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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NA'S

낙서


[낙서] 단편) 2. 삼켜진 그들

어릴 적 추억과 동경이 남아있는 그 곳이 폐쇄된다는 소리에 나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하아하아.."

반짝이던 유리문엔 이미 뽀얗게 먼지가 달라붙어 있었고, 그 먼지들 위로 하얀색 종이가 붙어있었다.

[ 이 도서관은 5월 12일 이후로 개방하지 않습니다. ]

급히 핸드폰을 열어 보았다. 오늘은 5월 20일…. 벌써 폐쇄된지 일주일하고도 하루가 지나버렸다. 

덜컹덜컹.

아쉬운 마음에 문을 잡고 흔들어 보았다. 맑기만 한 봄의 햇살이 내가 도서관 입구 문을 흔들때마다 춤추는 먼지들을 비춰준다.

"…좀 더 일찍 와볼 걸 그랬나."

어릴 때, 우리집에서 지척에 있던 동(洞)규모의 작은 도서관. 내가 8살때 세워져서 20년이란 세월 동안 변치않고 이 자리에 꿋꿋이 서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놀이터.

사람들의 손자국과 먼지로 덮힌 유리문 안을 애써 들여다 보았다. 밝은 날임에도 안으로는 빛이 들어가지 못해 컴컴하기만 한 도서관 내부가 보였다. 아아, 언젠가는 찾아와 보겠다고 해놓고 이렇게 늦게 찾아와 보다니. 나란 사람도 참 바쁜 척을 한다 싶다.

"그 책만이라도 확인하고 싶었는데…."

짤그랑 짤그랑.

어디선가 열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릴 적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 소리는.

"만수아저씨!"

도서관의 오른쪽 뒷편에서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의 모습은 내 기억 속의 그 사람보다 조금 더 작고 조금 더 늙었지만 그 분위기만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만수아저씨가 분명했다.

도서관 관리인 만수아저씨. 어릴 때 우리에게 훈계도 많이 해주시고, 같이 놀아주기도 많이 하셨던, 볼에 길다란 흉터가 있어 처음엔 매우 무서워했던 만수아저씨.

"누구신지… 이 도서관은 폐쇄되었습니다."

"만수아저씨! 저에요, 민수. 14년 전까지만 해도 자주왔었는데. 저 어릴때 이름이 아저씨랑 비슷하다고 애들이 막 애들이 만수민수 이러면서 놀렸었잖아요. 기억 못하시겠어요?"

만수아저씨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어느새 나보다 키가 작아진 만수아저씨를 내려다보며 약간은 애절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만수아저씨는 어릴 때 기억 그대로의 웃음을 지으며 날 맞이하여 주셨다.

"흐허허허! 민수구나! 그래그래, 내가 못알아볼리가 없지! 흐허허허! 그래, 여기까지는 어쩐일이야."

"휴, 또 저 기억 못하시는 줄 알고 슬퍼지려고 했었잖아요.“

다행이도 나를 알아봐주는 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아, 도서관이 폐쇄된다는 소리를 오늘에서야 들어서요. 폐쇄되기 전에 아저씨 볼겸 자주 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흐허허, 괜찮다괜찮다. 오늘 무슨 날인가. 너랑 함께 놀던 아이들이 오늘 아침부터 한명 씩 찾아오던데."

만수아저씨와 나는 도서관 문 앞 계단에 주저앉아 이야기를 하였다.

"진짜요?"

"그래, 아침엔 혜미알지? 앙칼진 양갈머리."

"아아! 기억나요!"

"그리고 철민이랑, 재민이랑. 선애! 선애도 왔었어."

"선애도요?"

나는 추억 속에, 나의 깊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첫사랑의 이름을 듣자, 갑자기 울렁이는 심장을 느꼈다. 그런데 정말로 신기한 날이네. 우리 5명이 한꺼번에 찾아오다니….

"그래, 특이하구나 다들.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오늘 모이고. 허허허. 하긴 너희 5명은 늘함께 붙어다녔지."

"헤헤, 그나저나 걔네들은 다들 어디로 갔어요?"

"나와 이야기 한 후에 도서관 잠깐이라도 둘러보고 싶다길래 안에 둘러본 후에 모두들 돌아갔지."

만수아저씨는 이제보니 한쪽 손에 지팡이를 들고 계셨다. 너무나도 반가워서 깨닫지를 못했는데…. 만수아저씨의 지팡이를 보니 세월이 많이 지났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그런데 안에 둘러봐도 되는거에요?"

"너희들은 특별히 내가 허락했지. 아직 철거하지는 않았으니 이 도서관의 관리는 내가 계속 맡고있었거든."

"저도 한 번 둘러봐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읏차."

만수아저씨는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몸을 일으켜 도서관 문 앞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약간의 먼지 냄새가 코를 타고 전해져 왔지만 익숙한 책 냄새와 정겨운 모습에 나는 점차 감상에 빠져들었다.

"자, 둘러봐."

"네."

이제는 작게 느껴지는 도서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직 철거일이 정해지지 않아서 그런지 내부는 아무것도 사라진 것이 없었다. 단지 엷게 쌓여있는 먼지들의 두께가 인간의 손길이 없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 쯤이었는데..."

나는 꼭 확인하고 싶었던 책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이 쯤이었는데.

"아! 이 책장이야."

도서관에 서 있는 수많은 책장 중 단 한 책장은 특별했다. 책장 맨 아랫부분에 어린애가 그린 듯한 조그마한 별 표시가 5개 그려져 있는 책장. 그 표시는 어린 시절 우리들의 장난스런 약속에서 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우리 모두 이 책장 앞에서 만나는 거야. 알았지?´

´응. 자 그럼 모두들 한개씩 가져왔지? 그럼 이 책 안에 각자 하나씩 넣자.´

´응응´

´그리고 그 날 얘네를 찾아서 모두 함께 여행을 가는거야!´

´와~ 좋다좋다. 자 그럼 따로따로 넣자. 딴 사람들은 보면 안 돼!´

장난스런 그 때의 그 약속.

"분명 이 책장 맨 왼쪽 아래였을텐데…."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책장의 맨 왼쪽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목이 흐릿해진 매우 두꺼운 한 개의 책. 이 책은 20년전에도 제목이 흐릿한, 새로 지어진 도서관에서 유일하게 낡은 기운을 내뿜던 두꺼운 책이었다.

"끙. 지금도 무겁군. 하긴 그 때도 꼬마애들 세명이서 동시에 꺼냈으니."

쿵.

책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넘어졌다. 작은 먼지 바람이 훅 하고 올라왔다.

"콜록 콜록.."

먼지를 손으로 휘휘 밀어내며 책을 조심스레 펼쳤다. 역시나 이 책은 뭔가 이상했다. 전혀 알 수 없는 글자로 쓰여진 책. 어린 시절에는 이 것이 다른 나라의 글자이겠거니 했으나. 지금 보면 이 세상에 이런 글자가 있을까 의심이 되는 그런 글자들.

하지만 나에겐 그 것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내가 넣어두었던 나의 소중한 추억.

팔랑,팔랑.

"찾았다."

어린시절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그 것은. 바로.

"풉, 참나 원. 이게 가장 소중했었단 말이지."

선애와 손을 잡고 찍은 유치원 학예회 사진. 정말, 선애를 많이 좋아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얼굴을 보면 제대로 말을 못꺼낼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처럼, 마냥 부끄러운 마음에.

"민수야. 다 둘러봤느냐?"

멀찍이서 만수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 곧 갈게요!"

쿵.

커다란 책을 다시 덮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알 수 없는 글자야. 혹시 저쪽 중동이나, 아랍쪽의 문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의 표지를 살며시 쓸어내렸다. 그 때 책의 흐릿해진 제목이 빛을 발하며 또렷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대, 나와의 약속은 지켜졌다.´

"에? 뭐,뭐야."

나는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뒤로 살짝 엉덩방아를 찧었다. 갑자기 책이 말을 한다. 아니 이건 말을 한다기 보단 내 머릿속에서 음성이 울리는 것 같았다.

´조건은 만족 되었다.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

"어? 어어?"

나의 시야가 검은색의 투명한 천들이 하나씩 하나씩 쌓여가는 것처럼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민수야~ 어딨느냐!"

아저씨. 아저씨! 살려주세요! 

나의 외침은 소리가 되어 나가지 못했다. 점점 어두워지는 세상에서 이리저리 손을 뻗어 보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경악에 금치 못할 장면을 마지막으로 완벽한 어둠에 삼켜졌다.

"아저씨, 저 여기있어요."

"거기 있었구나. 자 이제 슬슬 나가야해."

"네, 나가요."


'나 자신'이 만수아저씨와 함께 멀어져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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