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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D:HYUNKUN

냉장고가 미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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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자까
작품등록일 :
2024.01.06 02:40
최근연재일 :
2024.01.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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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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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EP.1 냉장고(1)

DUMMY

파트 1 : [천기홍]

EP 1. 냉장고


1.

5개월 전.

2030년 8월 16일. 대한민국.


숨을 내쉴 때마다 후끈한 알코올 향이 매마른 목구멍을 타고 올랐다.

가만이 누워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의 열대야. 그 후텁지근한 공기에 끈덕지게 눌러 붙은 질기디 질긴 천기홍의 하루는 역시나, 오늘도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부지런한 발걸음 아래에 고여있었다.


"후- 죽겠네, 씨."


개 같은 숙취... 과음 때문에 온몸 구석구석이 저렸다.


'또 술을 마신다? 그럼 난 사람이 아니라 개다, 개!'


- 헥,헥,헥,헥!


속으로 혼잣말을 끝 마침과 동시에 머리맡에서 불쾌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기가막힌 타이밍에 등장한 검은 실루엣은 곧 본격적으로 기홍이 있는 아래 쪽을 향해 미친듯이 짖어대기 시작했다.


"왈! 왈왈왈!"


익숙한 루틴이었기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대신 '11시 쯤 되었겠네-'라며 조용히 속삭이며 머리맡에 있던 휴대전화를 들어올렸다.


[오전 11시 7분]


"디오르!"


갸냘픈 목소리의 주인이 코를 바닥에 바짝 들이박고는 옹골찬 앞발로 창 틈새를 박박 긁어대고 있는 자신의 귀여운 '딸'을 제법 품위있는 목소리로 불렀다.


시선을 여전히 암막 커튼 사이에 둔 채, 기홍은 밤 사이 내팽개쳤던 이불을 찾아 시트 아래 쪽을 연신 더듬었다.


- 스르륵-

"후우-"


기홍은 조심스레 끌어올린 이불로 얼굴의 절반을 덮고는 참았던 숨을 거칠게 몰아 내쉬었다. 이젠 그의 숨소리마저 바깥으로 새어나가 일이 없었지만은, 어째서인지 오늘은 그 방법이 영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술냄새 때문인가? 그가 속으로 의아해 하고 있을 때에 짐승의 발광은 더욱 더 거세져 갔다.


"끼잉-"

"거긴 창고라니까요, 디오르. 아이고- 먼지 좀 봐."


- 쿵! 쿵! 쿵! 쿵!


주인이 제게 더 가까워질수록 짐승의 묵직한 꼬리는 점차 세차게 기홍의 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안 돼요, 디오르!"


틱, 하는 불길한 경첩소리가 짐승의 목에 두른 올가미에서 들렸다. 무언가 직감이라도 한 것일까? 주인은 더욱 더 팽팽히 목줄을 바싹 당겨 잡았다. 그러자 단말마 신음을 토해 낸 짐승은 이제는 아예 온몸을 짜 비틀며 발악했다.


그리고 팅-, 탁! 주인은 바로 옆 언덕 아래로 튕겨 달달 내림박질 치고 있는 목줄 이음새의 위치를 소리로 가늠하여 추적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데 말이다.


- 와장창!


"악!"


산산조각난 창문 유리조각이 후드득 침대 위로 쏟아져내렸다. 기홍은 재빨리 머리 위로 이불을 당겨 덮고는 벽으로 바싹 몸을 붙였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디오르! 괜찮아요?!!"


딸에게 후다닥 달려온 주인이 자신의 반만한 짐승의 육중한 근육질 몸통을 부여 잡고는 실랑이를 시작했다.


"끼이잉-"


뭐가 성에 덜 찼는지, 짐승은 튼실한 앞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뻐팅기며 주인에게서 벗어나려 신음했다. 대가리는 쭉 빼 창 안으로 집어넣어서, 그 소리가 바로 기홍의 머리 위에서 맴돌았다.


- 툭. 툭.


이불 위로 떨어지는 진득한 침에 기홍은 살짝 이불을 내려 두 눈을 드러냈다. 그리고 마주친 시선.


'알래스카 말라뮤트다.'


기홍은 보자마자 단번에 견종을 알아 맞췄다. 인터넷에 떠 도는 무수히 많은 영상들 중에 그의 스크롤을 멈추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종류의 영상 중 하나가 바로 반려동물 관련 컨텐츠였다.


'얍실하면 시베리안 허스키, 뚠뚠하면 말라뮤트.'


아이 귀여워. 날로 더워지는 한국은 저런 견종에게는 지옥과 다를 바 없을 텐데도, 왠지 저 아이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순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 여기 사람이 사나?"


순간 주인의 얼굴이 창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기홍은 다시 숨을 참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행이었다. 암막 커튼 사이로 빛이 살짝 새어 들어오긴 했지만 충분치 않았고, 그 마저도 육중한 두 짐승의 몸뚱어리가 등을 지고 가린 탓에 내부 공간을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덕분에 주인은 금새 탐색을 종료했다. 대신 주위를 환기하며 두리번 거리다가 일전에 보였던 품위는 어디다 팔아 먹었는지, 이제는 반려견을 가차없이 질질 끌며 범행 현장을 재빨리 벗어났다.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어떻게든 붙잡아 책임을 물었을테지만 기홍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돈이나, 정의감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



또다른 불청객이 기홍의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시각은 12시 쯤이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날카로운 유리조각들을 훔친 이불을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내다가,

타는 갈증에 못 이겨 냉장고를 열어 500ml 짜리 병 바닥에 찰랑이던 한 모금도 채 안 되는 생수를 목구멍에 털어놓고는,

'이건 어쩔 수 없다'며 한 시간 전에 했던 맹세를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맥주캔을 딱 땄을 때 쯤이었다.


- 딸깍, 딸깍, 딸깍


좀 잠잠하나 했던 참인데, 이 집에 들어왔을 때부터 묵묵부답이었던 낡은 전자 초인종을 누군가 연신 눌러대는 탓에 그의 심장은 다시금 바짝 조여 왔다.


대체 이 시간에 누구일까? 주인집 할머니일리는 없었다. 그녀는 보통 용견이 있거든 빌라 앞 평상에 앉아 기홍이 집 밖으로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곤 했다.


그럼 이웃주민들 중 하나일까? 402호. 할머니 옆집에 산다는 그 아저씨라면? 그래. 한 번이라도 그의 집을 찾은 적 있는 인물이라면 초인종이 진작 사망했다는 것 정도는 알 테니까.


그런 의미로 유치원생 쯤으로 보이는 쌍둥이 자매와 멀대같이 키가 크고 빼빼마른 허약한 남편을 동시에 양육하고 있는 301호 아주머니도 후보에서 제외다.


'아냐...'


402호 아저씨일리도 없다. 그는 마치 좀비 같은 남자라 늘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다. 늘 새벽 일찍 집을 나섰고,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일주일 전 202호에 입실한, 그와 비슷한 또래의 동족 히키코모리 여자.


"고장났어? 문을 두드려 봐."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 하나가 미끄러지듯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 쿵,쿵,쿵

"계십니까?"


목소리를 듣자마자 기홍은 암막 커튼 사이로 빼꼼히 눈 한 쪽을 드러내놓고 그녀의 이사를 몰래 관찰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가 말하는 것을 단 한번도 들은 적 없긴 해도, 그렇게 예쁘장한 얼굴에서 이런 목소리가 날 리는 없다며 기홍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방금 전. 현관문을 두드리며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서른을 갓 넘긴 사내의 것이 분명했다.



***



[회피형 성격장애, 혹은 은둔형 외톨이. 또는 국립국어원 추천 명칭 '폐쇄은둔족']


2025년 기준 취업 포기자 140만명 시대에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여전히 구직 단념자로써 생존한 지도 어언 5년차. 기홍도 짬이라면 찰만 치 찼다.


그동안에 이런 일이야 수도 없이 많았다. 예상을 벗어나거나 불가항력적이라 불리우는 만남들 말이다.

도망치면 마치 큰일이 벌어질 거라고들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는 않았다. 끈질기게 버티고 숨으면 늘 상대가 먼저 지쳐 포기하기 마련. 오지랖 넓은 301호 아줌마도 그랬고, 그 외 공적인 업무들이라 불리우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진다는 거? 그건 환영할만한 일 아닌가?


그리고, 말이 구직포기자지 엄밀히 말해 그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제품 커머셜 리뷰 관리(0명) 아르바이트 모집합니다.]


소위 '댓글 알바'로도 불리는, '관리'라고 애둘러 표현하지만 일종의 스토리텔링에 가까운 업무였다. 광고 대행 업체에서 받은 몇개의 SNS계정을 돌리며 제품을 홍보하는 게시글을 작성하거나,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았다.

뭐, 그렇다고해서 엄청난 창의력을 요하는 일도 아니었다.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푼돈일지라도 만족스러웠다. 풍족한 삶? 굳이? 재택근무와 탄력적인 근무시간이면 그걸로 충분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 한 번 해볼래?"


기홍은 재빨리 침대 위에 있던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러나 그 찰나의 고요 속에서 기홍의 휴대폰 역시 침묵을 이어갈 뿐이었다.


"예, 예, 사장님. 저희 왔는데 안에 안 계세요?"


집주인은 분명 기홍인데, 어째서인지 정체불명의 인물과 통화를 시작한 남자. 그래... 그들은 으레 그렇듯 목적지를 잘못 찾은 게 분명했다.


"낙원빌라... 예- B01호요. 예... 아, 맞는데? 예..."


- 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한층 더 거세졌다. 찢어질듯한 굉음에서 남자의 짜증이 묻어났다.


"예, 일단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후, 한 명은 고장이 난 초인종 버튼을, 또 한 명은 현관문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안에 계십니까? 천기홍씨?"


'끈질기네, 진짜.'


이정도로 인기척이 없으면 돌아갈 법도 한데 불청객인 주제에 인내심도 강했다. 기홍은 조심조심 발을 떼 창가로 가 암막 커튼을 다시 여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어떤 상황도 X나 버티다 보면 지나갈 거라는 진리를 체득한 기홍이었다. 다들 바쁘니까, 저 한 명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둘 게 분명했다.


[히키코모리의 제 1법칙 '무조건 회피하라!']


그는 창가 위쪽에서는 절대 보일 수 없는 사각지대인 침대와 책상 사이에 몸을 찌그러트려 구겨 넣었다.


그 어떤 여지도 주어선 안 된다. 한 번 받아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평화로운 히키코모리 생활도 끝이다. 댐에 생긴 균열처럼, 단 한 번의 여지는 철옹성 같던 자신의 세계를 허물어뜨리고 말 게 불 보듯 뻔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


이 곳은 최후의 보루다.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어.



***



1분 전까지만해도 굳건해 보였던 철옹성도, 최후의 보루를 지키던 용맹한 기사같던 그 기세도 무의미해졌다.


'X됐다.'


"아니 무슨 일이래? 뭔 난리라도 난 거여?"


억척스럽게 푸닥이는 슬리퍼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301호 아줌마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빌라 전체를 뒤흔들었다. 계단을 반쯤 내려와서는 팔짱을 끼고 오지랖을 부리는 꼴이 눈에 선했다.


"아, 혹시 여기 사시는 분 아세요?"

"나 여기 3층 살아요."

"아, 예. 배송을 왔는데 안에 아무도 안 계신 것 같아서요."

"안에 있을 껄? 그 총각 어딜 나 다니는 사람이 아니여."


기홍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네요. 혹시 연락처가 있을까요."

"전화번호는 모르는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내, 집주인 할머니한테 가서 물어볼게. 여차하면 문 따야지."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아니야! 혼자 사는 총각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안 그래도 요 며칠 안 보여서 걱정되긴 했어."


잠시 후, 다시 301호 아줌마의 젤리 슬리퍼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천을 문대는 듯 연약하고 가벼운 발소리도 뒤를 따랐다.


"할매 왔어요- 저기, 다들 비켜 봐봐."


그녀의 말에 수 많은 걸음이 일제히 산개했다. 마치 며칠 비운 집에 들어 와 불을 딱 켰을 때, 수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바퀴벌레 무리들이 순식간에 흩어지며 내는 소리와 닮았다. 다다다다닥.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쪽이란 쪽은 다 팔릴 터였다. 기홍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다가갔다.


"총각. 안에 있어?"


주인집 할머니의 목소리였다.


"윽..."


그래도 집주인 할머니와는 종종 말을 섞었는데, 습관처럼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을 침묵으로 버텼고, 이제서야 그녀의 말에 즉각 대꾸하는 꼴도 여간 우스운 일이 아닐 터였다.


"아저씨들이 한 시간째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 대꾸도 없대요.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증말."


'한 시간은 무슨. 10분 도 안 됐어요, 아줌마... 하여튼 유난히 유별난 사람이라니까.'

'지금이라도 문을 열까? 왜 안 열었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지. 그냥 열게 둬야 하나. 그래야 뭐라도 할 말이 있겠지.'

'마스터 키 같은 거라도 있는 거 아냐? 근데 그건 불법이잖아!'


오만가지 생각이 기홍의 머리를 관통했다.


"키 없어요?"

"없지. 그런 거 가지고 있으면 불법이야."


'그러취!'


"어휴. 그래도 뭔 일이 날 지 모르는데... 그래! 아저씨, 공구 있죠? 도라이바 같은거. 그런 걸로 안 되나?"

"예?"


'뭐?!'


"문 좀 따 봐요."

"예?"

"뭘 계속 '예예'야. 안에서 큰일이라도 난 거면 어쩔려고 그래. 방조야 방조!"

"아- 예!"


- 끼익... 끼익...


결국.

히키코모리 모든 법칙의 근간이 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을 깨야할 때가 왔다. 1년 간 평화로웠던 이 곳 우성빌라 B01호에서의 '침묵'이 산산히 산화하는 순간이었다.


기홍은 초연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현관으로 걸어갔다.


'그래, 내가 졌다. 이곳 생활도 이제 끝이네...'


떨리는 손을 잠금해제 버튼에 살포시 올려놓은 기홍은 두눈을 감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었다.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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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EP.2 평신원 약재사 크레퀠(1) 24.01.09 1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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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P.1 냉장고(3) 24.01.08 11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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