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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예술 범재의 천재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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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5.17 15:00
최근연재일 :
2024.06.21 11: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362
추천수 :
9
글자수 :
145,972

작성
24.06.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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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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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발 사람 말 좀 들어라, 형석아.

DUMMY

고등학교 내 학생들끼리 서열을 가릴 때의 기준은 다양하다.


인문계에서는 성적이, 실업계에서는 주먹이 그 잣대가 된다.


특성화 고교인 이 태성예고 역시 그에 걸맞은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서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이 학생은 사실 예고보다는 실업계에 더 어울리는 아이였다.


“내 말 안 들리나? 뭐라고 했냐고.”


그래, 보통의 아이들 같았으면 여기서 꼬리를 말았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싸움 실력은 쓸모없고, 그 과에 맞는 전공 실력이 뛰어난 것이 권력인 태성예고였다.


“뭐라는 거야? 지가 새치기 해놓고는.”


표예진이 눈을 부라리며 말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그래, 우리가 먼저 왔으니까 뒤에 줄 서는 게 맞지.“


박세민 역시 팔짱을 낀 채 한마디 던졌다.


그리고 내 앞의 상남자의 반응은 당연히..


“둘 다 돌았네, 디지고 싶나?"

'둘 다 미쳤네, 디지고 싶나?'


아, 거의 똑같았는데.


내 예상과는 단 두 음절 밖에 차이 나지 않게 말한 이 불량해 보이는 아이와 친해지게 된 계기는 사실 단순했다.


예고에 진학하고 나서야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달은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가끔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을 찾곤 했다.


중학교 친구들은 예고 아이들과는 달리 여전히 내 노래를 듣고 나를 치켜세워줬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실업계에 진학한 중학교 친구가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사람을 더 데리고 왔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지금 내 앞에 서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형석'이었다.


”형석아.“


”뭔데 니는? 내 아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불과 얼마 전까지도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던 친구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근데 왜 아는 척인데, 생긴 건 빙신 같이 생기가.“


“야!”


이형석의 말에 내 뒤에 있던 표예진이 앞으로 나서더니 그를 노려봤다.


”어디서 씹다 만 꼴두기 같이 생긴 게, 태수한테 사과 안해?“


이형석 역시 표예진 말에 안 그래도 구기고 있던 얼굴을 더욱 일그려뜨렸다.


”뭐라고? 씹다만 꼴두기? 이게 쳐 돌았나.“


”왜, 치게? 쳐봐.“


표예진의 도발에도 이형석은 눈을 부라리며 몸을 움찔댈 뿐, 손을 대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내가 과거에 봤던 이형석은 말이 좀 거칠고 싸움을 잘할 뿐 천성이 악한 아이는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여자에게 손을 댈리가..


“못 때릴 줄 아나!”


이형석의 팔이 번쩍 들려진다.


그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펼쳐지더니,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표예진을 향해 내리 꽂힌다.


눈 앞에 슬로우 모션처럼 펼쳐지는 장면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일 뿐.


퍽-.


잠시 짧은 정적이 흘렀다.


"태수야!"


"이태수!"


표예진과 박세민의 목소리가 내 뒤에서 동시에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이 상황을 지켜보던 몇몇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와, 쟤 뭐냐. 진짜 때리네."


"그러니까, 일진 놀이 할 거면 다른데 가서 하지."


주변의 시선을 느낀 이형석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급식실 안의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한 차가운 시선과 따가운 목소리에 점점 움츠러드는 듯, 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씨발.. 학교 좆같노."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형석은 급식 줄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표예진이 크게 외쳤다.


"너, 이름 외워뒀어!"


이윽고 이형석이 급식실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표예진은 걱정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야, 괜찮아?"


'괜찮을 리가 있겠냐? 형석이 손이 얼마나 매운데.'


어떻게 손바닥으로 쳤는데도 주먹으로 때린 것 같은 소리가 나는지..


하지만 속내와는 다르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으쓱였다.


"어, 뭐 손바닥으로 옆구리 맞은 건데."


내 대답에도 박세민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표예진 옆에 서서 이형석이 사라진 방향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태수야, 쟤 이름이랑 얼굴을 봤으니까, 나중에 수업 끝나고 학교 폭력으로 신고하자."


"어쩌다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학교 폭력은 무슨.. 됐어."


"하지만!"


"그만, 맞은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무슨 일이 있어도 신고를 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던 박세민은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알았어.. 근데 맞을 때 소리가 엄청 컸는데, 보건실은 안 가봐도 괜찮겠어?"


"아이고, 오바는.. 걱정은 고마운데 내가 알아서 할게. 그보다.."


나는 이형석에게 맞은 부위를 손으로 문지르며 표예진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는 괜찮아?"


"뭐가?"


"너 맞을 뻔했잖아."


내 말을 듣고 표예진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괜찮으니까. 얼른 밥이나 먹자. 줄도 많이 짧아졌네."


표예진이 먼저 급식판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나와 박세민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급식실 안은 여전히 소란스러웠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금세 잊은 듯 제각각 친구들과 밥을 먹으며 떨고 있었다.


마치 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만큼 그 일이 신경 쓸 만한 가치가 없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빠르게 음식을 받아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오늘 나온 갈비찜의 때깔에 감탄하던 것도 잠시, 이형석에게 맞은 부위가 순간 욱신거려 나도 모르게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자 내 표정을 본 박세민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태수야, 정말 보건실 안 가도 괜찮겠어?"


나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 괜찮으니까, 밥이나 먹자."


그렇게 말하며 숟가락을 들었지만, 욱신거리는 통증 덕에 아까 그 상황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형석이가 여자애한테 손찌검을 한다고? 내 기억속에 이형석은 그런 애가 아닌데..'


내가 모르는 이형석의 모습이 있던 건지.


아니면 그저 이형석에 대한 내 기억이 왜곡된 건지.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문득 느껴지는 표예진의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왜?"


".. 뭐."


"아니, 밥 먹는데 자꾸 쳐다보길래. 할 말이 있나 해서."


내 말에 표예진은 아무 대답 없이 시선을 식판으로 내리깐 채 갈비찜을 집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응?”


“걔가 나 때리려고 할 때 막아줘서 고맙다고.”


젓가락으로 집고 있던 갈비찜을 한입에 집어 넣은 표예진의 귀가 왠지 붉게 달아오른 것 같아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뭐, 그런 거 가지고.”


나 역시 무언가 간지러운 듯한 기분을 느끼며 갈비찜을 입으로 집어 넣었다.


&


“차렷, 경례!“


”안녕히 가세요!”


어느새 오늘의 수업도 모두 끝났다.


“태수야!


아니나 다를까 종례가 끝나자마자 박세민이 나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집에 바로가?“


“어, 그러려고. 너는?”


”나도 바로 학원으로 가려고, 같이 갈까?”


박세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표예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표예진.”


가방을 뒤적거리던 표예진은 시선을 가방에 둔 채 대답했다.


”왜?“


”우리랑 같이 집에 갈래?“


”아니.“


가방에서 악보집을 꺼낸 표예진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학교에서 연습 좀 하다 가려고, 갈 거면 먼저 가.“


”그래?”


“응.”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표예진이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도 역시 책상 옆에 걸려있는 가방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응, 내일 봐.”


악보를 품에 안은 표예진은 뒷문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박세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자, 세민아.”


이윽고 우리는 실용음악과 건물을 나와 교문을 향해 걸었다.


“오늘은 수업 중에 음악에 관련된 게 많이 없었던 거 같아.”


박세민의 말에 나는 하품하며 대답했다.


“어우, 그러게. 덕분에 잘 잤네.”


“대부분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졸아도 별 말 안 하시는 거 같던데?“


“어차피 실용음악과는 실기가 전부라는 걸 아시니까, 다들 그러시는..”


하품을 하며 감고 있던 눈을 뜬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익숙한 뒷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태수야, 왜?“


”세민아, 오늘은 먼저 갈래?“


”왜, 뭐 놔두고 온 거 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거는 아니고 아는 사람을 본 거 같아서.“


”누군데? 같이 가면 되지.“


”아니야, 너 먼저 가.“


나의 단호한 말에 박세민은 오늘은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먼저간다?”


“조심히 가.”


박세민이 나를 뒤로하고 교문으로 걸어가자,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조금 전 보였던 익숙한 뒷모습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건 급식실에서 시비를 걸던 아이.


이형석이었다.


“형석아.”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형석이 나를 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뭐고, 왜 또 아는 척인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뭔데, 볼일 없으면 끄지라.”


아, 이 친구를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러지 말고 내 말좀.."


하지만 이형석은 내 말은 듣지도 않고 고개를 휙 돌리더니 교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슬슬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하, 그냥 쌩깔 수도 없고..'


내가 어릴 때 수많은 어른들에게서 들었던 말이 있다.


'세 명의 친구를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


어렸을 때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공한 친구, 결혼한 친구, 자연스레 멀어진 친구 등등.


하나둘씩 연락이 뜸해지거나 아예 끊어진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말이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인생을 마냥 잘못 산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고.


그런 친구들 중 한 명이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았던 '이형석'이었다.


"이형석."


재빨리 몸을 움직여 이형석의 앞을 가로막은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우리 친구하자."


내 말이 뜬금 없었는지 눈살을 찌푸리던 이전과 달리 이형석의 표정에서는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 갑자기 뭐라노."


"우리 친구하자고."


"이거 보통 또라이가 아니네."


당황하던 것도 잠시 이형석은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한 걸음에 내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왜 자꾸 아는 척인데."


얼굴을 바짝 들이미는 것이 마치 붉은 천을 보고 돌진하려는 황소 같았고.


나는 '이형석'이라는 이름의 황소를 진정시키기 위해 준비한 카드를 꺼냈다.


"너, 민우 친구 아니야?"


"민우? 한민우?"


다행히 내가 꺼낸 카드가 통한 듯 사납기 그지없던 이형석의 눈은 삽시간에 온순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대명중 한민우."


"니가 민우를 우째 아노?"


"어떻게 알긴 민우랑 친구니까 알지."


사실은 미래의 이형석에게 들어서 안 것이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이형석이 순해진 것을 보고 내심 기뻐하며 다음 카드를 꺼내려던 바로 그때.


"이 학교에 니 같은 놈이 있다는 거 들은 적이 없는데?"


이형석이 의심스럽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기다려봐라."


".. 어?"


잠시만 설마.


"민우한테 전화 좀 해볼게."


이형석의 손에 쥐어진 휴대폰이 그의 귀와 한 몸이 됐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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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예술 범재의 천재 코스프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24.06.24 4 0 -
27 재수 없는 천재 24.06.21 13 0 11쪽
26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24.06.20 15 0 13쪽
25 거머리와 전설을 함께하다? 24.06.19 19 0 13쪽
24 뜻밖의 숨바꼭질 24.06.18 18 0 11쪽
23 3000만큼 짜증나 24.06.17 18 0 12쪽
22 심장아 나대지 마 24.06.15 22 0 11쪽
21 형석이는 태수의 웃음벨 24.06.14 20 0 11쪽
20 그럼 피드백 해 볼 사람? 24.06.13 25 0 13쪽
19 깔 수 있으면 까 보라지 24.06.12 26 0 13쪽
18 이유 있는 자만심 24.06.11 38 1 13쪽
17 학원으로 24.06.10 34 0 12쪽
16 모든 건 계획대로 24.06.08 37 0 11쪽
15 첫술은 배부르다. 24.06.07 35 0 12쪽
14 첫술에는 배부를 수 없다? 24.06.06 41 0 11쪽
13 어린 선생님 24.06.05 45 0 11쪽
12 음악을 하려면 닌자가 돼야 한다. 24.06.04 46 0 12쪽
11 '진짜' 친구 24.06.03 53 0 12쪽
» 제발 사람 말 좀 들어라, 형석아. 24.06.01 55 0 12쪽
9 배고픈 청춘들 24.05.31 55 0 11쪽
8 다크 히어로 24.05.30 56 0 13쪽
7 히어로 출격 24.05.29 60 0 11쪽
6 빌런 등장 24.05.27 80 1 12쪽
5 시간을 되돌린 두 번째 기회 24.05.25 82 1 13쪽
4 두 남자의 청춘 영화(?) 24.05.24 86 1 12쪽
3 과거로의 회귀 24.05.23 97 1 12쪽
2 기분 나쁜 꿈 24.05.22 107 2 13쪽
1 자각몽 24.05.20 17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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