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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보이맨 님의 서재입니다.

회귀한 예술 범재의 천재 코스프레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레드보이맨
작품등록일 :
2024.05.17 15:00
최근연재일 :
2024.06.21 11: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1,361
추천수 :
9
글자수 :
145,972

작성
24.05.20 10:00
조회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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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자각몽

DUMMY


'내 삶은 평생 예술로 칠해져 있었으면 좋겠다.'


컴퓨터 모니터 위로 보이는 어린 시절의 내가 뭣도 모르고 Sns에 싸놓은 글이었다.


저때는 저 글대로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예술을 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지.


"스읍, 하.."


나는 이미 짧아질 대로 짧아진 담배를 억지로 한 번 더 빨아들였다.


연기가 폐 깊숙이 파고드는 느낌과 함께, 담배의 불씨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듯 꺼져갔다.


"다들, 어떻게 살려나.."


나는 어느새 생명이 다한 담배를 그들의 공동묘지인 500ml 페트병 안에 꾸겨 넣었다.


그런 후 마우스 휠을 천천히 굴리며,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뭘 모르긴 했어도 저때가 좋았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예술은 음악이었다.


그것도 이미 포화상태이다 못해 터져 나간다는 실용음악 보컬 말이다.


계기는 사실 단순했다.


중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처음 간 노래방에서 내 노래를 들은 친구들이 깜짝 놀라며 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느새 학교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고.


친구들의 우러러 보는 시선에 매료된 나는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어느 학교마다 한 명쯤은 있다는 '쟤가 노래 잘한다는 걔야?'라는 소리로 시작해서 자신이 정말 재능이 있다 믿고 본격적으로 덤비는 부류.


나는 그런 부류였다.


"어?


사진들을 보며 한창 추억에 젖어가던 와중에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춰세웠다.


"박세민."


자신과는 다르게 어릴 때부터 떡잎이 남달랐던 놈.

내게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놈.

고등학교를 졸업 이후, 데뷔하자마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앨범을 냈다 하면 이제는 음원 차트 상위권은 그냥 찍는 놈.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나 혼자 만의 라이벌이었다.


"그때 그 노래 뭐였지? 기억이 안나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박세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입학 후에 곧바로 있던 반 신고식에서 박세민이 처음으로 모두의 앞에서 불렀던 노래.


워낙에 오래된 기억이라 노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노래의 멜로디와 박세민의 목소리는 아직까지도 선명했다.


그리고 그때를 떠올리면, 마치 실과 바늘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박세민의 바로 뒤에 이어서 신고식을 치뤄야 했던 이태수의 모습.


태어나서 처음으로 노래방 마이크 없이 노래를 부른다는 생소함에 두 다리를 벌벌 떨며 노래를 불렀던 나의 모습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 긴장이 됐는지 평소처럼 했어도 모자랄 판에 시원하게 노래를 말아먹고 자괴감에 빠져 무대를 내려갔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친구들의 냉랭한 반응들.


그 싸늘한 공기는 충격적이었던 박세민의 노래처럼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지금이라면 내가 다 씹어먹을 수 있을텐데.."


이는 단순히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의 푸념이 아니다.


범재의 노력으로도 천재의 재능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을 아는가?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을 통해 직접 경험했다.


일찍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음악을 접은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끝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어떤 노래든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됐다.


혼자하는 착각이 아닌 다양한 경로로 검증을 거친 진짜 실력.


"하.. 그런 생각 하면 뭐하냐."


이미 기회의 버스를 잡기는커녕, 그 버스를 바라보는 것조차 버거워진 나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태수야, 정신차려라."


문득 떠나 본 추억 여행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더 깊이 빠져들다 보면 또 무력감에 휩싸일 것 같으니까.


나는 열심히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마우스에서 떼어냈다.


그러곤 사람 하나가 누우면 꽉 찰 것 같은 싱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그때.. 그냥 아버지 말 듣고 공부나 할 걸 그랬나."


침대에 누우니 졸음이 쏟아진다.


댓글 알바를 하던 중에 옛 Sns 계정에 들어가 본 것이 내 실수였다.


그러니 이렇게 침대에 눕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 아닌가?


"보고 나중에 계정을 지우던가 해야지.."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 밖으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야.. 야야."


낯익은 목소리다.


아니, 그전에 나는 분명 침대에 누워서 잤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왜 의자에 앉아 있는 거지?


"야, 일어나. 지금부터 시작한대."


누군가 내 몸을 쿡쿡 찌르는 것 같은 감각이 들었다.


마치 현실과도 같은 생생한 감각.


이로 인해 확실해졌다.


'오! 이게 바로 자각몽이라는 거구나!'


꿈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자각몽.


살면서 한 번쯤은 꼭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나는 눈을 감은 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오.. 여기는."


황토색 나무 타일로 마감된 널찍한 바닥.


그 위로 뻗어 있는 높은 천장.


그리고 그 천장에 달려 있는 갖가지 조명들까지.


고등학교 시절 전공 실기가 있을 때마다 섰던 그 무대였다.


"하, 잠들기 전에 옛날 사진 몇 장 좀 봤다고.."


"야, 선생님이 이쪽 보시잖아. 좀 조용히 해."


이 목소리.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예진이?"


뒤를 돌아보니, 뒷자리에 앉아 앞으로 몸을 기울인 채 나에게 손을 뻗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작고 앳되어보이는 얼굴에 짙은 쌍커풀이 그려진 커다란 눈.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아 통통한 볼살 위로 볼 터치를 한 듯이 은은하게 피어오른 홍조.


그리고 노란색 명찰에 '표예진'이라고 또렷하게 적힌 그 이름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짝사랑했던 아이의 이름이었다.


"너, 나 알아?"


알지. 모를리가 있겠냐.


속마음과는 달리 나는 입 밖으로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표예진은 왜 갑자기 친한 척하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앞으로 기울이고 있던 몸을 뒤로 물렸다.


이에 뒤돌아보고 있던 나는 다시 무대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자각몽은 원래 다 이렇게 디테일 한건가?"


저 시니컬한 성격까지 꿈에서 나올 필요는 없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보니, 옛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는 것이 묘하게 반갑긴 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각몽을 경험하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과거의 잔재에 허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다.


"그럼 어떤 꿈을 한번 꿔 볼까.."


그래, 일단은 조금 유치할지는 몰라도 슈퍼 히어로처럼 날아다니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나는 꿈의 내용이 바뀌길 기대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하늘을 날고 있는 자신을 상상하며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하지만 눈 앞의 보이는 풍경은 바뀌지 않았다.


"분명 생각하는 대로 꿈을 바꿀 수 있다고 했는데..."


자각몽에서 꿈의 내용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는 법이 따로 있는 건가?


"대체 어떻게.."


그때였다.


"선생님."


표예진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절대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왓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당찬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객석에 앉아 있던 학생들이 전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 패기~"


"나대네.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갖가지의 반응들이 쏟아지는 걸 들으며 나 역시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적당한 큰 키에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깡 마른 것이 훤히 보이는 듯한 체형.


매직으로 펴도 금세 다시 말려 버릴 것 같은 심한 곱슬 머리에 검은색 뿔테 안경까지.


잠들기 전 Sns에서 봤던 박세민의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보는 박세민의 앳된 모습과 함께 다시 한번 드는 반가움에 잠겨 있던 순간.


미처 보지 못했던 무대 옆 단상 쪽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목소리였다.


"좋아, 이 반은 네가 스타트를 끊어볼까? 어디보자.. 네 이름이.."


"박세민입니다!"


"그래, 세민아. 무대 위로 올라와라."


"네!"


대답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박세민이 무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와 동시에 나는 꿈의 내용을 바꾸려던 계획을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입학 신고식..?"


내 기억이 맞다면 지금 내가 꾸고 있는 자각몽은 분명 고등학교 입학 신고식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박세민의 노래를 다시 한 번 직접 들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내가 슈퍼 히어로로 변신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됐다.


"애들한테 네 소개 먼저 할까?"


"네."


선생님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박세민이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녕, 나는 박세민이야. 전공은 보컬이고, 앞으로 3년동안 함께 잘 지내보자."


박세민의 짧은 소개가 끝나자 관중석에서는 예의상 의무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이윽고 점차 잦아들던 박수소리가 완전히 그치자, 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그럼 무슨 곡을 부를 거니?"


선생님의 말을 들은 박세민은 객석에 있는 아이들을 천천히 훑어 보았고, 나는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뭐, 노래를 듣는 게 목적이니까..'


나는 추억 속 노래의 제목을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자체를 하지 않했다.


어쨌든 꿈이라는 것은 꾸는 사람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현실에서 내가 모르는 것을 꿈이라고 알 수 있을리가..


"제가 부를 곡은 최창진의 비가 내리는 밤입니다."


"?!"


듣는 순간 단번에 기억이 났다.


최창진의 비가 내리는 밤.


박세민이 입학 신고식 때 불렀던 곡의 제목이 맞았다.


"최창진의 비가 내리는 밤?"


"들어본 적 있어?"


"아니?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객석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 곡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곡인데다가,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곡이니까.


노래 제목을 꿈속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꿈속에서는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뭐, 그런 거겠지.


"그래, 그럼 선생님한테 악보집 좀 줄래?"


"네, 여기요!"


박세민의 손에 쥐여져 있던 두꺼운 악보집을 받아든 선생님이 무대 한편에 놓인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악보집을 펼쳐 페이지를 하나, 둘 넘기더니 이내 곡을 찾은 듯 고개를 돌려 박세민을 바라보았다.


"곡 템포를 발로 한번 짚어볼래?"


"네"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박세민은 발로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탁, 탁, 탁, 탁


4/4박자로 일정하게 짚어지는 템포는 발라드치고는 조금 빠른 감이 있었지만, 그것이 바로 이 곡만의 매력이었다.


"좋아, 그럼 이제 시작해보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피아노에서는 구슬픈 멜로디와 마이너 코드가 어우러진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반주 위로 박세민의 목소리가 입혀지기 시작했다.


"너는 몰랐을 거야, 네 소식을 들은 날.."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 딴짓을 하며 수군거리던 몇몇 아이들의 소음이 점차 잦아들었고.


"내가 왜 그렇게 아팠어야 했는지.."


두 번째 소절부터는 모든 아이들이 넋을 잃은 채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엥?"


박세민의 노래가 시작되자,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드는 의문에 나도 모르게 속으로만 하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노래가 왜 이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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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예술 범재의 천재 코스프레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지. 24.06.24 4 0 -
27 재수 없는 천재 24.06.21 13 0 11쪽
26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24.06.20 15 0 13쪽
25 거머리와 전설을 함께하다? 24.06.19 19 0 13쪽
24 뜻밖의 숨바꼭질 24.06.18 18 0 11쪽
23 3000만큼 짜증나 24.06.17 18 0 12쪽
22 심장아 나대지 마 24.06.15 22 0 11쪽
21 형석이는 태수의 웃음벨 24.06.14 20 0 11쪽
20 그럼 피드백 해 볼 사람? 24.06.13 25 0 13쪽
19 깔 수 있으면 까 보라지 24.06.12 26 0 13쪽
18 이유 있는 자만심 24.06.11 38 1 13쪽
17 학원으로 24.06.10 34 0 12쪽
16 모든 건 계획대로 24.06.08 37 0 11쪽
15 첫술은 배부르다. 24.06.07 35 0 12쪽
14 첫술에는 배부를 수 없다? 24.06.06 41 0 11쪽
13 어린 선생님 24.06.05 45 0 11쪽
12 음악을 하려면 닌자가 돼야 한다. 24.06.04 46 0 12쪽
11 '진짜' 친구 24.06.03 53 0 12쪽
10 제발 사람 말 좀 들어라, 형석아. 24.06.01 54 0 12쪽
9 배고픈 청춘들 24.05.31 55 0 11쪽
8 다크 히어로 24.05.30 56 0 13쪽
7 히어로 출격 24.05.29 60 0 11쪽
6 빌런 등장 24.05.27 80 1 12쪽
5 시간을 되돌린 두 번째 기회 24.05.25 82 1 13쪽
4 두 남자의 청춘 영화(?) 24.05.24 86 1 12쪽
3 과거로의 회귀 24.05.23 97 1 12쪽
2 기분 나쁜 꿈 24.05.22 107 2 13쪽
» 자각몽 24.05.20 17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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