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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피의 상상극장.

황금시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김상준.
작품등록일 :
2023.09.26 18:32
최근연재일 :
2023.12.08 22:41
연재수 :
22 회
조회수 :
5,727
추천수 :
73
글자수 :
135,075

작성
23.09.26 19:01
조회
1,183
추천
11
글자
7쪽

독립선언 (1)

DUMMY

[오늘 아침 안상일 전 대한그룹 회장이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질 예정입니다.]

[故안상일 회장은 건설과 조선, 정유, 식품유통 등. 우리나라 산업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고인은 몇 해 전 막내아들 안주민 상무 내외를 잃은 아픔에 경영 일선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사회 각층에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데 여생을 바쳐왔습니다.]



오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부터 위독한 건 알았고 마지막으로 쓰러지신 날도 내가 같이 있었기에 이런 날이 오겠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진짜로 나를 지켜 줄 울타리가 사라졌단 사실은 각오한 이상으로 현실을 슬프게 만들었다.


"할아버지..."


소중한 사람을 또다시 떠나보낸 것보다 더 절망적인 건, 나에겐 그런 슬픔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룬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았는데, 같은 시각 나는 회사 비서실 분들이 찾아 와 이사준비를 하라고 통보받고 있었다.

그래. 우리 집안은 재벌가다.

대한그룹이라고 재계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나름 힘 좀 쓰는 기업인데.

그런들 무슨 상관이라고. 거기 사람들이 이제는 날 가족 취급도 안 하는데...


마음이 갈리고 멘탈이 바스라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한번 더 생각해보면, 지금 중요한 건 그 사람들의 못 된 마음이 아닌 나 자신이라.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주변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으니.

부모님도 할아버지도 다 떠났으니까.

이제는 정말로 내 일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하아... 후우..."


언젠가 그런 날도 있겠지. 어른이 된다는 건 뭐든지 혼자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니잖아. 그것도 이런 방식은 정말 아닌 거 같은데...

친척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 비서실 사람들이고 이사준비고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 사람들도 어차피 시키는 일 하는 거라 딱히 막거나 하진 않더라. 자기들이 봐도 인간적으로 너무한다 싶었겠지.


팔당호수를 찾아왔다.

할아버지랑 가끔 드라이브로 오던 곳이고 내가 아는 가장 조용한 공간이었다.

풀바람 소리. 물 소리. 더 없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아 와봤는데.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물이 아무리 흘러도. 어지러운 머리와 불타는 가슴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미칠 것만 같다. 아니, 어떤 면에선 이미 정신이 돌아버린 거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한테... 대체 내가 지들한테 뭘 잘 못 했다고...


근데 말이야. 지금 더 화나는 게 뭔지 알어?

나를 몰아세우는 감정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삶에 대한 절망인지 구분이 안 된다는 거야.

그냥 너무 혼란스러워. 뭐부터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

쫓아가 싸웠어야 했나? 아니면 그냥 내 처지가 불쌍해서 울면 됐나?

이런 순간에도 마음 한켠 어딘가는 대체 큰 아빠랑 어떻게 살라는 거지? 같은 걸 고민하고 있는데.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맞는 건가?

모르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무리 고민하고 끙끙거려도 '혼자'라는 단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으윽- 흐으으윽. 그만 그만 좀. 제발..."


그 와중에 나를 향해 쏟아진 그 악마 같은 목소리들이 또다시 멋대로 떠올랐다.

기억을 지울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러려면 머리를 비워내고 심장을 뜯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방법을 찾다보면 자꾸만 눈이 강물을 쳐다보고 있는다.


"후우우우... 하아... 아니지. 아니야..."


물살이 출렁댈수록 뭔가가 손짓을 하는 것 같다.

그럴수록 고개를 마주 세차게 흔들며. 아니라고. 이건 진짜 아니라면서 마음을 잡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단 어떤 일말의 저항 같은 것에만 기대기를 한참. 그리고 마침내 죽음은 또다른 패배를 의미하는 거란 결론을 내렸다.


"진정하자. 이런 건 나한테 아무런 도움이 안돼."


너무 화나고 힘들어도 지금 죽는 건 능사가 아니야. 그건 도망치는 거니까.

물론 죽는 것도 어떤 의미에선 편해지는 방법이긴 할 거야.

그치만, 아무리 세상이 격노할 유서를 남겨논들. 사회가 공분을 일으켜 대한그룹과 우리 친척들에게 손가락질 한들.

나 죽고 없어진 다음에 그게 무슨 상관이라고.

아니야. 그건 진짜 아니니까 생각도 하지 마.


살자. 사는 거다. 보란듯이 떵떵거리고 살 거야.

그러니 내가 살 길.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해.

어떻게 보면 장례식도 못 오게 한 게 기회일 수도 있어.

지금 이 순간은 누구도 나한테 손 댈 수 없으니까.

정말 오롯이 혼자가 아닌가.

그러나 혼자. 또 다시 혼자... 어떻게 해도 혼자.

역시 여기서부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


친척들과 있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수도 없다.

찾고 헤매도 그 이상의 답을 몰라 끅끅 거리기를 몇 시간.

그러다 갑자기 불현 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맞어. 그래. 떠나는 건 괜찮잖아?"


만화에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머릿 속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머릿속 한 켠이 환하게 밝아지며 '떠나자.'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봐도 이 이상의 결론은 없을 거 같았다.

떠나는 건 괜찮다.

혼자니까. 단점만 보지말고 장점을 보면 혼자라는 건 움직이기 용이하단 거잖아. 말그대로 한 사람이니까.

할아버지도 늘 그러셨어. 당신은 열세살 때부터 밭일을 시작했었다고.

열일곱은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다. 무엇이든 해야 살아갈 수 있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도 그걸 바랄 걸? 아이고 짐 덩어리 같은 새끼 잘 갔네 이러면서.

근데 기뻐하는 건 또 너무 싫은데... 내가 없어졌다고 웃음지을 거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는데...

아냐. 너무 멀리 보지 마. 이 이상의 답은 없어.

떠나는 거다. 어디든. 지금 기회가 있을 때.


급하게 주변을 둘러본다.

뒤로는 풀 숲. 앞으로는 어두운 강물. 멀리는 대중교통이 지나지 않는 도로.

너무 외진 곳으로 왔다.

젠장. 지금 당장 가고 싶은데...

어떡하지? 콜택시를 불러?

그러다 괜히 시간 지체되면 또 마음이 작아지면서 움츠러들진 않을까...?


바로 지금이다. 당장 해야 돼! 움직여야 된다고!!

어떻게든 여기서 떠날 수 있는 방법만 찾던 그때였다.

마치, 꼭 하늘이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듯. 누구도 오지 않을 장소에 어느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그분을 보면서는 내 안에 어떤 이성적인 과정이 생략된 질문만 던져졌다.


"저. 그 오토바이 저한테 파실래요?"


포기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지금은 살 방법을 생각해야 돼.

이게 내가 찾은 방법이다.

우선 최대한 멀리 떠날 것.

어느 이동수단이든 움직이고 볼 것.

오토바이가 아니라 배가 왔으면 배에 태워달라고 했었을 거야.

수 시간을 고민한 끝에 내린 최선의 결정만 믿고 실천에 나섰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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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0 91병동
    작성일
    23.09.26 19:15
    No. 1

    잘봤습니다.
    쥔공 이름을 보고 흠칫했어요 워낙 안좋은쪽으로 유명한 이름이라 조금 거부감이 있는것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7 김상준.
    작성일
    23.09.26 21:02
    No. 2

    어이고 빨리 바꿔야겠네요.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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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또 새로운 문이 열린다. (2) 23.12.08 56 2 15쪽
21 또 새로운 문이 열린다. (1) 23.12.07 47 2 12쪽
20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6) 23.12.06 61 2 14쪽
19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5) 23.12.05 55 2 11쪽
18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4) 23.12.04 58 2 11쪽
17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3) 23.11.30 83 2 14쪽
16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2) 23.11.28 94 1 11쪽
15 그렇다고 진실이 꼭 잔인한 건 아니다. (1) 23.11.27 116 2 19쪽
14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6) 23.11.24 129 1 13쪽
13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5) 23.11.23 128 3 12쪽
12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4) 23.11.22 144 2 13쪽
11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3) 23.11.21 143 3 11쪽
10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2) 23.11.20 154 2 12쪽
9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1) 23.11.15 231 2 15쪽
8 알바생 (5) 23.11.14 229 2 12쪽
7 알바생 (4) 23.11.13 242 2 17쪽
6 알바생 (3) 23.10.24 277 2 15쪽
5 알바생 (2) 23.10.23 340 4 13쪽
4 알바생 (1) 23.10.22 465 5 16쪽
3 독립선언 (3) 23.09.28 644 9 13쪽
2 독립선언 (2) 23.09.27 848 10 19쪽
» 독립선언 (1) +2 23.09.26 1,184 1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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