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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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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5.01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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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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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DUMMY

멜리다 상회는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직 보잘것없는 작은 점포에 불과했다.


제법 이목을 끌고 손님이 많아진 지금에도 그렇다. 산뜻하게 새로 벽지를 도배하고 고풍스러운 벨벳 소파를 들이는 등, 최대한 세간을 꾸몄음에도 고급매장이란 느낌이 안 났다.


상회의 평수는 문제가 아니었다. 비슷한 크기임에도 귀족들이 줄을 서는 상회도 있으니 말이다.


그냥 어딘가 초라했다. 절로 정숙하게 만드는 무게감 같은 게 어딘가 부족했다. 대상회라고 불리는 그러한 곳과 비교하면 일개 지점보다도 초라할 것이다.


하지만 이 상회는 막시의 꿈을 현실에서 이룩한 형태이다. 막시에게는 너무나도 자랑스럽기만 했다.


물론 그 시작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전혀 창대하지 않았다. 그저 여러 장난감을 가질 수 있었던 상회 집의 아이가 부러워 상인이 되겠다며 다짐한 게 전부였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가볍다. 그러나 아이란 게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게다가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유복하지 못했던 막시에게는 모든 걸 가질 수 있어 보였던 상인은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으로 비쳤었다.


이후 진로를 결정하게 해준 상회가 사실 작디작은 동네 점포였음을 알게 되었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물건을 유통하는 맛을 알아버린 막시는 너무나 즐겁고 흥분되는 이 일에서 더는 벗어날 수 없게 됐다.


돈도 제법 만지니 이만한 직업이 없었다.


여기에 아내와 아들이 생기기도 하니 이 어찌 최고가 아닐 수 있을까.


그런 꿈――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타국의 왕에 버금간다는 최고 국빈이 들어왔다.


막시도 열기마저 느껴지는 듯한 밖을 뒤로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다. 꽤 비싸 주저했었지만, 대용량 냉방기의 구매는 아주 훌륭한 짓이었다.


후우.


긴장이 풀린 막시는 남몰래 조용히 숨을 토해내고는 고상하게 땀을 닦았다.


축축해지는 손수건. 내려다보니 색이 변한 부분이 굉장히 넓었다. 감각적으로는 괜찮다고 여겨졌으나, 대중 앞에서 최고 국빈을 상대하는 건 생각 이상으로 정신에 무리를 줬나 보다.


안심하기에는 좀 이르다. 슬쩍 곁눈질로 보니 유리창 너머에 사람들이 달라붙어 있는 게 보인다.


거의 대부분은 문제없었으나, 몇몇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평범하진 않아. 그렇다는 건 그쪽 사람들이란 건가······’


다른 때였으면 알아차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게 전문가이니까. 문외한 따위가 알 수 없도록 하는 게 그들의 일이다.


하지만 이런 그들로서도 이스피리아의 행보는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아니, 아마 첫 시작부터 꼬였을 거다. 최고 국빈이 걸어서 시내를 활보한다는 건 여간해선 상상하기 힘들 테니.


그렇기에 막시조차 알아보는 게 가능했다.


‘이것도 나름 기회인가? 최고 국빈을 미행한다는 건 상대도 꽤나 지위가 탄탄한 놈일 거 아냐. 여하튼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나쁠 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자신만이 아니었나 보다. 들어서자 가득 힘 있는 목소리가 반긴다.



“어서 오십시오, 이스피리아 님.”

“어서 오십시오.”


다시는 없을 방문을 맞이하는 건 필므. 아들의 선창에 따라 두 줄로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도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환대해 주셔서 고마워요.”

“저희야말로 몸소 왕림하시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딱딱하지 않으셔도 돼요. 진짜로요······”

“예. 실례했습니다.”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필므를 따라 이스피리아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머물렀다.


둘이 친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이자 직원들에게서 안도하는 기색이 흘렀다. 며칠 전에 말해줬다지만 직접 최고 국빈을 맞이한다는 부담감이 가시지 않았던 모양이다. 고작 인사일 뿐임에도.


혹여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겠지.


이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어찌 될지 모를 세계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습은 모두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을 거다.


‘저 바보 아들놈이 최고 국빈과 저리 친해질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했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에 휩싸여있으니 이스피리아가 찬찬히 내부를 둘러봤다. 그 눈은 확고한 의지와 눈부신 지성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함부로 나서기가 꺼려진다.


필므조차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많은 물건을 진열해놓으셨네요. 조금 만물상 같은 느낌이 친근해서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배치가 조금 아쉬워요.”

“배치 말씀입니까?”


휙 고개를 돌리는 필므를 따라 막시도 자신의 점포를 살폈다.


매일 보던 광경임에도 꼼꼼히 살폈으나, 딱히 이상한 점이나 이스피리아가 말한 아쉬운 점은 보이지 않았다. 직원들도 모르겠는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모두가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자 이스피리아는 검지를 들었다.



“미끼 상품을 말하는 거예요.”

“미끼?”


전원이 고개를 꼬았다.



“가장 잘 팔리는 주요 상품을 정면에 전시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실제 물건까지 구태여 앞쪽에 놔둘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도난의 위험도 있고요. 대신 장난감이나 흥미를 끌 물건들을 놓는 거죠.”

“아! 그렇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것이로군!”


소리친 막시에게 이스피리아가 긍정했다.



“충동구매라고도 하죠. 전혀 필요 없는 물건임에도 적당한 가격이라면 호기심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제법 있으니까요. 거기에 만약 아이와 함께 온 손님이라면 아이의 투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구매하기도 하겠죠.”

“제 아이를 이기는 부모란 거의 없으니까요.”


거기에 자신도 포함되는 의미로 막시는 말하였고, 이스피리아는 조용히 웃었다.



“앞으로 점포가 더 커진다면 중간중간 미끼 상품을 놓는 것으로 효과를 증진시킬 수 있겠군요. 더불어 구매 동선까지도 유도할 수 있고 말이죠.”

“맞아요! 정확하세요!”


놀랐다는 듯 이스피리아의 눈망울이 커졌다.


하지만 그녀의 이 반응은 오히려 막시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상인의 지식을······’


간단한 지식도 아니다. 인간의 심리를 꿰차야 하는 고도의 것이었다.


말하자면 잔뼈 굵은 상인들이 알 비결이랄까······. 무수히 쌓인 경험을 토대로 얻은―― 상인으로서는 커다란 재산이나 다름없는 귀중한 지식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스피리아가 알고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거다.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보통 이딴 건 모르는 게 정상이다.


‘물론 필므의 말마따나 삼라만상 모든 걸 아는―― 지혜의 샘까지는 아니지만 분명 폭넓은 지식을 갖추고 있긴 하군.’


이러한 이스피리아를 이용한다면 분명 커다란 돈을 만지게 될 것이다.


분명 그러할 거다. 지금도 아무 가치가 없다는 듯이 지식을 전해주지 않았는가. 그녀와 연관되는 건 상인에겐 금화가 잔뜩 든 보주를 손에 넣는 것과 진배없다.


――그렇기에 필므가 달려들었다.


어쩐지 신중하고 소심함의 대명사인 아들놈이 앞뒤 따지지 않고 달려들었다 싶더라니.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의 매력이 이스피리아에게 있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돈 냄새를 잘 못 맡는 자신이라도 직접 만나니 바로 알겠다. 이스피리아, 그녀는 분명 돈을 낳는 요술 자루다.


이용하고 싶은 놈들이 많은 것도―― 미행이 줄줄이 따라붙는 것도 절실히 납득된다.



“그나마 사룡을 물리칠 만큼 강해서 다행인가······.”

“네?”

“아, 아뇨. 개선점을 가르쳐주어 감사합니다.”

“뭘요. 괜한 오지랖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이게 오지랖이라니. 진짜 노는 물이 다르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순간 말문을 잃은 막시 대신 필므가 나섰다.



“이스피리아 님, 이쪽으로.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작디작은 점포라 입구에서 전부가 훤히 보인다. 대충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필므는 안쪽에 있는 응접실로 이스피리아를 안내했다.


이동하기 전 필므가 발을 밟는 것으로 정신을 차린 막시도 서둘러 보필하며 따랐다.


문이 열리고 드러나는 전경에 이스피리아의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이스피리아 님, 일단은······”

“어, 알겠어요.”


필므의 훌륭한 보조였다.


뒤편의 창문에는 아직 구경꾼들이 많다. 그들 앞에서―― 대중 앞에서 흐트러지는 모습 따위를 보인다면 되려 이쪽의 준비 미흡으로 인한 행태로 비치기 쉽다.


서민들의 관점에서 귀족이란 고등 교육을 받고 자란 고귀한 존재란 이미지가 강하다.


평상시엔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생긴 편견이다.


하지만 그다지 틀린 편견은 아니다. 실제로도 귀족은 서민들보다 훨씬 월등한 교육을 받고······ 머리가 높다. 그렇기에 귀족은 쉽게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건 거의 상식과도 같다.


그러니 귀족과 평민 사이에서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괜한 트집을 잡아 선량한 시민을 핍박하는 귀족의 행패 내지는, 그 자존심 강한 귀족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내비칠 정도의 무례를 당했다는 것, 보통 이 두 가지로 본다.


그래.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그럼 이 상황에서는 어떻겠는가. 단연코 후자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저 여리고 여려 보이는 이스피리아의 모습을 보라. 선량한 시민을 핍박하는 게 떠오르기라도 할까.


열에 열은 이쪽 잘못이라고 몰아갈 것이다. 무조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반대로 지켜보는 위치였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


조금 상상했더니 소름이 돋는다.


나중에 필므를 칭찬하자고 다짐하며 막시는 서둘러 응접실의 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밖에서 대기였는데······ 다들 이제야 긴장이 풀어졌나, 찬크에르 라는 집사에게서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


특히 여자 직원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찬크에르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리고 킁킁. 둘이 지나가며 남긴 향수―― 싱긋한 신록의 향을 탐미하는 소리가 들렸다.



“집사님이랑, 엔가나 씨? 어째서 여기에? 이곳 다음에 찾아가려고 했는데······”


아는 얼굴들만 있게 되자 이스피리아가 꽤 가벼워진 분위기로 본인을 당황하게 한 남자―― 엔가나 소장에게 물었다. 그의 노집사는 가볍게 묵례로 예를 표했다.



“예. 실은 그 건으로 만나 뵙기 위해 왔습니다만······.”


무척이나 말하기 어렵다는 듯이 엔가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니지만, 그······ 오늘 방문하시는 데에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해서······. 큭! 믿고 맡겨주셨는데, 실망을 끼쳐 송구합니다!”


엔가나는 냉큼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깊게 숙였다. 마치 대역죄라도 저지른 모양새였다. 그만큼 엔가나에게서 발해지는 분위기는 살이 떨릴 정도로 진지해, 목숨이 걸린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겠지.


예상대로 이스피리아는 꽤 당혹스러워하더니······ 본인이 허리를 숙여 직접 엔가나를 일으켜 세웠다.


첫 만남에서부터도 이스피리아를 섬기는 뉘앙스를 풍겨왔던 엔가나였다. 무척이나 내키지 않아 하면서도 뜻을 굽히고는 순순히 일어났다.


솔직히 놀랐다. 아랫사람에게 손을 뻗는 귀족이란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보아하니 노리고 한 건······ 아니다. 어딜 어떻게 봐도 그러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 정도로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본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인 행동이라는 소리인데······’


분명 이게 타고났다는 것이리라. 자연스럽게 주위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내뿜는다. 연약한 자태 뒤로는 단호하면서도 올곧은 심지는 꽤 기묘하게 느껴지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호감이 간다.


그래. 이야기 속 호걸, 영웅들이 그러하듯이······.


어쩌면 이 소녀는 지금의 명성 따윈 하찮게 여겨질 만큼, 미래엔 더욱 대단해질 인물이 아닐까――


――꿀꺽.


그런 생각이 들자 막시는 입이 바짝 말라갔다.


눈앞의 미소 짓는 작은 소녀가 조금은 커다랗게 보인다.



“자자. 전 진짜 신경 쓰지 않으니 사정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예.”


마음을 정한 엔가나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연구자라는 게, 한 분야의 전문가잖습니까······”


물론 그렇다고 곧장 직설적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엔가나는 굉장히 눈치를 보며 빙 둘러 말하였다.


의아한 말에 이스피리아는 미간을 모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요?”

“아, 예. 그래서 저기······ 다른 방면의 일은 서툴다고 해야 하나······, 다들 집중력이 좋아 본인의 일 이외에는 눈길은 안 준다고 할까요······.”

“즉?”

“······지저분합니다.”

“······네?”


엔가나는 부들부들 떨더니 머리를 부여잡고는 절규했다.



“놈들 너무 게으릅니다!! 물론 본인들 연구에서만큼은 부지런합니다. 눈빛도 진지해서는 아주 빠릿빠릿하게들 움직입니다.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일에선 전부 게으릅니다!”

“어어······ 그렇게나 심한가요?”

“말해 입 아픕니다. 그들은 청소는커녕 잘 씻지도 않습니다! 마법을 한 번만 쓰면 되건만! 근데 본인의 일은 열심히 하는지라 뭐라 할 수도 없고. 덕분에 연구소는 현재 좋게 쳐줘도 돼지우리! 그딴 곳에 어찌 이스피리아 님을 모실 수 있겠습니까?!”


눈알이 희번덕거리는 엔가나에게 흠칫하면서도 이스피리아는 차분히 대답했다.



“에, 에이. 연구자는 다 그런 게 아니겠나요?”

“아뇨. 실례이오나, 만만히 보실 게 아닙니다.”


정색까지 하는 엔가나.


말문이 막힌 이스피리아는 멍하니 올려다봤다.



“우선 냄새가 끔찍합니다. 옆을 지나칠 때면 코가 썩어들어가는 것만 같죠. 참지 못해 매번 지나치는 사람들마다 [청결]을 쓰긴 합니다만, 아시다시피 저는 그다지 마력이 많지 않은지라······.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놈들은 정리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지 마치 도둑이라도 든 마냥 혼잡하죠. 최근에는 더는 물건을 놔둘 공간마저 없는지 복도마저 침범당하고 있습니다.”


엔가나는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스피리아는 턱에 손을 올리고는 고민에 잠겼는데, 잠시 후 “아~!”라며 탄성을 냈다.


시선이 모이자 이스피리아는 빙긋 웃어 보였다.



“일단 자리에 앉죠, 다들.”

“아. 저라는 사람이 이런 실수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눈치 빠르게 필므가 자리로 안내했고, 이스피리아는 집사가 빼주는 의자에 고상하게 앉았다.



“소장이신 엔가나 씨가 말리시는 거니 오늘은 방문하지 않을게요.”

“면목이 없으나, 진심으로 감사드리옵니다.”


크게 감동한 얼굴로 엔가나는 머리를 숙였다.



“반드시 이른 시일 내로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뇨. 그렇게까지 급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대로 성과가 나고 있음을 보고 받기도 하고요.”


보고서 따위는 언제든지 조작할 수 있다. 그러니 감사관이 존재하는 것이고, 부정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스피리아 연구소―― 자세한 사정을 알 리가 없는 막시의 귀에마저 닿는, 막대한 자금이 굴러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런 검사는 철저해야 한다. 양이 양이다 보니 소소한 부정만으로도 큰돈을 얻을 수 있으니까. 유혹이 도처에 널린 만큼 방심했다간 금세 부패로 물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려 따위는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양 이스피리아에겐 불신의 파편조차 보이지 않는다. 당당하게 본인의 이름을 내건 연구소였음에도. 있는 거라고는 오직 부하 직원에 대한 신뢰가 전부였다.


――부럽다.


문득 그러한 감정이 생겨났다. 누군가에게 저런 무조건적인 신뢰를 자신 또한 받아보고 싶다고······


의심의 연속인 상인의 삶에 지치거나 신물 나진 않았다. 오히려 그러한 과정 또한 상인이란 직업이 가진 즐거움의 일부였다.


그러나 저 둘의 사이는 무척이나 눈부셔 보였다.


거래라는 형식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상인으로서는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길이어서 그런가, 정말 너무나도 눈부셨다.


‘나도 늙었나.’


주책이 늘었다고 생각하며 막시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러는 사이 이스피리아가 허공에 손을 넣었다.


저것이 그 유명한 [수납]의 아티팩트.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근근이 시장을 찾아오는 집사로 인해 막시도 들어봤었다.


‘과연. 이렇게 보니 정말 [차원수납]처럼 보이기도 해. 그럴 리는 만에 하나 없겠지만.’


뭐든지 넣고 보관할 수 있다는 전설의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한 상상을 하고 있자니 이스피리아가 팔을 뺐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웬 주황빛의 엄지만 한 보석이었다.


‘마광석인가······? 크기와 투명도로 볼 때 상급 같아. 근데 왜 꺼낸 거지?’


의미불명인지라 혼란스러웠다.


그때 필므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들은 뭔가를 깨달았다는 눈치였다.


눈이 마주쳤다.


씨익.


필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기분 나쁘다. 올 게 왔다는 듯한 낌새였던지라 더욱 기분이 더러웠다. 이 자리가 아니었더라면 한 대 때려줬을 것이다.


딱!


분을 삭이고 있을 때 소리가 울렸다.


필므에게서 많이 들어봤던 거다. 이건 이스피리아가 마법을 쓴 것이다.


손가락만을 튕겨서 마법을 쓴다니. 당시에는 맛이 간 아들의 뻥튀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진짜였는가.


막시는 확인하기 위해 마광석에 시선을 뒀다.


마법을 썼다면 분명 저기일 터.


그런데······ 아무 변화가 없다. 작은 빛이라던가 그 어떤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됐다. 자요, 엔가나 씨.”

“이건······?”

“[청결]을 담아뒀어요. 일정 범위로 구역을 설정해뒀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오면 작동할 거예요. 모두가 한 번쯤은 다닐 길목에다가 설치하면 굳이 일일이 찾아가지 않아도 되잖아요.”

“확실히. 명안입니다.”

“근데 괜찮은 자리가 있을까요?”

“식당으로 가는 부근이 좋지 않나 합니다. 외부로 드러난 길목이니 흘러내린 이물질에도 덜 고생할 테고, 보기완 달리 몸 관리는 하니까 못해도 이틀에 한 번꼴로 드나들 겁니다.”

“하긴 좋아하는 연구를 계속하려면 일단 몸이 건강해야겠죠.”


이스피리아는 공감한다는 듯이 신음을 흘렸다.


엔가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의외였습니다만 그 부분에선 제법 철저하더군요. 안락한 침구의 구비에도 돈을 아끼지 않고.”

“오호. 그러면 깐깐하겠네요?”

“그렇습니다. 연구자답다고 해야 할지. 소재의 구성부터 원산지, 박음질까지 아주 세세하게 체크를 하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잠깐!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새로운 이야기로 나아가는 둘을 막아선 건 막시로, 잠깐 넋이 나갔었던 그는 정신 차리자마자 멈출 새도 없이 끼어들었다.


그만큼 이상했다.


왜 아무도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해박한 엔가나나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필므가 말이다.


막시는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저······”

“실례합니다만,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어리둥절하게 보는 이스피리아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이거요?”


이스피리아는 엔가나에게 주려던 마광석―― [청결]을 담았다는 마도구의 핵심 부품을 내밀었다.


그렇다. 마도구다. 마광석뿐이지만 마법이 담겼다면 그건 엄연한 마도구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는다. 이 마도구는 마도구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다시 양해를 구한 막시는 편히 보라며 건네준 마광석을 받았다.


감사를 전한 막시는 곧장 마광석을 살펴봤다.


‘역시 없어!’


어딜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예상대로다. 이건 마도구라고 볼 수 없다.



“――아아.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만, 술식을 찾는 것이었습니까?”


엔가나였다.


막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시다시피 마법엔 반드시 술식이 있어야 합니다. 마도구는 마광석에 이를 세기는 것으로 성립하죠. 상식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근데 마광석 가루를 쓰는 기미가 없어 확인했더니 역시나. 이 마광석에 술식은 그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흠. 마도구도 아닌 실패작. 그리 보신 겁니까? 그리고 그런 물건을 받아 가는 제가 의아했고.”

“뭐야, 아부지. 뜬금없이. 내가 말해주지 않았나――. 응? 안 말해줬나?”


뭔가 알고 있는 필므와 다 이해했다는 얼굴인 엔가나. 그리고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 뭐 하나 이상한 게 없어 보이는 이스피리아와 집사.


무언가가 있다. 아니. 자신만 상식이 모자란 사람처럼 비치는 모습을 보노라면 무조건 뭔가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답은 필므가 알려줬다.



“아부지, 그거 들고 아부지 방으로 가봐. 때마침 잘 됐어. 안 그래도 벽면에 먼지가 쌓였던 게 신경 쓰였거든.”

“뭐······?”

“가보면 알 거야.”


옷을 갈아입을 때도 쓴 막시의 집무실은 응접실의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다.


상회주의 집무실이라면 듣기엔 좋지만, 사실 단순히 구색 갖추기로 만든 방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자주 청소하지 않았고, 필므의 말대로 여기저기 제법 먼지가 쌓여 있을 것이었다.


막시는 손에 든 주황빛의 보석을 봤다.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필므도 그런 의미로 가라고 했겠지.


확신하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권유다.


믿기진 않는다. 재차 봐도 술식은 전혀 보이지 않으니.


그러나 상인이란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존재다. 단지 추측만으로 상품을 평가하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런 놈은 삼류 이하다.


굳게 입을 다문 막시는 집무실로 향하는 문에 손을 얹었다.


후르르륵.


문을 열자마자 먼지가 떨어진다. 범위로 따지자면 대략 2m.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체에 마법이 작용했다.


근데 마력이 전혀 들지 않는다. 들고 있는 마도구에선 일절 마력을 요구하지 않았다.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진짜다.


――이건 진짜 아티팩트다.


이스피리아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록 생활마법의 하나인 [청결]을 담았을 뿐일지라도.



“이 정도일 줄은······.”


무심코 중얼거린 막시에게 이전 필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중이떠중이랑 비교하지 마. 그분은 이 시대 최고의 장인인 분이시니까.


흘려들었던 저 소리는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맛이 간 줄로만 알았던 아들의 망상이 아니었다. 도리어 달리 표현할 말이나 있을까······


뚜벅뚜벅.


문을 도로 닫은 막시는 천천히 이스피리아에게 갔다.



“갑작스러운 무례였음에도 선뜻 건네주어 감사했습니다.”

“그건 괜찮은데······, 혹시 뭐가 이상했나요?”

“아닙니다. 굉장한 물건이었던지라 자세히 보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상인의 혼이 불탔달까요?”

“아아. 그런 거군요.”


이스피리아는 안심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다. 그렇게나 영리하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의심 하나 없이 믿다니. 저만한 능력이라면 조금은 머리를 세우고 뻗댈 만도 할 텐데.


‘아니. 이렇기에 하나둘, 이 어린 소녀를 따르기 시작한 거겠지. 그리고 나 또한······. 뭐, 그렇다고 필므처럼 맛이 갈 일은 없겠지만.’


호감은 간다. 하지만 아까와 마찬가지다. 굉장함을 봤음에도 변하진 않는다.



“자, 그럼 이거 받으시고······. 우음······”

“왜 그러십니까?”


신음을 흘리는 채로 이스피리아는 묻는 엔가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역시 연락할 방법이 하나쯤은 있어야 편할 거 같은데······. 저기, 엔가나 씨.”

“예.”

“연구의 진척은 어디까지 됐나요?”

“제대로 시작했다고 하기엔 어렵습니다. 이제 막 연구 방향을 잡은 정도에 불과합니다.”

“흠······ 그렇군요.”


실망을 샀다고 여겼는지 엔가나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턱에 손을 올리고 고민하던 이스피리아는 뒤늦게 이를 보고 놀라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성과를 재촉할 셈이 아니라고요! 저는 그런 악덕주가 되는 건 사절이에요! 그저 슬슬 괜찮지 않을까 해서 물었을 뿐이에요······”

“예? 그게 무슨······”


잔뜩 고뇌에 빠진 얼굴을 풀고 이스피리아는 허공에 손을 넣었다. 대답 대신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르다고 여겼나 보다.


이윽고 나온 손에는 알록달록 무지갯빛을 내는 금속이 들려있었다.


꽤 눈에 익다.


어디서 봤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필므가 애지중지하며 몸에서 한사코 떼지 않는 체인 목걸이와 비슷해 보였다. 일단 내뿜는 빛은 같았다.


필므도 단숨에 눈치챈 모양인데, 여기에 더해 뭘 할 줄도 아는 듯했다. 제법 흐뭇한 표정으로 엔가나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게 아니겠는가. 마치 선배라도 되는 양 건방지게.


그딴 황당한 상황을 뒤로하고 이스피리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현상이 나타났다. 꾸물꾸물 손에 든 금속이 움직이더니 형태를 바꿔갔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건 눈이 부릅떠질 만큼의 완성도가 높은 목걸이. 드워프가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정밀 세공이 엄청나 이스피리아의 손을 따라 목걸이의 줄이 마치 뱀처럼 유연하게 움직였다.


‘마법이라는 게 원래 이런 거까지 할 수 있었어? 엘리트들이 잔뜩 모인 베르다드에서는 흔한 일인가?’


머리가 따라가지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이해가 안 된다.


혼란에 빠진 사이 이스피리아는 목걸이를 건네줬고, 뒤에 있던 집사와 눈이 마주치고는 그를 위한 브로치도 하나 더 만들어줬다. 아마 까먹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결과물은 완벽했다. 10초 만에 냉큼 만든 것이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받으세요.”


환한 미소를 지은 이스피리아가 공손히 두 손을 내밀었다. 그 아담하고 고운 손 위에는 팔찌가 있었다.


팔찌는 한눈에 보기에도 뛰어난 장인이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기다란 판을 겹겹이 쌓은 디자인 또한 전혀 촌스럽지 않고 적당히 고풍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다만 어떻게 착용하는지조차 모르겠다. 팔이 들어가기엔 구멍이 좀 작다.



“저기······ 별로인가요?”


필므가 이스피리아의 뒤에서 눈을 부라린다.



“아닙니다. 이 디자인이라면 일 중에도 거치적거리지 않을 테니 문제없습니다. 그저 어째서 이런 걸 주시는지······ 진위를 알고 싶달까요.”

“아부지!”

“괜찮아요, 필므 씨.”

“윽. 죄송합니다.”


이스피리아에게 머리를 숙이면서도 필므가 째려본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라, 필므. 이 아가씨를 신뢰한다 하더라도 그건 너의 입장이야. 난 나대로 이 아가씨가 무얼 바라는지 알고 싶구나. 세상에 공짜보다 위험한 건 없고.’


각오를 알아봤는지 엔가나가 어깨를 으쓱인다.


곧이어 필므를 진정시킨 이스피리아가 돌아봤다.


처음과 똑같았다. 차갑게 식은 듯한 저 연분홍빛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이쪽의 안이 꿰뚫린 기분이 든다.


하지만 눈을 피하지 않았다. 되려 정면으로 마주봤다.


좋다 이거다. 보고 싶으면 마음껏 들여다보라지. 부끄러운 삶은 살지 않았으니 자신 있다.


때아닌 눈싸움은 이스피리아가 먼저 피하면서 막을 내렸다.



“너무 경계하시지 않아도 돼요. 저는 단순히 연락 체계를 갖추고 싶었을 뿐이니깐요.”

“연락 체계······?”


액세서리에서 무슨 뜬금없는 연락 체계란 말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되물었는데, 잘못 들은 게 아니었나 보다. 이스피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확인시켜준다.



“사실 여기에 마법을 부여했거든요. 음······ 설명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빠르겠네요. 두 분, 제가 사용법을 알려드릴 테니까 시연 좀 해주시겠어요?”


이스피리아는 엔가나와 그의 집사에게 준 액세서리를 착용하게 하고는 사용법을 설명해줬다.



“음. 그러니까, 연락하고 싶은 상대를 떠올리면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대충 그래요. 나중에 상대를 늘릴 예정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도록 하죠.”


익숙하지 않은 탓에 엔가나는 눈을 감고 집중하였다.


잠시 후――


번쩍!


옅은 빛과 함께 엔가나의 앞에 배경이 비치는 화면이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엔 놀란 얼굴의 노집사가 있었다.


노집사 쪽도 마찬가지였다. 눈을 크게 뜬 엔가나의 얼굴이 뜬 화면이 나타나 있었다.


‘재생기? 들었던 그거와 비슷하지 않나?’


이러나저러나 이번에도 아티팩트다. 재생기와 비슷한 효과라면 틀림없다. 그건 아직 재현이 불가능한 잃어버린 기술이니 말이다.


엔가나 쪽도 알고 있었는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스피리아 님. 설마······”

“맞아요. 통신 마법이에요. 저는 [화상통화]라고 불러요. 화면이 없는 건 그냥 [통화]로 부르고요.”

“이미 완성하셨던 겁니까?! 그런데 어찌 제게 연구를······”

“마도구로 만들 수가 없어서예요.”

“예? 정말입니까?”


이스피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준 물건은 대중적인 방식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작동방식도 달라서 따로 마력을 넣을 필요도 없죠. 대신 너무 오래 쓰면 과부하 돼서 한동안 작동을 멈춰요.”

“달리 보면 반영구적이라 들립니다만······”

“부서지지 않는 한 그러겠죠.”


전설급의 아티팩트나 다름없는 이야기에 그 침착하던 엔가나의 집사가 침묵을 깨고 깊게 탄성을 흘렸다.


반영구적이란 소린 그런 뜻이다. 보통의 아티팩트로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완전부여]로서 술식이 새겨진 마도구 또한 그러하다. 얼추 반영구적이기는 하나 그 수명은 분명 존재한다. 그저 조금 길뿐이다. 이것처럼 완전하진 않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미간을 찌푸린 이스피리아가 말했다.



“제가 알려드리지 않은 건 다름이 아니라 양산할 수 없어서예요. 혹 다른 곳에서도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저만이 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한 이스피리아는 허공에 손을 넣어 큼지막한 종이 여러 장을 꺼냈다. 그리고 모두가 볼 수 있게 테이블 위에 펼쳤다.


아티팩트의 작동을 멈추고 전원 모여들어 들여다봤다.



“혹시 이건······ [화상통화]의 술식입니까?”

“정답이에요, 필므 씨.”

“거듭 실례합니다만 술식까지 있으시면서 어째서······”

“이 술식이 반쪽짜리라서 그래요, 엔가나 씨.”

“어떤 뜻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들으신 그대로예요. 이 술식만으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죠. 사용자의 마력과 더불어 구체적인 이미지가 필요해요.”

“아하······ 그런 것이었군요. 하긴 이만한 아티팩트이니.”

“응? 알고 계시는 현상인가요?”

“아, 예. 투기장에는 온갖 지역을 돌아다닌 모험가들이 오지 않습니까? 개중에는 그런 특이한 마도구를 장비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유적 같은 곳에서 구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성능은 사용 조건이 있는 만큼 대체로 꽤 뛰어났습니다.”

“모험가라······ 과연. 그래서 방콕족인 리카드 씨가 몰랐던 건가? 본인은 스스로 마법을 쓰는 게 편해 따로 마도구를 만들지 않아서 몰랐다고 변명했지만······ 역시 집에 콕 틀어박혀 있던 영향이 큰 거 같은데?”


리카드를 언급하며 중얼거리는 이스피리아. 편히 부르는 걸 보면 계약서에 마음대로 이름을 써넣을 정도의 친분은 진짜 있나 보다.


‘그리고 투기장? 제국의 그 투기장을 말하는 건가? 소장님은 그곳의 관계자였던 거고?’


엔가나와는 제법 친밀하게 지냈으나 이제 막 1달 정도 안면을 튼 것에 불과했다. 그에 대해 모르는 건 많았고, 무얼 연구하는지도 지금에야 들었다.


한 번에 많은 정보가 입력되니 따라가기가 좀 벅차다.


하지만 그런 사정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는 이어졌다.



“어쨌든 제가 알려드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에요. 미완성의 술식을 넘겨줘서 매달리기보단,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여러모로 이로울 거 같았거든요. 이거 마력도 제법 들어서 쓰기도 애매하고요. 이것만으로도 저희가 바라는 목적엔 상당히 멀리 떨어졌잖아요?”

“그렇군요······. 다른 건 보완한다 치더라도, 마력의 소비가 크다면······ 확실히 널리 보급한다는 목표엔 몇 발자국이나 멀어지겠죠.”

“네. 그래서 제가 만든 술식과는 완전 새로운 술식이 연구되기를 바랐어요.”

“아티팩트를 주신 건······”

“연락을 위해서요. 오늘처럼 사정이 생길 때 연락을 취할 방편이 있으면 좋잖아요? 좀 미루다가 건네줄까 했는데, 아무래도 필요성이 느껴져서요. 여러분들 이외에도 릴 공방 쪽도 건넬 테니 용건이 생기신다면 신속하게 연락을 받을 수 있겠죠. 물론 막시 씨께 드린 팔찌도 같은 기능이 있으니 똑같이 할 수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막시는 멍하면서도 엉겁결에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필므 씨, 목걸이 좀 보여주세요. 아아. 굳이 빼진 않아도 돼요.”


지시대로 필므는 옷 속에 있던 목걸이를 꺼내 보여줬다.


이스피리아가 가슴께에서 목덜미를 쳐다봤다.


입이 닳도록 사모하는 소녀가 바짝 다가오니 긴장했나, 필므의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그러나 남자의 자존심이라는 게 존재하긴 했는지 어울리지도 않는 다부진 얼굴로 당당하게 가슴을 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스피리아는 무심하게 투박한 목걸이를 덥썩 잡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됐어요. 이걸로 필므 씨도 연락이 가능할 거예요.”

“기능을 추가하신 겁니까?”

“네. 나중에 츠카 씨랑 셀레스테 씨 것도 추가할 예정이에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이스피리아.


이젠 놀랍지도 않다. 너무나 많은 상식이 깨져 술식을 고치거나 덧쓰는 것쯤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진다. 주위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니 더욱 그러했다.


모르겠다. 이 이스피리아 라는 소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기를 포기한 막시는 느긋하게 있기로 했다. 둘러볼 건 진작에 다 둘러봤고, 이젠 수다를 떨 뿐이니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은가.



“엔가나 씨, 술식은 챙겨두세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어차피 연구가 궤도에 오르면 보여드리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감춰두세요. [화상통화]도 남들이 없는 데에서 해주시고요. 공개할 시기는 맡길게요.”

“알겠습니다.”


노집사도 알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제 이야기도 얼추 정리됐겠다 싶었는데, 필므에게 받은 차를 마시던 이스피리아가 갑자기 떠올랐는지 다급히 말하였다.



“저기, 엔가나 씨! 한 가지 상담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게 말입니까?”

“네.”

“알겠습니다. 도움이 될진 모르겠으나 말씀하십시오. 어떤 일입니까?”

“그게 어쩌다 보니 상인 조합을 만들 거 같아서요.”

“······예?”

“지, 진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엔가나는 오늘로서는 처음으로 멍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오른팔인 노집사부터 필므까지 천천히 하나하나 시선을 교환했다.


막시 또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 지금 뭐? 상인 조합을 새로 설립한다고?!’


느긋하게 있겠다던 다짐은 무너졌다.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빠르게 확인해봤으나 분위기상 제대로 들은 게 맞다.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지금 있는 상인 조합은 나라를 초월하는 거대 집단이나 마찬가지다. 벨루디스의 법과 관리를 받고는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형식상에 불과했다.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 때문에 되레 지원을 받는 형국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조합의 설립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관리가 번거로워지는 걸 반기는 관료 같은 건 없으니 말이다.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관계는 상인 조합의 힘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었고, 멈출 수 없는 욕망에 취해 썩어갔다.


분명 현재의 조합엔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 그렇지만 썩어도 준치다. 상인 조합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고, 이들의 눈밖에 나는 건 상인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근방에선 장사를 접어야 할 것이다.


이런 판국을 뒤엎는다······


조합의 설립 자체는 최고 국빈이기도 하니 어찌어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체 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만큼 상인 조합의 위치는 굳건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뒤이어 나오는 이스피리아의 말에 깨졌다.



“상인 조합의 부조합장께서 추천해주더라고요.”


막시는 놀라 소리쳤다.



“테츠 씨가 그리 말했다고요?!”

“어, 네. 면식이 있으신가요?”

“아······ 예. 저도 이래저래 상인 나부랭이다 보니. 이전엔 근처 이웃이기도 했고요.”

“그러하셨군요.”

“저기······ 정말 죄송합니다만, 정말로 테츠 씨가?”

“네. 먼저 오셔서 권하셨어요. 츠카 씨도 손 벗고 도와주겠다고 하셨고요.”


테츠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일에 투자하는 멍청이가 아니다. 그건 오히려 조합장 쪽이다. 그는 부조합장이라는 직책이 낮게만 느껴질 만큼 돈의 흐름을 잘 읽는다.


돈의 냄새를 잘 맡는 필므와는 조금 다르다. 테츠는 전체적인 판을 보는 시야가 넓다. 어찌 보면 필므의 상위 호환격이다.


그런 그가 이스피리아를 택했다. 유능하다는 아들이 곁에서 이탈함에도 내버려 둔 게 증거다. 과감한 투자가 아닐 수 없다.


근데 뭣 때문에? 어디에서 가능성을 보았단 말인가?


막시는 고민에 빠졌고, 마찬가지로 궁금증이 폭발한 엔가나가 바턴을 이어받았다.



“물을 것이 많습니다만, 우선 어쩌다가 그리된 것입니까?”

“그게······”


어색하게 웃은 이스피리아가 상인 조합에서 있었던 일을 알려줬다. 대충 요약하자면 조합장이 평소대로―― 아니 평소 이상으로 미친 짓을 한 정도랄까.



“타, 탐욕스러운 자라 느끼긴 했으나 설마 이리도 어리석을 줄은······”


엔가나 또한 황당한지 말을 흐렸다.



“저······ 엔가나 씨 때는 괜찮았나요?”

“네에. 뭐. 수고료를 요구하는 건 어디나 똑같으니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근데 왜······”

“액수 때문이겠지요. 아마 연구소의 자금이 풍족함을 알고 욕심이 난 것이라 보입니다. 물론 이스피리아 님이 미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자가 조직의 장이라는 것 자체가 무너질 징조이니까요. 이용하는 상인이나 소상공인도 불만이 많았겠지요. 때마침 적절한 시기로 생각됩니다만······ 당장 식료품을 거래할 곳은 찾으셨습니까?”

“확정은 아니지만 흰 날개라는 상회에 부탁하려고요. 마침 아이리스랑 동급생 친구라서요. 오늘도 함께 시내를 둘러보러 나갔어요. 나름 친하니 이 정도 거래는 해주시지 않을까 하는데······ 어떨까요? 아아. 당연히 거래가는 깎지 않을 거예요.”


‘뭐라고? 사르케아?!’


초거물이 나왔다.


막시는 확인을 위해 필므를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바로 뜻을 알아차린 필므는 살며시 눈꺼풀을 감았다.


긍정의 의미로, 이스피리아의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 말인즉슨, 때마침 사르케아의 아가씨가 베르다드에 재직 중이었고, 때마침 동생도 동급생으로 재직했고, 때마침 둘의 사이는 친밀해져 같이 놀러 나갈 정도의 친구가 됐다는 소리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아니, 그럴 리가. 차라리 경마에서 1등을 연속 10번을―― 거기에 더해 전체 순위까지 맞춰 벼락부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믿겠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전부 이때를 위해 판을 짜 놓은 것이었다.


――근데 언제부터? 언제부터 판을 짰던 거지?


‘필므와 손전등을 계약한 날부터? 아니면 베르다드에 입학하면서부터?’


터무니없다는 건 안다. 그러나 우연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너무 잘 짜여 있다.


눈에 훤히 보인다. 흰 날개가 거론되자 눈빛이 진지해졌을 테츠가.


계약의 성사? 그건 고려할 가치도 없다. 무조건 된다. 오히려 흰 날개 쪽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기만 했다.


왜냐하면 모든 걸 다 가진 흰 날개의 입장에서는 연줄이 훨씬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최고 국빈이라면 아주 군침이 질질 흐를 것이다.


‘그걸 겨우 식료품을 공급하는 정도로 이룰 수 있다면 얼마든 갖다 바칠 의향도 있겠지.’


그리고 그 계약을 새롭게 만들 조합에서 한다.


신생 조합의 첫 계약이 흰 날개라니······


엄청난 파급력이다. 본인이 만든 조합에서 본인이 만든 연구소로 납품을 한다는 계약 내용이 이를 더욱 키운다.


화제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자체만으로도 조합의 구실을 할 수 있는 흰 날개가 굳이 발걸음을 옮겼다는 점에서 신뢰성마저 확보된다.


‘설마 저 소녀―― 저 여자는 조합을 집어삼킬 생각인가?! 국가 기관에 버금가는 상인 조합을?’


막시는 흠칫 몸을 떨었다.


솔직히 말하자.


무섭다······. 순진한 얼굴로 이 어찌 무시무시한 계획을 태연하게 꾸며왔던 것인가. 동생마저 이용하면서.


더욱 소름이 돋는 건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있다는 것이다.


귀족이란 존재는 위로 오를수록 감정을 잘 감춘다던데 이 정도였단 말인가.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 섬뜩함의 깊이가 다르다.


‘그런 세계에 왜 우리를 끌어들인 거냐.’


두려우면서도 묘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막시는 물었다.



“멜리다 상회에 바라시는 건 무엇입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는 듯 이스피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이 여자에 대해 파악했다. 저 귀여운 행동 뒤엔 분명히 냉철히 상황을 분석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나온 대답은······



“특별히요? 딱히 뭔가를 바라고 있지 않아요. 지금처럼 해주시면 돼요. 전 엄선하고 엄선한 물건을 제공하고, 여러분들은 그걸 팔고. 기본이지 않나요? 저희의 계약이란 건.”

“그것뿐입니까?”

“네. 그게 끝인데―― 아아. 잊고 있었다. 휴~ 루비아 씨에게 혼날 뻔했네.”


크게 가슴을 쓸어내린 이스피리아가 허공에서 꺼낸 건 수박 하나는 들어갈 자루. 그걸 테이블에 내려놨다.


쿵. 잘그락.


제법 묵직한 소리 뒤에 이어진 특유의 소리. 틀림없다. 동전이다. 경험으로 비춰보면 금의 소리다.



“받으세요.”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생각 이상으로 무거운 자루의 끈을 풀자 금빛이 반짝였다.


역시나 금화다. 그것도 주금화. 얼추 보기에도 백 단위는 넘어갈 만큼의 주금화가 자루에 잔뜩 담겨 있었다.


설명을 바라는 눈치로 쳐다보자 이스피리아가 답했다.



“투자금이에요. 오늘 와서 보니까 손님―― 수요가 많더라고요. 슬슬 분점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투자금이란 겁니까?”

“네. 화제가 되었을 때 확 치고 가야죠.”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십니까? 상회라 부르기도 민망한 이 조그마한 점포에. 도대체 뭘 믿고.”

“글쎄요. 이유가 있다면 제가 만든 물건을 알아봐 줘서?”


그렇게 말한 이스피리아는 배시시 웃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필므 씨와 계약한 거였는데 점차 주위 사람들이 제가 만든 물건을 들고 있는 모습이 재밌더라고요.”

“재밌으시다고요······?”

“네. 오늘만 해도, 제가 만든 손풍기로 소꿉놀이를 한다잖아요? 그러라고 만든 물건이 아닌데. 후훗. 저도 의외였지만 그런 소식들을 듣는 게 제법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투자하는 거예요. 암만 잘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말짱 꽝이니깐요. 유능한 상인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는 것도 손해는 없고요.”

“점포를 늘린다고 해서 판매가 느는 건 아닙니다만?”

“아뇨. 반드시 늘어요. 그리될 예정이니까요. 점포의 개수도 점차 늘어갈 거예요. 발이 닿는 곳까지.”


단언하는 이스피리아에게서는 조금의 미혹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그리되리란 강한 믿음만이 존재했다.


허망한 망상에 빠진 자의 우둔한 헛소리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분명 그리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 망상에 가까운 일들을 현실에서 실현했다. 망상 따위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설득력이 강했다.


게다가 이쪽에 손해는 없다는 게 너무나 달콤하고―― 감미로웠다.


막시는 온 몸에 전율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상회를 세운다는 꿈을 이룬 뒤 새롭게 생긴 꿈―― 전 세계를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꿈이 가까워졌다.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던 꿈이었다. 이룰 수 없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상회를 세운 것에 만족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이 여자가 무얼 바라고 멜리다 상회를 키우려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가능성을 본 것만으로 이쪽의 열정은 제대로 불타올랐다.


‘이용이든 뭐든 마음대로 하라지.’


그러니 원했던 무대를 내놓아라.


상부상조가 아닌가. 이쪽은 파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그쪽은 팔리는 것에 재미를 느끼니 말이다.


무대만이라도 쥐여준다면 무엇이든―― 영혼이라도 내놓을 수 있다.


뭔들 가져다준다 한들 어떻게든 팔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스럽게도 파는 것엔 재능이 있다.


정말 영혼을 걸라면 걸겠다.


이스피리아, 댁이라면 그래도 좋다. 반드시 무대를 만들어줄 테니까.


‘다른 대륙이든 어디든 따라가 주지.’


즐거움으로 입술이 벌어진다.


그리고 문득 눈에 띈 필므. 아들은 아주 진한 미소를 지었는데, 눈이 마주치자 조용히―― 아무 소리를 내지 않고 입으로만 말하였다.



“어.서.와.”


그때야 막시는 깨달았다.


자신이 필므와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다들 멋진 연말을 보내셨나요?


추운데 건강 잘들 챙기시고 한 해의 마무리를 좋게 끝마쳤으면 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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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196 +2 23.07.19 54 0 38쪽
229 195 +2 23.07.11 79 0 41쪽
228 194 +2 23.07.06 64 0 42쪽
227 193 +2 23.06.28 78 0 41쪽
226 192 +2 23.06.23 77 0 46쪽
225 191 (2부) +2 23.06.15 63 0 41쪽
224 Epilogue +2 23.04.20 102 0 25쪽
223 190 23.04.20 81 0 42쪽
222 189 +2 23.04.10 92 0 41쪽
221 188 +1 23.03.30 125 0 43쪽
220 187 23.03.21 88 0 31쪽
219 186-2 23.03.21 65 0 12쪽
218 186 23.03.13 80 0 38쪽
217 185 +1 23.03.04 101 0 38쪽
216 184 +2 23.02.26 78 0 30쪽
215 183 23.02.17 80 0 40쪽
214 182 +1 23.02.11 77 0 42쪽
213 181 +1 23.02.03 87 0 45쪽
212 180 23.01.28 80 0 38쪽
211 179 23.01.20 84 0 42쪽
210 178 23.01.12 85 0 39쪽
209 177 23.01.05 103 0 40쪽
» 176 +1 22.12.27 106 0 44쪽
207 175 22.12.20 95 0 50쪽
206 174 22.11.18 115 0 37쪽
205 173 22.11.09 134 0 38쪽
204 172 22.11.01 106 0 30쪽
203 171-2 22.11.01 9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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