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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딸기

1,000,000년 수련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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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딸기
작품등록일 :
2022.10.29 02:25
최근연재일 :
2022.12.19 11:50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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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42
추천수 :
3,602
글자수 :
222,024

작성
22.12.18 11:50
조회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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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글자
9쪽

1,000,000년 수련한 사나이 (42)

DUMMY

이전보다 거구가 된 루그가 그릉거리며 주변을 돌아다녔다. 놈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신중한 녀석인 것이 확실하다.

마음은 끓어오르지만 머리는 식혀야 한다.

천천히 냉정을 되찾은 루그가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떤 목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솔직히 말해서 이 늪지대엔 얻을 만한 것들이 없다. 딱히 희귀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리자드맨이나 카이만들의 사체가 값어치 있지도 않다.

더군다나 놈은 그런 부산물에는 관심이 없는 듯 시체들을 아무렇지 않게 버려 둔 상태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리자드맨이 원한이라도 산 걸까.

이곳에 있는 리자드맨들은 어지간해선 영역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없을 텐데.


다른 가능성들 중 하나인 아리타스의 주민이 아닌 이계, 지구의 헌터가 넘어와서 학살을 했을 경우를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주변에는 게이트가 없다.

설마 어떤 미친놈이 있어서 이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탐사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계약자인 하인스에게 들은 바로는 그런 미친놈은 옛날에나 가끔 있었지 지금은 아예 사라졌다고 한다. 일정 범위 이상을 벗어나서 돌아다니게 되면 너무 위험하다나 뭐라나.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상대를 특정지을 수가 없으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누군지 모르니 불가능하다.


흠칫.

순간적으로 자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기세에 루그가 몸을 뒤로 젖혔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민첩한 몸놀림이다. 등이 땅에 닿을 몸을 젖힌 루그가 탄력을 이용하여 그대로 뒤로 덤블링을 한 뒤 자세를 고쳐 잡았다.


빠르고 정확하면서 강하다.

몸을 아슬아슬하게 빗겨 나간 작은 바늘 같은 힘의 집합체가 나무를 뚫어버리고 쭉 나아가다 소멸했다. 저런 것에 맞았다간 작은 구멍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질척거리는 늪을 헤치고 젊어보이는 남성이 나타났다. 루그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철민 역시 루그를 처음 보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자신에게 창을 들이밀던 도마뱀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 악어는 강하다.

어쩌면 메리 제인과 같은 기둥의 행방을 이 악어를 통해서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서 희미한 힘의 잔재가 느껴지긴 하는데 그 위치를 확정지을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네가 한 짓이냐?"

"어?"


철민이 놀라워했다. 그르릉대는 이상한 울음이긴 하지만 저건 분명히 영어였다.

물론 그 뜻을 알아듣진 못했다. 그저 몬스터가 영어를 쓰는 것이 신기했을 뿐. 철민에겐 영어나 몬스터들이 그르릉대는 소리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둘 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똑같으니까.


'설마 헌터인가.'


변신할 수 있는 헌터일지도 모른다. 헤라테의 서고에 있던 비급은 무궁무진하고, 세컨드로 각성한 헌터들 역시 발현되는 능력에 대해 제한이 없으니까. 괴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헌터일 수도 있다.

그렇게 판단한 철민이 잠깐 대화를 해보기 위해 긴장을 푼 사이 루그가 먼저 선수를 쳤다.

늪지대 일대를 자신의 공간으로 장악한 뒤 철민을 압박했다.


"네가 리자드맨들을 학살했냐고 물었다."


장악한 공간에선 언어 따위는 무의미하다. 의지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

방금 전 이 수로 인하여 철민은 상대가 헌터라는 사실을 머리 속에서 깨끗이 지워낼 수 있었다. 적어도 같은 인간들 중에는 공간 장악이 가능한 사람이 없다. 이전에 만났던 정신우도 그것은 하지 못했었다.

사실 그때도 철민이 마음 먹고 공간을 의지 하에 뒀다면 번거롭게 주먹질로 껍질을 벗겨내고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간 장악을 할 수 없는 상대라면 그 즉시 철민의 의지대로 됐을 테니까. 단지 그때는 그렇게 해서 녀석을 부수고 싶었을 뿐이다.


"먼저 덤비는 몬스터들을 웃으면서 보내줄 수는 없지."

"고작 그런 이유로 군락 하나를 전부 쓸어버렸다고?"

"고작 그런 이유라니. 먼저 덤빈 건 저쪽인데."


철민도 잔챙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먼저 덤벼들기에 상대해준 것이다. 가만히 놔뒀다면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모기가 귀찮다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모기를 때려잡는 건 아니다. 피를 빨러 오는 놈들에게 모기약을 뿌리는 것이지, 돌아다니면서 동네방네 모기약을 뿌리진 않는다.

뭐, 나라에선 소독한다며 차를 타고 다니며 모기약을 뿌리기도 하지만.


'그러고보니 모기 차 본 지도 오래됐네. 어렸을 땐 자주 따라다녔는데.'


그땐 그게 재미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모기 차 뒤를 따라다니면 웃음이 나왔었다.

어릴 땐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오는 시절이니까.


압박감이 조금 더 거세졌다. 철민이 자신 주변 공간을 장악하자 루그가 흠칫 놀랐다. 설마하니 상대도 가능할 줄은 생각치 못했었다.

그래도 아직 자신이 장악한 공간이 더욱 넓다. 모든 경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더 넓은 공간을 장악하는 존재가 의지력이 더욱 강한 편이었다. 넓은 공간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의지를 한 점으로 모아 상대의 공간을 뚫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 됐다.


백의 넓이를 장악할 수 있는 존재와 십의 넓이를 장악할 수 있는 존재가 맞부딪쳤을 때, 아무리 더 넓은 공간을 장악할 수 있다고 해도 십의 영역을 뚫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겠지만.

넓게 장악한 힘을 한데 모아서 십처럼 만든다면 뚫는 것은 금방이다. 십의 공간에 백의 힘이 들어있는 것과 십의 힘이 들어있는 것. 승자는 불보듯 뻔하다.


"어차피 싸우러 온 거잖아. 그럼 덤벼."


철민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메리 제인과 같은 기둥 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싸울 만한 상대다.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강함 순으로 줄 세운다면 기둥 다음 정도에 찰싹 달라 붙어서 줄 서 있을 정도의 강자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녀석은 그래도 꽤 괜찮은 경험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놈을 통해서 어딘가에 숨어 있을 다른 기둥도 겸사겸사 알아내면 더욱 좋고.


루그가 입을 쩍 벌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 뜻은 하나였다.

눈 앞에 있는 대상을 먹잇감으로 보겠다는 뜻이다. 더 이상 루그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잡아 먹을 먹이와 대화를 나누는 포식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포식자는 잡아 먹고 피식자는 잡아 먹힌다. 단순한 이치다.


"우냐? 사내 새끼가 질질 짜기는."


철민이 피식 웃으며 루그를 도발했다.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실제로 그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덩치는 산만한 악어가 눈물을 질질 짜는 모습이라니.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을 들어봤지만 저렇게 펑펑 울지는 않을 거다.


쩍 벌린 루그의 입에서 고압의 물대포가 쏟아졌다. 설마 이런 공격을 해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철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그리 위력적인 공격은 아니었다. 철민이 장악한 반경 1m 남짓한 좁은 공간. 그 바깥에선 금강석도 도려낼 것처럼 강력하게 발사된 물대포가 철민의 공간 안에선 물총이 쏘는 것보다도 못한 물줄기가 되었다.


뭔가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됐다.

자신은 이런 걸 바란 게 아니다. 조금 더 치열한 싸움을 바랐다. 삐끗하면 바로 위험해질수도 있는 그런 찰나가 중요한 싸움을.


'큭큭. 정말 미친 건가.'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요사스럽게 빛나는 달의 광기가 몸을 잠식한 것일 수도 있다.

철민은 장악한 공간을 무척 협소하게 줄였다. 정확히 땅에 닿은 발에서부터 머리, 그리고 손가락 끝까지.

이러면 상대의 공격을 미리 상쇄시킬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철민을 붙잡았다.


이렇게 하면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해진다. 한 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상대의 영역을 찢고 들어가 자신만의 공간을 새로 장악해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일정 범위를 장악하는 것이 아닌 몸이 움직이는 공간만을.

거기에 더해 위기 순간의 대처 능력 역시 같이 키울 수 있다. 이전까지는 미리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공격을 상쇄시켰다면 이제는 상대의 공격을 보고 직접 막거나 피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같이 계산해야 하고.


굳이 이렇게 어렵게 할 필요가 있을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잡념을 털어냈다.

마음만 먹으면 앞의 악어 따위는 벌레 밟듯 터뜨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페널티다.


그런 상황에서, 먼저 움직인 것은 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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