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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피의 상상극장.

황금시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김상준.
작품등록일 :
2023.09.26 18:32
최근연재일 :
2023.12.08 22:41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747
추천수 :
73
글자수 :
135,075

작성
23.12.04 18:30
조회
58
추천
2
글자
11쪽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4)

DUMMY

"정기. 황정기 씨발새끼..."

"어디서 알게 된 친구였어요?"

"같이 살았어. 내 윗 침대 썼지."

"아. 보육원."

"응. 걔네 아버지가 사람은 호탕하니 좋았는데, 경마에 미쳐가지고. 엄마 집 나가고 집안 다 말아먹고 그러고서 열 살 땐가 왔는데. 걔도 애는 괜찮았었어. 지네 아버지 닮아서 없어도 있는 척. 허세 장난 아니고."

"그런 사람을 왜 때리셨어요."

"이 새끼가 중학교가서 친구들을 사귀게 됐는데. 걔네가 이제 아까 말했던 그런 애들."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한솥밥 먹던 인연이 금방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친구는 그 친구대로 형은 형대로 각자 친구들도 사귀고 학교도 다니고 그랬었단다.


"그렇게 고등학교까지는 조용히 잘 왔는데."

"네."

"어느날 이 새끼가 나랑 있는데 편의점을 털자는 거야."

"...도둑질이잖아요."

"그래서. 나도 미친소리 하지 말라고 뭐라고 했지. 근데 보니까 이미 몇 번 해본 솜씨야. 되려 나한테 쌩지랄을 떨더라고."


사소한 갈등 끝에 친구가 형한테 그랬었단다.


"괜찮다고 그러는 거야. 어차피 걸려도 우리 어디 사는 거 말하면 다 봐준다면서."

"아. 그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미친놈이 그럴수록 더 자존심을 지킬 줄 모르고. 아무튼 그래서 싸웠어. 어쨌든 정기 이 새끼는 이름은 그럴싸해도 인간이 좀만하고 운동도 못 하고 그랬거든."


싸움에는 큰 문제는 없었단다.

서먹한 시간이 지나가고 보육원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과 형은 잠자리를 바꿔가면서도 거리를 두었다.


"근데, 새끼가 지 친구들이라고 끌고와서 날 데리고 가더라고."

"..."

"왜?"

"아니요. 그냥 듣는데 뭔가 사람이 싫어지는 기분이라..."

"반성하고 화해하고 그럴 놈이면 애초에 그런 짓도 안 했겠지."


그렇게 끌려가 싸우다 못 해 집단린치를 당했다.

얘기를 듣는데, 나도 아까 놈들한테 맞은 곳들이 괜히 욱신 거린다.


"아무도 안 도와줬어요?"

"돕고 자시고 할 공간도 아니라서. 근데 상황은 그렇다 치더라도. 와 뭔가 엄청 비참한 거야."

"비참하다라..."

"어. 비참. 소설 같은데서나 보지 실제론 잘 쓰지 않는 단어잖아. 근데 내 상황이 딱 그랬어."


그냥 맞기만 한 게 아니라 놈들이 돌아가며 욕설을 내뱉는데. 그 말들 하나하나가 때리는 것 보다 더 아팠다고 했다.


"마음이 막 무너지는데. 눈이 점점 흐려지고. 나머지는 뭐 아까 얘기했던 거."

"잘하셨어요."

"하하하하! 미친놈아. 뭘 잘해."

"잘했죠. 그럼 그대로 당하고만 있었어야 돼요?"

"...새끼."


길조 형이 머리를 막 벅벅 문질러주는데, 먹먹한 감정이 전해지는 거 같다.


"근데 형. 왜 형이 잡혀가요? 당한 건 형인데?"

"모르겠다. 법이 그렇다니까."

"후우... 하여간 법..."

"안 그래도 재판 받을 때 이야기 했는데. 안돼. 말이 안 통해."

"억울하진 않았어요?"

"억울보다는 무서웠지. 솔직히."

"무섭죠... 상황이 변하는데."

"글쎄다? 난 상황이 변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 어차피 여기나 거기나 단체생활은 매한가지니까."


형이 느꼈던 무서움이란 그런 게 아니었다.

길조 형은 그때 그 시절. 경찰서나 재판장에서 처음으로 자기가 보호자가 없는 존재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깜깜한 거야. 아무도 내 말은 안 들어주는데..."

"아... 아. 진짜..."

"왜?"

"아. 형..."

"야 임마. 왜 울어?"

"아 씨... 아... 젠장..."


이제 알겠다. 길조 형이 왜 나를 그렇게 물신양면 도와줬는지.

너무 큰 아픔이 있어서...

어쩐지 세상에 도움을 받았네 말았네. 그런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날 이렇게 챙겨주고 신경써 준다는 게 이상하다 싶었는데.

형...


"아 왜 그래."

"흑. 흐윽... 형..."

"미친놈아. 아 씨. 왜 울고 지랄이야. 아퍼?"

"너무 아파요..."


혼자가 된다는 절박함. 그걸 알기에 이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를 안다.

진짜 잘해야겠다. 이 사람은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니다.


"변호사 같은 거 없었어요? 아니 그 전에 형네 보육원에서라도 나서줘야"

"식구끼리 싸움이라고 해도. 정기는 아버지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 때문에 다친 놈도 있었고."

"후우..."

"수녀님도 답이 없는 거지."

"아니 그 정긴지 뭔지 하는 사람이 이상한 짓만 안 했어도."

"그건 뭐. 그쪽이 알아서 하는 거고."


그렇게 김길조란 청년은 소년원에 들어가게 됐다.

10호 처분이라는데, 가장 큰 처벌을 받았단다.

합의도 없고 싸운 애들은 다들 가족들이 있고. 심지어 그 중 한 사람은 나름 지역에서 입김이 강한 사람이라서 빠져나올 구석이 없었다.


"후우..."

"꼭 뭐 나쁠 건 없었어. 거기서 기술도 익히고 남은 고등학교 과정도 마쳤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후우... 한숨만 나온다.


"어렵지 않았어요?"

"뭐. 사는 거. 언제는 쉬웠냐."

"..."

"애들이 거친 면도 있긴한데. 그냥 인문계에서 꼴통 직업학교 같은 곳으로 전학갔다 생각해보면 크게 적응하는데 어려울 건 없었어. 원래 인천이란 동네가 그렇기도 했고."


힘든 시절을 말하면서도 길조 형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뭣보다 형은 또 처벌이 쌔니까. 좀도둑 이런 놈들이랑은 겸상을 안 해서. 누가 괴롭히고 그런 건 없었어."

"하하... 그게 뭐에요."

"세상 어디를 가든 자기 살 길은 있다는 거지."


거기서 진수 아저씨도 만나고 운동도 배우고 독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단다.


"형."

"응."

"형. 진짜 뭐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

"야 이 씨. 왜 없어. 많지."

"뭐요? 말씀만하세요. 돈으로 되는 거면 제가 다 해드릴게요."

"됐어 임마. 니네 부모님 유산을 왜 내가 건드려."

"뭐 어때요! 이제는 내 돈인데!"


힘든 이야기도 굳세게 말하던 사람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중길아. 그런 거 신경쓰지 마."

"형?"

"내가 너 재워주고 뭐 이러는 건. 정말 그런 이유로 하는 게 아니야."

"..."

"너 또 그딴 소리하면 그땐 진짜 나 너 안 보고 살 거야."

"후우..."

"왜 한숨을 쉬어?"

"답답해서 그러죠..."

"니가 뭐가 답답해. 그리고 니가 돈이 많으면 뭐 얼마나 많다고?"

"...아 진짜 있긴 있어요."

"1억 많아 보여도. 그거 쓰면 얼마 안 돼."

"그 이상 있으면요."

"뭐?"

"1억보다 더 많으면요."

"..."

"10억. 100억. 아니 그냥 달마다 꽃히는 돈만 해도 형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있다면요."

"그럼 니가 일을 왜 해?"

"그건. 저도 뭐라도 하고 살아야 하니까 그러죠."


정신없이 떠들다보니 병원쪽에서 사람이 나와 자기들도 정리할 시간이라며 그만 나가달랜다.


"그래. 일단 나가자. 여기가 카페도 아니고."

"네."


비틀비틀 형이 부축을 해주는데. 어째 몸은 아까 한참 뚜들겨 맞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안 좋아지는 거 같다.


"어떻게? 걸을 수 있겠어?"

"네. 걸을만 해요. 아!"

"어이그... 조금만 참아 봐. 오토바이만 타면 되니까."


형 오토바이도 아까의 난동에 기스가 많이 났다.


"다 긁혔네요..."

"천천히 세울 겨를이 없었으니까."

"..."

"보자. 이런 걸로 센터가긴 뭐하고. 그냥 마트가서 스프레이 사다 뿌리지 뭐."

"형."

"어?"

"우리 오토바이부터 바꿔요."

"하하! 아 이 새끼. 진짜."


길조 형도 허공을 향해 한숨을 길게 쉬며 말했다.


"중길아. 잘 들어. 마지막으로 말한다."

"바꿔요. 젤 비싸고 그리고 안전장비 다 있는 걸로."

"다시는 내 앞에서 돈 얘기 하지 마."

"왜요?"

"내 진심이 흐려지니까. 새끼야!"


팔당호수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형이 바란 건.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 아무 문제 없이 남들같이 사는 모습을 보이는 거라고 했다.


"그건 형 마음이고."

"그래.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하라고! 좀!!"

"..."

"그런 게 있어. 넌 아직 어려서 이해가 잘 안 되겠지만. 진짜 그런 게 있어."


바라는 건 없다. 그냥 잘 됐으면 좋겠다.

그렇게 누군가가 좋은 길로 가는데 있어 내가 아주 조금의 도움을 줬다는 걸로 만족한다.


"진심이야! 니가 알고보니 어느 대기업 재벌 회장 숨겨둔 자식이라 해도 내 앞에서 돈 얘기는 하지 마."


알게 모르게 형도 나를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었단다.

옆에서 봤을 때. 안중길이란 인간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도와줄 의미도 없는 개차반 민폐덩어리 같은 놈이었다면, 진작에 본인이 옥상에서 던져버렸을 거란다.


"하지만 넌 안 그랬잖아."

"안 그랬죠..."

"넌 작은 일이라도 감사해하며 최선을 다 했어. 집안 일에 있어서도 군소리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경 써서 움직였고. 청소기도 그렇고. 화장실도. 지금 얼마나 깨끗해."

"..."

"난 그런 게 좋아. 그러니까 중길아 제발..."


길조 형이 어깨를 꾹 눌러잡으며 말했다.


"나 시험하지 마. 너 못지않게 나도 평범한 삶이 어떤 건지 몰라. 그래서 갖고 싶고."


오토바이를 타면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 그래서 집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왔다고 생각한다.

바람소리나 도로 소음 같은 게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형이 나한테 또 뭔가 실망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랬을 거라고.


다음 날. 끙끙거리고 겨우 잠에서 일어났을 때에야 길조 형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가게?"

"가야죠. 전화기도 없는데 빠지면 무단결근인데."

"너 그런 몸으로 오늘 일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일단 가서 얼굴이라도 보이고 와야 될 거 같아요."


하루가 지나자 어제보다 얼굴이 더 부었다.

여기저기 멍도 시퍼래지고 몸도 삐그덕 거린다.


"학생. 여기 앉아요."

"괜찮아요. 저 금방 내려요."

"아이고. 어쩌다 이렇게 다쳤어."

"그냥 좀 계단에서 굴렀어요."


이름모를 할머니가 걱정해주시는데, 그 마음이 고마웠다.

길조 형이 말한대로 사람은 남을 돕는데 있어 가끔 바라지 않는 순순한 선의라는 게 있다는 걸 또 한번 깨닫는다.


"...산다는 게 여러 의미가 있구나."


만남. 다툼. 그리고 이해.

이 모든 걸 다 이해할 때쯤이면 나도 더는 혼자라는 거에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됐을까?


"어머... 얘?"

"중길아 너... 꼴이 왜 그러니...?"

"설명드릴게요."


나름 움직인다고 움직였는데 걸음이 늦어 평상시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7시 반쯤 가게로 찾아오자 미숙 아줌마 은자 아줌마 그리고 주방장님이신 선옥 아줌마까지 다들 얼굴이 사색이 되어 걱정이 쏟아진다.


"경찰한텐 말했어?"

"얘기했어요."

"아이고. 그러니까 왜 늦게 돌아다녀. 그냥 집에 가지."

"친구들은? 같이 안 있었고?"

"걔들이랑 헤어지고 벌어진 일이라..."

"하이고 이놈아. 이 철딱서니 없는 놈아."


일 시작하면서. 어떻게든 나도 사회인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내가 보호받아야 하는 청소년이라는 걸 받아들이련다.

이런 것도 막상 필요한 누군가에겐 가질 수 없던 것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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