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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피의 상상극장.

황금시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김상준.
작품등록일 :
2023.09.26 18:32
최근연재일 :
2023.12.08 22:41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725
추천수 :
73
글자수 :
135,075

작성
23.11.23 18:24
조회
127
추천
3
글자
12쪽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5)

DUMMY

"너 이 동네 있었구나."

"너도. 집 대구라고 하지 않았나?"

"난 일하려고 올라왔지. 인천이랬지?"

"나도. 어떻게 하다보니까 지금은 여기있네."


이런 걸 보고 세상 좁다고 하는 거구나.

내 친구가 일하는데 형 친구도 일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같은 동네에서.


"형. 누구세요?"

"아. 전에 같이 공부한 애."

"친구 아닌가요?"

"공부라고 해야하나. 일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뭘 같이 배웠었어."

"으음. 지인이구나."


지인이고 친구고 다 좋은데.

근데 주문을 안 받고 인사만 하고 나가면 어떡하라는거지?


"어디가?"

"주문하러요."

"맞다. 그래서 사람 불렀지."

"계세요. 형 친구라는데 제가 가서 주문하고 올 게요."


홀에서 나와 주방 앞으로 가니, 길조 형 아는 분도 철가방을 열고 대기하고 계셨다.


"왜 나왔어?"

"네? 어. 주문을 안 받아주셔서..."

"아. 맞다. 주문 받으러 갔었지. 하하! 오랜만에 아는 얼굴 보니까 깜빡 했었네."


여기도 친구라고 안 하고 '아는 얼굴'이라고 하는 걸 보면, 형 말대로 그냥 지인인가 보네. 내 일이나 끝내자.


"그리고 깐쇼새우도 소자로 하나 주세요."

"누구 생일이야? 사람이 더 와?"

"아니요. 둘이 먹을 건데요."

"근데 뭘 이렇게 많이 시켜??"

"그냥. 제가 형한테 고마워서 밥 한 끼 사려고요."

"오. 설마 너도 우리 학교 출신이냐?"

"학교요?"

"아니구나. 됐어. 맛있게 먹어라."


학교? 날 학교 후배로 생각한 건가. 그러고보니 형은 무슨 학교 나왔지?


"주문 다 했어?"

"네. 근데 음식이 많아서 조금 걸린다고 기다리래요."

"그래. 기다리지 뭐."

"형 지인 분은 다시 배달 가셨어요."

"지인? 아. 윤식이."

"저분도 형 그냥 아는 얼굴이라고 하길래."

"으음. 그랬어."

"저한테 같은 학교 후배냐고 하던데. 아니라고 했어요."

"하하. 그래. 잘 했어."


그러고보니. 나는 길조 형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구나. 보육원에서 자랐다. 혼자 살았다. 정도 빼면...


"..."

"팔보채는 전에 먹어봤는데, 탕수육말고 다른 요리는 처음이다."

"형. 인천 분이셨어요?"

"어. 보육원이 인천에 있었어."

"아... 그래서."

"쟨 몰라. 그냥 집 인천이라고만 했어서. 그렇게 알고 있는 거야."


어디가서 자기 이야기 안 한다고 했었지.

내가 형에 대해서 모르는 건 당연해. 형도 나한테 뭐 안 물어보고 나도 이야길 안 하니까.

서로 가장 큰 상처를 드러낸 이상 이제와 따로 얘기할 것도 없잖아.


"깐쇼 새우 드셔보세요. 좋아할 거에요."

"그래? 새우면 새우튀김인가?"

"비슷한데, 약간 탕수육 같애요."

"넌 먹어봤어?"

"네. 할아버지랑."

"할아버지라. 그럼 벌써 니네 할아버지 돌아가신 것도 한달이 지났구나."

"그렇죠. 형이랑 산 게 그렇게 됐으니까."

"일하다보면 시간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니까. 언제 5월이 된 거야."

"봄이죠. 진짜로 이제는."

"그러게. 봄이네."


순서대로 요리가 하나씩 나온다.

빠르고 간단한 순서로 차려지는대도 벌써 상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서빙해주시던 사장님도 관심있게 물어보셨다.


"오늘 누구 생일이세요?"

"아니요. 제가 형 고마워서 밥 한 끼 사는 자리요."

"어이고. 뭐 얼마나 큰 일을 해줬다고 동생이 이렇게 밥을 사나? 좋은 총각인가 보네."

"흐하하! 별 거 아닌데 이놈이 오버하는 거에요."

"별 거 아니라뇨. 형이 저 죽을 거 살려줬어요."

"내가 뭘 너를 살려. 사람들이 오해하잖아."

"맞잖아요."

"생각보다 의미있는 자리네. 있어 봐요. 내가 좋은 거 하나 갖다 줄 테니까."


사장님이 서비스로 고량주 한 병을 주셨다.

길조 형이 저 학생이라서 안 된다고 하는데 사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신다.


"병석이 친구라고 하지 않았나?"

"네. 저번에 인사드렸었죠."

"그러니까. 먹어요. 뭐 어때 일하는 친구라는데. 아니면 그쪽만 드시든가."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사장님이 방에서 나가자. 길조 형이 술병을 따며 물었다.


"너 술 마셔봤어?"

"네. 그것도 할아버지랑."

"그래? 그냥 맛 만 본 거 아니고?"

"어른들 같이 마시는 건 아니지만, 중2때부터 마셨어요. 술은 어른한테 배우는 거라면서. 가끔 반주로."

"중2. 어우 씨. 나보다 빠른데?"

"맞다. 형 저 나이 말씀하시면 안 돼요. 병석이 저 열아홉인 줄 알아요."

"넌 뭐 그런 걸 숨기고 사냐."

"제가 숨겼나요. 형이 처음부터 고3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 잖아요."

"하하! 그런가?"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과 도수 높은 고량주가 곁들여진 식사자리.

맛들이 다 새롭다면서 만족스런 얼굴로 젓가락을 멈추지 않는 길조 형.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번 돈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다니.

무엇보다 그 집을 나오기로 한 선택이 옳았다란 사실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아 더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어이고. 뭐가 또 나와?"

"군만두는 주문 안 한 건데."

"사장님이 갖다주래. 많이 시켰다고."

"넌 또 배달 가?"

"저녁이잖아. 바뻐. 맛있게 드세요. 오늘은 둘이 즐겨. 장호도 못 온다고 했어."


올 사람이 없다는 게 확인되자, 길조 형은 그제서야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고. 배 터지겠네."

"싸가요. 집에 전자렌지 있으니까 반찬으로 먹죠."

"중길아 고맙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뭐가 고마워요. 형이 저한테 해준 게 있는데."

"하하하! 아무튼 먹자. 아직은 더 먹을 수 있어."

"저도요. 많이 먹어요 우리."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현실적인 대화를 피할 순 없었다.

우리의 만남이 할아버지 장례와 친척들로 시작된만큼 형은 49제가 오는데, 한번 가보는 게 좋지 않으냐고 묻는다.


"49제 하겠죠."

"그러니까. 인사는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실 거 같아서. 이미 갔다왔어요."

"갔었다고? 언제? 집으로?"

"아니요. 저 처음 일 나가던 날. 그때 막 새벽 일찍 나갔잖아요."

"어. 너 6신가 그때부터 간다고."

"그날이 할아버지 장례 마지막 날이라 가서 멀리 인사드리고 왔어요. 그러니까 49제 같은 거 안 가도 돼요."

"그랬구나."


형이 우물우물 입안에 음식을 비워내며 말한다.


"근데 중길아. 난 한번씩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

"뭐요?"

"그냥 조금 오해가 있던 거 아닐까?"

"무슨 오해요?"

"그러니까. 너네 친척들은 널 외면한 게 아니라, 일단 급한 상황이니까. 이삿짐 먼저 챙기고 그리고 장례식으로 부르려고 했다든가."

"형. 제가 할아버지보다 부모님을 먼저 보내드렸잖아요."

"그랬지."

"열한살 땐데. 그때 내 주변 누가 죽는다는 건 이런 의미구나 하고 크게 각인된 게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아세요?"

"몰라. 뭔데?"

"죽음이란 건, 모두가 일단 하던 걸 멈추고 그 일에 몰입하는 거더라고요."


가까운 이가 떠나면 학생도 직장인도. 하던 일을 멈추고, 일상이 잠시 스톱된다.

우선해야 할 것은 떠난 이를 잘 보내줘야 하는 것.

그래서 학교나 직장이나, 주변에 상을 당했다고 말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결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겠네."

"그것만 봐도. 형도 말씀하셨잖아요. 급한 상황이라고."

"응."

"그 급한 상황에 나는 이삿짐부터 챙겨라? 이사 마치고 장례식에 와라? 거기서 끝났다고 봐요."

"아니. 내 말은 집이나 이런 게... 그래. 뭐 니가 아니라고 하니까."

"형 지금 이렇게 알고 계시죠?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집을 비워줘야 되는 상황이 된 거 아니냐? 그래서 이삿짐부터 챙겨야 됐던 거 아니냐?"

"어. 맞어. 딱 그거야."

"아니에요. 그런 거... 별로 막 그렇게 급할 것도 없고. 누가 올 사람도 없었어요."

"그럼 그냥 할아버지 돌아가시면 빈 집인 거야?"

"그렇죠. 빈 집이죠. 집도 넓어요."

"근데 왜 그렇게 나가라고...?"

"그러니까 제가 팔당호수까지 가서 멍 때리고 있었잖아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그날의 뉴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룬다는 말을 분명히 내가 봤다.

그래놓고 나중에 보니 5일장이었다.

손님을 다 받았다는 거지. 오는 사람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거야.

나만 거절한 거다. 오직 나만. 이 빌어먹을 인간들이...


"내가 괜한 얘길 꺼냈네. 중길아 그만 생각하고. 너 표정 어두워진다."

"괜찮아요. 그래도 이제는 이런 이야기라도 할 수 있잖아요."


전에는 친척들 얼굴만 떠올려도. 대한그룹과 관련 된 회사나 아파트 앞만 지나가도 마음이 불편했다면. 이제는 직접 말 할 수 있을 정도는 됐다.

나는 이것도 내가 그만큼 성장을 하고 마음이 단단해졌다고 믿는다.


"좋아요. 이제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강해졌네. 넘어섰다는 거지."

"그렇다고 또 물어보진 마시고요."

"알았어. 안 해. 그냥 생각이 나길래."

"저 있어서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이제 어느정도 자리도 잡았고 나갈 준비 하면 되니까."

"어딜 가 임마. 너 없음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하라고."

"하하하! 아. 형?"

"얘기했잖아. 난 너 있어서 좋다니까. 싫은 거 없어."

"아니 그래도 기껏 화장실 청소 때문에 나가지 말라는 건..."

"뭐. 그럼 설거지는 누가 하냐고 해줄까?"


티격태격 허물없는 말장난이 시작됐다.

친구들과도 그렇지만, 이것도 우리가 더 가까워진 신호로 봐도 되겠지?


"진짜. 생각할수록 서운하네. 나 집 구할 거야."

"하! 구해라? 나도 간다는 놈 잡는 성격 아니야."

"진짜 구해요?"

"해. 누가 뭐래?"

"아. 진짜... 진짜로 나가라고요...?"

"새끼. 이겨먹지도 못 할 거 왜 덤비고 있어."

"앞으로 설거지는 형이 하세요."

"싫어. 니가 한다면서. 설거지 전문가 아니세요?"

"그 정도는 일도 아니죠. 진짜 맨날 가게에서 하는 거 보면."

"일은 안 힘드냐?"


만약 진짜 친형이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가끔 생각해보지만, 진짜 형제가 있어도 이렇게 서로를 위해주진 않았을 거 같단 싶은 건, 내가 가족이란 존재한테 너무 상처를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길조 형이 그만큼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일까.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해줄 수 있었을까. 같이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아이고. 배 터지겠네."

"저도요. 어우. 음식이 식으니까 칼로리가..."

"야. 배도 부른데 오늘은 걸어갈래?"

"그럴까요. 소화도 시킬 겸."


지금이 좋다. 나의 선택이 옳았다. 길조 형을 따라오기로 한 게 맞았어.

잘 살고 싶다는 나의 소원은 별로 특별한 게 아니야. 딱 이런 거라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순간을 함께 하는 것.

더 열심히 살 거야. 하루하루 다음을 보며 나아갈 거야.

현재의 일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인생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자.

지금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


"어우... 꽤 나왔네..."

"형 나가 계세요. 제가 계산해요."

"야 그냥 반반 내자."

"아이 진짜... 아까는 고맙다고 먹었으면서."

"그래도. 임마. 10만원이 넘는데..."


계산하는 앞에서 한참을 씨름한 끝에 사장님이 카드를 받아주셨다.


"어후... 밥 한번 사기 진짜 어렵네요..."

"형들이 다 그렇지. 여기."

"잘 먹었습니다."

"근데 나도 손님한테 이런 거 묻는 거 실례라는 거 알지만, 우리 친구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길래 이렇게 배포가 커?"

"저 황금집에서 주방 일해요."

"황금집이면, 십자거리 안쪽에 고깃집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병석이랑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맞나?"

"네."

"거기가 학생을 뽑아?"

"네. 왜요?"

"으음. 아니야. 다음에 또 와."


왜 그러시지? 우리 가게에 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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