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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D:HYUNKUN

냉장고가 미쳤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나자까
작품등록일 :
2024.01.06 02:40
최근연재일 :
2024.01.16 20:20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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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2,507

작성
24.01.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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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2 평신원 약재사 크레퀠(2)

DUMMY

2.



"어서 이쪽으로! 위험하다니까?"


짓다 만 것처럼 중간이 끊겨있는 철제 다리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발바닥을 걸친 아이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너... 이, 진짜! 그냥 두고 갈 거야?"


잔뜩 성이 난 기홍이 등을 돌리자 곧 찢어질듯한 이명이 머리 속을 강타했다.


- 삐


기홍은 재빨리 두 귀를 감싸쥐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이의 노란색 장화 코 끝이 그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러고 있어?"


기홍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귀신인가 싶어 소름도 끼쳤지만,

오래 들여다보고 있다보니 어딘가 낯이 익기도 하고,

'보통 남자 아이의 얼굴이 보통 이런가?'

동글동글하니 꽤 귀여운 상이네 싶기도 했다.


"너 이씨, 진짜... 괜찮아?"

"응. 반가워, 천기홍!"

"날 알아?"

"당연하지!"


기홍이 손을 내리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음... 그야, 니가 천기홍이니까."


'내 말이...'


대뜸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답답한 순간들이 잠깐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나를 아는 사람이라니... 다시금 혼란스러워진다.


처음에는 이곳이 저승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월재에서 생활하며 이 세계에 대해 알아갈 때는, 어쩌면 SF영화에서 봤을 법한 멀티버스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근데 막상 저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니 번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자신이 어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어버린 미치광이일지도 모른다는 아주 불길한 예감. 한국이라는 나라도, 그곳에서의 삶도 그저 자신이 지어낸 망상일 뿐이라는 그런 생각 말이다.

'그래. 호접몽!'


물론 답은 앞에 있는 저 아이가 가지고 있겠지. 기홍은 어떻게서든지 이 아이를 구워삶아 최대한 많은 정보를 캐내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넌 누군데?"


기홍이 제법 자상한 투로 바꿔 되물었다.


"나? 나는..."


아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술래!"

"아이씨- 장난치지 말고! 형 화낸다?"


아이는 꺄르르 웃으며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 역시나 초장에는 기선제압이 우선이지. 저자세로 있다가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 한테 휘둘리기만 할 게 뻔했다.

기홍은 날쌘 동작으로 아이의 손목을 획 낚아 채 강하게 붙들었다.

근데, 손으로 느껴지는 이 익숙한 촉감. 비닐로 코팅된 우비, 미싱기의 정교한 박음질 자국. 고무 장화와... 그리고 우산?


'설마...'


"너도 여기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지?"

"..."

"누구야? 아니다, 너 어디 살아?"

"내가 사는 곳은 재미가 없어."


아이는 기홍이 강하게 틀어쥔 손목이 제법 아려왔지만 자존심 때문에 굳이 아픈 티를 내지는 않았다. 대신 입을 빼죽이며 기홍의 시선을 애써 피해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러니까 거기가 어딘데?"

"안 가르쳐 줄 거야, 바보멍청이 천기홍."


- 탁!


"천기홍? 너랑 내 띠가 못 해도 두바퀴는 넘게 차이가 날 것 같은데, 어디서 으른 이름을 함부로 따박따박 부르고 있어!"


기홍은 여전히 버릇 없는 아이의 머리에 살짝쿵 꿀밤을 먹이고서 가볍게 볼을 잡아 당기며 나무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통이 제대로 났는지 팔꿈치로 기홍의 손목을 탁 쳐내고는 눈을 있는 힘껏 부라렸다.


"나 갈래."

"잠깐만!"


아이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구르며 성큼성큼 다리 끝으로 걸어갔다.


"형이 미안해.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아이는 나이 답지 않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방향을 틀어 기홍에게 돌아왔다.


"정말?"

"응"


기홍은 한숨을 푹 내시며 대답했다.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당장에 간절한 쪽은 기홍이었으니까 말이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아이한테는 친절해야 한다고 그랬어! 물론 난 9999살이지만 말이지!"

"뭐, 9999살? 그래... 뭐, 알겠어, 알겠고... 반말까지는 오케이. 근데 우리 인간적으로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말자. 너희 부모님도 그렇게 가르쳐 줬을 거 아니야?"

"칫. 알겠어."

"좋아. 형이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뭔데?"

"형이... 그러니까 사고가 좀 있었거든? 그래서 이전에 기억이 가물가물해. 당장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도 모르겠고..."


아이가 기홍의 다음 말을 기다리며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너는 어떻게 여기 왔을까?"

"나? 뿅하고 왔지~"

"어... 그래... 뿅하고..."


기홍이 아이가 보이지 않게 등 뒤로 주먹을 꽉 쥐며 웃어보였다.


"왜 온 거야? 뭐하고 있었어?"

"나?"

"응..."


.

.

.


"숨바꼭질."



***



둘은 다리 난간 쪽 턱에 엉덩이를 대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너도 한국에서 온 거지?"

"맞아. 우리 집은 2층 집이야. 다른 사람들은 다 아파트에서 사는데, 우리집엔 마당도 있고, 옥상도 있어."


아이는 연신 장화 밑창을 땅바닥에 긁어대며 무심히 답했다.


"좋겠네... 요즘 같은 세상에 단독주택이라니. 복 받았다 너."

"난 숨바꼭질 할 때 꼭 냉장고에 숨거든? 그러면 다른 애들은 절대 못 찾아. 신기하지? 아무도 거기 숨어있는지 모르나봐. 헤헤."

"그렇구나. 근데 그건 좀 위험하지 않을까?"


.

.

.


잠깐만. '냉장고'?


방금 만난 이 아이와 기홍은 두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세계에서 이곳으로 와 있다는 것. 그리고 '냉장고'.


"냉장고? 혹시 너도 냉장고 때문에 여길 온 거야?"

"응, 맞아. 너처럼."


이-씨. 너라니, 또. 성질 뻗치긴하지만 기홍은 간신히 울화를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 온 건지도 알고 있고 말이지?"

"너네 집 물에 잠겼잖아. 죽을 뻔 했는데 살았지?"

"맞아.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니, 그보다. 넌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내 이름도 그렇고."

"냉장고가 말해줬어."

"냉장고가?"

"응!"


불쑥 몸을 일으킨 아이가 기홍 앞으로 가 섰다. 그리고는 그가 일전에 유튜브 광고 컨텐츠에서 보았던 크리에이터를 흉내내기 시작했다.


"'일상 속 또 하나의 마법!' 더 나은 삶을 위한 당신의 현명한 선택! 마구스, 더 메피스토! 지금 바로 구매하세요!"


과장된 표정과 몸짓이 곧 멎고 아이의 어깨가 아래로 툭 떨어졌다. 마치 물에 홀딱 젖은 새끼 고양이처럼 처량해보였다.


"아무래도 들킨 것 같아. 나만 알고 있던 건데..."

"뭘?"

"여기 오는 방법 말이야. 이번에는 내가 숨을 차례였거든? 근데 한참을 지나도 안 나타나길래 내가 술래를 찾았단 말이야. 근데 없어. 아무데도! 아무래도 술래가 나를 찾아서 여기에 들어온 것 같아."

"아무나 올 수 있어? 냉장고만 있으면?"


도통 믿기지가 않았다.

식료품이나 보관하는 냉장고가 이계로 통하는 문이라니. 그것도 '아무나'에게나 말이다.


"아무나? 그건 아닐껄..."

"그럼?"

"엣헴. 냉장고 세상에 들어오는 방법은 반드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일단은 숨을 참아야 해. 절대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면 안 되거든. 그렇게 한 10초 정도 세고 있으면 몸이 따뜻해져. 막 찌릿찌릿 간지럽기도 하고 말야."

"그리고."


.

.

.


"근데 이게 왜 궁금해?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오게 된 거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

"그럴 수 있으면 그래야지? 어쨌든 거긴 내가 살던 곳이니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거짓말쟁이."

"너도 집에 가잖아. 형도 언젠가는 돌아가야지! 저기 저 요상한 사람들이랑 언제까지나 같이 지낼 수는 없잖아."

"그럼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돌아갈래?"

"... 그럴 수 있어?"

"아니."

"역시나..."


기홍이 고개를 떨구고 희미하게 웃었다.


"그 반응은 뭐야? 넌 자기 자신한테 좀 솔직해 질 필요가 있겠다."

"솔직? 무슨 말이야?"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잖아. 너도 재미없었지? 살던 곳 말이야."

"애야. 사람은 말이다? 재미만 찾으면서 살 수는 없단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며칠 못 가서 단두대 같은데 올라 갈 것 같단 말이지. 그 프로레슬러 같은 영감탱이 표정에서 묘하게 그런 게 느껴졌어. 살기같은 거."

"마토 할아버지?"

"그래. 그 우락부락한 왕 말이야."

"풉."

"웃겨?"

"응! 그러게? 진짜 프로레슬러 같네. 근데 그렇게는 못하지 않을까?"

"왜?"

"넌 <자>니까."

"그래, 그 이야기도 좀 해보자. 딱 보니까 너는 여기에 빠삭한 거 같은데, 그 <자>란게 대체 뭐냐?"

"영웅! 주인공! 뭐 그런 거 아닐까?"

"퍽이나."

"그러니까 여기서 놀아. 집에가면 넌 그냥 바퀴벌레잖아. 맨날 집에만 틀어박혀 있고, 아줌마랑 아저씨들이 말 걸까봐 무서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피해다니고. 히히히. 딱 바퀴벌레 같아. 알지? 바퀴벌레는 샤샤샥 잘 숨잖아. 너랑 닮았어."

"말하는 꼬라지 보소?"

"재미없어. 놀아줄 사람도 없고, 그치?"

"어쨌든 여긴 현실이 아니라는 거잖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럼 여긴 뭔데?"

"여기도 똑같이 현실이지."


아이가 호다닥 다가와 기홍의 코를 꼬집고는 멀직이 달아났다.


"아!"

"봐. 아프지? 거기도 현실, 여기도 현실이라니까? 게다가 여기선 넌 무려 영웅이라고! 냉장고가 주는 임무만 잘 따라가도 니가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을 껄? 니가 돌아가고 싶어하는 세상에서 넌 비루하고 보잘 것 없잖아?"


뼈 때리네... 그리고 애답지 않은 저 말투... 어쩌면 저 아이가 진짜로 '9999살' 쯤 먹지 않았을까 하는 바보같은 믿음도 살짝 생겨났다.


"임무?"

"맞아, 임무! 처음에는 좀 혹독할 지 몰라도 보상 하나는 정직하거든. 그러니까 도망가지 말고 여기서 새 인생 찾아."

"생각해 볼게. 말하는 냉장고가 언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반신반의 하면서도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을 짓고 있던 기홍에게 아이는 불쑥 손바닥을 내밀었다. 기홍은 무슨 의미인지 잠깐 고민하다 고사리같은 아이의 손을 가볍게 감싸쥐었다.


"반가웠어. 물론 내가 기대한 모습이랑은 전혀 딴판이지만."

"날 기다렸다고?"

"널 찾고 있었지."

"술래 찾으러 왔다면서."

"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찾는 술래를 찾으려면 니가 필요하다고 말했어."

"누가?"


"냉장고가?"

"냉장고가."


기홍은 자신이 질문을 던져 놓고서는 아이와 동시에 대답했다.


"그렇겠지... 너도 '임무'중이구나."

"비슷해. 근데 내 임무는 이걸로 임시중단. 너무 졸리다."

"재미없다면서 잠은 또 왜 돌아가서 자? 웃긴다."

"난 너랑은 다르지. 넌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돌아갈 필요도 없지."

"어린 놈이 말을 참 못되게 한다. 어쨌든 부럽네. 넌 니 마음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어서."


아이는 풀이 죽은 기홍의 표정을 보고 잠깐 고민하다 그의 곁에 가 섰다.


"일어나. 가르쳐줄게."

"뭐? 정말?"


기홍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헤벌레 벌리고 아이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물론, 넌 돌아갈 수 없어. 아직은."

"왜 그런건데."

"아까도 말했듯이 몇가지 규칙이 있어. 무엇보다 넌 아직 냉장고를 만나지 않았잖아? 그렇다는 건 넌 아직 여기서 더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뜻이야. 물론, 언젠가 내가 술래를 찾는 것도 도와줘야하고 말이지. 아직 한참 애송이지만. 자, 따라와."


아이는 기홍의 소매자락을 움켜쥐고 다리 끝으로 그를 끌고 갔다.


"야. 너무 위험해 보이는데?"

"돌아가려면 이렇게- 다리 끝에 선 다음-"

"그... 그런 다음..."


기홍은 아이가 서 있는 다리 끝에서 한발짝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그의 사지는 아찔한 벼랑 끝에 함께 서 있는 듯 저도 모르게 달달 떨려왔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숨을 한...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 팅!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야... 어?"


아이의 시선이 빠르게 기홍 어깨너머로 향했다.

기홍 역시 그 시선이 닿는 곳으로 번득 고개를 돌렸다.


- 팅! 탕! 탁, 데구르르르르


점점 더 빠른속도로 그들에게 굴러오는 작은 유리병 하나.

그 동선을 쫓아 올라간 곳에는 한 은발머리의 청년이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만 들어 기홍을 쳐다보며 얼어붙어 있었다.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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