여전히 비웃고 있었다.


“그래, 더 웃어! 내 꼴을 보고 실컷 웃으라고! 나는 마법 하나 제대로 사용 못 해! 빌어먹을 저주 때문에 한평생 쌓아 올린 게 물거품이 됐다고! 너희들은 뭐! 나보다 뭐가 잘났는데?! 나를 갖고 논 다음은 캣니스야? 아니면 대머리 아저씨? 뭐가 됐든 너희는 딱하게 됐어. 정말 딱하게 됐다고! 너희들의 첫 상대가 이 천재 마법사라서 말이야!”


자일리는 손에 쥔 것들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교양없이 입 안에 넣은 것들을 전부 목 안쪽으로 삼켜 넘겼다.


“크윽. 으으윽···.”


곧바로 목을 찢는 통증과 함께 각혈했다.

가슴 안에서부터 타오르는 통증이 일어났다.

몸 안부터 바깥까지 성치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이 불타오르는 통증에 비하면 별 볼 일 없었다.


“쿨럭.”


목 안쪽으로 삼킨 헤이즈의 제어 마력석.

적어도 중급 이상의 마력석이 그의 마력과 공명하였다.


“아무리 내가 만만해 보여도. 개미인지 독충인지는 알아보고 있었어야지!”


자일리는 피를 토해냈지만, 입꼬리를 비죽였다.

이번에는 그가 그들을 비웃어줄 차례였다.

가운뎃손가락을 바로 세우고. 통제되지 않는 마력을 해방했다.


“어디 한 번 맛봐봐···. 이게 천재 마법사를 몰락시킨 고유 스킬-부식(腐蝕)이다.”


최후의 저항인 검은 마나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제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면 추천과 좋아요 잊지마세요-!


작가의말

작가의 tmi: 마력석은 마나가 남긴 돌을 뜻한다. 마법사들은 이를 여러 마법 술식의 매개체로 사용하기도 하고, 마력의 마나량을 증폭시키는 용도로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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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외전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 23.02.26 66 0 10쪽
59 49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21 74 0 17쪽
58 48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7 66 0 13쪽
57 47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3 71 0 14쪽
56 46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10 51 0 13쪽
55 45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8 58 0 14쪽
54 44화 끝나지 않은 위험 23.02.04 55 0 11쪽
53 43화 던전 23.02.01 57 0 11쪽
52 42화 던전 23.01.29 59 0 18쪽
» 41화 던전 23.01.26 61 0 21쪽
50 40화 던전 23.01.25 62 0 17쪽
49 39화 던전 23.01.13 69 0 15쪽
48 38화 던전 23.01.02 72 0 15쪽
47 37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9 75 0 14쪽
46 36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8 74 0 14쪽
45 35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26 72 0 21쪽
44 34화 앱솔루트에서 온 손님 22.12.19 80 0 12쪽
43 33화 선택의 책임 22.12.04 78 0 21쪽
42 32화 선택의 책임 22.12.03 77 0 15쪽
41 31화 선택의 책임 22.12.02 89 0 14쪽
40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9 22.12.01 74 0 15쪽
39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8 22.12.01 65 0 10쪽
38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7 22.11.30 68 0 14쪽
37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6 22.11.29 70 0 12쪽
36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5 22.11.29 64 0 13쪽
35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4 22.11.29 71 0 10쪽
34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3 22.11.28 73 0 12쪽
33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2 22.11.28 72 0 13쪽
32 외전 용사 그리고 기사1 22.11.28 83 0 14쪽
31 30화 뒤풀이 +1 22.11.27 85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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