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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나라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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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평장
작품등록일 :
2022.08.15 21:42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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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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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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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화 장기말 찾기

DUMMY

배관 수리 업체 로고가 붙어있는 흰색 포드 트랜짓 커넥트(Ford Transit Connect)가 런던 동부 스트랫포드(Stratford)의 한 주택가 길가에서 굉음을 내며 폭발한 건 화요일 오전 10시 정각 쯤이었다. 운 좋게도 밴 안에 있던 폭탄이 앗아간 건 바보같이 회로선을 엉뚱한 곳에 연결한 남아시아계 테러리스트 본인의 목숨뿐이었다. 런던 경찰이 시신을 수습하기 매우 어려웠다고. 밴이 주차되어있던 바로 앞의 집 담벼락과 쓰레기통이 완전히 날아가고 거실에서 TV로 범죄 관련 리얼리티 쇼를 보고있던 79세 노부인의 팔다리에 유리 파편이 일부 박히긴 했지만 그녀는 간단한 파편 제거 수술만 받고 다음 날 바로 퇴원했다. 심정이 어떻냐는 한 젊은 기자의 질문에 노파는 4000 파운드(약 630만원)나 주고 산 소니 OLED TV가 완전히 박살나서 굉장히 괴롭다고 간단히 대답한 후 손녀의 차를 타고 병원을 떠나버렸다.


테러 현장 조사와는 별개로 런던 경찰이 레드브릿지(Redbridge)에 있는 이 운 나쁜 테러 미수범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경찰이 지하실에서 발견한 것은 질산암모늄 비료 500kg, PETN(펜타에리트리톨 테트라니트레이트), 타이머에 쓰일 전자 회로, 스마트폰 등 소위 ‘비료 폭탄’ 제조에 악용될 수 있는 전형적인 일상품들 그리고 홍차 박스였다. 이제 막 대테러 업무에 투입된 신참 경찰이 아무 생각 없이 홍차 박스 뚜껑을 열려는 순간 중년의 선배가 ‘열지 마!’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이 신참은 당황한 나머지 오히려 홍차 박스를 열고 말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박스 안에는 홍차 티백 대신 비행기에서 나눠주는 치약통 크기의 소형 납상자들이 가득 차있었다. 모여있는 경찰 대원들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아버지가 원자로 기술자인 신참 대원은 방사선 차폐에 관해 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납상자를 보자마자 이 어린 친구는 납으로 감싸면 플루토늄이 차폐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저 납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곧 방사능 방호복을 입은 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피폭된 인원은 없었다. 테러 현장 잔해를 조사한 결과 일단 벤이나 폭탄에는 납상자가 설치되었거나 존재했던 흔적이 없었다. 터진 폭탄은 일종의 연습용이고 고정된 공간에서 작업을 하면 의심받을 것을 우려해 배관 수리 출장을 핑계로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차 안에서 작업하던 이 테러리스트가 경솔하게 질산암모늄을 넣은채 회로 연결 연습을 하다가 일이 벌어진 듯 했다.


행운의 톱니바퀴가 꿰맞아떨어진 것처럼 테러리스트 1명 빼고는 사망자도 부상자도 없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톱니바퀴가 하나라도 맞아떨어지지 않았다면 행운이란 없었다. 벤에서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납상자를 넣은 채 회로 연결 연습을 했다면? 홍차 박스를 연 그 덜렁거리면서도 똑똑한 친구가 원자력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었다면?


MI5, MI6, DI(국방정보국)가 합동으로 조사에 투입되었다. 납상자에 들어있던 것은 플루토늄이 맞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 사실을 비밀에 붙였다. 언론에 새나갈 경우 시민들이 가질 공포가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압수수색에 참여한 경찰 요원들에게는 방사성물질은 들어있지도 않는 일종의 신형 납전지라고 둘러댔다. 납도 위험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바람에 신참 경찰만 억울하게 두고두고 동료들에게 놀림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사람이 억울하게 겪을 조롱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극비리에 플루토늄의 출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각 국가마다, 각 원자로마다 플루토늄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그래서 방사성 동위원소의 구성도 일종의 지문처럼 고유의 특성을 지닌다. 그걸 분석하고 다른 나라와 데이터를 공유하면 이 물질이 언제, 어느 국가의 어느 시설에서 만들어졌는지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유럽공동체 회원국, 동아시아의 우방국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도 같은 제3세계 국가 정보 기관들과 발견한 핵물질에 대한 정보를 비밀리에 공유했다. 적성국가의 데이터는 공개정보나 혹은 그동안 첩보 활동을 통해 확보한 리스트를 활용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하나씩 명단을 좁혀나가고 있었다.


마침내 출처가 밝혀졌다. 플루토늄은 북중국 요령성 발해만의 한 핵시설에서 나온 것이었다. 북중국은 이미 1980년대부터 중동, 남아시아와 기타 공산권에 자국의 핵기술을 지원해주면서 핵확산을 방조하고 있었다. 플루토늄 제조 시기가 수십 년 전도 아니고 2017년~2018년 사이인 것으로 보아 북중국이 최근까지도 중동과 남아시아에 핵물질을 일부 넘겨주고 있는 듯 했다. 치안이 불안한 그 나라들에서 이 핵물질이 다시 유출되고 지중해와 도버 해협을 건너 런던까지 온 것이었다.


이제 영국 정부는 북중국의 칼춤이 동아시아에서만 끝나지 않고 자신들의 코앞에까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결과를 알려주면서 항의해봤자 전혀 소용이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혹은 5배, 10배의 복수를 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중국과 핵전쟁을 벌이거나 단교를 할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식적으로 북중국은 이 사건과 전혀 연관성이 없다. 테러리스트를 지원한 적이 없고 일단 정식으로 핵물질을 다른 나라에 준 적도 없다. 이번 사건에서 벌어진 인명피해는 당사자 1명 뿐이었다. 피폭된 사람도 없었다.


내각과 정보 당국 관계자들은 치열한 논의 끝에 핵시설과 연관된 인사를 제거하거나 혹은 포섭해서 서방으로 망명시키자는 결론을 내렸다. 적성국의 핵능력에 타격을 주거나 지속적으로 갉아먹는 것. 그것이야말로 더 큰 복수이자 일종의 ‘방어적 공격’일 것이다. 미국 정부도 이 방안에 동의를 보냈다.


영국은 그렇게 해서 타겟이 될 핵과학자를 1명 추려내었다. 미국 CIA, 남중국 국가안전국과 한국 국가정보원과 합동으로 그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다. 서방에서 이용할만한 연결고리가 있는지 여부였다.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기어코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연결고리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다름아닌 런던에. 그것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이 엄청난 게임의 장기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한테 곧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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