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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님의 서재입니다.

버려진 세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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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고리아
작품등록일 :
2021.09.22 12:58
최근연재일 :
2022.08.27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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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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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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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산 속의 사람들 6

말고리아




DUMMY

위험천만한 상황을 무사히 빠져나온 후 한참을 정신없이 걸어 또 다시 한 시간 가까이 지났을 무렵, 그들의 눈에 숲 한쪽 공터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 무리의 사슴이 눈에 들어왔다. 하토르는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가장 먼 쪽으로 돌아가 뒤쪽에서 사슴을 몰아넣기 위한 일은 역시나 첫째 아들인 키산드라에게 맡겼다.

오늘은 그 동안 해 왔던 것처럼, 먼저 키산드라가 사냥개와 조심스레 산길을 돌아 무사히 사슴의 뒤쪽에 도착한 후 곧바로 하토르 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사슴들을 몰아갈 계획이었다. 그 때 하토르 일행은 조용히 매복해 있다가 사슴들이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면 사냥을 시작하면 될 터였다. 마지막 기회라고 볼 수 있는 오늘의 사냥을 성공시키기 위해 모두가 필사적이었으므로, 이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였고 그 덕에 온 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고 근육은 꿈틀거리며 결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말고리아의 위대한 전사의 피를 이어받은 키산드라는 최대한 몸을 숙여 미리 계획한대로 은밀하게 사슴의 뒤를 밟는데 성공하였고 산을 뒤흔드는 고함소리와 함께 사슴들을 덮쳤다. 사냥개들도 주인의 신호와 함께 맹수와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질주하였다. 사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포획자들에게 놀라 부리나케 앞을 향해 뛰어 나갔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앞에는 완숙한 사냥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물과 투창을 던지고 활을 쏘며 한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뒤쫓아 달려오던 사슴들은 다시 처음에 풀을 뜯던, 키산드라가 버티고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틀기도 하였고 어떤 녀석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였다. 오늘의 말고리아 사냥꾼들은 절박했고 또한 엄선된 자들이었기에, 보통 성공확률이 절반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냥을 백발백중에 가깝게 성공시켰다. 사냥개들도 사람들이 놓친 사슴을 맹렬히 쫒으며 몇 마리의 숨을 끊어 놓았다.

반시간 남짓 흘렀을까. 폭풍우가 지나간 듯 격렬한 사냥의 현장이 그들 앞에 놓여 져 있었다. 숲은 짐승의 피비린내로 가득하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였던 오십 마리의 사슴 사냥에 결국 성공해서 라빈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학살의 현장 앞에서 그들은 허탈함과 죄의식을 느꼈다. 물론 숲의 동물들은 자신들의 주요 먹거리였지만 언제나 과하지 않게 포획하였다. 이렇게 다량의 동물들을 짧은 기간에 잡아들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슴들을 희생시킨 것이기에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던 그들은 붉은 피로 얼룩진 그들의 밤을 마치기 위해 말없이 가엾은 동물의 사체를 옮기기 시작하였다.

밤새도록 사슴들을 옮기느라 정신없이 일한 말고리아 부족의 다음 날 아침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시작되었다. 삶은 감자를 대충 챙겨먹고 다시 한 번 지난 칠일 간 사냥으로 잡아들인 모든 사슴들을 새어 보았다. 정확히 오십 한 마리였다.

“이제 사슴들을 수레에 옮깁시다. 자, 이제 조금만 더 힘냅시다!”

하토르가 부족 사람들을 격려하며 일을 서둘렀다. 이렇게 많은 사슴들을 옮길 만큼 이 마을에 수레가 많지 않았기에 그들은 추가로 세 대의 수레를 더 만들어 놓았다. 하토르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주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힘을 합쳐 일곱 대의 수레에 오십 마리의 사슴들을 나눠 실었다. 사슴의 적재가 거의 완료되고 한시름 놓게 되자 하토르가 부상자를 돌봐주고 있던 아내 벨리타를 찾았다.

“부상자들의 상태는 좀 어때?”

사흘 전 괴물에게 공격을 당한 다섯 명 중 셋은 이미 완쾌었지만 나머지 둘은 운이 없게도 넘어질 때 바위나 뾰족한 나뭇가지에 부딪혀 부상이 다소 심했다.

“훨씬 좋아졌어요. 지난 가을에 약초를 많이 캐 놓은 게 천만다행이에요. 하지만 피를 많이 흘렸고 상처가 조금 깊어서 일주일은 더 요양해야 할 것 같아요.”

“그나마 이 정도 상처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야.”

지난 며칠 간 벨리타는 많이 야위었다. 막내딸 라빈이 납치된 이후 마음 편하게 먹을 수도 잠들 수도 없었다. 또한 자신이 라빈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테스라 부족이 요구한 사슴을 마련했기에 얼마 뒤면 라빈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 행복하고 다행스러웠지만 라빈을 되찾기 위한 부족 사람들의 희생과 고통이 너무 컸기에 대 놓고 기쁜 심정을 드러내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는 강하게 주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라빈을 꼭 데려와야 해요. 약속할 수 있죠?”

“물론이지. 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데려올 거야.”

“무슨 소리에요? 당신을 포함해서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무사히 살려서 돌아와요! 누군가를 대신해서 죽어야 하는 일이 왜 필요해요? 당신은 부족장이니까 그렇게 만들 책임과 의무가 있어요. 내 말 똑바로 듣고 꼭 지켜요! 알았어요?”

벨리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하토르를 다그치듯 말했다.

“그래, 알겠어.”

하토르가 살짝 멋쩍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내를 꽉 안아주었다.

‘그렇다, 누군가 희생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다. 불한당 놈들은 나중에 혼쭐을 내주더라도 지금은 그 놈들이 원하는 사슴을 가져다 바치고 라빈을 무사히 데려오면 되는 일이다. 약한 생각은 필요 없다.’

하토르가 아내의 따끔한 말을 듣고는 속으로 되뇌었다.

한편, 괴물의 공격으로 인한 부상자가 다섯 명이나 되었기에 테스라 부족까지 사슴들을 옮기기에는 인원이 조금 부족했다. 벨리타의 말대로 이미 몸이 회복된 사람도 있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온전치 못해 보였기에 조금 더 쉬게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래서 키산드라와 키리오스를 포함하여 그들의 또래 남자 아이들 다섯 명이 부상자를 대신하여 동행하게 되었다.

“키산드라, 아이들과 함께 마구간에 가서 당나귀들을 끌고 오거라”

일곱 대의 수레에 두 마리씩의 당나귀들이 묶여졌다. 하토르와 브롱크가 말을 탄 채로 행렬의 선두에 섰고 그 뒤를 이어 하나의 수레에 한 명이 올라타서 당나귀를 몰고 두 명이 수레 뒤에 따라 붙었다. 길이 비교적 잘 닦여져 있었지만 산길이라 어쩔 수 없이 울퉁불퉁했고 경사도 오르락내리락 했으므로 수레를 뒤에서 사람 손으로 직접 밀어줘야 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행렬의 가장 뒤쪽에는 들짐승의 습격 등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세 명이 창을 들고 뒤따랐다.

말고리아 산맥의 말고리아 부족. 이 산맥을 대표하는 부족이기에 당당히 ‘말고리아’를 붙여 이름을 지은 건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확실한 한 가지는 그들은 말고리아 산맥의 가장 오래된 부족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또한 이들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역에 마을을 형성하였고, 만 오천 미터에 달하는 최고봉인 겟세이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위치에 터를 잡아 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들이 겟세이봉을 오르는 자들을 가로 막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 이 험한 곳에 오르려고 도전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다만 그 누구도 이들 몰래 겟세이봉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들은 겟세이봉의 파수꾼은 아니었지만 겟세이봉의 감시자라 불릴 만한 역사 깊은 위대한 부족이었다.

이와 같이 험난하고 외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사는 건 아니었다. 사냥해서 잡은 동물, 특히 사슴의 가죽이나 고기는 물론, 고산지대에서만 채집할 수 있는 약초 등을 모아 인근의 도시에 내다 팔고 생필품을 사오는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었다.

테스라 부족은 다른 부족들과 비교해 말고리아 부족과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가깝다고 하더라도 빠른 걸음으로 두 시간 정도는 걸리는 위치였는데,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다지 험하고 경사진 길은 아니었고 수레가 충분히 통과할 만한 오솔길도 나 있었다. 이와 같은 환경 덕에 이들은 그동안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해 왔다. 오랜 세월 살아가다 보면 분명 이들 사이에도 갈등이나 분쟁은 있었을 테지만 심각한 수준의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꼭 이들만이 아니라, 말고리아 산맥에서 부족 간의 전쟁은 꽤 생소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을 접한 말고리아 부족은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테스라 부족이 왜... 바키올라도 험악한 녀석이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의 악인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애초에 왜 그 녀석이 부족장이 된 거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슴 오십 마리는 대체 어디에 써 먹으려는 거지? 가죽장사를 한다면 물론 얻을 수 있는 건 꽤 많겠지.. 하지만 우리를 적으로 돌려가면서까지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야.’

선두에서 말을 타고 앞장 서는 하토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하나 밖에 없는, 사랑스러운 딸 라빈이 납치되었기에 당장은 바키올라의 무리한 요구에 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을 찬찬히 돌아볼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괴물의 영역이 겟세이봉 길목만은 아니었던 것일까. 다른 방향으로 갔는데도 그 괴물이 있었으니... 하지만 그 곳은 첫째 날의 사냥장소였어. 그 때는 괴물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왜 하필 어제는 또 그 곳에 괴물이 있었던 걸까, 어제 봤던 건 다른 놈인가.’

하토르는 테스라 마을까지 가는 내내 지난 일주일 동안 벌어진 일에 대해 고민하고, 무엇인가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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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크론빌 3 21.11.18 33 1 9쪽
12 크론빌 2 21.11.13 33 2 12쪽
11 크론빌 1 21.11.09 30 2 8쪽
10 키산드라 형제 4 21.11.06 29 2 9쪽
9 키산드라 형제 3 21.11.02 2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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